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수호지 237

작성자미션|작성시간23.07.29|조회수54 목록 댓글 0

#연재소설
#수호지 연재 237

  •  


한편, 완주를 지키는 적장 유민은 도적 중에서 제법 모략이 있는 자여서 유지백(劉智伯)이라 불렸다. 그는 송강의 병마가 더위를 피하느라 산림이 우거진 곳에 주둔하고 있는 것을 탐지하고서, 부하들에게 말했다.

“송강의 무리는 끝내 물가에 살던 도적에 지나지 않아, 병법을 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큰일을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 내가 작은 계책을 시행하여 저 20만 군마의 절반을 구워 버리겠다!”

유민은 즉시 명을 내려 날랜 군사 5천을 선발하여, 각기 불화살·화포·횃불 등을 준비하게 하였다. 그리고 전차(戰車) 2천 대를 준비하여 갈대와 마른 장작, 그리고 유황과 염초 등의 인화물을 가득 싣게 하였다. 그리고 전차 한 대마다 네 사람이 밀게 하였다.

때는 7월 중순으로 이제 초가을이 시작될 때였다. 유민은 노성·정첩·구맹·고잠 등 4명의 부장과 철기 1만을 거느리고, 사람들은 가벼운 갑옷을 입고 말들은 방울을 떼고서 전차 뒤를 따라 접응하기로 하였다. 유민은 편장 한철과 반택 등을 남겨 성을 지키게 하였다.

유민 등은 해가 질 무렵 성을 나갔는데, 마침 남풍이 크게 불었다. 유민은 크게 기뻐하면서 말했다.

“송강의 무리는 패할 수밖에 없다!”

적병들은 자정쯤에 방성산 남쪽 2리 지점에 당도하였는데, 홀연 안개가 산골짜기를 가득 덮었다. 유민이 말했다.

“하늘이 나의 성공을 돕는구나!”

유민은 군사들에게 뒤에서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면서 위세를 돕게 하고, 5천 군사로 하여금 산림을 향해 불화살과 화포를 쏘고 횃불을 던져 불을 지르게 하였다. 구맹과 필승은 전차를 밀고 온 군사들을 재촉하여, 전차에 불을 붙여 산기슭 아래 군량을 쌓아둔 곳으로 내려 보내게 하였다. 적병들이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다가, 홀연 모두 비명을 질렀다.

“아이고! 아이고!”

참으로 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남풍이 세차게 불다가, 삽시간에 북풍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리고 산 위에서 벽력같은 소리가 났다. 교도청이 바람 방향을 바꾸어 불을 되돌리는 술법을 써서 적병이 쏜 불화살과 화포를 모두 남쪽의 적군 진영으로 날려 보냈다. 마치 천만 마리 금빛 뱀과 화룡(火龍)이 화염을 따라 적병을 덮치는 것 같았다. 적병들은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하고 불을 뒤집어썼다.


그때 송선봉이 능진으로 하여금 호포를 터뜨리게 하였다. 포탄이 하늘로 올라가 터지자, 동쪽에서는 장청과 경영이, 서쪽에서는 손안과 변상이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적병은 대패하였다. 노성은 손안의 한칼에 두 동강이 났고, 정첩은 경영의 돌에 맞아 말에서 떨어졌는데 장청의 쟁에 다시 찔려 끝장났다. 고잠은 변상의 쟁에 찔려 죽었고, 구맹은 난전 속에서 죽었다.

2만3천의 인마가 태반은 불에 타 죽거나 창칼에 죽고 나머지는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다. 2천 대의 수레도 모두 불에 타 버렸다. 유민은 겨우 3~4백 명의 패잔병만 데리고 완주성으로 달아났다. 송군은 땔나무나 건초 하나 태우지 않고 한 명의 군졸도 잃지 않고서, 획득한 말과 갑옷이 무수하였다.

장청과 손안 등은 승전하고 영채로 돌아와 공을 바쳤다. 손안은 노성의 수급을 바쳤고, 장청과 경영은 정첩의 수급을 바쳤으며, 변상은 고잠의 수급을 바쳤다. 송강은 각각 상을 내렸다. 교도청의 공을 첫째로 기록하게 하고, 장청·경영·손안·변상의 공을 둘째로 기록하게 하였다.

오용이 말했다.

“형님의 묘산이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을 겁니다. 하지만 완주는 산과 강이 두르고 있고 들판이 기름져서 육해(陸海)라 불리는 곳입니다. 만약 도적들이 장병을 보강하여 지키게 되면 급히 이기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시원한 바람이 더위를 몰아내고 이슬이 내려 선선해지고 있으니, 인마가 모두 강건해졌습니다. 아군이 위세를 크게 떨치고 성중의 적군은 약해진 틈을 타서 빨리 공격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병력을 남북으로 나누어 적의 구원병이 오는 것을 막으면서 공격해야만 합니다.”


송강은 오용의 의견에 찬성하고, 명을 내려 관승·진명·양지·황신·손립·선찬·학사문·진달·양춘·주통으로 하여금 3만 병마를 이끌고 완주성 동쪽에 주둔하여 남쪽으로부터 오는 적의 구원병을 막게 하고, 임충·호연작·동평·삭초·한도·팽기·단정규·위정국·구붕·등비로 하여금 3만 병마를 이끌고 완주성 서쪽에 주둔하여 북쪽에서는 오는 적의 구원병을 막게 하였다. 장수들은 명을 받고 군마를 점검하여 떠났다.

그때 손안 등 하북의 항장 17명이 일제히 아뢰었다.

“선봉께서 저희들을 거두어주시고 예로써 대우해 주신 것에 저희들은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저희들이 앞장서서 성을 공격함으로써 두터운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합니다.”

송강은 청을 허락하고, 장청과 경영으로 하여금 손안 등 17명의 장수와 군마 5만을 거느리고 선봉이 되게 하였다. 17명의 장수는 손안·마령·변상·산사기·당빈·문중용·최야·김정·황월·매옥·김정·필승·반신·양방·풍승·호피·섭청이었다. 장청은 명을 받고, 장수들과 군병을 거느리고 완주를 향해 진격하였다.

송강도 노준의·오용 등과 함께 나머지 장수들과 대군을 거느리고 영채를 뽑고 방성산을 떠나 남쪽으로 진격하여, 완주에서 10리 떨어진 곳에 하채하였다. 이운·탕륭·도종왕에게 공성(攻城) 기구를 만들어 장청을 비롯한 선봉부대에 보내게 하였다. 장청 등은 완주성을 물샐 틈 없이 포위하였다.

한편, 완주성을 지키는 적장 유민은 그날 밤 송강의 계략에 빠져 겨우 목숨만 건져 성으로 돌아갔다. 유민은 왕경이 있는 남풍으로 사람을 보내 보고하는 한편, 인근 고을에 공문을 보내 구원병을 요청하였다. 송군에게 성이 포위되어 있어 오늘은 굳게 지키기만 하고, 구원병이 오면 그때 출격하려고 하였다.

송군은 연이어 6~7일 동안 공격하였지만, 성벽이 견고하여 함락하지 못하였다. 완주성 북쪽의 여주를 지키는 적장 장수(張壽)가 구원병 2만을 거느리고 왔는데, 임충 등의 공격을 받고 장수는 죽고 나머지 편장들과 군사들은 모두 궤멸되어 도망쳤다. 같은 날, 또 완주성 남쪽의 안창현·의양현에서도 구원병이 왔는데, 관승 등에게 공격당해 대패하고 적장 백인과 장이는 사로잡혀 송강의 영채로 끌려가 참수되었다. 그 외에도 죽음을 당하거나 사로잡힌 자들이 아주 많았다.

그때 이운 등은 공성 기구를 다 만들었다. 손안과 마령 등은 동심협력하여 군사들로 하여금 흙주머니를 성의 사면에 쌓게 하였다. 또 용감하고 날랜 군사들을 선발하여 비교(飛橋)를 이용하여 해자를 뛰어넘고 흙주머니를 밟고 성벽을 올라가게 하였다. 군사들은 용맹을 떨쳐 일제히 성 위로 올라가 유민을 사로잡고 나머지 편장 20여 명을 죽었다. 죽은 군사가 5천여 명이고, 항복한 자는 만여 명이었다.

송강은 대군을 거느리고 입성하여, 유민을 참수하여 효시하고 방을 내붙여 백성을 안정시켰다. 관승·임충·장청 및 손안 등의 공로를 차례로 기록하게 하고, 사람을 양적주의 진안무에게 보내 승첩을 보고하는 한편 완주로 와서 지켜줄 것을 청하였다. 진안무는 보고를 받고 크게 기뻐하며 즉시 후참모·나무유와 함께 완주로 왔다. 송강 등은 성을 나가 영접하였다. 진안무는 송강의 공을 칭찬하였다.

송강은 완주에서 군무를 처리하느라 10여 일을 보냈다. 때는 8월 초순이 되어 더위가 차츰 물러갔다. 송강이 오용에게 말했다.

“이제 어느 성을 취하는 것이 좋겠소?”

오용이 말했다.

“여기서 남쪽으로 가면 산남군이 있습니다. 남으로는 호상에 이르고 북으로는 관락에 잇닿아 초촉(楚蜀)의 목줄기와 같은 곳입니다. 이 성을 먼저 취하게 되면, 적의 세력을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

“군사의 말이 내 뜻과 같소,”

화영·임충·선찬·학사문·여방·곽성을 남겨 병마 5만을 거느리고 진안무 등을 보좌하게 하여 완주를 지키게 하였다. 진안무는 성수서생 소양도 남기게 하였다.

송강은 명을 내려, 수군두령 이준 등 8명은 수군의 선척들을 이끌고 필수를 거쳐 산남성의 북쪽 한강에 모이라고 하였다. 송강은 육군을 세 부대로 나누어 진안무를 작별하고 군마 15만을 거느리고 완주를 떠나 산남군으로 진격하였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