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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끓여주는 커피는 싱겁다.

작성자메릴랜드|작성시간24.06.10|조회수65 목록 댓글 0

아내가 끓여주는 커피는 싱겁다.

최용현(수필가)

옛날엔 남자들의 세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다. 일부다처가 별로 이상하지도 않았고,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는

것이 있어 맘에 들지 않는 아내는 쫓아내기도 쉬웠다. 또 주색잡기(酒色雜技)라 하여 여자를 술, 잡기와 같은 줄에다 놓았고,

게다가 건드리는(?) 데 소요되는 스릴과 쾌락을 주는 정도에 따라 여자에게 순서를 매겨 놓기도 하였다. 일도(一盜), 이비(二婢),

삼랑(三娘), 사과(四寡), 오기(五妓), 육첩(六妾), 칠처(七妻)가 그것이다.

도(盜)는 남의 아내를 훔치는 것으로 쾌락의 으뜸이라 했고, 하녀(婢)는 다음, 처녀(娘)는 그 다음, 그 다음이 과부, 기생,

그 다음이 첩, 그리고 마누라의 순이다. 마지막 순위인 마누라가 다른 사람에게는 1위가 되는 것은 기막힌 아이러니이다.

이런 말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여자들에게는 큰 모욕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을 보게 되는 여자들의 입장을 감안하여

그 중에서도 비교적 점잖은 부분, 위의 순서대로 헤아리자면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인 처첩(妻妾)에 관한 것으로 얘기의

범위를 좁히고자 한다.

옛날의 왕이나 고관들은 거의 대부분 본처 외에 여러 명의 애첩을 거느리고 있었다.

고관의 첩 중에는, 조선조 명종의 외숙인 윤원형의 첩이었던 정난정이라는 여자가 가장 표본적인 인물이 아닌가 싶다.

본처를 독살하여 안방을 차지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당시의 실권자이던 남편과 문정왕후를 조종, 당시 첩 신분으로는

전혀 불가능했던 정경부인이 되어 국사를 좌지우지했던 일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난정이 그토록 결사적으로 첩이라는 딱지를 떼고자 했고, 또 그토록 권세를 휘두른 것은 그녀 자신이 첩의 자식으로

태어난 데다, 그녀마저 첩이 된 데 대해 절박한 위기의식과 피해망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왕실의 경우엔, 이들 비빈(妃嬪)들 간의 알력이 당쟁과 연결되어 옥사(獄事)나 사화(士禍)를 일으킨 적이 허다했다.

궁중비사가 곧 비빈들 간의 암투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는 일개 궁녀에서 출발하여 후궁이 되고, 다시

중전인 인현왕후를 몰아내어 결국 중전의 지위를 차지한 장희빈이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처첩간의 암투가 벌어지면 대개 첩 쪽이 이기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정난정의 경우도 그러하거니와 장희빈과

인현왕후와의 관계를 대비시켜 봐도 그러하다.

뛰어난 미모를 발판으로 승승장구하던 장희빈은 인현왕후를 국모의 자리에서 몰아내고 중전의 자리를 차지하는 데

성공한다. 물론 이 승리는 일시적인 것으로 인현왕후는 6년 후에 다시 국모의 자리로 되돌아오고 장 씨는 다시 희빈으로

강등되고 만다. 이 상황에서도 장희빈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이번엔 인현왕후가 완전히 사라져야만 다시 국모의

자리를 탈환할 수 있다고 믿고 무당의 힘을 빌려서 인현왕후를 저주하여 죽게 만든다.

이 부분은 다소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후세의 사필(史筆)은 인현왕후의 요절을 장희빈에 의한

저주사(詛呪死)로 쓰고 있다. 이 음모가 탄로 나면서 이 희대의 암투사는 요화 장희빈이 사약을 받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두 사람은 입지부터 달랐고, 그로 말미암아 두 사람의 인생관은 더더욱 같을 수가 없었다. 인현왕후가 역사의 심판과

명예를 추구했다면 장희빈은 현실의 부와 영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첩들은 자신의 처지를 체념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일단 그것을 벗어나 보려고 나선 첩은 불굴의 투지를

발휘하기 때문에 정신력에 있어서 본처보다 월등히 앞서기 마련이다. 이들이 그토록 결사적으로 투혼을 발휘하게

되는 것은 첩이라는 멍에가 그들 자신은 물론 그들의 자자손손에까지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동정론에도 불구하고 세론은 아무래도 본처 편이었으니, 장희빈과 정난정이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은 정쟁의 희생이었다고 하더라도, 둘 다 독부(毒婦)라는 지탄을 면치 못한 것이 그러하다.

오늘날에는 첩이라는 신분은 없어졌지만, 아직도 작은마누라를 두고 사는 사람은 더러 있는 것 같다. 이런 문제가

가정파탄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된다. 요즘엔 여권이 향상되어 여필종부(女必從夫)하던 옛날과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이혼이 어쩌고, 위자료가 얼마고 하는 얘기가 심심찮게 주위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니 말이다.

그리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처한 상황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명쾌한 결론을 내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필자가 아는 사람 중에 마누라 몰래 작은 마누라를 얻어 두 집 살림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며칠 전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마누라가 끓여주는 커피는 늘 싱겁고 맛이 없는데, 작은마누라가 끓여주는 커피는 언제나 진하고 맛도 있단 말이야.”

그때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옛날이야기 하나가 내 뇌리를 스쳐갔다. 본처와 애첩의 처세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잘

함축하고 있는 그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필자의 견해를 행간(行間)에 담고자 한다.

옛날, 어떤 고관이 본처, 애첩과 함께 한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서로 투기가 심하므로 두 사람의 성심(誠心)을

재보기로 했다. 하루는 두 사람을 불러 각각 탕재 한 질씩을 주면서 서로 번갈아 가며 달여 오게 하였다. 그런데

본처가 달여 오는 것은 양이 많았다가 또 적었다가 하여 고르지가 않았는데, 애첩이 달여 오는 것은 양이 적당하고

일정했다. 그래서 본처는 늘 꾸중을 들었고 애첩은 늘 칭찬을 받았다. 그래도 본처가 달여 오는 것은 양이 고르지가

않았고 애첩이 달여 오는 것은 항상 고르고 일정했다.

이를 기이하게 생각한 고관이 하루는 사람을 시켜 두 사람이 약을 달여서 가져오는 것을 은밀히 살펴보도록 하였다.

그랬더니 본처는 약을 달인 후 양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그대로 가져오는데, 애첩은 양이 많으면 조금

쏟아 버리고 양이 적으면 물을 더 넣어서 항상 일정한 양을 가져오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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