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달력을 넘기다가 설날에 시선이 멈춰졌다. 언제 끝날 지 기약이 없는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명절이 즐겁지 않은 지가 오래다. 물끄러미 보는 달력 위의 설날. 마음이 흐려졌다. 그런데 완X이 아들 결혼날 밤부터 마음은 눈 덮인 고향마을에 머무르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 밤 꿈속에서 나는 하얀 눈으로 덮힌 고향의 들판을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고향의 설경을, 눈 내리는 고향의 산과 들을 본 지가 까마득하다. 몇 년 전부터 겨울에 고향을 찾았고 그 때 마다 눈이 오기를, 눈 덮인 고향의 산하를 겨울나그네가 되어 걸어볼 수 있기를 얼마나 갈망했던가 ? 매번 기다림은 허무하게 끝났다. 눈은 커녕 추위 다운 추위도 거의 없었다. 기후가 변한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곤했다. 그렇지 얺고서야 어릴적 그렇게 많이 내리던 눈이 다 어디 가서 내린단 말인가 ? 고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왈칵 몰려왔다. 그래 가자. 어차피 설이 반갑진 않지만 설쇠러 고향에 가야 하는 게 아닌가 ? 지금의 컨디션이 잘 만 유지되어 준다면 3,4주정도 고향에서 지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오래 있다 보면 이번에는 고향의 설경을 누릴 수 있을 지 누가 알겠는가 ? 짐을 꾸렸다. 거의 한 달을 머무를 것이라 짐이 꽤 많았다. 외투와 바지, 등산화, 책 몇권, 카메라, 커피, 풍경사진카드와 우표, MD, 세면도구 일체, 복용약.... 커다란 여행가방이 가득찼다. 전쟁터에 나가느냐, 아프리카로 봉사하러 가느냐, 아내의 빈정거림은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행을 떠날 때 챙기는 짐이 아내는 너무 단촐하고 나는 너무나 과도한 게 늘 문제다. 사실 난 무엇을 할 때 준비과정이 너무 과도한 편이다. 심지어는 준비하느라 지쳐서 당초 목표로 했던 일은 손도 대보지 못할 때도 있다. 그래서 아내는 늘 빈정거린다. 그런 아내는 화장을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어쩌다 하는 것도 스킨과 로션을 조금 바르는 게 전부다. 젊었을 때는 백옥 같은 피부를 가진 자연미인으로 착각하는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 그게 아니라고 틈날 때 마다 충고를 하고 면박을 줘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젠 지쳐서 아내의 자연친화적인 단순한 생활을 그대로 봐준다. 왜냐고? 눈치를 봐야하는 삼식이니까. 하기야 세상에 100% 좋기만 한 것도 100% 나쁘기만 한 것도 없을 터이다. 그런데 아내는 여전히 나의 과도한 준비(특히, 짐 꾸리기)를 못 참아한다. 눈에 문제가 생겨 가지고 간 물건이나 소지품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빠트리고 오거나 잃어버려 가정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면서 어찌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느냐, 어찌 그리도 어리석으냐며 아내는 자주 속상해 한다. 60이 넘어섰는데 이 버릇 고쳐질 수 있을런 지 ? 그만 아내가 포기를 했으면 좋으련만............
드디어 1월 10일 청량리에서 15:30 안동행 기차를 탔다. 방학이라 그런지 승객이 꽤 많았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오늘 드디어 우아한 중년의 부인과 동석이라도 하는 횡재를 하는 건가? 기대감에서 지정된 자리로 접근하는 데 가슴속의 제비가 마구 날개짓을 해댄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수다쟁이 초딩과의 괴로운 동행. 외할아버지 제사라 엄마랑 이모와 함께 제천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 간다고 묻지도 않았는데 지 소개를 마친 녀석은 본격적으로 덤벼들기 시작했다. “어디 가세요 ?” “안동” “왜 가세요 ?” “그냥” “아저씨는 일 안하세요?” “응” “그럼 가족들은 뭐 먹고 사세요?” “밥먹고” “돈을 벌지 않는다면서요?” (햐 요런 명랑한 놈을 봤나. 차창 밖 풍경이나 보든가, 책을 읽든 가 할 일이지 요거조거 끊임없이 물어대니 은근히 화가 치민다.) “하루 두끼만 먹고 살지.” (빤히 쳐다보면서)”매일요?” “그래” “거짓말, 그럼 배가 고파서 못 살걸요.”....... 으이그. 아름다운 여인은 커녕 요런 거머리 같은 녀석을 만나 쩔쩔매고 있으니 아이구 이 기맥힐 일을 어찌해야 하나..... 달리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어 뇌물작전으로 돌입했다. 아내가 기차칸에서 먹으라고 싸준 오렌지 한개, 과일맛 사탕 3개를 줬더니 녀석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낼름 받아서 뒷자리의 지 엄마와 이모 먹으라고 건네준다. “야 너 참 효자구나. 니는 안 먹고 싶니?” “먹고싶은데 선생님이 그렇게 해야한대요.” (그러곤 쳐다 본다. 더 없어요?)” (햐, 뭐 요런 놈이 다있노. 요놈이 나를 봉으로 아나? 하지만 어쩌랴 애들 앞에서 먹는 거 가지고 째째하게 굴 수도 없고 “어저씨는 안먹고 니 주는거야. 니가 너무 착해보여서”(으이그 요놈아 내말 곧이 듣지 마라. ) 텀블러를 꺼내 커피를 마신다. 진한 갈색향이 코끝에서 맴돌고 온 몸으로 따뜻함이 전해진다. 곁눈질로 슬쩍 봤더니 오렌지 한 개를 게눈 감추듯 해치운 녀석은 사탕을 입에 물고 우물거리면서 그제서야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정신을 팔고 있다. (일단 뇌물작전은 성공한 거 같은데 이젠 실탄이 없는데 녀석이 원기를 차리고 2차 공격을 해오면 ? 묵비권을 행사하는 수 밖에) 빈틈을 주지 않으려고 책을 꺼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심심하고 무료한 듯 몸을 이리 틀고 저리 틀고 하면서 생난리다. 얼른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아버렸다. 제천역. 아이 일행이 내릴 채비를 한다. 녀석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한 마디 한다. “안녕히 가세요. 아저씨. 근데 다음에도 아저씨 옆자리에 앉았으면 좋겠어요.” (아이구 이늠아 나는 싫다. 바랄게 따로 있지 이늠아. 다음번에는 진짜로 아름다운 아줌마와 앉아 희희낙낙하면서 가고 싶다. 이늠아 꿈깨라) “그래 잘 가거라. 외할머니가 너무 좋아하시겠구나.” (아이 엄마가 웃으며 잘 가라고 인사를 한다)
안동역에 도착. 6:43 ! 이거 큰 일 났다. 6:50 막차를 타야하는데. 허겁지겁 기차역을 빠져나와 합승을 타러 냅다 뛰었다. 가방이 너무 무거워 갈수록 어깨는 처지고 가슴은 헐떡거린다. 뛰다 걷다를 반복. 정류장에 도착 6:51. 원림행 차가 안보인다.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인다. 이런 젠장 ! 죽도록 뛰어 왔는데 갔구나. 택시를 타야 하나? 적어도 8천원은 나올 텐데.... 이를 어쩌나. 안동역으로 도로 가서 3분 연착 한 거 격하게 따지고 택시비 내놓으라고 어거지를 부리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지만 점잖은 체면에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택시비가 아까워 동진이 한테 전화를 하나 어쩌나 망설이는데 버스가 한 대 들어온다. 34번! 만세 !!! 원림행 마지막 차다. 주머니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버스가 저희 편이요.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늘이 길을 여시나니. 6:50이 아니라 6:55이 막차란다. 이미 캄캄해져서 선바 모튀를 돌아 들어가니 동네마다 군데군데 가로등불빛이 추위에 아롱거린다. 늙으신 부모님과 김칫국, 씨레기 된장찌개, 곤짠지, 파짠지, 들깻잎짠지, 두부조림 으로 차려진 고향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식혜(안동식혜)까지 한 그릇을 해치웠다. 설거지를 깔끔하게 하고 나서 부모님과 생강차를 마셨다. 오래 만에 맛보는 고향의 맛. 고향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행복속에 깊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