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면 좋을까
- 허정옥 제주장수복지연구원장/논설위원
1923년 3월 22일생, 104세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미국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국으로 오시면서, 80세 어머니는 내 손을 부여잡고 다짐을 받으셨다. “요양원은 절대로 보내지 말아도라 이!”라며. 나는 정색을 하고서 손가락을 내걸었다. “걱정 마랑 나영 백설까지만 사십서 예!”라고. 어머니가 17년을 사셨던 볼티모어 아파트에서는, 어느 노인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요양원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리면, 얼마 있다가 부고장이 날아들었다. 어머니에게 요양원은 죽음을 바라보는 대기소였다.
그렇게 한국으로 들어오는 길에, 우리는 어머니의 미국 영주권을 재빨리 대사관에 주어버렸다.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온 마음이 자유로워졌다. 17년 만에 어머니를 맞이한 바다는, 갈매기의 날갯짓과 파도의 합창으로 귀향을 환영해 주었다. 50년을 제주 해녀로 살았던 어머니는, 물때가 되면 바다로 나가서 보말을 잡았다. 끼룩끼룩 모여들어 머리 위를 선회하는 갈매기들 속에서 슬픔도 이별도 빠르게 잊어갔다. 무엇보다 바다가 마당인 우리 집은, 아버지가 천국에서 내려주신 선물처럼 다정하고 포근했다.
92세부터 요양원의 주간보호센터에 입학한 어머니는, 아침 9시에 떠나서 오후 5시쯤 귀가하는 학생이 되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원생인 어머니를, 센터에서도 특별히 배려해 주었다. 아기 솜씨 같은 그림이나 글씨를 가져와서는, 선생님이 칭찬하신 거라며 탁자 위에 펼쳐놓았다. 어린 시절 야학에서 한글을 깨우친 게 전부인 얼굴에, 배움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감이 넘쳐흘렀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98세가 되실 즈음, 주간보호에서는 ‘더 이상 어머니를 돌봐줄 수 없다’ 하였다. 돌봄에 손이 너무 많이 가니까 요양원으로 들어갈 때가 되었단 얘기다.
때마침 직장을 은퇴한 나에게, 어머니는 요양보호사 직업을 안겨주었다. 뜻밖의 선물처럼 행복한 시간이 펼쳐졌다. 어머니와 노는 게 일이었다. 그간에 대퇴부 골절로 대수술을 거치고, 폐렴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 또한 넘겼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느덧 나도 정부가 규정한 노인이 되었다. 소위 노노케어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따금 ‘오래 살면 좋을까?’라는 의구심이 슬그머니 솟구치기도 한다.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은 나를 두고 하는 소리다.
올해 들어 107세를 사시는 김형석 교수님께서는 ‘백 년을 살아보니’라는 저서에서 어느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하신다. 설문자가 ‘오래 살고 싶으냐’라고 물었더니 모두가 ‘그렇다’고들 대답하였다. 그러면 ‘90세가 넘도록 살고 싶으냐’ 되묻자 18%만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90세가 넘은 노인들의 실상을 본 사람들이, 오래 살고 싶기는 해도 그 노인들처럼 될까 봐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나 자신이 행복하게 그리고 이웃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 때까지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해야 할 것 같다’라는 게 결론이다.
이제는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가 방안의 이동 변기에 조차 스스로 앉지를 못하신다.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고통을 겪어야 하고 이웃에게까지 부담과 어려움을 끼치면서 오래 산다는 것은 지혜로운 생각이 아니다’라고 하신 교수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쩌면 우리 어머니의 마음도 그렇지 않으실까? 돌아가실 즈음에 이미 작은 무덤처럼 당신의 방구석에 웅크리고 사시던 왕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죽음의 그림자조차 미안하신 제주도 어머니들의 뼈아픈 생애여! 이제는 설문대 할망 덕분에 제주도가 창조되었음을 생각하시고, 다리 쭈욱 뻗으셔서 편안하게 사시기를 기원한다.
출처 : 제주일보(http://www.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