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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힐 1

작성자수줍은하늘|작성시간20.06.21|조회수86 목록 댓글 0



하이 힐 1

           중편 연재/ 수줍은 하늘



또깍거리며 걷는 모습이 우아하기도하했만 왠지 불안했다.

발이 편해야 하루가 편하다고 그렇게도 일렀거늘 어찌 친구네 결혼식장에

운동화를 끌고갈 수 있느냐며 굳이 뾰닥구두를 신겠다는 박여사,

코트자락을 휘감고 무릎의 높이는 맞는지,

스타킹 색깔이 뾰닥구두와 어울리는지,

뾰닥구두의 뒷굽이 너무 높은 것은 아닌지 허리가 뜨끔거릴 정도로

몸을 좌우로 틀어보며 나의 눈치를 살핀다. 

 

" 됐다 마! 그런대로 봐줄 만한데 발이 꺽여 넘어지지나 말그라..."

" 피~ 그래도 젊었을 땐 하이힐이 나의 트레이드마크였다는 거 몰라!?"

" 트레이드 좋아하시네. 내가 보니 영 불안하기 짝이 없구만..."

" 아예 고사를 지내요 고사를..."

 

정말 예뻤다. 박여사도 차려입으니 정말 멋있는 여자였다.

좌우로 몸을 틀어 뾰닥구두의 모양새를 살피는 박여사,

돌아볼 때마다 종아리에서 근육이 움직이는 것을 보니 와락 안아주고싶은 충동이 생겼다. 

코트자락 사이로 뽀얀 우윳빛의 허벅지가 수줍게 웃고있는 모습도 보였다.

 

" 걸어볼래? 내가 품평을 좀 해줄게..."

" 그럴까? 어색한 것은 있지만 몇 발자국 걷다보면 자연스러워질 거야. 하루 이틀 신어본 것도 아니니..."

" 뾰닥구두를 신었을 때의 주의사항 알지?"

" 뭔데?"

" 첫째 맨홀 뚜껑이나 빗물받이 그물망을 조심할 것!

  둘째 팔짜 걸음으로 걷지 말 것!

  셋째 급한 행동을 하지 말 것!

  네째 스타킹의 코가 나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쓸 것!

  마지막으로 3초 이상 눈길을 주는 남정네와는 절대로 눈을 마주치지 말 것!!

  뭐, 열거하자면 반나절을 읊어야 되겠지만 이상!! 끝."

" 다 이해가 되는데 눈길을 주는 남정네와는 왜 눈을 마주치면 안되는데?"

" 몰라서 묻니? 눈을 마주치면 곧 시비거리를 만드는 계기가 되거든..."

" 내가 하이힐을 신은 것이 남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데?"

" 상관이 왜 없어? 이상한 놈들은 눈에 띄면 빈정대고 싶은 게 그들 심리거든."

" 네가 그런 거 아니야? 변태같은..." 

" 뭐? 내가?"

" 그래. 메롱~"

 

혓바닥을 샐쫌 내밀었다가 들이미는 박여사.

흡족한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애꿎은 쭉쟁이에게서 멋쩍음을 달랜다.

순간 쭉쟁이의 뇌리에 번개처럼 스쳐지나가는 영상 하나가 있었다.

기쁨 뒤에는 항상 슬픔이나 고민이 따를 수 있는 법을 터득한 쭉쟁이였다.

뾰닥구두를 신었을 때는 항상 스타킹을 여분으로 지참하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쭉쟁이가 한창 연애질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결혼 적령기의 쭉쟁이가 번듯한 직장을 잡았으니 집안 식구들이 결혼을 재촉하기에 이르렀고,

쭉쟁이는 100명을 사귀어봐야 여자를 알 수 있다며 선이라는 선은 다 볼 것을 천명한 상태였다.

전역과 복학, 졸업과 취업의 정확한 코스를 마친 27세의 청년은 심사를 보듯 맞선에 대한 세밀한 평가를 통해

평생의 배우자로 결정할 것을 다짐했다.

평가항목은 다섯가지로 나뉘어졌다. 맵시, 마음씨, 솜씨, 말씨, 그리고 2세를 위한 씨앗이었다.

선은 열 번 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아무리 맘에 들더라도 평가에 있어서는 냉정했다.

대부분 맵시는 좋았으나 마음씨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말씨도 한 두명을 빼고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아직도 90명이란 많은 인원을 더 봐야하기에 점수는 깍쟁이 저리가라였다.

후한 점수를 줄 수가 없는 처지였다. 솜씨와 씨앗은 눈치껏 한마디씨 툭 툭 던지는 것으로 평가를 해야만 했다.

특히 솜씨에 대한 점수는 상당한 고민거리였다.

 

열번째의 맞선, 그녀의 콧날이 압권이었다.

넓은 턱도 부의 상징처럼 쭉쟁이의 눈에 확 닿았고,

드넓은 이마 또한 바다와 같이 혜량할 것처럼 푸근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쫙 벌어진 콧두덩과 갸냘픈 콧날,

왠지 한눈에 '이제는 더이상 맞선이고 지랄이고 없다'고 자물쇠를 채워야겠단 생각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넓은 형태의 맞선녀였다.

이 모든 만족과 최상의 기쁨이 그녀의 하체와 뾰닥구두에 있었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녀와 에프터를 약속하고 헤어진 후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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