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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234

작성자미션|작성시간23.07.27|조회수70 목록 댓글 0

#수호지 연재 234


정산보는 5~6백 가호가 있는 마을이었는데, 무대는 보리밭 위에 설치되어 있었다. 이때 기생들은 아직 무대 위에 오르지 않았고, 무대 아래 사방에 3~40개의 탁자가 놓여 있는데 사람들이 둘러앉아 주사위 노름을 하고 있었다.

주사위로 하는 노름도 한 가지가 아니라, 육풍아(六風兒)·오요자(五么子)·화요모(火燎毛)·주와아(朱窩兒) 등이 있었다. 또 20여 명이 땅에 웅크리고 앉아 동전 던지기도 하고 있었는데, 동전을 던져 하는 노름도 혼순아(渾純兒)·삼배간(三背間)·팔차아(八叉兒) 등이 있었다.

주사위를 던지는 곳에서는 ‘요’를 외치거나 ‘육’을 외치고, 동전을 던지는 곳에서는 ‘글자’를 외치거나 ‘뒷면’를 외치고 있었다. 혹은 웃기도 하고 혹은 욕하기도 하고, 혹은 진지하기도 하고 혹은 싸우기도 하였다. 노름에 진 자들은 옷을 벗어 놓기도 하고 두건이나 버선을 벗어 놓기도 했다. 본전을 찾기 위해 할 일도 내팽개치고 먹고 자는 것도 잊은 채 달려들지만, 끝내 다 잃고 마는 자도 있었다.

이긴 자는 의기양양하여 이쪽저쪽 기웃거리다가 상대를 찾아 다시 노름을 하는데, 전대나 호주머니 혹은 소매 속에 은전이 가득했다. 하지만 다 끝난 후에 셈을 해 보면 노름꾼이나 물주들이 다 가져가고 딴 돈은 얼마 없게 되었다.

노름판 광경은 그만 얘기하고, 시골 아낙네들을 살펴보자. 호미도 내팽개치고 채소밭에 물주는 것도 버려두고서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어, 햇볕에 시커멓게 탄 얼굴을 쳐들고 누런 이빨을 드러낸 채 어리벙벙하게 서서 기생이 올라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똑같이 부모 밑에서 자랐을 것인데, 그 기생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예뻐서 사람들이 구경하러 몰려들었을까? 비단 인근 마을에서뿐만 아니라 성중에서도 사람들이 구경하러 와서, 푸르른 보리밭이 10여 무(畝)나 짓밟혔다.

왕경은 한가롭게 한 바퀴 돌면서 구경을 하다 보니, 손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무대 근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한 우람하고 건장한 사내가 두 손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걸상에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큰 얼굴에 눈은 둥그렇고, 어깨는 넓은데 허리는 가늘었다. 탁자 위에 5관의 돈이 쌓여 있고, 상자 하나와 주사위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노름할 상대가 없는 것 같았다. 왕경은 생각했다.

“내가 관아에 잡혀갔던 때부터 오늘까지 열 달이 넘도록 놀아본 적이 없네. 지난번에 범전 형님이 땔나무 사라고 준 은덩어리가 하나가 있으니, 이걸 밑천으로 저자와 주사위 노름을 한 번 해보자. 몇 관쯤 따 가지고 돌아가서 과일이나 사 먹어야지.”

왕경은 은덩어리를 꺼내 탁자 위에 던지며 사내에게 말했다.

“주사위 한번 던져 봅시다!”

사내가 왕경을 보더니 말했다.

“던져 보시죠!”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한 사람이 앞쪽 탁자를 둘러싼 사람들을 비집고 나왔다. 덩치가 큰 것이 걸상에 앉아 있는 사내와 비슷했다. 그 사람이 왕경에게 말했다.

“이보시오! 은덩어리로 판돈을 낼 수 있겠소? 내가 은덩이를 동전으로 바꿔줄 테니, 당신이 이기면 1관에 20문의 이자를 떼겠소.”

왕경이 말했다.

“좋소!”

그 사람은 돈 2관을 내놓고서 1관에 20문씩 이자를 떼고서, 나머지를 왕경에게 건넸다. 왕경이 말했다.

“좋아!”

왕경은 사내와 주와아 노름을 시작했다. 두세 판 놀았는데, 또 한 사람이 끼어들어 판돈을 댔다. 왕경은 동경에서 노름판에 굴러먹던 놈이라, 솜씨가 대단했다. 주사위를 던지는 것은 물론이요 교활한 속임수도 잘 써서 판돈을 쓸어갔다.

은덩어리를 동전으로 바꿔준 자는 소란한 틈을 타서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은덩어리를 거두어 슬그머니 사라졌다. 뒤에 끼어들었던 자도 왕경의 솜씨가 흉악한 것을 보고 판돈을 거두고, 사내 옆에서 구경만 했다.

왕경은 단숨에 2관을 따고 던질수록 높은 점수가 잘 나왔다. 사내는 본전을 찾으려고 성급하게 굴었지만 작은 점수밖에 나오지 않았다. 왕경이 9점 나올 때 사내는 겨우 8점에 그칠 뿐이었다.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5관을 모두 잃고 말았다.

왕경은 돈을 따자, 2관은 줄로 꿰어 은덩어리와 다시 바꾸려고 한쪽에 두고, 3관은 따로 꿰어 어깨에 메려고 하는데, 돈을 잃은 사내가 소리쳤다.

“너는 돈을 가지고 어디로 가려고 하는 거냐? 그 돈은 방금 화로에서 나온 것이라, 뜨거워서 손을 델 걸?”

왕경이 노하여 말했다.

“네가 나한테 잃어 놓고서 무슨 좆같은 방귀 뀌는 소리냐?”

사내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면서 욕을 했다.

“이 개새끼가 감히 어르신에게 욕을 해!”

왕경도 욕을 했다.

“좆같은 촌놈아! 내가 네놈의 주먹을 무서워할 것 같으냐? 어디 나한테서 한번 뺏어 봐라!”

사내가 주먹을 치켜들고 왕경의 얼굴을 향해 날렸다. 왕경은 옆으로 슬쩍 피하면서 사내의 손을 잡고서 오른쪽 팔꿈치로 사내의 복부를 찌르면서 오른발로 사내의 왼쪽 다리를 걷어찼다. 사내는 힘은 셌지만 발길질에는 익숙하지 못해, 뒤로 벌렁 자빠지고 말았다. 둘러서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모두 웃어댔다.

사내가 일어나려고 버둥거리자, 왕경이 위에 올라타서 마구 두들겨 팼다. 그때 은덩어리를 동전으로 바꿔주었던 사내가 달려와서, 말리거나 돕지도 않고 다만 탁자 위에 있는 돈을 몽땅 쓸어 담아 달아났다. 왕경은 크게 노하여 땅바닥에 넘어진 사내를 버려두고, 돈을 훔쳐가는 놈을 뒤쫓았다. 그때 사람들 틈에서 한 여인이 나오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야! 무례하게 굴지 마라! 내가 여기 있다!”

왕경이 여인을 보니, 생김새가 괴상했다. 커다란 눈에 흉악한 빛이 번득이고, 거친 눈썹에는 살기가 어려 있었다. 허리와 사지가 꿈틀대는 모양이 예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낯짝은 두꺼운데 연지분을 덕지덕지 바르고 있었다. 머리에는 이상한 모양의 비녀를 찌르고 두 손목에는 팔찌를 끼고 있었는데, 마치 돌절구에 장신구를 두른 것처럼 우스운 모양이었다. 바늘에 실을 어떻게 꿰는지는 모르고, 주먹질과 발길질이 장기인 것 같았다.

나이는 24~5세 정도 돼 보였다. 그녀는 겉에 입은 적삼을 벗어 둘둘 말아 탁자 위에 던졌다. 안에는 화살대처럼 소매가 짧고 앵무새처럼 푸른 색깔의 몸에 붙는 웃옷을 입었고, 아래에는 통이 넓은 자주색 명주 바지를 입고 있었다.

여인은 앞으로 걸어 나오면서 주먹을 쥐고 왕경에게 덤벼들었다. 왕경은 상대가 여인이고, 또 주먹질이 어설픈 것을 보고 놀려주려고 일부러 빠른 발길질은 사용하지 않고 주먹으로만 상대했다. 그것도 주먹을 내리고 가슴을 드러낸 채 좀 엉성한 자세를 취했다. 그렇게 하니 여인과 상대가 될 만했다.

그때 기생들이 무대 위에 올라가 연극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남녀가 싸우는 것이 더 재밌어서, 모두 그쪽으로 몰려가 두 사람을 둘러싸고 구경했다. 여인은 왕경이 단지 막기만 하는 것을 보고, 실력이 모자라서 그런 줄 알았다.

그녀는 빈틈을 노리다가 검은 호랑이가 상대의 가슴을 노리는 자세인 ‘흑호투심세(黑虎偷心勢)’를 취하면서 왕경의 가슴을 찌르고 들어갔다. 왕경이 슬쩍 피하자, 여인의 주먹은 허공을 찔렀다. 그리고 미처 주먹을 거두기 전에 왕경에게 붙잡혀 넘어졌다. 여인이 넘어지면서 막 땅에 닿으려는 순간, 왕경이 손을 내밀어 그녀를 껴안았다. 그건 호랑이가 머리를 끌어안는 자세인 ‘호포두(虎抱頭)’라는 기술이었다.

왕경이 여인에게 말했다.

“옷을 더럽히면 안 되죠. 내가 넘어뜨렸다고 화내지 마시오. 그쪽이 먼저 나한테 덤벼든 거니까.”

여인은 조금도 부끄러워하거나 노하는 기색도 없이, 도리어 왕경을 칭찬했다.

“와우! 멋진 솜씨네요!”

그때 돈을 잃고 얻어맞은 사내와 돈을 쓸어갔던 사내가 사람들을 헤치고 나와 함께 소리쳤다.

“당나귀가 싸지른 개새끼가 간땡이도 크네! 감히 우리 누이를 넘어뜨려?”

왕경도 욕을 했다.

“노름에 진 거북이 새끼 같은 병신들이 내 돈을 훔쳐가 놓고, 도리어 더러운 소리를 지껄이고 있네.”

왕경이 주먹을 들어 막 치려고 하는데, 한 사람이 사람들 틈에서 뛰쳐나오더니 사이를 가로막고 소리쳤다.

“이대랑! 무례하게 굴지 마라! 단이(段二) 형과 단오(段五) 형도 손을 멈추시오! 모두 같은 땅위에 사는 사람들이니, 말로 좋게 해결할 수도 있지 않소!”

왕경이 보니, 바로 범전이었다. 세 사람이 손을 멈추자, 범전이 여인에게 말했다.

“삼랑(三娘)! 안녕하시오?”

여인도 인사를 하고 물었다.

“이대랑은 원장님 친척이신가요?”

범전이 말했다.

“내 이종사촌이오.”

여인이 말했다.

“대단한 솜씨예요!”

왕경이 범전에게 말했다.

“저놈이 노름에 져서 돈을 잃고서는, 도리어 한패를 시켜 훔쳐갔습니다.”

범전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이 두 형제의 장사일세. 자네가 어쩌다가 장사를 망쳐 놓았는가?”

단이와 단오는 누이가 다친 데 없는지 살펴보았다. 여인이 단오에게 말했다.

“범원장님의 얼굴을 봐서, 다투지 말자. 은덩어리는 이리 내놔!”

단오는 누나가 왕경을 칭찬하면서 말리는 것을 보고 말했다.

“내가 졌소.”

단오는 은덩어리를 꺼내 누나인 삼랑에게 건넸다. 삼랑이 범전에게 은덩어리를 주면서 말했다.

“은덩어리는 그대로이니, 가져가세요!”

말을 마치자 삼랑은 단이와 단오를 데리고 사람들을 헤치고 가버렸다. 범전도 왕경을 데리고 초가로 돌아왔다. 범전이 왕경을 나무라며 말했다.

“내가 이모를 생각해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자네를 여기 머물게 하고, 혹 사면령이라도 내리면 자네를 위해 뭔가 해주려고 하는데, 자네는 어찌 성질을 참지 못하고 있는가!

단이와 단오는 아주 교활하고 사나운 놈들일세. 그리고 그 누이 단삼랑은 더 악독해서 사람들이 대충와(大蟲窩; 호랑이굴)라고 부른다네. 그녀의 유혹에 빠져 신세 망친 양가 자제들이 적지 않네. 그녀는 15세 때 어떤 늙은이에게 시집갔는데, 그 늙은이도 1년이 못 돼 그녀에게 시달려 죽었다네.

그녀는 자신의 힘만 믿고 단이·단오와 함께 바깥으로 다니면서 행패를 부리고 남의 돈을 빼앗는다네. 인근 마을에서는 저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네. 저들이 기생들을 불러온 것도, 사람들을 노름판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작이야. 거기 펼쳐진 탁자들이 모두 올가미라네.

그런데 자네가 그곳에 가서 말썽을 일으키면 되겠는가! 만약 자네 정체가 탄로 나게 되면, 자네나 나나 큰 화를 당하게 될 것 아닌가?”

왕경은 범전의 말을 듣고,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범전이 일어나며 왕경에게 말했다.

“나는 관아에 당직 서러 가야겠네. 내일 다시 오겠네.”

다음 날, 왕경이 세수를 막 했는데, 장객이 와서 말했다.

“단태공이 대랑을 보러 왔습니다.”

왕경이 밖으로 나가 영접하고 보니, 주름이 많은 얼굴에 은빛 수염을 기른 노인이었다. 인사를 마치고 주객을 나누어 좌정하였다. 단태공이 왕경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살펴보더니, 말했다.

“과연 헌칠하군!”

그리고는 고향이 어딘지, 어떻게 해서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범원장과는 어떤 사이인지, 결혼은 했는지 등등을 물었다. 왕경은 단태공의 질문이 뭔가 수상쩍어 거짓으로 얘기를 날조하여 대충 얼버무렸다.

“저는 서경 사람인데, 부모도 모두 돌아가시고 아내도 죽었습니다. 범절급의 이종사촌인데, 지난해에 범절급이 공무로 서경에 왔다가, 제가 혼자 살면서 돌봐줄 사람도 없는 것을 보고 여기로 데려 왔습니다. 제가 권법과 봉술을 조금 알고 있어서 기회가 있으면 이곳에서 출세할 수 있을까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단태공은 왕경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왕경의 사주팔자를 묻고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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