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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사랑이다-2

작성자제이서|작성시간23.07.19|조회수296 목록 댓글 0

 

 

 

 

 

 

 

 

이것이 사랑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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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 때, 방갈로 뒷편에서 나무다리를 건너 방갈로를 향하여 달려오는 아이들의 환호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뒤를 이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부르는 여성의 목소리가 나서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호기심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아이와 그 동생일 것 같은 남자 아이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뒤로 부부인듯한 두 사람이 천천히 따라 오고 있었다. 방갈로와 방갈로 사이는 약 3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있어 서로의 평화스러운 휴식을 방해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 아이들은 영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혀가 구르는 소리로 짐작해서는 인디아(India)에서 휴가로 온 가족 같다는 생각을 천지수는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발코니를 지나 바로 옆 비워진 방갈로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둘은 아쉬움을 생각하였다.

 

어머니로 생각되는 여성은 검정색 팬티가 비치는 얇고 눈같이 하얀 무명 원피스에 어깨에 큰 롤백을 메고 있었고 두 손에는 푸른색 아이스 박스를 하나씩 들고 거실 탁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천지수와 지선경을 보고 미소지으며 지나 그들의 방갈로로 들어갔다. 나이는 40대 중반쯤으로보였으나 선이 굵은 얼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곧 이어 남성이 쌘달을 신은 발걸음으로 소리없이 창가를 지나며 역시 그 둘을 향해 미소와 함께 고개를 살짝 끄득였다.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머리에는 흰 터번을 두르고 있었고… 얼굴에는 흰 수염이 턱이 다 덮히도록 자라나 있었다. 두 눈이 맑고 선해 보였으나 50은 넘어 보였다. 그의 양손에도 여행용 큰 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와 눈길이 마주치자 천지수는 어디서 본듯한 느낌이 순간 들었다.

 

“여보! 천지수. 저 사람들이 우리 옆에 지낼 이웃인가 봐요. 인도 사람들 같아요.”

지선경이 바로 맞춘 것 같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인디아에서 이곳까지 휴양으로 올 정도면 보통 경제 수준은 넘은 사람들이라고 봐야지. 하여튼 서로 기분 상하지 않게 있는 동안 잘 지낼 수 있길 바라야지. 이웃이 있다는 것도 때론 좋을 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마.”

“네. 저는 걱정 하지 않아요. 당신만 옆에 있으면 되니까.”

지선경은 밝고 맑게 웃으며, 방가로담당 웨이터가 다시 채워 놓고 간 망고 쥬스를 냉장고에서 꺼내 두 사람의 크리스털 잔에 가득 채웠다. 그들은 서로 마주 보고 미소지으며 망고 쥬스가 든 잔을 가볍게 부딪쳤다.

 

“Hello. How are you,today? 저는”

“O, my God! You are Singhalama! 맞지요?”

그가 영어로 천천히 하는 말을 다 마치기 전에 천지수가 놀라며 말했다.

그는 말을 하다 말고 놀라서 그 자리에 얼어 붙어 버렸다.

 

“이런 우연이… 당신은 천지수이고…”

그는 지선경이 전혀 들어보지도 짐작할 수도 없는 말을 하였다.

 

“싱할라마! 기억하고 계셨군요. 그렇습니다. 천지수입니다.”

역시 지선경에게는 전혀 낮선 언어였다.

 

“아아아~ 천지수. 당신을 전혀 생각치도 못한 이곳에서 다시 만나다니…”

“싱할라마. 어떻게 이곳까지…”

두 사람은 서로가 놀라고 감격에 겨워 말 끝을 다 잇지 못하였다.

 

그는 싱할라마였다. 라마라 부르기도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그를 야마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는인디아 북쪽 ‘구도자의 도시’라 불리는 카마하리의 변방에서 면벽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신의 도시를 지향하는 구도자라 하였다. 그의 나이는 수 천살이 될 것이라 하였으며, 사람들은 그가 죽을 때는 영이 떠난 새로운 자의 신체를 가지고 다시 살아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소문은 그 지방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각오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는 혼자 있을 때는 하늘의 언어로 말한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아무도 그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었고 따라 할 수도 없었다.

 

천지수는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만든 군용 필드쟈켓을 40ft 컨테이너 하나에 가득 싣고 바다를 건너 인디아 남쪽 이히리아 항에서 부터 주문 회사가 있는 카마하리로 스리랑카인이자 콜롬보 대학을 나온 현지 사장 챤데라 데 죠이사와 함께 직접 바이어에게 생산 물품을 인도하기 위하여 갔었다. 인디아와 아프가니스탄 국경 근처에 있는 그 도시를 향해 가고 있을 때, 트레일러에 문제가 발생하여 계곡에서 밤을 새우며 수리를 하고 있는 중에 그가 그들을 발견하여 물과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 천지수는고마워 필드쟈켓을 포함한 입을 것과 인조 섬유로 만든 밍크 담요를 그에게 주었다. 그는 천지수를 그가 수도하고 있는 곳으로 초대하여 인연과 운명이 살아 있음을 알려 주었고, 장 시간 동안 가스펠라어를 가르쳐주었다. 그 당시 천지수는 그 언어가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영어, 일어, 중국어, 에스페뇰, 인니-말레이어 등을 잘 사용하였다. 그리고 여러 나라를 다니며 많은 언어들과 접하였지만, 가스펠라어는 처음 대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의 내공에 힘입어 짧은 시간에 습득할 수가 있었다.

그런 사연을 가진 그를 전혀 예상치 못한 이곳에서 만나게 되었음에 소름이 끼치도록 놀랐다.

 

천지수는 그와 이웃하며 며칠 지내는 동안 계속 가스펠라어를 사용하였다. 그 스스로도 놀랄만치 언어의 사용 능력은 좋았으며, 떠나는 날에는 이미 그 가스펠라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지선경 또한 기본 이상의 가스펠라어를 사용할수 있게 배웠다.

 

 

 

 

4

 

운명이라는 것은 인간의 능력과 지식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알 수 없는 무한한 어떤 힘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천지수는 그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각오하였다. 지금까지 많은 여자들을 사업상 또는 지인들의 소개로 만났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그는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런 결혼에서는 초연해졌고, 캐나다인들의 생활이 그렇듯이 주어진 주변 환경을 바로 헤쳐나가며 뭔가 보람과 가치를 추구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운명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는 그 운명을 거절하지 않고 온 몸으로 받았다. ‘지선경. 그녀는 나의 운명이다.’ 라고 되 뇌이며 그는 푸른 창공 아래 넓게 펼쳐진 초록 들판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캐나다의 에드먼턴에서 출발한 보잉 823은 16시간이 지난, 이제 곧 대전 뉴 라이프 공항에 부드럽게 연착륙 할 것이다. 그는 다시 화사하게 미소짖는 지선경의 얼굴을 떠 올리며 그녀와의 운명적 사랑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쉽게 흔히 할 수 있지만, 운명의 끈으로 연결되기 위하여는 처음의 느낌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준비된 내공에 의한 많은 시간 동안 그 끈을 확인하고 인지하고 체험하고 그렇게 하여 사랑이라는 것이 만들어 진다. 그러면서 가능성이 없던 것이 가능성으로 현실화 한다. 지선경과의 관계가 그렇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긴 세월이었다.

 

그 동안 천지수에게도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할 기회가 많았다. 미국에서도 캐나다에서도 한국에서도 그리고 지사들이 있었던 호주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서 좋은 여성을 소개해 주었던 사람들도 있었고 생각과는 다르게 만나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천지수는 상대 여성을 만나 결혼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되는 경우보다는 느낌에 맡기기로 한 것이다. 그는 가슴으로 부터 느껴지는 감정을 중요시하였다. 그 감정을 토대로 느낌을 확인하고 체험하여 실제화 하도록 하는데 이력이 생겼다. 그의 사업 파트너의 결정은 대부분 그런 과정속에 이루어 졌었다. 한발만 옮기면 그들 의도대로 갈 수가 있었다. 고개만 틀면 혼자로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묘하게도 그 때마다 그는 접었다. 당장 급한 중요한 일이 발생하여 그 일을 늦추다가 상대편이 스스로 물러났다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그 당시 발생하여 상황을 깨 버렸다거나 하여튼 매듭을 맺지 못하였다. 그는 생각에 빠져 스스로의 행적에 전률하며 한숨을 내 뿜었다. 이 모든 것들이 지선경. 그 지선경을 만나게 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지 아닌가? 운명으로 가기위한 과정들이었지 않은가? 그는 새삼 이렇게 흐르도록 질곡을 만든 삶의 강에 놀랐다. 그는 그 운명을 믿기 시작하였다.

 

의외라는 것은 생각지 못한 곳에서 특별한 것을 만나거나 발견했을 때를 말한다. 천지수는 5년전 토론토에 있는 한국 커뮤니티의 한인들을 위한 여성주간지 ‘여성과 생활’에서 문예와 인터뷰를 담당하는 기자로 잠시 일하고 있었다. 그는 그 때 시와 소설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고, 장차 책을 출간하기 위하여는 한국의 문학단체에 응모하여 당선되어 등단이라는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렇게하여 시인과 소설가로 등단을 하였다. 그는 한 문학단체가 운영하는 인터넷 까페에서 몇 몇의 시인이라고 칭하는 사람의 글들에 직설적인 시의 잘못을 비평하였다. 그는 순수하게 그 시인의 시작 능력에 대하여 참고로 언급하였지만, 그것이 화근이 되어 혼자서 전체 회원과 싸우는 상황을 만났다. 그때 지선경이 나타나 천지수의 바르고 포기하지 않은 주장에 동의하며 응원해 주었다. 그들 둘은 마침내 강제퇴장을 당하였고 지선경이 만든 인터넷 까페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흔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들에게는 흔하지 않았다. 점차 그들은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고 그것이 사랑이 되었다.

 

그녀는 천지수를 알기 1년 전에 남편을 사별하였다. 그녀가 대학을 갖 졸업하던 해에 운 좋게도 대구에 있는 일본 시계를 수입해서 판매하는 회사인 북극성시계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해 가을. 영업사원이었던 장이규에게 겁탈 당하여 임신을 하게 되었고,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 견디지 못하고 그와 결혼하고 말았다. 남편은 그녀보다 3살 위였다. 172cm인 그는 그 때에는 건장하였다. 지선경보다 4cm 더 컸다. 그것마져 위압이었다. 그녀는 남편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그러나 남편은 그녀를 사랑하고 아낀다는 명분으로 집안에만 기거하게 하며 세상을 모르게 만들었다. 그녀는 진흙 속의 다이아몬드였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하여서든 닦이고 세공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렇게 그녀는 장이규의 성의 노리개로(그것은 40이 훨씬 넘은 나이가 되어서야 알았다.) 종갓집 며느리로 살아왔다. 그녀는 수학을 전공하였다. 결혼후 발령받은 교사직도 1년이 채 안돼 남편의 발작같은 거부로 그만두었다. 수학은 갇힌 그녀에게 유일한 탈출구가 되었다. 집안에서하는 가정교사. 그러나 점차 그녀의 수입이 남편을 능가하였고, 딸 장서영을 제대로 건강하게 잘 키울 수 있도록 하였다. 오직 딸에게 그녀의 삶을 맡기다 시피 하였다. 그녀는 사치를 몰랐다. 그녀의 통장에는 예금이 늘었다. 그녀는 남편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하였다. 그것이 정상적인 생활로 알았다.

 

“자기야! 나 왔다.”

“예. 저녁 준비해 두었어요. 더운 물도 받아 놓았어요.”

“아니다. 먼저 요부터 깔아. 그리고 자기는 준비해.”

그 전에 그녀는 딸을 재워 두어야 하였다.그녀는 하얀 요를 깔고 요 옆에 팬티와 브래지어만 한 채 앉아 남편을 기다려야 했다. 그녀는 그가 하라는대로 다 하였다. 남편은 정력이 좋았다. 서당개 3년이면 글을 짖는다고 때때로 그녀도 환희를 느꼈으며 절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럴 때면 남편은 스스로의 성적 능력에 만족하여 밤새우기도 하였다. 낮에도 욕망이 일어나면 집으로왔다.

 

“자기야! 나왔다.”

그는 그렇게 부르는 것이 사랑 표현이고 유행이라 하였다. 그 때는 당황하여 가르치던 학생들을 다음에 보충하기로 하고 돌려 보냈다.

 

“나 말이야! 지금 해야하니 어서 준비해!”

그는 종손이었다. 제사를 그가 지휘하였다. 그 집안의 여성들은 귀했다. 한 분인 시어머님도 결혼하기 전 해에 돌아가셨다. 부엌일은 모두 그녀의 차지였다. 억척같이 종갓집 제삿상을 차리고 마무리를 하고 하였다. 그리고 밤 낮없이 그가 필요할 때 준비를 해야했다. 그런 시도 때도 없던 생활이 계속되었다. 친정 어머니도 완고한 양반가문에서 시집살이를 하고 있었다. 혹 힘든 생활의 이야기를 꺼낼려고 하면, 먼저 말하였다.

 

“가문의 가치와 존엄을 스스로 흐트리지 말아라. 여자는 남자에 잘 종속되는 것이 행복이란다”

그런 친정 어머니였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조치원의 조폐공사에 경비반장으로 직장을 옮기고서는 사랑이라는 이름아래 성적학대와 구속은 더욱 심해졌다. 일주일에 두번 이상은 싫든 좋든 그를 받아들여야 했다. 출근 후 오전에 두번 오후에 두번 그는 시간을 정하지 않고 전화를 했다. 혹 전화를 받지 못했을 때는 그녀가 전화를 받을 때까지 10분 간격으로 전화를 계속하였다. 그가 의심스럽다 생각하면 60이 넘은 그의 사촌 누이가 집을 방문하여 종일 함께 있으며 걸려오는 전화나 외출을 감시하였다. 그녀는 40 중반이 되도록 동창회 한번 나간적이 없었고, 혼자 여행 한번 한 적이 없었으며 서울에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남편을 출근시킨 후 부엌일과 집안 청소를마치고 티비 앞에 앉아 맥칸없이 티비를 보거나 겨우 한 주일에 한번 집 가까운 백화점에 가서 생활용품을 사오는 것이었다. 그 외 일년에 열번이 넘는 제삿상 준비와 남편 친척들의 경조사에 남편과 함께 다녀 오는 것이 다 였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친구도 없었고, 형제들과도 거리가 멀어졌고 다른사람들과 만나며 보편적으로 하는 사회생활과도 거리가 멀었다. 생각은 단순해졌고 영혼은 맑았다. 순종적이 되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사람이 사는 삶이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그의 출근과 퇴근 시각만은 시계바늘 같이 정확하였다. 그는 그의 아내가 흙묻은 보석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보석을 단단한 상자속에 넣어두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가끔 회식이다 혹은 동창회다 하여 새벽에 들어 올 때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경찰서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장이규씨 댁이 맞습니까?”

“예. 그런데요?”

“장이규씨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녀는 철렁 내려앉는 가슴을 부여안고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장이규는 남편이었다.

 

“얼마나 다치셨는데요? 지금 어디계셔요?”

“장이규씨와 어떤 관계입니까?”

잠시 망설이던 경찰은 알아야 하는 것을 물었다.

 

“남편이예요. 지금 어디계시고 얼마나 다치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그녀는 멈출 수 없는 울음섞인 소리로 물었다. 어쩧던 그는 남편이었다.

 

“지금 대전 한밭병원 영안실에 있습니다.”

“아아악~”

외마디 신음과 함께 그녀는 기절하고 말았다. 엄마의 울음소리에 잠이 깬 서영이 옆에서 듣고 있다가 엄마가 기절하자 같이 울기 시작하였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옆에는 경찰 두명과 엠브랜스에서 내린 응급요원들이 응급조치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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