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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하여-10]

작성자제이서|작성시간24.03.13|조회수95 목록 댓글 0

 

 

 

 

 

 

 

 

사랑을 위하여-10@

 

은희가 놀라서 자꾸 물었다.

“엄마! 왜 그래요. 어디가 아파? 갑자기 왜 그래요.?”

은희는 알 턱이 없었다.

 

“은희야~ 내일 내가 너 내 병원으로 좀 가봐야겠다. 내가 아는 사람 같아서.”

“응. 그래요. 이틀 동안은 입원할 거니까 와서 만날 수 있어요.”

미정은 거실 책장 속에 둔 포도주를 꺼내 마셨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려고 하였지만, 가슴은 더 뛰었고 정신은 혼란스러웠다. 그와는 두 번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스쳐서 지나갔다. 이제 그를 만날 기회가 제대로 온 것이다. 어떻게 그를 만나 무엇을 먼저 이야기하여야 할지 반가움과 원망이 엉켜 소용돌이치며 가슴을 두드렸다. 이 밤. 그녀는 잠 못 이룰 것이라 생각 들었다. 그러나 수면 부족으로 초췌해진 얼굴로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그는 그녀의 첫사랑이었다. 중년이 되어 그제서야 만난… 정확히 중년에 만난 첫사랑이었다. 읽는 독자들은 믿기 싫을 것이다.

 

체이스는 눈을 떴다. 우측 유리창이 있는 면을 제외하고는 천정과 삼면이 하얗게 칠해진 병실이었다. 옆에 누운 환자의 신음 소리에 깨어난 것이다. 유리창 밖에는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병원에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고향에 가고 싶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누워있는 아버님을 뵙고 싶었다. 밤새 무릎의 부었던 부분이 가라앉고 통증이 없어졌으며 안정되었다. 겨웃은 원래 이렇다. 그는 이 증상을 잘 알고 있었다. 퓨린 수치도 정상으로 떨어졌음을 감지하였지만, 좀 무리한 것이 원인이리라. 다행히 병원에서 진통제가 가미된 약을 주사했기에 예상보다 빨리 안정된 것이다. 그는 새벽에 병원을 나왔다. 그는 대기실에 비치된 생수를 받아 인터아로크레린 두 알을 삼켰다. 하루 두 번 때를 놓치지 않는다면 다시는 재발하지는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10월 마지막 때의 새벽 거리는 스산하였다. 가로수 잎이 옅은 바람에도 구르고 있었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 택시 승강장에서 일찍 손님을 기다리며 늘어선 택시를 탔다. 그리고 대구행 고속버스를 탔다. 대구를 거쳐 포항을 지나 죽변에 닿을 수 있는 길로 가는 거다.

 

 

 

*****

현주는 소설책 ‘블루웜’을 들고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책상 위의 다른 시집 ‘조미정의 사랑시집, 바람 같은 사랑’을 뚫어지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봐왔던 몇 년 전의 여름 일이 지워지지가 않았다. 그때 그 두 사람의 현재가 궁금하였다. 우연히 구입한 책이 그들이 펴낸 책이었다. 이것도 어떤 운명적 만남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그때의 인연이 그냥 흘러가지 않고 뭔가를 위한 것으로. 그녀는 뭔가 번개같이 떠오르는 생각에 다이얼 버턴을 눌렀다.

 

“성태 씨? 나야. 지금 당장 집으로 와줘. 이유는 묻지 말고. 알았지?”

그녀는 성태가 들어서자 키스를 하며 그를 쇼파로 이끌었다.

 

“성태 씨. 3년 전 우리 토말에 갔을 때 한 사건에 말려들었던 것 기억하지?”

“응. 기억하지. 당신이 결정적 역할을 하여 무고하게 유치장에 있던 사람을 석방시켰잖아.”

“맞아. 역시 성태 씨는 믿을만해.”

“어허~ 무슨 요구를 하려고 이렇게 태우 시나.”

“성태 씨. 아니야. 나. 느낀 그대로 말하였어. 그런데…당신은 지금부터 조미정 시인을 찾아. 나는 체이스 소설가를 찾을 테니까.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 나 요즘, 뭔가 건수를 만들어야 해. 아니면 잘린 단 말이야. 도와줘. 성태 씨~”

“결국 그 부탁이었구나. 당신이 잘리면 우리 결혼 경제에 차질이 생기는데 내가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해야지.”

“성태 씨의 그런 심플함이 나를 감동 멕인 단 말이야. 부탁해요. 사랑하는 성태 씨.”

“어휴~ 간지러워.”

 

 

 

*****

미정은 그 밤을 뒤척이며 보냈다. 생각과는 달리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티비 드라마에서 봤던 첫사랑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전이되어 치명적인 아픔으로 가슴을 파고들었다.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미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창문을 열었다. 여명 속에서 불어오는 시월의 새벽바람은 맑고 차거웠다. 아직도 새벽이었다. 지금 시간은 그렇게 미정에게는 더디게 흐르고 있었다. 늘 빨리 가는 세월을 세워두지 못해 안달하였었는데… 휴대폰에 셋업 해 둔 7시 30분 멜로디가 흘러나오자 그녀는 조급해지기 시작하였다. 사실, 예정한 시간은 충분하였었다. 미정은 샤워를 하고 거울 앞에 앉았다. 그녀의 얼굴은 밤새 몇 번이나 울어서 눈이 조금 부어있었다. 그러나 아직 아름다움은 여전히 남아있어 오히려 청초한 모습을 만들었다. 미정은 고속도로에 오르자 속력을 냈다. 대전으로 가는 차선은 다행히도 상행선보다는 한가하였다.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나를 잘 간수해야지. 그는 그렇게 뇌이며 과속하지 않으며 질주하였다. 안산에 살기 전에 미정은 대전이 고향이었다. 그녀의 차는 미끄러지듯 거침없이 달려 출발한 지 2시간 만에 하기 종합병원 주차장에 닿았다. 전화를 받고 병원 라비에서 기다리던 은희는 진홍색 쏘나타가 주차장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유리 회전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엄마.”

그 부름은 훌륭한 고유명사가 되었다. 지금 다른 어떤 단어보다 적절하였다. 미정이 시동을 꺼고 문을 열고 나가 달려오는 은희를 안았다. 은희는 키가 컸다. 허리를 숙여 쓰러지려는 어머니를 안았다.

 

“엄마.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그 사람과 어떤 관계이길래 어머니가 이렇게 혼절해서 쓰러지려 하느냐 말이에요? 엄마. 정신 차려요.”

미정은 극도로 긴장되어 있었다. 그러다 차에서 내리자 곧 어지러움을 느꼈다. 밝고 화사한 햇빛 탓도 있으리라.

 

“아~ 은희야. 엄마는 괜찮아. 일찍 운전을 했더니 좀 어지러워서 그래. 괜찮아.”

부축한 은희에 기대자 이내 정신을 차렸다. 은희에게 나약한 모습과 아직은 눈치를 채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미정을 바로 걷게 하였다.

은희는 어머니를 부축하여 정문에 나 있는 계단을 피하고 우회하는 휠체어로를 택해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출입문은 일찍 서두른 방문객들로 어수선하였다. 양쪽에 2개씩 있는 엘리베이터 앞에는 방문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은희야~ 지금 너 바쁜 시간 아니니? 늘 아침마다 회진한다며…”

“응. 엄마. 지금 나는 들어가 봐야 해. 괜찮으면 엄마 혼자서 찾아갈 수 있겠어?”

“응. 그럼. 나 혼자 찾아갈 수가 있지. 그건 이 엄마 걱정해 주는 것 아니다. 어서 사무실로 가봐. 은희야~”

“그래요. 그럼. 305호실이니 가서 보고 문제가 있으면 나에게 즉시 전화하세요. 바로 달려갈 거니까. 아셨죠? 엄마!”

은희가 이층에 내려서는 돌아서서 미소를 지었다. 미정이 그 미소에 답하였다. 3층은 아직 그렇게 바쁘지는 않아 보였다. 복도는 좌우로 길었다. 좌측 두 병실 건너 데스크가 있었다. 넓은 사각 모퉁이의 3분 2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캐비닛의 벽을 등지고 코너로 모니터가 여럿 있었고 그 앞에는 직원들이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바로 우측 컴퓨터 모니터 앞에 접수라고 써 여진 청색 아크릴 팻말이 있었다. 앳된 여직원이 전화를 받고 있었다. 전화를 마치자 그녀는 일어나며 미정을 보고 물었다.

 

“안녕하세요. 뭘 도와드릴까요?”

“안녕하세요. 305호실 환자를 방문 왔는데, 지금 만나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좌측 코너를 돌아가면 바로 있어요. 중환자실 외에는 방문을 제한하지 않고 있어요.”

그녀는 환자와의 관계 등은 묻지 않았다. 방문객의 차림새와 성별 등이 조금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리라. 미정은 그렇게 생각하며 화장실에서 거울을 한번 보고 갈까 하였으나 포기하고 가르쳐 준 305호실을 찾아갔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떨렸다. 그러나 많은 생각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본능에 맡기기로 하였다. 그 본능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마음을 나타낼 것이고 미정은 그 본능을 믿었다. 체이스를 사랑하는 지금의 마음과 그리움이 그대로 여과 없이 나타나도 좋다고 다짐하였다.

문은 조금 열려있었다. 미정은 가볍게 노크를 하였다. 안에서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소리 나지 않게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녀는 더 이상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얼어붙듯 섰다.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은 남자가 아니었다. 체이스가 아니었다. 미정은 병실 번호를 잘못 보았나 하여 한걸음 뒤로 물러나 출입문 위쪽에 붙은 병실 번호를 봤다. 305호 맞았다. 다시 한 발을 병실 안으로 내딛고 몸을 앞으로 하여 침상을 봤다. 40대쯤 되어 보이는 여성 환자였다. 그녀는 기대에 배반하는 장면에 망연자실하여 쓰러지려는 몸을 벽에 기대었다. 누워있는 환자가 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죄송합니다. 병실을 잘못 알고 온 것 같아요. 어서 건강하세요.”

미정은 얼른 몸을 추스르고 돌아 나왔다. 다시 접수대 앞에 섯다.

 

“305호에 계시던 환자분은 남자가 아니었나요?”

여직원은 컴퓨터 모니터를 확인했다.

 

“맞아요. 좀 전까지는 남자분이었어요. 그분은 아침 일찍 퇴원하셨어요. 뭐가 잘못되었나요?”

의아한 눈으로 미정을 봤다. 미정은 좀 혼란스러웠다,.

 

“그 환자분 성함을 알려 줄 수 있겠어요? 부탁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분 같아서요.”

접수원은 말없이 미정을 빤히 쳐다봤다. 그럴 만도 하겠지. 문병 온 사람이 환자 이름을 오히려 물어보다니. 미정은 그렇게 지레 짐작하며 어색하게 그 얼굴을 바라다보았다. 같은 여자지만, 미정을 보고는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접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의미는 알 수 없었다.

 

“좀 특이하네요. 캐나다 국적의 체이스 리이에요. 더 알고 싶은 것 있으세요?”

미정은 큰 충격을 가슴에 받았다. 맞았다. 그가 맞았다. 접수원이 다시 미정을 올려다보자 미정은 고맙다고 말하고는 얼른 그곳을 벗어났다. 당황한 얼굴을 보이기 싫었다. 혹 은희라도 만날까 염려도 되었다.

병원 계단을 내려가며 미정은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하고 뭔가 자꾸만 어긋나게 하는 것이 있음을 느꼈다. 왜일까? 잠시만 기다려주어도 우린 다시 만났을 텐데. 그녀는 주차장 옆 공원의 벤치에 앉았다. 우선 마음을 안정시키고 뭔가 결정을 하여야 했다. 의사와 간호원들이 오전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삼삼오오 벤치에 앉아있는 플라타너스가 늘어선 우측 공원은 피했다. 그녀가 앉은 벤치가 있는 곳은 그쪽 공원의 벤치들과는 대각선으로 늘어선 숲이 우거진 산책로가 막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사랑하고 있으며 꿈에도 잊지 못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다. 아니 틀림없이 그였다. 그것에 대하여는 어떤 의심의 여지도 없었다. 그가 맞다면, 이미 그녀는 서울에서 두 번이나 그를 지나쳤다. 지척에 그를 두고. 왜, 그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렁 그렁하던 눈물이 기어코 뺨을 타고 내렸다. 미정은 눈물을 닦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한없이 울고 싶었다. 마음같이 흐르는 인연은 그렇게 생각대로 멈춰주지 않았다. 허긴, 그것이 세상 사고 그것이 운명일진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모든 것이 제대로 잘 되었다. 그러나 뒤돌아 보니 그것들은 작은 것들이었다. 이렇게 큰 것을 어긋나게 하기 위하여 작은 것들을 순조롭게 가게 한 것이다. 이제 그 작은 것들에 대하여 웃고 기뻐하던 것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다. 그것들은 이 큰 것을 위하여 모두 뭉쳐 숨이 막히게 하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이 아프게 하고 있었다. 미정은 스스로 각오를 다졌다. ‘가자. 온몸이 터져 찢어지더라도 가자. 만나서 얼굴만이라도 다시 보자’ 미정은 눈물을 닦았다. 그렇게 작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지금 출발하면 오후 2시 전에는 도착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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