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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과 치유의 미술 니키 드 생팔의 삶

작성자미션|작성시간20.05.18|조회수462 목록 댓글 0
페미니스트, 조각가, 영화 연출가, 모델
해방과 치유의 미술 니키 드 생팔의 삶


풍만한 여성의 몸을 조각한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 조각가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은 파리에서 출생하였
다. 세 살 되던 해 아버지의 파산으로 가족들이 미국으로 이사하여 뉴욕에서 생활한다.

그는 17세에서 21세까지 <보그>, <라이프>, <엘르> 등에서 사진 모델을 할 만큼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다. 하지만
11살 즈음에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서 성장기를 고통 속에 보냈으며 전학과 자퇴를 되풀이하게 된다.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 기숙학교에 있을 때 학교 안에 그리스 조각상의 성기 부분을 가린 잎을 빨갛게 색칠했다
는 이유로 퇴학당하고 만다. 이후 그는 20대까지 지속적인 신경쇠약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 남성에 대한 혐오와 공
포로 내적인 치유와 안정이 절실했던 작가는 미술을 치유의 수단으로 삼았다.

초창기 작품은 이런 내면을 반영하듯 대상에 대한 적개심과 혐오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물감을 채운 총을 자신이 만
든 제단에 쏘는 행위예술인 ‘shooting painting’으로 주목받는다.

슈팅 페인팅 via ‘diane de polignac’ 

18세에 만난 첫 번째 남편과 결혼하여 파리로 돌아온 그는 둘째 아이 출산 후 신경쇠약에 걸려 정신병원을 드나든
다. 그는 남편과 요양차 유럽 전역을 여행하던 중 스페인에서 안토니 가우디가 만든 구엘 공원에 영감을 받고 자신만
의 공원에 대한 갈망을 품게 된다.

그리고 말년에 22개의 자신의 작품으로 채운 타로 가든(Tarot Garden)을 이탈리아 토스카나 카팔비오(Toscana Cap
albio)에 만든다.

1956년에는 후에 두 번째 남편이 되는 조각가 장 팅겔리(Jean Tinguely)를 만나 작품 활동에 더욱 진지해지며, 자신
의 시그니처 작품들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장 팅겔리와 니키는 죽을 때까지 동지로 연인으로 작품에 대해 서로 고뇌
하며 함께한다. 니키는 타로 공원이 정식 개관한 1998년 이후 5년 동안 플라스틱 독성으로 고생하다가 생을 마감한
다.

니키와 두 번째 남편 장 팅겔리 via ‘the redlist’ 

여성의 몸을 거대하게 확대한 설치작품 <Hon>. 길이만 27m에 달한다. 장 팅겔리와 함께 만들었다 via ‘cargo collecti
ve’ 

대표적 조각 작품인 ‘나나’ 시리즈 중에서 <Black standing Nana>(1995)

<Fiancés de Knokke>(1992)

<Serpent et déesses>(1987)

파리 퐁피두 센터 앞 스트라빈스키 광장 분수에 있는 니키 드 생팔의 움직이는 조각 작품 via ‘beninois’

 
예루살렘 빈민가 놀이터에 설치한 어린이 미끄럼틀. 니키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작품 via ‘old-chum’ 
자신의 작품과 함께 한 니키 드 생팔via ‘lotprive’ 

타로 가든 via ‘afar’ 

타로 가든 via ‘afar’ 


메인 이미지 Niki de Saint Phalle, <Mi Femme, Mi Ange>, <Nana Power>, <Volley-ball>


Writer 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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