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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시인(女流詩人) 피춘자(疲春雌)-20

작성자제이서|작성시간23.10.01|조회수88 목록 댓글 0

 

 

 

 

 

 

 

 

​여류시인(女流詩人) 피춘자(疲春雌)-20

 

21.

 

12월 초의 날씨는 초겨울답게 쌀쌀하였다. 바람도 코트자락을 휘날리기에 충분하였다. 떨어져 허물어지고 있는 낙엽이 발에 밟히는 교정의 도보를 춘자는 걸었다. 초겨울의 스산함과 쓸쓸함을 느껴보고 싶었다. 덕다운이 충분히 들었지만 가벼운, 그러나 모자가 달리지 않은 짙은 커피색 점퍼를 입었다. 바지는 신축성이 좋은 검은색 면 스키너였으며 신발은 호주산 원피스가죽 업퍼로되었고 내츄럴 고무와 폴리우레탄이 합성되어 큐션이 좋고 접지성이 뛰어난 바닥으로 된 검은색 첼시부츠을 신었다. 왼손에는 11인치 랩탑 컴퓨터가 들어있는 작은 검은색 가죽 가방의 끈을 역시 검은색 장갑을 낀 손으로 꼭 잡고 천천히 걷고있었다. 어깨까지 출렁거리는 검은 머리칼은 바람에 보기좋게 날리고 있었다. 겨울에 잘 어울리는 풍경화속 여인같은 모습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선생님. 아름답습니다. 좋은날 보내세요."

"어머! 선생님. 아주 멋져요. 즐거운 토요일 보내세요."

그녀를 스쳐 지나가는 남학생들이 인사하였다. 그녀를 지나 앞서 걸어가며 여학생들이 인사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녀가 누군지 알지 못하였다. 묻지도 않았다. 짐작은 얼마든지 해도 되니까. 아마도 오늘 특강을 들어려고 가는 중년여인? 아니면 여류시인? 아니면 특별 참관인? 밖으로 표현되지 않은 내성추측의 오판은 죄가되지 않는다. 적어도 이 켐퍼스 안에서는. 스산했던 마음을 학생들이 풀어주었다. 주저없는 자기 표현. 때론 과할 때도 있지만,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더 좋은 것 아닌가. 그래서 그들 젊음은 겨울에도 사시사철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피춘자 시인이 정해진 강당에 도착하자 인사하는 아는 사람이 있었다.

 

"선생님. 피춘자 시인님!"

조수연 기자였다.

 

"어머. 조 기자. 여긴 어쩐일이예요?"

"놀라셨죠? 선생님이 이연 교수님 강의에 사랑시 낭송으로 참여하신다 기에 달려왔어요. 잘했죠?"

"ㅎㅎㅎ 잘했어요. 반가워요."

"제가 오늘은 카메라도 준비해 왔어요. 선생님 사진을 좀 사용하려고요. 아~ 그리고 선생님. 오늘 낭송하실 시 저에게 미리 좀 주시면 안돼요?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보내고 받을 수 있어요. 기사 작성하게요."

"그래요. 어디에 사용하려고? 말해주면 안돼요?"

"비밀이지만, 선생님 사진과 시들이니 말하고 사용 승인을 받아야 돼요. Rtv 광고에 나갈거예요. 나준석씨 하고는 합의했어요."

"좋은 곳에 사용하는데 저는 문제없는데... 합의까지. 조 기자는 말도 잘해요."

춘자는 손목의 시계를 봤다. 15분의 여유가 있었다. 휴게실의 조그만 탁자에 랩탑을 올려놓고 부팅을 시작하였다. 대학내에서는 와이파이를 사용 할 수가 있어서 인터넷은 문제가 없었다. 앞에 앉아 춘자의 손 놀림을 유심히 보고 있던 조수연 기자가 결국 입을 열었다.

 

"어머. 선생님 손가락이 통통해서 참 귀엽게 생겼어요."

"솔직히 보기가 흉하죠? 타고난 대로인데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험한 일을 많이 해서 손을 다듬지 못했어요. 그럴 생각도 없었고요."

"아니예요. 선생님. 얼마나 귀한 손인데요. 그 손가락을 보노라면 정이 더욱 가져요. 꾸미지 않은 엄마의 손이잖아요. 선생님은 그래서 참 좋아요."

춘자는 인자한 눈길로 조수연을 봤다. 조수연의 눈가에 이슬이 맺혀있음을 보았다. 뭔가 슬픈 사연이 있는 아이로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조 기자. 이제 확인해 봐요. 알려준 이메일로 보냈어요."

그 때 찬바람이 느껴지며 인기척이 옆에서 났다. 휴게실에는 많은 학생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찬바람이 느껴지는 것은 밖에서 방금 들어온 사람에게서 이다.

 

"여기들 계셨군요. 일찍오셨네요. 피춘자 시인님 안녕하시지요?"

이연 교수였다. 그녀는 두 사람의 사이에 앉았다.

 

"아. 이연 교수님. 반갑습니다. 이 분은 조수연 ‘월간미래 잡지사’ 기자예요."

춘자가 먼저 소개를 하였다. 그건 잘한거다. 두 사람을 다 편하게 하였다. 조수연이 일어나며 인사를 하였다.

 

"서울 제중대학의 문예창작과 이연 교수님. 만나 뵙게되어 영광입니다."

"기자분께서도 저의 강의 들으시려고 오신거예요?"

이연 교수의 말 실수 일 수가 있다. 듣고 생각하기에 따라 다양한 오해를 낳을 수 있는 말이었다.

 

"아니예요. 피춘자 시인님이 시낭송을 하셔서 기사작성과 사진이 좀 필요해서 온거예요."

그 봐라. 금방 말의 실수에 대한 반발이 생성되잖은가. 평소 우호적인 사람 대함과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말은 우호적으로 생성되어 대화화 되는것이다. 이렇게 되면 서로 조금씩 적대적이 되고 좋을 것 한개도 없다.춘자가 재빨리 눈치를 채고 충돌을 완화하였다.

 

"예. 조수연 기자는 제가 연락했어요. 이연 교수님의 ‘중년의 사랑’ 에 대한 꼭 들어 봐야 할 강의이니 와서 듣고 기사화 할 수 있다면 해도 되지 않겠냐고. 저도 시낭송으로 참여한다고 했어요. 괜찮지요?"

이연 교수가 그제서야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득였다.

 

"그럼요. 잘하셨네요. 피 시인님께서는 강당 앞 쪽에 준비실이 있으니 그곳에서 다시 보기로 해요. 저는가봐야 할 시간입니다. 그럼 이따가 뵈요."

그녀가 떠나자 조수연이 기다렸다는듯 말을 했다.

 

"저 교수님. 너무 거만한 것 같아요. 콧대가 높으신 분 같아서 가까이 하기 싫어요."

"엉. 그러면 안돼요. 바쁘시고 경황이 없어서 자상할 여유가 없을거예요. 그렇게 이해하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요."

"아하하- 선생님은너무 좋아요. 그런 유머까지 저에게 스스럼없이 해 주시니 저는 얼마나 맘 편한지 모르겠어요. 예! 선생님. 다음 페이지는요, 제가 선생님 시 3편을 편집하는 일이예요. 제 생각에는 3편 다 이용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러나 한편은 확실히 알릴거예요."

"조 기자님. 너무 의욕대로 다 할 생각보다는 요. 보고 읽을 시청자 입장에서 하시면 좋겠네요. 제 시에 너무 구애받지 마시고."

“선생님. 이 시가 저는 참 좋아요. 뭔가가 마음을 감상적이게 하고 비오는 새벽의 우수와 낭만을 느끼게도 하거든요. 저는 요, 이 시를 쓰신 선생님은 그 때 어떤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하며 시인의 마음과 같아지려 애쓰게 되어요. 두고 두고 읽고 싶은 시이예요. 선생님 최고닷!!!”

“ㅎㅎㅎ 조 기자님. 그렇게 띄우시면 제가 가만 있지 못하죠. 뭐 먹고 싶은 것 있어요?”

“예. 있어요. 나중에 시간나면 순대 사주세요. 선생님하고 같이 먹어러 가요. 약속해 주세요.”

“음. 그래요. 나도 순대 좋아해요. 그때 이왕이면 나준석씨도 같이하면 어때요?”

“네. 좋아요. 선생님.”

 

조수연이 좋아하는 시는 아래와 같다.

 

 

시, 비에젖다

 

비는 소리로 부터 시작된다.

깊은밤이 새벽으로 일어나는 시간

아직, 세상은 깊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고요와 적막을 깨기에는 충분한 작은 빗방울들이

바닥을 때리며 나를 열게한다

 

귀에 와 닿는 것들은

순한 눈물이 되어 생각에 고인다.

비의 마음을 알 것도 같고...

 

눈에 와 닿는 것들은

아련한 추억으로 가슴에 심은 눈물꽃을 적신다

비의 마음을 알 것도 같고...

 

내가 아는 만큼

비도 나를 알아줄 거라는 생각에

고이는 눈물 한 줄기, 참 따뜻하다.

 

새벽잠 소리없이 흔드는 빗방울을

어두움에 뿌려지는 빗방울을

두 손바닥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나는 혼자서 말을 하기 시작한다

 

오늘 같은 새벽,

그 말들은 나의 시가 된다

지금 나와 같은

그 누군가가 읽을지도 모를...

 

 

다시 읽으며 곰곰히 생각해 봐도 참 잘 된 시였다. 누구나 읽고 느낄 수 있는 세대없는 멀티세대의 시였다.

 

피춘자 시인은 조수연 기자와 함께 자리를 뜨며 서로 엄지를 치켜올려 파이팅하였다. 그녀가 강당의 앞이 아닌 옆 쪽의 준비실로 들어서니 이연 교수가 막 옷을 바꿔입고 있었다.

 

“와아~ 교수님. 아주 멋져보이는데요. 아름다워요. 교수님 이상 모습이예요.”

“예. 고마워요. 어서 준비하세요. 그리고 저와같이 강당에 올라가면 뒤에 의자가 있어요. 그곳에 계시다가 저가 피춘자 시인님의 직접 낭송하시는 시를 감상해 보겠습니다. 하면 일어나셔서 저와 자리를 바꾸시면 되요. 잘 하시겠지요?”

“예. 교수님의 강연에 득이 되도록 노력할께요.”

 

 

이연 교수의 ‘중년의 사랑과 시’ 에 대한 강연은 참석한 많은 학생들과 시인들과 문예인 그리고 강연소식을 듣고 찾아 온 많은 중년 여성들에게 공감을 주었다. 대부분의 참석 청중들은 여성이었다. 아마도 한 20%도 되지 않을 남성들도 신중히 듣고 있었다. 강연 중간 중간 그들끼리 소근거리거나 자리를 뜨거나 움직이는 어수선함도 함께했다. 이연 교수는 53세였다. 그러나 스스로를 잘 가꾸고 보살펴 실제 나이보다 4-5살 젊게 보였다. 겨울이 시작된 때 였지만 붉은색 원피스는 색정적이었다. 탁자를 벗어나 움직일 때마다 몸의 윤곽이 드러나 리드미컬하게 같이 움직였다.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년의 사랑에 불붙이는 촉매같았다. 젊은 학생들을 위한 사랑이야기가 아쉽게 중년으로 넘어가자 탄성이 터져 나오기도하였다. 그만큼 몰두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그때 검은색가죽 부츠를 신고 검은색 스키니바지 위에 흰색 실크 브라우스 그리고 짙은 회색에 챠이나 스타일 칼라(?)를가진 얇은 덕다운 점퍼를 입은 피춘자 시인이 강단에 올라섰다.

 

"저의 강연 '중년의사랑과 시' 에 첨가하여 사랑시를 낭송해 주실 시인 피춘자 님을 소개합니다."

이연 교수가 말하며 강연탁자에서 뒤로 물러나 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감동을 가득 주신 이연 교수 님께서 소개한 시인 피춘자입니다."

인사를 마친 춘자는 고개를 들어 앞을 봤다. 웅성거리는소리와 움직임등으로 산만하였다. 먼저 분위기가 계속된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조용해졌다.

관중들은 환상적인 피춘자 시인의 모습에 놀랐다. 특별하게 요란스럽게 꾸미지 않았지만, 그로인하여 밖으로 비춰지는 자연스러운 모습은 솔직히 이연 교수와 비교하게 되었다. 잔상이 오버랩되며 그 역시 자연스럽게 비교되면서 침묵하게 된 것이다. 중년의 아름다움은 있는대로 잘 보이게 하면 꾸밈으로 된 그것과 비교할수가 없는 잘 익은 아름다움과 농익은 여인의 매력이 살아 피어 오르는 것이다. 그 속에 피춘자 시인이있었다. 그녀는 무선 마이크를 왼손에 잡고 조금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뒷 편 천장을 보았다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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