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2024년 10월 1일 화요일 (백)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힘으로 밀어붙이고 싶은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칩시다!>
작성자용각산작성시간24.10.01조회수13 목록 댓글 12024년 10월 1일 화요일 (백)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제1독서
<어찌하여 하느님께서는 고생하는 이에게 빛을 주시는가?>
▥ 욥기의 말씀입니다.3,1-3.11-17.20-23
1 욥이 입을 열어 제 생일을 저주하였다.
2 욥이 말하기 시작하였다.
3 “차라리 없어져 버려라, 내가 태어난 날, ‘사내아이를 배었네!’ 하고 말하던 밤!
11 어찌하여 내가 태중에서 죽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나올 때 숨지지 않았던가?
12 어째서 무릎은 나를 받아 냈던가? 젖은 왜 있어서 내가 빨았던가?
13 나 지금 누워 쉬고 있을 터인데. 잠들어 안식을 누리고 있을 터인데.
14 임금들과 나라의 고관들, 폐허를 제집으로 지은 자들과 함께 있을 터인데.
15 또 금을 소유한 제후들, 제집을 은으로 가득 채운 자들과 함께 있을 터인데.
16 파묻힌 유산아처럼, 빛을 보지 못한 아기들처럼 나 지금 있지 않을 터인데.
17 그곳은 악인들이 소란을 멈추는 곳. 힘 다한 이들이 안식을 누리는 곳.
20 어찌하여 그분께서는 고생하는 이에게 빛을 주시고
영혼이 쓰라린 이에게 생명을 주시는가?
21 그들은 죽음을 기다리건만, 숨겨진 보물보다 더 찾아 헤매건만 오지 않는구나.
22 그들이 무덤을 얻으면 환호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련만.
23 어찌하여 앞길이 보이지 않는 사내에게
하느님께서 사방을 에워싸 버리시고는 생명을 주시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51-56
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힘으로 밀어붙이고 싶은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칩시다!
한류 열풍의 기세가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고 계속되니,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특히 음악이나 영화 등 문화 예술 분야에서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지속적으로 끌고 있다는 것, 정말이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지한 성찰도 필요합니다. 전 세계 수많은 청소년들이나 어린이들이 열광하는 K-드라마나 영화, 가요인데, 그저 흥행만을 추구하며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으로 흘러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영화나 드라마가 너무 지나치게 폭력적입니다.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성을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풀라는 의미인지, 여차하면 주먹을 휘두르고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니, 아이들이 보고 따라 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우리는 모두 냉철한 지성을 소유한 인격자인 인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뜨거운 피가 돌고 있는 생명체이기에, 내면 깊숙한 곳에 강한 공격성이 분명 자리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구체적인 일상생활 안에서 절실히 느끼는 유혹 한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를 이성과 논리와 대화로 풀어나가기보다는 그냥 확 힘으로 밀어붙이고 싶은 유혹입니다.
책상이고 컴퓨터고 다 엎어버리고 뛰쳐나가고 유혹, 평소 꽉 참고 눌러왔던 하고 싶은 말들 속 시원히 해주고 싶은 유혹, 우월한 힘을 총동원해서 눈엣가시 같은 누군가를, 천하 밉상인 이웃 나라를 확 쓸어버리고 싶은 유혹...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오랜 기간 동고동락하면서 특별 제자교육을 받은 제자들, 그중에서도 핵심 제자들, No2, No3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 사도들도 그런 유혹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목적지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사마리아 지역을 거쳐 가시게 되었는데,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는 개와 고양이 이상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말도 안 섞고, 상종조차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사마리아인들이 이런저런 연유로 이민족들과 혼혈하게 된 것을 용납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반면 사마리아인들은 별것도 아닌 것에 목숨을 거는 유다인들, 나름 전통 신앙과 관습을 고수한다고 잔뜩 폼을 잡지만, 실상 죄란 죄는 다 짓고 사는 유다인들, 뒤로 호박씨를 까는 유다인들을 또한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 일행이 자기 마을에 머무르는 것을 거부한 것입니다. 노골적인 냉대를 받은 것에 대해 노발대발한 요한과 야고보 사도가 예수님께 다가와, 저것들 그냥 확 한번 엎어버릴까요, 라고 말씀드립니다.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요한 9,54)
사실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여러 가지 능력을 부여받아, 사마리아 고을 하나 순식간에 날려버릴 힘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제가 예수님이었다면 이랬을 것입니다. “그래, 그게 낫겠네. 감히 우리를 배척하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군. 속 시원히 한번 봐버리게!”
그러나 생애 내내 비폭력 평화주의 노선을 한결같이 고수해오신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두 제자를 크게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다른 마을로 발길을 돌리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힘을 사용한다면 그 힘은 사랑의 힘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