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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스크랩] 2024년 9월 30일 월요일 ·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작성자용각산|작성시간24.09.30|조회수12 목록 댓글 1

제1독서
▥ 욥기의 말씀 1,6-22

 

6 하루는 하느님의 아들들이 모여 와 주님 앞에 섰다. 

사탄도 그들과 함께 왔다.
7 주님께서 사탄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디에서 오는 길이냐?”
사탄이 주님께 “땅을 여기저기 두루 돌아다니다가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8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와 같이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
9 이에 사탄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욥이 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하겠습니까?
10 당신께서 몸소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를 사방으로 울타리 쳐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의 손이 하는 일에 복을 내리셔서, 그의 재산이 땅 위에 넘쳐 나지 않습니까?
11 그렇지만 당신께서 손을 펴시어 그의 모든 소유를 쳐 보십시오.
그는 틀림없이 당신을 눈앞에서 저주할 것입니다.”
12 그러자 주님께서 사탄에게 이르셨다.
“좋다, 그의 모든 소유를 네 손에 넘긴다. 

다만 그에게는 손을 대지 마라.”
이에 사탄은 주님 앞에서 물러갔다.
13 하루는 욥의 아들딸들이 맏형 집에서 먹고 마시고 있었다.
14 그런데 심부름꾼 하나가 욥에게 와서 아뢰었다.
“소들은 밭을 갈고 암나귀들은 그 부근에서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15 그런데 스바인들이 들이닥쳐 그것들을 약탈하고 머슴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저 혼자만 살아남아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16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다른 이가 와서 아뢰었다.
“하느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 양 떼와 머슴들을 불살라 버렸습니다.
저 혼자만 살아남아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17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또 다른 이가 와서 아뢰었다.
“칼데아인들이 세 무리를 지어 낙타들을 덮쳐 약탈하고 머슴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저 혼자만 살아남아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18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또 다른 이가 와서 아뢰었다.
“나리의 아드님들과 따님들이 큰아드님 댁에서 먹고 마시고 있었습니다.
19 그런데 사막 건너편에서 큰 바람이 불어와 그 집 네 모서리를 치자, 자제분들 위로 집이 무너져 내려 모두 죽었습니다.
저 혼자만 살아남아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20 그러자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 땅에 엎드려 

21 말하였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22 이 모든 일을 당하고도 욥은 죄를 짓지 않고 하느님께 부당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9,46-50

 

그때에 

46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47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48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49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진정한 큰 사람'>

 

오늘 복음의 전반부는 '가장 큰 사람'에 대한 말씀이고, 후반부는 어제 복음과 병렬구문으로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씀을 전해줍니다.

 

오늘은 전반부만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루카 9,48) 

이는 ‘가장 작은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요, 동시에 ‘작아질수록 커진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작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작은 이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작은 큰 사람’이란, 단지 ‘작은 이’를 받아들이기만 한 것이라기보다, ‘작은 이’를 받아들여 ‘같이 작아진 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크기 때문에 큰 사람인 것이 아니라, ‘크면서도 작은 이인 사람’이 ‘진정 큰 사람’이라는 말씀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작은 이’를 사랑하여 그를 위하여 큰 것을 비우는 바람에 ‘작은 이’가 된 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를 우리는 전능하신 하느님이심을 비우고 낮아져 인간이 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어린이’는 돌보아주지 않으면 곧 죽게 되는 무능하고 힘없는 약한 사람을 표상하며, 예수님께서는 발가벗고 나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인간이 되어 오셨습니다. 

그러니 이는 ‘자신을 타인보다 위에 두지 않는 사람, 곧 높이 있어 우러름 받는 이가 아니라 아래에서 천대받는 이’로 오셨습니다. 

 

따라서 ‘어린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력함과 낮아짐, 동시에 사회에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미천하고 버려진, 천대받고 소외된 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겸손’은 ‘작은 이’, ‘무능하고 비천한 이’를 받아들이는 능력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필리 2,3)

사실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상대방을 받아들이되, 허물과 허약함이 있는 채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니 나아가서, ‘허물을 함께 지는 이’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그러하셨습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모두가 높아지고 커지고 첫째가 되고자 안달인 이 시대에, 작아지고 낮아지고 꼴찌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앞에, 그리고 형제들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작아지는지가 진정한 큰 사람임을 말해줍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루카 9,48)

 

주님!

받아들이는 이가 되게 하소서.

제 자신의 무능함과 형제들의 허약함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보잘 것 없는 이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보잘 것 없는 이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미천한 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미천한 자 되게 하소서.

십자가에 매달려 무력하게 하소서.

그 무력함 안에서 당신을 신뢰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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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해피 | 작성시간 24.10.01 new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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