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Harriet》

작성자미션|작성시간23.04.07|조회수84 목록 댓글 0

《Harriet

  •  


ㆍ감독: 카시 레몬즈
ㆍ출연: 신시아 에리보, 자넬 모네, 레슬리 오덤 주니어

영화 '해리엇'은 실존인물 해리엇 텁먼(Harriet Tubman, 1822~1913)의 이야기, 그리고 그녀가 작성한 기록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영화의 배경시기와 장소는 1849년 Bucktown, Dorchester County, Maryland이다.


아래는 먼길을 떠날 해리엇에게 그린 목사가 해주는 기도인데, 해리엇이 혼자 어떤 여정을 보내게 될 지 기도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Fear is your enemy. Trust in God. The North Star will guide you. Follow that North Star. If there are no stars, just follow the river. If you can’t see a river, listen for it. When the river split, Cross the high bridge over the rushing creek and head straight north. After a few days’ time, Delaware river be on your right. Follow that to Wilmington. Look for a blacksmith and iron merchant named Thomas Garrett. I’ll send him word. May God be with you, child.(두려움이 너의 적이다. 신을 믿거라. 북극성이 널 이끌어 줄거다. 그 북극성을 따라서 가라. 별이 보이지 않으면, 강을 따라가라. 강이 보이지 않으면 그 소리를 찾아서 가라. 강이 갈라질 때, 물살이 거친 곳에 놓인 다리를 건너고 북쪽으로 가라. 며칠의 시간이 지나면, 델라웨어 강이 오른쪽에 보일 것이다. 강을 따라 윌밍턴을 향해 가라. 그곳에서 대장장이, 철 상인 토마스 가렛을 찾아라. 그에게 연통을 넣어두겠다. 신이 너와 함께 하기를)."
ㅡ Reverend Samuel Green, a secretly-abolitionist freedman

Video Player

 


벅타운에서 윌밍턴까지는 포장된 길로 106마일(170km)의 먼 거리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해리엇은 주인이 자신을 다른 곳으로 팔아버리려 하자 갑작스럽게 떠나게 된 여정이다.

여분의 옷도, 마실 물도, 먹을 음식도, 편한 신발도 없는 채로 몸 뉘일 곳도 없어 흙에 누워 눈을 붙여야 하는 그런 여정이다. 그것도 혼자.

영화에서 이 부분은 극히 짧은 러닝타임을 차지하지만, 그 여정이 지극히 고되었음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대장간에서 혹시 그린 목사를 알고 있느냐는 해리엇의 질문에 토마스가 긍정의 제스쳐를 보이자 "이제 정말 도착했구나" 하는 안도감에 정신을 놓아버리는 것으로 얼마나 고된 여정이었는가가 느껴진다.

윌밍턴에서 만난 백인 대장장이 토마스 가렛이 해리엇을 자유주(free state)인 펜실베니아(Pennsylvenia)로 이끈다.

“경계선을 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전과 똑같은 나인가 확인하기 위해 내 손을 쳐다보았다. 그 모든 것이 그렇게 찬란해 보일 수가 없었다.”

Video Player

 

자유의 빛을 마주하는 해리엇. 살짝 올라간 오른쪽 광대가 해리엇이 환히 웃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전히 25마일(40km)을 더 하염없이 걸어가야 한다.

토마스의 말에 따라 해리엇은 펜실베니아 노예제도반대 협회(Pennsylvania Anti-Slavery Society, Philadelphia, Pennsylvania)의 윌리엄 스틸(William Still)을 찾아간다.

​가족들과 남편을 벅타운에 남겨둔 채로 필라델피아에서 지낸지 1년, 그러나 해리엇은 자신의 자유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그들을 그리워하듯 자신을 그리워할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남부행을 결심한다.

​그런데 윌리엄 스틸은 무모한 짓이라며 반대한다.

Video Player

 

"내가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마!"

Video Player

 

"난 혼자서 여기까지 왔다고."

Video Player

 

"신께서 지켜보고 계셨지만, 난 혼자였어."

Video Player

 

"뛰고, 피 흘리고, 산을 오르고, 물에 빠져 거의 죽을 뻔 했고, 당연히 몇날 며칠을 먹지도 못했지."

Video Player

 

"그래도 난 해냈어."

Video Player

 

"그러니까 감히 내가 뭘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마."

북부로 가는 흑인 노예는 있어도 남부로 가는 흑인 노예는 없고, 백인들은 자신들과 다른 인종의 얼굴을 분간할 수 있는 충분한 시력을 지니지 못했기에 해리엇은 벅타운에 무사히 도착한다.

​하지만 그리워하던 남편은 재혼한 상태였다. 해리엇이 익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한 재혼인데, 나중에야 해리엇이 살아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고 한다.

​아무튼 친척들 대여섯명을 데리고 필라델피아로 복귀하고, 그 모습을 본 윌리엄 스틸은 입이 떡 벌어진다.

​그렇게 해리엇은 노예탈출 비밀조직인 'The Underground Railroad'의 조직원이 된다. 최전방에서 노예들을 찾아서 탈출시키는 '수행자(Conductor)'가 해리엇의 임무였다.

이 조직을 모티브로 하여 콜슨 언더그라운드가 지은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라는 소설도 있다. 아래는 소설 속 문장들이다.

"백인 주인들은 침묵했다. 포기한 것처럼, 혹은 진정한 자유라는 충만함을 더욱 고통스럽게 부각시키는 그 작은 자유가 무엇보다 가장 심한 벌이라고 생각한 것처럼."

"영원한 속박 속에서 당신은 아주 찰나에만 인간일 뿐임을 상기시켜 주는 것들이었다."

"그녀의 수치심은 사람들에게 어떤 음식도 줄 수 없는 포만감을 주었다."

"너무 빨리 달려 어지러웠다. 불가능한 속도였다. 아무도 부르는 이가 없었지만 그들의 두려움이 뒤에서 그들을 불러댔다."

"자유인 신분이 된 흑인들이 제 주인들을 피해 달아났듯이, 백인들 역시 그들 주인의 폭정을 피해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이 땅에 왔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이상은 다른 이들의 이상을 부정했다."

"코라는 산들바람이 상쾌했는데 곧 뭔가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워졌다."

해리엇의 활동은 수월하게 진행되는듯 했지만 '도망 노예법(The Fugitive Slaves Act)'이 발효되며, 본인 역시 도망 노예인 해리엇도 몸을 숨겨야 했다.

그렇게 또다시 북쪽으로, 뉴욕을 지나 캐나다 국경까지, 그리고 캐나다로 피신하게 된다.

도망 노예법은 도망친 노예에 현상금을 걸고 자유주, 노예주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체포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그들의 도망을 도운 사람들에게는 벌금(500달러)을 물리는 법(1793)으로 영화 배경 시점인 1850년에는 강화된 개정안이 통과되었는데, 내용으로는 재판권리 박탈, 벌금 1000달러에 6개월 징역까지 부과되는 무거운 벌이었다.

​해리엇은 10여년 동안 최소 70명에서 최대 300명의 노예에게 자유의 길을 안내한다.

1861년에 북부 연합군(the Union Army)과 남부연맹(the Confederate States of America) 간의 '미국 남북전쟁(The Cilvil War)이 발발한다.

미국 남북전쟁은 단지 노예제도에 대한 주의 권리뿐만 아니라 서부 개척의 문제 등 여러 영역에 걸친 남부 주들과 북부 주들의 의견 차이에서 시작했다.

​1860년에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수개월 후에 남부 주들(South Carolina, Mississippi, Florida, Alabama, Georgia, Louisiana, and Texas)이 독립을 주장하며 남부연맹(the 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을 형성한다.

​19세기 미국은 급격한 성장을 경험하는데, 북부와 남부는 사뭇 다른 원동력을 지닌다.

북(동)부는 오대호 주변의 러스트벨트(rust belt)를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듯이 제조업과 산업, 그리고 소규모의 농장이, 남(동)부는 담배나 목화를 재배하는 대규모 농장, 플렌테이션이 성장의 동력이었다.

즉, 남부는 인력, 그중에서도 흑인 노예 인력에 상당히 의존적이었던 것이다.

​서부개척(westward expansion)시 새로운 땅(선주민들이 있었지만 WASP들에게는 ‘새로운’ 땅)에 노예제도를 도입 할지 등의 문제에 관하여 북(동)부와 남(동)부 간의 갈등이 심해졌다.

아무튼 이런 남북전쟁 중에 해리엇은 전장을 떠나지 않고 취사병으로, 간호병으로 흑인 군대와 함께 남부연맹군에 맞서 싸웠다.

더 나아가 스파이로서 활약하는데, 남부연맹군의 보급로나 부대규모 등 전략적으로 유용한 정보를 수집하여 연합국 사령관에게 제공했다.

Video Player

 

Combahee River, South Carolina

Video Player

 

1863년 7월 1일, 흑인 군대를 이끌고 대규모로 쌀 농장(Combahee River, South Carolina)을 급습하여, 750여명의 노예를 해방시킨다.

그녀는 미국 역사상 군사작전을 계획하고 이끈 최초의 여성이다. 다음은 ​영화 '해리엇'의 마지막에 올라오는 글들이다.

Harriot Tubman was the nost famous conductor on the Underground Railroad, leading over 70 slaves to freedom.

During the Civil War, Harriot became a spy for the Union Army.

She led 150 black soldiers in the Combabee River Raid, freeing over 750 slaves.

Harriot remains one of the few women in U.S. history to lead an armed expedition.

She later remarried and dedicated her life to helping freed slaves, the elderly and Women’s Suffrage.

She died surrounded by loved ones on March 10, 1913, at approximately 91 years of age.

Her last words were, “I go to prepare a place for you.”


https://youtu.be/bcho-XaWsJ4

노예제도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흑인들을 노예로 부린 백인들의 최후팝콘&콜라 영화소개, 리뷰 유튜브 채널 | 인종차별 그리고 사람을 마치 가축처럼 소유하고 매매하던 시절. 태어날 때 부터 노예의 신분이였던 헤리엇. 그녀는 주인의 눈을 피해 그리고 자유를 향해 자신이 일하던 농장에서 도망치게 됩니다. 그렇게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그녀...www.youtube.com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