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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술은 미친 짓이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1904~89)

작성자미션|작성시간20.11.22|조회수419 목록 댓글 3
   "그러나 예술은 미친 짓이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1904~89)


잠재의식의 심상을 탐구하여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평범한 물건들을 병치시키거나 기형으로 만들어
기괴하고 비합리적인 모습으로 변형시킨 환상세계를 묘사했다.

대표작은〈안달루시아의 개〉, 〈기억의 지속〉, 〈윌리엄 텔의 수수께끼〉, 〈서랍이 달린 밀로의 비너스〉, 〈원자의 레
다〉 등

출처 : 다음백과 , 미술사를 움직인 100인


살바도르 달리
살바도르 도밍고 펠리페 하신토 달리 이 도네메크, Salvador Dali

〈구운 베이컨과 부드러운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1941, 61.3×50.8cm, 스페인 피게라스 갈라-살바도르 달리 재단

여기 평생 동안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예술을 추구해온 화가가 있다. 사람들은 한동안 그를 가리켜 "광인(狂人)
같다"고 했다. 이런 사람들의 말에
그는 태연하게 되받아쳤다.
"내가 미쳤다고?
그런데 미친 사람과 내가 유일하게 다른 점은
내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지.
" 그는 상식을 깨는 예술을 추구했지만,
그렇다고 삶 전체가
비정상적으로 취급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초현실주의 미술이 어떤 것인지 매우 친절하게 안내한 화가 달리의 얘기다.
1917년 시인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가 처음 사용한 초자연주의(supernaturalism)라는 말에
서 태동한 초현실주의(superrealism)는
이성(理性)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과 환상의 세계를 다루는 문학과 철학 그리고 예술 운동을 일컫는다.

미술에서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Dadaism)에 뿌리를 둔다.
다다이즘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기성의 전통과 질서에 대한 파괴운동으로써,
비합리성과 비윤리성을 강조한다.
초현실주의의 기원을 좀 더 먼 곳에서 찾는다면
아마도 피카소로 대표되는 입체주의가 아닐까 싶다.
현대 미술에 지각변동을 가져온 스페인의 두 거장 피카소와 달리는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라고 하는 미술 사조를 통해 예술의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흘러갈지를 통찰한 선지자였다.

상식과 이성을 깨고 현실을 초월하는 화가의 자화상은 어떤 모습일까? 초현실주의 화가의 자화상 가운데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작품이 달리의 자화상이다. 〈구운 베이컨과 부드러운 자화상〉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달리의 자화상은 보
는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린다.
이 그림은 언뜻 그림만 봐서는 자화상이라고 하기 곤란하다. 그림 하단에는 'SOFT SELF PORTRAIT'(부드러운 자화
상)이라는 활자가 새겨져 있지만 오히려 더 혼란스러울 뿐이다.
도대체 이렇게 기괴한 형체를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과장과 비약이 지나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이 달리의 자화상이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직접적인 요소가 있으니 바로 '콧수염'이다.
달리의 인상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위로 날카롭게 말아 올라간 콧수염이다.
그는 평생 이 콧수염을 고수했다.

〈구운 베이컨과 부드러운 자화상〉은 달리가 화가로서 절정기에 그린 작품이다. 달리는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잠재의
식 속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위해 '편집광적 비평'이라고 스스로 이름 붙인 방법으로 자신의 몸에서 환영을 뽑아냈다.
그가 그린 꿈의 세계에서 보통의 사물은 이상하고 비합리적인 방식에 의해 새롭게 배열되고 변형된다. 〈구운 베이컨
과 부드러운 자화상〉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나무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는 얼굴은 일그러져 있고 아래
로 부드럽게 녹아 흐른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구운 베이컨 한 조각이 놓여 있다. 추상적이고 단순화한 이 자화상은
마치 설치미술과 흡사하다.

세간에 숫한 화제를 뿌린 작품들

〈시간의 영속〉, 캔버스에 유채, 1931, 24×33cm, 미국

달리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비합리적인 환각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20세기 초 미국과 유
럽 미술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그를 초현실주의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 〈시간의 영속(永續)〉이다. 달리는 그림 속에서 비현실적으로
 변형된 사물을 마치 실물을 보는 것처럼 정교하게 그렸다.
그리고 이 사물을 황량하면서도 밝게 빛나는 풍경 속에 배치해 보는 이들을 끝없는 수수께끼의 세계로 안내한다.

죽음이 휩쓸고 간 괴기스런 풍경은 부드럽게 녹아서 흘러내리는 시계와 강렬한 대조를 이룬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시계는 모두 예술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꿈의 세계를 대변한다.
그러나 시계 뚜껑 위의 개미와 주변의 파리는 관람자의 생각을 다시 현실로 되돌려 놓는다.
꿈의 세계에서 현실로 되돌아오는 그 짧은 사이에도 시간은 미친 듯이 빠르게 흘러가기 때문에
결코 돌이킬 수 없다.
달리는 이 그림을 통해 삶의 압박 속에서 개인의 세계가 붕괴될 것임을 예견했다.
이 그림은 1932년 뉴욕의 쥘리앵 레비 갤러리(Julien Levy Gallery)에 전시되어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리가트항의 성모〉, 캔버스에 유채, 1949, 49.5×38.3,미국 밀워키미술관

핵물리학과 종교화가 신비롭게 결합한 〈리가트항의 성모〉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종교화로 꼽힌다. 로마의 전통적이
고 웅장한 형태의 아치가 여섯 조각으로 분해되어 현대적인 의미의 부품으로 변형되었다. 공중에 떠 있는 조개껍데
기와 알은 삼위일체인 성부와 성자, 성령을 가리킨다.

달리는 종교화로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도 했다.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해 많은 화가들이 그
린 대표적인 종교적 주제이다.
달리가 그린 〈최후의 만찬〉은 마치 SF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듯 파격적이고 전위적이다.
1955년 이 그림이 발표되자 대중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달리는 워싱턴 D.C. 국립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가
졌는데,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의 작품을 내리고 그 자리에 이 그림을 올릴 만큼
큰 호응을 얻었다.

〈최후의 만찬〉, 캔버스에 유채, 1955, 167×268cm, 미국 워싱턴 D.C. 국립 미술관

한편, 달리의 파격적인 종교화들은 보수적인 신학자들 사이에서 혹독한 비판을 면치 못했다.
일부 신학자들은 달리가 종교화의 성모 마리아나 예수를 그릴 때 아내 갈라(Gala Dali, 1894~1982)의 얼굴을 이입시
켜 그렸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종교화의 성스러운 존재마저 지나치게 개인적인 취향으로 왜곡시켰다는 얘기다.
그들은 달리의 종교화야말로 이른바 키치미술(독일어 'kitchen'에서 유래한 말로, 저속한 싸구려 미술 작품을 뜻한다
–역주)에 지나지 않는다고 쓴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행복은 오직 아내였고, 불행은 아내의 죽음이었다
달리는 1904년 스페인 카탈로니아(Catalonia) 지역의 피게레스(Figueres)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그는 열네 살 때 시민극장에서 개인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그는 열일곱 살에 마드리드의 산페르디난드 미술학교에 입학하면서 정식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한다.
그러나 달리의 기인 기질은 어려서부터 유명했다. 학창시절 성모 마리아 조각을 정물화로 그리는 수업시간에 성모
 마리아 대신 저울을 그려 주위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자기 눈에는 성모 마리아가 마치 저울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달리는 어린 시절부터 눈에 보이는 사실적인 형상과 상상 속에서 그려지는 이미지를 크게 혼동했다.
이처럼 몽환적이고 유니크한 시각은 달리를 초현실주의 미술의 거장으로 만드는 밑거름이 되기도 했지만, 이로 인
해 한평생 일상생활에서 정신병자 취급을 받으며 지내야 했다.

이런 달리를 이해하고 감싸 안았던 사람은 다름 아닌 아내 갈라였다. 달리가 갈라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내였다.
그런 갈라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 달리는 막무가내로 그녀에게 매달렸다.
결국 갈라는 남편과 이혼하고 달리와 재혼하게 된다. 달리가 화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갈라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현실에 스며들지 못하는 이 천재 화가는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세상에 내놓아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달리의 천재성을 오래 전에 알아본 갈라는
그가 작품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돌봤다.

달리는 그림말고도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는 일기를 모은 에세이도 있고 자서전도 있다. 책 출간 역시 갈라의 아이디어였다.
그녀는 예술가가 어떻게 대중과 소통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달리는 아내 갈라 덕에 말년으로 갈수록 더 많은 현실적 성공을 거둔다.
1974년 고국 스페인에 '달리 미술관'을 개관하기도 하고, 1978년에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첫 전시회를 열기
도 한다.
또 같은 해 프랑스 아카데미(17세기에 설립된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 단체–역주)의 외국인 회원으로 선정
되는 겹경사를 누리기도 한다.
1982년 달리는 인생에서 가장 슬픈 순간을 맞이한다. 50년을 해후했던 아내 갈라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아내가 죽
은 뒤로 달리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칩거에 들어간다. 그렇게 7년 가까이 쓸쓸하게 지낸 달리는 1989년 향년 여든네
 살을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피카소의 사진을 들고 있는 달리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스페인 출신 화가 피카소와 달리는 모두 살아생전에 대중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아 부와 명예
를 얻은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이들보다 한 세대 앞선 고흐나 고갱 같은 화가들과는 너무 달랐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고흐나 고갱처럼 죽고 나서야
그들이 남긴 작품의 진가가 드러난다.
달리는 삶과 예술에서 동시에 풍요로운 호사를 누렸다.

그러나 늘 기인처럼 살았던 달리에게 세속적인 행복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의 행복 매뉴얼에는 그림을 그릴 수 있
는 캔버스와 그의 아내가 전부이지 않았을까?
아무튼 사람들은 달리의 작품에 열광하면서도 그 뒤에 단서(但書) 하나 붙이는 것을 빼먹지 않는다. "그러나, (달리
의) 예술은 미친 짓이다!"

천빈
베이징에 있는 중앙미술대학교(中央美術學院)에서 미술사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술사를 연구하면서 저자가
 특히 천착한 분야는 화가의 자화상이다. 아울러 2000년대 들어 세계 최대 미술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 베이징과 상
하이에서 대형 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여러 매체에 미술 칼럼을 집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
다.


  자료출처 자화상전 |어바웃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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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종횡무진 | 작성시간 20.11.22 예술은 미쳐야합니다
  • 작성자법도리 | 작성시간 20.11.22 잘 보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 작성자컴사랑 | 작성시간 20.12.23 작가의 넘쳐나는 기발한 상상력 돋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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