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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샘밭에 삼합회가 있었는데

작성자수줍은하늘|작성시간20.06.17|조회수82 목록 댓글 0

삼합회

           수줍던 하늘



박씨네 둘째 아들인 기영, 강씨네 첫째 부인의 아들인 응모,

홀어머니 밑에서 고아처럼 천덕꾸러기로 자란 성규.

이 셋은 공부와는 담을 쌓은 작은 마을의 말썽쟁이들입니다.

 

소위 삼총사로 불리우는 이들의 죄상은 어느날 낱낱이 드러나

동네에서 문제가 있으면 이들이 우선적으로 지목되곤 했습니다.

들에 매어놓은 소를 풀어놓아 어른들이 들과 산을 뜀박질하며

소를 잡느라 애를 먹었던 일도 삼총사가 저지른 일이었고,

익지도 않은 포도밭과 사과밭에 들어가 햇과일을 시식하겠다며

먹지도 못하는 과일을 사방에 따놓아 과수원댁을 울먹이게 만든 것도

이들, 삼총사였습니다.

 

삼총사는 머리가 커서도 좀처럼 말썽을 줄일 수가 없었으니

셋이 뭉쳐 말썽을 일으키는 자신의 모습들에게서 나름대로 쾌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되는 부분입니다.

 

자신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도 마을에서 낙인이 찍힌지 3년이

지났습니다. 배워서 무엇하고 가르쳐서 무엇하냐고 중학교를 포기한

이들 삼총사도 어느덧 15세가 되었습니다. 말썽은 점차 발전을 거듭해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기에 이르렀으니, 읍내에 진출을 해야겠다는

소귀의 목적을 달성하자면 깡다구를 키워야했습니다.

 

동네 선배들도 이들 셋을 만나면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는 핑게로 일관하게

되었고, 후배들은 겁을 집어먹으면서도 선망의 대상으로 업그레이 시켰습니다.

 

조직폭력배, 샘밭의 삼합회가 탄생이 된 것입니다.

소양댐으로 인해 수몰지구의 촌놈들이 들어오면 텃세의 주체가 되었으며,

가끔 읍내로 원정을 나가 대갈빡에 깁스를 하고 들어왔지만 항상 읍내 애들을

떡으로 만들었다는 자랑질에 그들은 우리의 우상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삼총사는 결코 이따위 작은 도시에 안주할 인물들이 아니었습니다.

셋은 빗물이 주럭 주럭 초가지붕에 스며들던 추석 밑의 어느 초가을 날,

멀뚱이 눈으로 쳐다보는 나를 뒷전에 두고 작당들을 하기에 이릅니다.

 

" 우리 서울로 가자! 돈 벌어서 샘밭 땅 다 사버리자구! "

" 그래!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어! "

" 가는 거야 서울로~~ "

 

무작정 상경을 합니다. 거칠 것이 없습니다. 코를 베어가고 쓰리를 당해도

서울로 올라가야 샘밭에서 최고의 건맨이 되는 것입니다.

 

서울역은 전국에서 모여든 구직자들로 복새통을 이룹니다.

농사를 짓다 온 사람, 일이 없다고 무작정 취업을 하겠다고 상경한 사람,

식모나 차장 자리라도 있겠지라며 보따리를 가슴에 웅켜쥔 시골 처녀들,

서울을 구경하겠다고 나팔바지에 빈약한 가슴이 훤히보이는 흰색 남방을 걸친

촌놈들, 그리고 깜상의 샘밭 삼총사들.....    

 

그들 뿐이 아닙니다. 서울역 맞은편에서 원정나온 펨프들과, 시골처녀들을

꼬득이는 임신매매나 직업소개소의 말끔한 건달과 뷰리나는 복분자들,

갈고리로 삿대질을 일삼으며 거지들의 후원을 종용하는 다리밑의 사람들....

 

삼총사는 의식주 중에서도 '식'이 최우선이라며 쏼라요리점의 구슬이 달린

발을 제낍니다. 

 

" 어섭셔~~"

 

무작정이라는 말은 공공연한 유행어입니다. 털털이로 무작정 상경을 했으니

단 돈 20원하는 짜장면조차 시킬 수가 없습니다. 배는 고팠으나 목적은

식당에 취직을 하는 것이었으니 넉살 3단인 응모가 붕어새끼모냥 입을 엽니다.

 

" 아저씨...여기 취직하고 싶은데요. 일도 배우고..."

 

가출소년들의 힘겨운 취업의 난이 시작이 된 것입니다. 삼총사로서는 

중국집에 취직하는 것이 지상 목표가 되었고, 두 세군데에서 낙방을 한 후로는

지상 최대의 직장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청을 지나 동대문으로 가는 길목이었습니다. 바람결에 중화루의 리본이

삼총사를 반겨줍니다. 불쌍하게 보여야 취업도 쉬울 것이라며 성규가 납작

엎디어 볼맨소리로 지저귑니다.

 

" 취직하러 춘천에서 올라왔는데요, 여기서 일을 하면 안될까요?

 먹여주고 재워주기만하면 되는데요...일 배워서 우리 셋이서 요릿집을 할려구요..."

" 가출한 것 아냐?"

" 집이 가난해서 학교도 못갔구요. 집에선 하루 두끼도 못먹어요."

 

성규의 헝그리정신에 입각한 아고라질스런 멘트로 드디어 취업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세명은 키울 수가 없으니 두명난 남고 한명은 다른 곳으로 가라는 겁니다.

얌전이 기영이가 폭탄을 맞고 비실 비실 쫒겨났으니 친구들이 가만히 있을 턱이

없습니다. 이제 기영이만 취업을 하면 삼총사로서의 원대한 꿈을 꿀 수가 있는 겁니다.

 

다행히 신설동 근처에서 면담 후 최종합격 통지 아니, 즉석 통보를 받게 됩니다.

주방보조와 청소, 써빙과 설겆이를 열심히 배우며 수강료도 없이 가르치는 

중쿡살람이 쥔장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집니다. 언젠가는 꼬리 채 흔들며 면을 

만드는 주방장의 면 뽑는 무술과 칼질하는 고수의 모습을 이기겠다면서 3개월을

보냈습니다.

 

돌이켜보니 삼합회의 설립취지가 한참이나 벗어났음을 느끼게됩니다.

춘천을 접수할려면 돈이든 주먹이든 있어야하는데, '어섭셔~~'와 '짜자이 두그릇!'

이 아무리 숙달이 되어 입에 착 착 달라붙는다해도 날은 밝지 않을 것임이 자명합니다.

 

열다섯살의 삼총사는 일이 끝나고 비가 졸졸 '시냇가의 목동들'을 노래할 때

동대문과 신설동의 중간지점에서 만나기에 이릅니다. 성규의 말썽이 도지기 시작합니다.

빽알을 두 도꾸리씩 마실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성규의 힘이었습니다. 쌔벼온 빽알을

비우고 눈물이냐 빗물이냐에 대해 결국 진실을 밝히지 못한 채 그들은,

샘밭의 삼합회였던 기영, 성규, 응모는 귀향하는 경춘선 열차에 몸을 싣게됩니다.

고향을 찾아가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졌던 1969년

추석 밑의 삼합회 이야기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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