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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수줍은하늘|작성시간20.06.16|조회수52 목록 댓글 1

겨울 이야기 두번째


   / 수줍은 하늘




거나하게 취한 김씨,

말판을 훈수하며 탈렌트들 오디션에서의 얼굴표정이 다 나온다.

두 동을 업고 가야 빠르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가,

만약 업고 달렸다면 바로 잡혔을 것이기에

이내 한 다리를 들고는 멎쩍게 웃음을 토해낸다.

 윷판을 둘러싸고 한바탕 웃음꽃이 피어난다.

 

공회당에선 올해도 어김없이 윷판이 펼쳐졌다. 

부녀회에서 유지들의 스폰서를 받아 주관하고 상품도 고루 갖췄다.

금빛으로 포장된 커다란 상자 밑에 인기상이란 리본이 곱게 나부끼고,

책상 위에 올방지를 틀고 자리를 차지한 분무기가 3등이지만

자랑스럽게 시상대를 차지하고 앉았다. 

얼음판에서도 미끄러지지 않을 것같은 신사용 자전거가

2등의 꼬리표를 달고 턱을 괸 채 잠시 쉬고 있다.

그런데 1등은 리본만 있을 뿐 상품이 안보인다.

궁금증은 윷판마다 윷을 던질 때 한마디씩 뽑아대니

금방 알 수가 있다. 1등은 금반지 서돈이다.  

 

한 때는 송아지도 걸렸었다.

비록 외지인들이 들어와 판을 벌렸지만 송아지가 우승 상품이라는 것은

당시 이웃마을까지 소문이 들썩거릴 정도였다.

시골이라지만 초등학교 학생수가 600명을 넘나드는 마을이었으니

과히 적지 않은 인구였던 마을이기에 장사는 되었으리라 짐작이 간다.

참가비가 천원이었지만 무제한 참가가 가능했으므로 3일에 걸쳐서야 윷판이 끝이 났었다.

안마을의 김상사는 예선에서도 탈락도 했지만 2차전 3차전 등 등

질 때마다 참가권을 샀다하니 그 합계가  3만원을 넘었다고 했다.

 나의 형도 10회를 참가하며 4차전도 오르지 못했으니 만원만 날린 셈이었다. 

윷판은 일주일이 걸려도 끝이 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단계 셈법을 적용하니 사기나 다름이 없었다.

송아지는 외지인들의 농간으로 그들이 가져갔으니 우매한 시골양반들이 철저히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 걸로 잡고 한 번 더 던져! "

" 무슨소리를!... 모 걸로 담그는 게 나아..."

" 잡고 가야 한대두..."

 

윷을 두는 정씨보다 훈수를 두는 김씨의 목소리가 더 크다.

김씨의 말을 무시할 수도 있으나 김씨의 지랄맞은 성격에 초칠 일이 없음을 모두가 안다.

적당히 어울리며 즐겁게 윷판을 이끌자는 것이 오늘의 모토다.

 

" 그래! 김씨 말 한 번 들어보세나. 잡고 한 번 더 던질테니 모두 물러서요~"

" 그래야지 암 ...정씨! 내 술 한 잔 받고 던져~"

" 그럴까? 한 잔 주시게나 김씨!"

 

상대가 최과부라 이길 생각이 추호도 없는 정씨, 그렇다고 기권을 할 수도 없다.

마누라가 심드렁히 콧방귀를 뀔 것이 분명한터, 이 쯤에서 져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낙 뿐이다.

60년의 경력에 낙을 못할까. 구르도록 던지면 모 아니면 낙인 것을. 역시 술잔을 빌어 낙의 연속이다.

탈락의 핑게는 김씨가 준 술잔이 되고 만다.

 

멀리 숯껌뎅이들이 불을 싸지르고 있다.

김씨네 아들은 엉덩이를 치켜들고 깡통을 향해 입비람을 불어댄다.

연기가 쿨쿨 나고 김씨네 아들이 소맷자락으로 하모니카를 분다. 눈으로 분다.

사라진 줄 알았던 달맞이 깡통을 앞에 놓고 눈물을 짜고있다.

하모니카를 불며 우는 모습에 김씨가 가여워진다.

농토도 없이 날품을 팔아 살아가는 김씨, 술로 겨울을 나면 봄이 되어서야 일거리가 있는 김씨다.

정씨는 윷판에서 김씨를 데리고 술판으로 자릴 옮긴다.

 

" 최여사님 꼭 우승하슈~ 내가 낙만 안했어도 이기는 건데...술을 먹었더니 윷이 왠 힘이 그리도 솟는지 원...."

 

그 시절, 박씨네 굴뚝에서 모락연기가 필 시간이다.

결승은 공교롭게도 최여사와 정씨의 마누라가 붙었다.

 

" 정씨! 당신 마누라와 최여사가 결승에서 맞붙었대~ 빨리 가봐 정씨!"

" 엥~ 그럴리가..."

 

누굴 응원해야 할지 선뜻 판단이 서질 않는다.

마누라를 응원하자니 최여사가 불쌍하고, 최여사를 응원하자니

마누라의 바가지 긁는 소리가 귓전에 이명을 일으킬 것이 뻔하다.

마누라를 응원하되 마누라가 윷을 던질 때 훼방을 놔? 결론이다.

 

최여사는 개 이상만 나오면 끝이고 정씨의 마누라는 모를 치면 종착역에 담글 것이기에 끝이다.

차례는 정씨 마누라.

던졌다.


"모다~"


모가 나왔으니 아무렇게나 던져도 백도만 아니면 끝이다.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정씨 마누라.

금반지 서돈이 뉘집 개 이름이냐! 금반지는 제것이라며 윷을 추스리고 마지막 기합을 넣는다.

 

던졌다.

이런.

마누라가 윷을 던짐과 동시에 정씨가 윷판으로 뚸어들었다.

윷 한 개가 흥분을 핑게로 뛰어든 정씨의 발에 걸려 데구르르 부녀회장의 발목에 얹혀졌다.

 

" 낙입니다."


심판의 낙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정씨 마누라는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았고,

정씨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마누라를 응시하며 빌고 있었다.

한편 최여사는 하느님!이 보호하사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게임은 끝났다. 최여사 우승, 정씨네 준우승이었다.

 

일년간 정씨의 얄궂은 미소의 본의는 무었이었을까.

최여사는 정씨의 의로운 행동을 알까 모를까 

정씨의 의로웠던 행동을 "촐싹대서리..."라고는 아니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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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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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나자영 | 작성시간 20.06.16 선배님들과 윷놀이 참
    많이도 했었는데
    하다보니
    본성들이 나오더이다. ㅎ
    지면 승질 부리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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