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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까리

작성자수줍은하늘|작성시간20.06.20|조회수66 목록 댓글 1

아주까리

          / 수줍은 하늘




아주까리, 피미자라고도 합니다. 아니, 우리들에겐 피마자가 더 익숙한 말입지요.

하지만 목화나 소금쟁이처럼 아주까리나 피마자란 단어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 분명합니다.

아이들의 배변이 토끼똥처럼 변비를 일으키거나 노인들이 장 운동이 안돼 뒤가 안나온다며 찾았던 것이

아주까리 기름이었습니다. 요즘도 시골 어른들이 '아주까리 기름이 최고인데...'하며 찾는 것을 보면

딱정벌레같이 등거죽이 밴질 밴질하게 생겨먹은 고놈의 피마자가 한약의 영사만큼이나

귀하게 여겨지지나 않나 모르겠습니다.

 


한 떨기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아침부터 지지고 볶던 1970년대 초의 일이었습니다.

김첨지에겐 아들이 둘 있었는데, 첫째는 농사일이 싫어 양품점을 한다고 읍으로 나갔고,

둘째는 대학물을 먹었다고 근사한 회사에 취직한다며 무시무시한 곳,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첫째야 양재기와 어려서 목욕물을 받아쓰던 플라스틱 함지를 들였다 냈다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둘째는 가다마이에 넥타이를 매고 의사선생님을 만나러다닌다니 보통 자랑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시골동네엔 김첨지의 자랑질로 인해 둘째인 상준의 소문이 쫘악 퍼져나갔고,

매월 보내주는 상준의 고향발전기금에 힘입어 김첨지의 어깨엔 항상 힘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대학을 나온 것도 대단한데 가다마이가 생활의 전부라니 출세도 보통 출세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상준이 취직한 곳은 유명 제약회사였습니다. 의사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알랑방귀를 뀔 망정

007가방은 김첨지에게 있어 출세를 가늠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한창 상준이 줏가를 올리던 초가을,

김첨지는 벨벨거리던 이웃집 변견을 주 재료로한 영양탕에 입을 대게 되었습니다.

동내에서 잔치라도 벌리듯 첨지들이 다 모여 변견 파티를 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평소에 비장과 위장, 소위 비위라고 하는 것이 약했던 김첨지가 탈이 났습니다.

개똥이 아범과 철구 아범만 괜찮고, 모두가 피똥을 싸네, 쉴 새 없이 쏟아지네하며

동네가 일대 소란스럽게 변했습니다.

철구네 멍멍이가 벨벨 거렸던 것은 그 놈의 멍돌이가 닭장 밑에 놓아둔 덩어리 쥐약을 처먹었던 것입니다.

 


몇 날을 고생하더니 지사제를 너무 먹었나, 이번엔 똥구녕이 막혀 복부가 답답허니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어쩝니까.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아주까리 기름을 수소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흔하던 개똥도 약에 쓸려면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다고 피마자 기름을 구경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옳다구나! 한양에 올라간 둘째 아들이 있지! 김첨지는 읍내에 나가 변비약을 구할 생각보다는

약을 다룬다는 둘째가 퍼뜩 생각이 났습니다.

 


" 둘째야~ 이 애비가 변이 안나오니 우짜면 좋냐? "

" 왜요? 변비세요? "

" 그런가부다 얘야. 느희도 설사약이 나오냐? 답답허니 죽겠구나..."

" 알았어요. 장에 좋은 약을 부칠테니 우선 시내 약국으로 가보세요~"

" 그래야겠다..."

 


결국 피마자를 머리 속에 잔뜩 그리며 약국을 찾아간 김첨지,

 


" 설사하는 약 없수? 배는 아픈데 변이 안나와 죽을 지경인데 말이유."

 

(대화 중략)

 


" 아주까리 기름이나 한 병 주시우. 얼마유? "

"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달라니 드리는 겁니다. 천원이면 되고요."

" 한번에 얼마나 먹으면 되우? "

 


황당하듯 처다보며 우물거리는 약사를 뒤로하고 홀연히 사라지는 김첨지,

오뉴월에 홍시를 얻은듯 부푼 가슴으로 집에 도착해설랑 200 CC의 아주까리 기름을 홀라당 다 마셔버렸습니다.

어떻게 됐겠습니까. 다시금 배가 뒤틀리더니 쫙 쫙 쏟는데 막을래야 막아지지가 않는 겁니다.

헐었는지 쓰리기도하고 찝찝하기도하고 70평생 처음으로 죽을 맛을 경험하게 됐다는 김첨지의 이야기입니다.

 

* 어여쁜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오늘 내가 왜 이럴까? 당번근무일이라 심술이 난 걸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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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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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나자영 | 작성시간 20.06.23 ㅎㅎㅎ 어릴적 ㅎㅎ회충약 대신
    피마자 기름을 먹이곤
    했지요.ㅎ
    배가 뒤틀리고 밤새
    화장실 들락이다
    기진맥진 하던일이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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