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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빨랐지 그 양반

작성자소몽|작성시간24.08.08|조회수119 목록 댓글 1

#이게詩인가?..

제 생각에는.. '장편'이 아닐까?..
[장편(掌篇):
1.단편 소설보다 짧은 분량의 소설
2.손바닥만 한 글이라는 뜻으로, 매우 짧은 산문을 이르는 말]
'산문시'라고 한다면.. 그런가부다..
하지요, 뭐^^
암튼, 뫼셔왔든.. 퍼왔든..
'펌글'입니다 소몽小夢


#참빨랐지그양반

♡ 멋진 시 한편 해설과 함께 옮겨왔습니다(펌)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
그 양반 빠른 거야 ​ 근동 사람들이 다 알았지 ​
면내에서 오토바이도 그중 먼저 샀고
달리기를 잘해서 군수한테 송아지도 탔으니까
죽는 거까지 남보다 앞선 게
섭섭하지만
어쩔 거여 박복한 팔자 탓이지. ​

읍내 양지다방에서 맞선 보던 날
나는 사카린도 안 넣었는데
그 뜨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더라니까 ​
그러더니 오토바이에 시동부터 걸더라고
번갯불에 도롱이 말릴 양반이었지 ​
겨우 이름 석자 물어 본 게 단데 말이여 ​
그래서 저 남자가 날 퇴짜 놓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어서 타라는 거여 ​
망설이고 있으니까 번쩍 안아서 태우더라고 ​
뱃살이며 가슴이 출렁출렁하데 ​
처녀적에도 내가 좀 푸짐했거든 ​

월산 뒷덜미로 몰고 가더니
밀밭에다 오토바이를 팽개치더라고 ​
자갈길에 젖가슴이 치근대니까 피가 쏠렸던가 봐 ​
치마가 훌러덩 뒤집혀 얼굴을 덮더라고 ​
그 순간 이게 이년의 운명이구나 싶었지 ​
부끄러워서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정말 빠르더라고
외마디 비명 한번에 끝장이 났다니까 ​

꽃무늬 치마를 입은 게 다행이었지
풀물 핏물 찍어내며 훌쩍거리고 있으니까
먼 산에다 대고 그러는 거여
시집가려고 나온 거 아녔냐고 ​
눈물 닦고 훔쳐보니까
불한당 같은 불곰 한 마리가
밀 이삭만 씹고 있더라니까 ​

내 인생을 통째로 넘어뜨린
그 어마어마한 역사가 한순간에 끝장나다니 ​
하늘이 밀밭처럼 노랗더라니까 ​
내 매무새가 꼭 누룩에 빠진 흰 쌀밥 같았지 ​
얼마나 빨랐던지
그때까지도 오토바이 뒷바퀴가
하늘을 향해 따그르르 돌아가고 있더라니까 ​

죽을 때까지 그 버릇 못 고치고 갔어 ​
덕분에 그 양반 바람 한번 안 피웠어
가정용도 안되는 걸
어디 가서 상업적으로 써먹겠어 ​
정말 날랜 양반이었지... ​ ​

-이정록 시집 '정말' 중에서-


이정록(1964~ )
충남 홍성 태생. 시인, 고교 교사 ​

이 시 참 재밌습니다. ​
어쩌면 시인은 이토록 슬픈 이야기를
역설적으로 풀어낼 수 있었을까요? ​
우리 인생도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그 양반 빠른 거야 근동 사람들이 다 알았지” ​
1연에서는 일찍 저세상으로 간 신랑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
돌아가신 분이 성격이 참 급했나 봅니다. ​
그러고 보니 일찍 가시는 분들은
뭔지 모르게 급하게 서두르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

2연은 두 분이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
얼마나 급했으면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마시고 오토바이에
맞선녀를 번쩍 안아서 태웠을까요. ​
오토바이에 태웠으니 남정네의 등에 여자의 가슴이 스치면서
젊은 혈기에 확 불을 싸 지른 것 같습니다. ​
얼마나 참기 힘들었을까요. ​
그것도 바야흐로 봄날인데 말입니다. ​

“부끄러워서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정말 빠르더라고
외마디 비명 한번에 끝장이 났다니까” ​
“눈물 닦고 훔쳐보니까
불한당 같은 불곰 한 마리가
밀 이삭만 씹고 있더라니까” ​ “내 인생을 통째로 넘어뜨린
그 어마어마한 역사가 한순간에 끝장나다니” ​

정말 한 순간에 모든 운명이 결정되고 마는 순간이 2연에서 펼쳐지는데
1연에서의 슬픔의 정조는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읽는 내내 웃음이 삐죽삐죽 새 나오게 만드는 서사입니다. ​
그런데 말이지요. 마지막 3연은 더 절창입니다. ​

“얼마나 빨랐던지 그때까지도 오토바이 뒷바퀴가 하늘을 향해
따그르르 돌아가고 있더라니까” ​
얼마나 빨리 끝났으면 일이 다 끝나고 난 다음에도 오토바이 뒷바퀴가
하늘을 향해 따그르르 돌아가고 있었을까요? ​
그야말로 절묘한 묘사입니다. ​

그런데 바로 이어서
“죽을 때까지 그 버릇 못 고치고 갔어” 가 나옵니다. ​
분명 슬픈 이야기인데
어쩜 이렇게 슬픔을 웃음으로
단박에 바꿔칠 수 있는 걸까요? ​
거의 마술처럼 슬픔과 웃음이 교차되고 있습니다. ​
웃음 마술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
“덕분에 그 양반 바람 한번 안 피웠어
가정용도 안되는 걸 어디 가서
상업적으로 써먹겠어 정말 날랜 양반이었지” ​

워낙 첫 행사를 빨리 끝내신 양반이라서
바람 한 번 피울 여력이 없으셨겠지요. ​
그런데 가정용도 안되었으니 어떻게 상업용이 되었겠냐는
말에 또 한 번 웃음이 터집니다. ​

그리고 마무리는 정말 날랜 양반이라는 이야기입니다. ​
사랑하는 남편을 빨리 보낼 수 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힘이라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
내공으로 가득찬 시인의 넉살 때문에 많이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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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초산 | 작성시간 24.08.09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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