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수호지 233

작성자미션|작성시간23.07.27|조회수54 목록 댓글 0

#연재소설
#수호지 연재 233

  •  


수호지 제103회-2

왕경은 영중의 사람들이 모두 잠들 때까지 두어 시간을 기다렸다가, 살그머니 안채 뒤쪽으로 돌아가 담을 기어 넘어갔다. 조용히 뒷문 빗장을 열고 한쪽 구석에 숨었다. 희미한 별빛 아래에서 보니, 담장 안쪽 동편에 마구간이 있고, 서편에는 작은 집이 하나 있는데 측간이었다.

왕경은 마구간의 나무 울타리를 뜯어내 중문 담장에 기대놓고, 그걸 타고 담장을 기어 올라갔다. 담장 위에서 울타리를 끌어올려 안쪽으로 기대놓고 가만히 밑으로 내려왔다. 먼저 중문의 빗장을 열어놓고 울타리를 치워 놓았다.

안쪽에 또 담장이 있었는데, 담장 안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왕경은 담장 가까이 다가가서 바닥에 엎드려 귀를 기울여 자세히 들었다. 장세개의 목소리가 들리고, 또 한 여인과 다른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안에서 술을 마시면서 한담을 나누는 것 같았다.

왕경이 한동안 몰래 엿듣고 있었는데, 홀연 장세개의 말이 들렸다.

“처남! 그놈이 내일 와서 보고하면, 그놈 목숨도 몽둥이 아래에서 끝장날 걸세.”

남자가 말했다.

“그놈이 가진 돈도 이제 거의 다 써 버렸을 겁니다. 매형께서 이제 결단을 내리셔서, 이 좆같은 기분을 풀어 주십시오.”

장세개가 대답했다.

“이제 내일 모레면, 자네 기분이 통쾌해질 걸세!”

여인이 말했다.

“그만하면 충분하잖아! 넌 이제 그만 둬라!”

남자가 말했다.

“누님은 그게 무슨 말씀이오? 누님은 상관하지 마시오!”

왕경은 담장 밖에서 세 사람이 주고받는 얘기를 듣고서 분명히 알게 되자, 가슴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3천 길이나 치솟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금강역사 같은 신력(神力)을 발휘하여 담장을 부수고 뛰어 들어가 모조리 죽여 버리지 못하는 것이 한이었다.

왕경이 더 이상 참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때 장세개가 큰소리로 하는 말이 들렸다.

“얘야! 측간에 가게 등불을 밝혀라!”

왕경은 그 말을 듣고, 얼른 비수를 뽑아 들고 매화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웅크리고 있었다. 안에서 ‘삐익’ 하는 방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왕경이 어둠 속에서 보니 심부름 하던 아이가 등롱을 들고 앞서고, 뒤에 장세개가 팔자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어둠 속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앞만 보고 걸어가다가, 중문에 이르러 아이를 꾸짖었다.

“이 조심성 없는 종놈아! 어째서 저녁에 빗장을 지르지 않았단 말이냐?”

아이가 문을 열자, 장세개는 중문을 나갔다. 왕경은 살그머니 그 뒤를 따라갔다. 장세개는 뒤에서 오는 발걸음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때 왕경은 오른손으로 비수를 빼들고 왼손은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편 채 장세개에게 덤벼들었다. 순간 장세개는 오장육부가 모두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 비명을 질렀다.

“도둑이야!”

하지만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왕경의 칼이 귀밑으로 들어와 목을 베어 버렸다. 장세개는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아이는 비록 평소에 왕경과 친하기는 했지만, 왕경의 손에 번쩍번쩍 빛나는 비수를 들려 있고 눈앞에서 흉악한 짓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어찌 무섭지 않겠는가? 달아나려고 했지만 두 발이 땅에 못 박힌 듯 꼼짝 할 수가 없었고, 소리를 지르려고 해도 마치 벙어리가 된 듯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너무나 놀라서 그냥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장세개는 살아 보려고 버둥거렸는데, 왕경이 달려들어 등에 깊숙이 비수를 찔러 넣어 끝장을 내버리고 말았다. 방원은 방안에서 누나와 술을 마시고 있다가,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등불도 켜지 않고 급히 뛰어 나왔다. 왕경은 방안에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등롱을 든 아이를 발로 걷어찼다. 아이가 등롱을 든 채로 넘어지면서 등롱이 꺼져 버렸다. 방원은 장세개가 아이를 때리는 줄 알고 소리쳤다.

“매형! 아이는 왜 때리시오?”

그리고는 말리려고 앞으로 오는데, 왕경이 어둠 속에서 달려들어 방원의 옆구리를 비수로 찔렀다. 방원은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땅바닥에 넘어졌다. 왕경은 넘어진 방원의 머리털 붙잡고 한칼에 목을 잘라 버렸다.

방씨는 바깥에서 흉한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급히 하녀를 불러 등불을 들려 함께 밖으로 나왔다. 왕경은 방씨가 나오는 것을 보고 달려들어 죽여 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괴이한 일이 일어났다! 왕경이 눈을 돌려 보니, 방씨의 등 뒤에 10여 명의 하인들이 손에 무기를 들고 고함을 지르면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왕경은 황급히 손발을 멈추고 몸을 돌려 뒷문을 열고 달려가 뒷담을 뛰어넘었다. 피 묻은 옷을 벗어 버리고 비수를 깨끗이 닦은 다음 몸에 감추었다. 그때 자정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려왔다. 왕경은 거리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성벽 아래까지 당도했다. 섬주의 토성은 별로 높지도 않고 해자도 그리 깊지 않아, 왕경은 성벽을 넘어 달아났다.

한편, 장세개의 첩 방씨는 단지 등불을 든 두 하녀와 함께 나왔을 뿐, 원래 아무도 따라나온 사람이 없었다. 방씨가 나와 보니, 동생 방원의 머리가 피를 흘리면서 한쪽에 떨어져 있고 몸은 다른 한쪽에 있었다. 깜짝 놀란 방씨와 하녀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두 개골을 갈라서 얼음물 한 통을 쏟아 부은 것처럼 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벌벌 떨고 있던 방씨와 두 하녀가 허둥지둥 집안으로 달려가면서 소리를 지르자, 집안에서는 하인들이 바깥에서는 당직을 서던 군졸들이 횃불과 무기를 들고 뒷마당으로 달려왔다. 중문 밖에 장관영이 죽어 넘어져 있고, 아이가 쓰러져 입으로 피를 토하면서 버둥거리고 있는데 살아날 것 같지 않았다.

뒷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니, 도둑이 집 뒤로 들어온 것 같았다. 모두 뒷문 밖으로 나가서 불을 비춰 보니, 땅바닥에 비단 두 필이 버려져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왕경이 한 짓이라 짐작하고, 죄수들을 점검해 보니 왕경만 없었다.

영내에서 소동이 벌어지자, 주변의 이웃들도 모두 나와서 찾아보니, 뒷담 밖에 피 묻은 옷이 발견되어 자세히 살펴보니 역시 왕경의 것이었다. 사람들은 상의하여, 성문을 열기 전에 부윤에게 달려가 알리고 급히 수색을 시작했다.

부윤은 보고를 받고 크게 놀라, 속히 현위를 보내 죽은 사람을 검사하고 범인이 드나든 곳을 알아보게 하였다. 사람을 보내 네 성문을 굳게 닫게 하고, 군병들과 포졸들 그리고 마을 이장들을 모두 내보내 집집마다 수색하여 범인 왕경을 체포하게 하였다. 하지만 성문을 닫고 이틀 동안 소란을 피우면서 집집마다 다 뒤졌지만 끝내 왕경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부윤은 공문을 각처로 보내 집집마다 수색하여 범인을 잡으라고 하고, 왕경의 고향·나이·용모·복장 등을 상세히 적고 그림까지 그린 방을 내걸었다. 왕경이 있는 곳을 알리는 자에게는 상금 1천관을 줄 것이며, 만약 범인을 숨겨 숙식을 제공하는 자는 범인과 동일한 죄를 물을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 왕경은 그날 밤 섬주성을 넘어간 다음 옷을 걷어붙이고 해자의 얕은 곳을 골라 건너서 맞은편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비록 탈출하여 목숨은 부지했지만, 이제 어디로 가서 몸을 피할 것인가?”

때는 한겨울이 다가올 때여서, 나뭇잎도 모두 떨어지고 풀도 말라 버려서 별빛 아래에서도 길은 잘 보였다. 왕경은 그날 밤 서너 개의 소로를 지나 마침내 대로로 나가 황급히 내달렸다. 붉은 해가 떠올랐을 때에는 성에서부터 약 6~70리 멀어져 있었다.

남쪽을 향해 가다 보니, 앞에 인가가 조밀한 마을이 나타났다. 왕경은 자신에게 아직 1관의 돈이 남아 있음을 생각하고, 일단 마을에 들어가서 술과 음식을 사먹은 다음 어디로 갈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잠시 후 마을에 당도했는데, 아직 이른 아침이어서 주점들이 문을 열지 않았는데 동쪽 거리의 한 집 처마 밑에 객점임을 알리는 등롱이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어젯밤에 문을 닫지 않은 탓인지 문도 반쯤 열려 있었다.


왕경이 그 집으로 가서 ‘끼익’ 소리를 내면서 문을 밀고 들어가자, 아직 세수도 하지 않고 머리도 빗지 않은 한 사람이 안에서 나왔다. 왕경이 보니, 이종사촌인 원장(院長) 범전이었다. 그는 어릴 적에 왕경의 부친을 따라 방주에서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 그곳에서 양원(兩院)의 압뢰절급이 되었다. 금년 봄 3월에 공무로 동경에 왔다가 왕경의 집에 며칠 묵은 적도 있었다.

왕경이 범전을 보고 소리쳤다.

“형님!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범전이 말했다.

“왕경 아우 아닌가!”

그런데 범전이 왕경의 몰골을 보니, 얼굴에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범전은 의심이 들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왕경은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형님은 이 아우를 좀 구해 주십시오!”

범전은 황망히 왕경을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자네가 진짜 왕경 아우인가?”

왕경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소리 내지 마십시오!”

범전이 눈치를 채고 왕경의 소매를 끌어 객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범전이 어젯밤 빌린 독방이었다. 범전이 조용히 물었다.

“아우는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나?”

왕경은 범전의 귀에 대고 낮은 소리로, 유배 오게 된 일을 자세히 얘기하고 또 장세개가 원한을 갚기 위해 자신을 괴롭혀 어젯밤에 죽인 일을 다 말했다. 얘기를 듣고 범전은 크게 놀랐다. 잠시 주저하다가, 급히 세수하고 아침밥을 먹은 다음 방값과 밥값을 치렀다. 왕경을 자신을 따라다니는 군졸로 꾸며 객점을 떠나 방주를 향해 갔다.

길을 가면서 왕경은 범전에게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는지 물었다. 범전이 말했다.

“우리 부윤이 섬주 부윤에게 서신을 갖다 주라고 해서 왔는데, 어제 회신을 받고 섬주를 떠나 저녁에 이곳에 당도하여 하룻밤을 묵은 거네. 아우가 섬주에 와 있었고, 또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은 몰랐네.”

범전은 왕경과 함께 밤에는 쉬고 아침부터 걸어서 몰래 방주에 당도하였다. 이틀이 지나자, 섬주에서 범인 왕경을 체포하라는 공문이 왔다. 범전은 두 손에 땀을 쥐고 집으로 돌아와 왕경에게 말했다.

“성중은 몸을 숨길 곳이 못 되네. 성 밖의 정산보 동쪽에 몇 칸짜리 초가와 20여 무(畝)의 밭을 작년에 내가 사 둔 것이 있네. 지금 장객 몇 명을 보내 경작시키고 있는데, 자네는 일단 그리로 가서 몸을 피하게, 며칠 있으면서 다시 생각해 보세.”

범전은 캄캄한 밤중에 왕경을 데리고 성을 나가, 정산보 동쪽의 초가에 숨어 있게 하였다. 그리고 왕경의 성명을 이덕으로 바꾸게 했다. 범전은 왕경의 얼굴에 새겨진 문신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다행히 예전에 건강에 갔다가 신의 안도전의 명성을 듣고 많은 예물을 주고 문신을 없애는 방법을 배운 적이 있었다.

왕경의 얼굴에 독한 약을 바른 후에 좋은 약을 써서 치료하여 붉은 살이 돋게 한 다음, 다시 금가루와 옥가루를 발라 치료하였다. 두 달 정도 지나자 문신이 모두 깨끗하게 사라졌다.

세월이 흘러 백여 일이 지나, 선화 원년 봄이 되었다. 관아에서 왕경을 체포하려던 일도 이미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어 흐지부지 되었다. 왕경은 얼굴에 문신도 없어져서 차츰 바깥나들이도 하게 되었다. 의복과 신발 등은 모두 범전이 마련해 주었다.

어느 날, 왕경이 방안에 앉아 있는데, 홀연 멀리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왕경이 장객에게 물었다.

“어디서 저렇게 떠드는 소리가 나는가?”

장객이 말했다.

“이대관(李大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여기서 서쪽으로 1리쯤 가면 정산보 안에 단가장(段家莊)이 있습니다. 그 집 단씨 형제가 본주의 기생들을 불러 무대를 설치하고 노래를 부르게 하고 있습니다. 그 기생들은 서경에서 새로 왔는데, 용모와 재주가 빼어나다고 합니다. 그들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답니다. 대관인께서도 한 번 가 보시지요?”

왕경은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정산보로 갔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