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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24년 6월 13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좋기도 좋을시고 아기자기한지고!>

작성자용각산|작성시간24.06.13|조회수11 목록 댓글 1

2024년 6월 13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1독서

<엘리야가 기도하자, 하늘이 비를 내렸다(야고 5,18 참조).>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8,41-46
그 무렵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였다.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니, 이제는 올라가셔서 음식을 드십시오.”
42 아합이 음식을 들려고 올라가자, 엘리야도 카르멜 꼭대기에 올라가서,
땅으로 몸을 수그리고 얼굴을 양 무릎 사이에 묻었다.
43 엘리야는 자기 시종에게
“올라가서 바다 쪽을 살펴보아라.” 하고 일렀다.
시종이 올라가 살펴보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엘리야는 일곱 번을 그렇게 다녀오라고 일렀다.
44 일곱 번째가 되었을 때에 시종은
“바다에서 사람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이 올라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엘리야가 시종에게 일렀다. “아합에게 올라가서,
‘비가 와서 길이 막히기 전에 병거를 갖추어 내려가십시오.’ 하고 전하여라.”
45 그러는 동안 잠깐 사이에 하늘이 구름과 바람으로 캄캄해지더니,
큰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아합은 병거를 타고 이즈르엘로 갔다.
46 한편 엘리야는 주님의 손이 자기에게 내리자,
허리를 동여매고 아합을 앞질러 이즈르엘 어귀까지 뛰어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20ㄴ-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좋기도 좋을시고 아기자기한지고!

 

원선오 신부님께서는 한때 한국 살레시오회의 전설이셨는데, 이제는 아프리카의 살레시안들의 존경받는 큰 스승으로 자리매김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 한국에서 사목하실 때, 한국인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많은 성가들을 직접 작사작곡하셨습니다.

 

그중에 한 곡이 ‘좋기도 좋을시고’입니다. 좋기도 좋을시고 아기자기한지고, 형제들이 오순도순 한데 모여 사는 것. 지금도 형제들이나 가족 구성원들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교의 날이나 명절에 자주 부르곤 합니다.

 

한 공동체를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당시 그 공동체에는 이런저런 불미스러운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분위기가 무척 썰렁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성가 선창을 담당하는 형제가 공동체 미사 마침 성가로 ‘좋기도 좋을시고’를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찹찹하고 심각한데, 공동체 분위기가 전혀 전혀 아기자기하거나 오순도순하지 않은데, 그래서 얼굴이 다들 심각한 표정인데, 입으로는 좋기도 좋을시고,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너무나 어색하고 웃겼습니다.

 

외국 생활을 할 때 한동안 한 작은 수도 공동체 새벽 미사를 다녔습니다. 미사를 마치면 작은 방에 제 식사를 차려주셔서 식사를 하곤 했습니다.

 

제가 빵을 먹는 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식당에서는 미사를 마친 수도자들이 식사를 했는데, 뭐가 그리 꼬였는지, 매일같이 언성을 높여 다투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같은 광경이 반복되니, 여기 매일 오다가는 나까지 전염되겠다는 생각에 미사 나가는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거룩한 얼굴로 미사를 봉헌하던 사람들이 그렇게 목숨 걸고 다투니, 속으로 웃기도 많이 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하느님께 올리는 제사와 일상생활 속의 형제애는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형제적 사랑과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드리는 예물은 하느님께 합당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거금의 봉헌금을 하느님 대전에 바친다 할지라도 이웃과 불목하고 다투고 있다면 그 예물 봉헌 역시 합당하지 않습니다.

 

다투고, 수시로 불목하고, 끊임없이 서로를 헐뜯는데 혈안이 된 공동체는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데 합당한 공동체가 절대 아닙니다. 그들이 하느님께 올리는 제사는 울리는 징처럼 공허하고 무의미한 예식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느님을 향해 바치는 예배와 봉헌이 보다 가치 있고 합당한 것이 되기를 원한다면 필요한 노력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너무나 간단한 것입니다. 일상적으로 화해하는 것입니다. 매일 매 순간 마음을 비우는 일입니다. 또 다시 서로에게 기회를 주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백번이고 천 번이고 언제나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밥 먹듯이 이웃을 용서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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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해피 | 작성시간 24.06.13 화해와 용서 어렵습니다
    차츰 비워가면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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