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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시인(女流詩人) 피춘자(疲春雌)-15 ​

작성자제이서|작성시간23.09.24|조회수89 목록 댓글 0

 

 

 

 

 

여류시인(女流詩人) 피춘자(疲春雌)-15

"자. 둘 다 호의적이고 싫지 않은 것 같으니 이제 그만 탐색하고 본론으로 가자고. 오케바리?"

천삼분은 영락없이 남자였다. 헐렁하게 입은 처진 면 셔츠 안에 언뜻 보이는 가슴골이 없으면 자칫 남자로 볼 수 있겠다 생각하였다. 그녀 천삼분의 집은 대전 유성구의 산자락에 있다 하였다. 그녀의 남편은 두살 많으며 대전 유성구에서 자동차 정비회사를 운영한다고 하였다. 틈나면 자동차 정비도 돕는다고 하니 그야말로 팔방미인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대전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대전으로출퇴근하고 있다 하였다.

 

공연을 며칠 앞둔 피춘자 시인과 통키타 연주자겸 작곡가인 정지훈, 그들은 정지훈의 요청으로 새로운 사랑시에 대한 반주곡과 정식 노랫말로 정하고 곡을 붙이는 작업을 하기 위하여 자주 만날 수가 있었다. 춘자는 그를 몇 번 만나자 그의 굵직하면서 힘있고 그러면서 부드러운 그의 말소리에 매료되었다. 피춘자는 이런 가슴 떨리고 흥분이 잔잔하게 가슴에 차 오르는 감정은 처음이었다. 직접 남자와 단 둘이 만나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참으로 꿈도 꿔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알렉스와는 메일로 주고 받은 사랑이 있었지만, 그것은 카페와 같은느낌이었다. Online이었다. 덮어 버리면 그만인 그런 온라인에서였다. 만나서도 이미 그녀의 타입은 아니었음을 알았고 그 또한 적극적으로 움직여 춘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사람 정지훈은 달랐다. 춘자는 어젯밤에도 남자의 조건을 읽어봤다. 그런 것은 사실, 황당하달 수도 있겠지만 누구라도 만들어 두었다면 가끔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미래 희망적인 여자의 바램일것이다.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것을 만들거나 읽은 사람들 모두 알고있다.

 

"피춘자 시인님. 대천해변가에 다 왔습니다. 뭘 잡수시고 싶으세요?"

그의 말에 생각에서 깨어난 춘자는 차창 밖을 봤다. 잔여름이 아직 남아있는 서해의 바닷가는 그래도 쓸쓸하였다. 바람은 서늘하였다. 작업을 끝내고 그가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하여 거절하지 않고 그의 차를 탄 것이다.

 

"저는 꽃게탕 먹고 싶은데 지훈씨는 뭘 제일 먹고 싶어요?"

"저도 꽃게탕 좋아합니다. 그럼 그걸로 하시지요. 의견 일치입니다."

그가 아이같이 좋아하며 춘자를 봤다. 춘자는 그의 얼굴을 마주보며 머리를 천천히 끄득이며 미소로 답했다.

 

"피춘자 시인님은 어떻게 해도 이쁘고 아름답고 사랑스럽습니다."

"ㅎㅎㅎ. 하나만 하세요. 저 어지러워요. 지훈씨는 작곡가답게 창조적인 생각이 뛰어나고 사물을 보는 눈이 특별해요."

정지훈은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춘자의 목소리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으며 운전하고 있었다.

 

"잠깐. 우리 휴전 좀 합시다. 식당가라 차들이 복잡해요."

춘자는 그의 말에 소녀같이 까르르 웃었다.

 

"예. 휴전해요. 휴전."

그들이 들어간 식당의 2층은 큰 유리창이 안과 밖을 경계했고 그 안쪽 홀에는 각각의 방이 칸막이 되어 있었다. 각 방은 유리창과 접해 있었다. 1층은 칸막이 없는 식탁이 네줄로 20개가 놓여져 있었고 그 안쪽에는밀실같은 룸이 있었다. 그러나 룸을 막는 문은 어디에도 없었다. 말이 룸이지 탁 터인 공간에 룸이라는 폼만 잡아 두었다. 2층의 각 방은 유리창을 통해 잔 파도가 이는 서해바다와 피서객이 다 떠난 텅빈 여름의 끝과 막 오기 시작한 가을의 시작이 바다의 송구영신하는 것 들을 실큰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둘은 그런 호젓하고 야릇한 분위기를 식사하면서 느낄 수 있는 테이블에 마주하고 앉았다.

 

"꽃게탕을 좋아시는가 봅니다. 저희야 일 끝나고 가끔 피곤한 영혼을 달래려 이곳에 오면 소주와 함께 이 집의 꽃게탕을 즐기곤 하였지요."

주문한 꽃게탕이 나오자 정지훈이 입맛을 돋우려는지 말을 꺼냈다.

 

"예전에는 가끔 남편과 애들과 함께와서 먹었어요. 다들 좋아했어요. 남편이 혼자 떠나간 후 이렇게 꽃게탕을 먹는 것은 처음이에요. 그 처음을 정지훈씨와 하니 좋네요."

말을 마치자 너무 앞섰구나 하는 일종의 후회같은 마음으로 창밖의 모래사장에 철썩이는 파도를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아. 그러셨군요. 그래도 피춘자 시인님은 이쁘고 아름다운 모습에 어울리는 참 구김살 없는 고운 마음씨를 가졌습니다."

"어머. 정지훈씨. 말씀도 기분좋게 잘하셔요."

고개를 다시 돌려 그를 보며 춘자가 웃으며 말했다.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여성이면 거의 대부분 외모와 마음의 칭찬에 흔들린다. 하물며 그 보다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로 타인들에게서 인정받고 있는 피춘자인들 예외일 수가 있을까. 그건 크게 따질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분위는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

 

“그럼 꽃게탕도 직접 만들어 보셨겠군요?”

“어머나! 그 요리를 못하는 주부가 어딧어요? 저는 꽃게탕 요리를 참 잘해요. 언제 기회가 나면 제가 직접 만든 꽃게탕 잡수어 보세요. 맨날 해달라고 조를테니까.”

이건 말 실수였다. 이건 유혹의 덧에 넘어간 것이다. 그것을 피춘자가 알 턱이 있겠나? 흥미가 고조되니 그런 앞 뒤 생각지 않은 말이 나온 것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아~ 그래요. 그럼 내일 당장 싱싱한 게를 사서 해 줘 보십시요. 제가 맛보면 좋겠군요.”

“으~아~. 실수했네요. 저희 집에서는 안되는데요. 미안해요.”

“아니요. 제 집에서 해주십시요. 저는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고 있거든요.”

“어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세요. 나중에... 나중에 봐요.”

춘자는 얼른 얼버무렸다. 오래 끌었다간 또 무슨 감당치 못할 이야기가 감미롭게 나올지 모르게 때문이었다. 그 때 정색을 하고 정지훈이 말했다. 비즈니스맨 같았다.

 

"피춘자 시인님. 어제는 말 못했었는데..."

춘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공연에 피춘자 시인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사랑시 하나를 노래로 만들고 싶습니다. 비록 시간은 짧지만 선택한 시에 따라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 가사에 붙인 곡의 노래를 피춘자 시인님이 직접 부를 수 있도록 만들겁니다."

춘자는 몽롱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듯 하였다. 또 시작되는지, 그의 이야기가 꿈 같았다. '내가 노래까지? 나 이러다 난리 나는 것 아냐?' 춘자는 황홀한 기분을 잠깐 맛봤다.

 

"아니예요. 그렇게까지 무리하시면 두분의 공연 질이 문제 될 수도 있고요... 또... 제가 주인공이 아닌데 너무 설치는 것 같으면 안 좋잖아요. 저야 물론 너무 고마운 제의이지만..."

"그러면 됐습니다. 오늘밤부터 시 선정을 하고 곡을 만들고 노래연습 좀 하면 세련된 것 보다 참신하고 순정한 음성의 노래를 만들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나이도 있는데..."

"아. 그 말 잘 하셨습니다. 창작에는 나이가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합니다. 가왕 아시지요?"

춘자가 상기된 얼굴을 끄득였다.

 

"그 선생님. 지금도 왕성하게 창작하고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안방 드라마의 산실인 독엽사단 아시지요. 그 분도 지금 그 연세에도 불구하고 집필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70년대 영화배우이자 한국여성들의 애인이었던 분, 아시지요?"

춘자도 어릴 때 너무 좋아했던 남자였다. 안다. 그런 남자 품에 안기는 꿈도 꾸었었다.

 

“알아요."

"그 분도 그 연세에 적나라한 사랑영화에서 연기했잖습니까. 그 분들에 비하면 피춘자 시인님은 아직 풋내기 처녀입니다. 이제 시작인거지요."

"에이- 너무 띄우신거예요. 중년 정도 하면 안될까요?"

"하하하. 좋아요. 피춘자 시인님은 이제 풍성하고 농익은 중년입니다."

"으-ㅁ. 이제 이해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배우가 연기하신 영화를 보고 사랑 운운하지 마세요.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니예요. 사랑은 그렇게 적흥적이어선 안되고 그렇게 욕정적이어서는 안되고 그렇게 초조적 절실이어서는안되는 거예요. 사랑은 운명적이어야 해요. 저는 그렇게 말하고싶어요. 사랑은 둘이 같아야 하는 거예요. 절대 일방적이어서는 안되어요. 사랑은 너무나 많은 이해와 용서 그리고 인내를 요구해요. 같은 가치 아래 함께 할 수 있는 지속성을 요구해요. 사랑은 참 복잡하며 이기적이며 폭군적이며 몰이해적인데 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 최고의 삶의 가치이거든요. 저는 그렇게 믿고 있어요."

"와-우- 대단하십니다. 너무 멋지십니다. 도대체 못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군요."

"ㅎㅎㅎ. 못하는것도 많아요.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거리가 멀어지려해요."

"아- 저는 더 더 가까워지고 싶습니다. 감동먹었습니다. 체했어요. 너무 갑자기 먹어서. 어서 등 좀 두드려 주십시요."

정지훈이 정말 난처한 몹의 얼굴을 하고 춘자에게로 등을 돌렸다.

 

"참나원. 엄살이 심하셔요. 두드리지는 못하고 등을 만져줄께요."

춘자는 그의 셔츠를 들치고 등에 손을 넣어 손바닥으로 목아래 등줄기를 문질렀다. 그때까지는 특별한 생각이 없었다. 참 자연스러웠다. 동생을 대하듯 춘자의 진정한 마음이었다.

 

"아아아- 너무좋습니다. 좀 더 아래로 내려서 해 주십시요. 으아아학- 흥분되는군요. 춘자 시인님."

춘자는 얼른 손바닥을 빼냈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그의 등을 찰싹 때렸다.

 

"못됐어요. 정말.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응큼해지려는거죠? 앞으로 그러지마요. 알았죠?"

"아- 꿈같은 잠깐이었습니다. 이렇게 손바닥으로 어루만져 주시니 속병이 다 낫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 좀 자주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서 식사나 계속하세요. 다 식겠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지훈이 그런 몸짖으로 요동을 칠 때 춘자도 온 몸을 스쳐지나가는 짜릿한 그 무엇을 느꼈다. 굳이 알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걱정되었다.

 

그들의 첫 만남의 오후는 그렇게 살갑게 지나가고 있었다. 이른 저녁 식사가 끝나자 역시 바다가 훤히 보이는 카페로 자리를 옮겨 정지훈은 공연과 앞으로의 계획을 간단히 설명하고 피춘자 시인의 동의를 구했다. 참 예의바르며 때론 귀엽기도 하다고 생각들었다. 50이 넘은 남자를 보며 귀엽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할 수도 있겠지만 남여의 관계는그런 것이다. 만나고 호감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같은 마음으로 웃고 하다 보면 스스로도 모르게 드는 것이 정이고 사랑이다. 그 정도가 되기 전에 느끼는 상대의 감정 중 하나는 자꾸 이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몸짓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정지훈이 계속 춘자를 보며 묻고 동의를 구하여 다음 계획을 진행해 나가는 동안 춘자는 이 사람이 정말 작곡자가 맞고 가수가 맞으며 자기가 정말 그런 사람과 무대 공연계획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 맞는가 주변을 보고 그를 보고 손바닥을 문지르며 확인하였다.

 

"피춘자 시인님. 이제 피춘자 시인님과의 진행플랜은 구성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차례에 따라 실행하면 되는데 이제는 그 실행의 질을 최대한 끌어 올리는 노력이 남았습니다."

"그럼, 저는어떻게 하면 되요? 겁나요."

사실 그랬다. 그와 천삼분의 예측에따르면 60명 정도 참석한다고 하였지만, 더 줄어 들 수도있고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측한 60명보다 더 많은 청중들이 오면 어떻해요?"

춘자의 입술을 보고 있던 정지훈이 개면쩍은듯 미소지으며 말했다.

 

"많이 잡아서 60명정도이구요, 그 장소는 약 80-100명 정도 들어와 보고들을 수 있는 장소입니다. 광고를 하지 않아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요.그래서 60명 정도면 좀 허전할 수도 있겠지요."

"아. 100명 정도까지 들어 올 수가 있군요. 지금이라도 초대장이나 공연소식을 대전의 신문사들에 알리면 되잖아요."

정지훈이 춘자의 순진한 말에 웃었다.

 

"신문사들은 그런 기사를 그냥 실어주지는 않지요. 그리고 아직은 그렇게 광고할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피춘자 시인님이 좀 도와주시죠?"

춘자는 눈을 끄게 뜨고 정지훈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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