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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2026년 6월 20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작성자로킴|작성시간26.06.20|조회수12 목록 댓글 1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2026년 6월 20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 마태오복음.6,24-3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가을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말합니다. 즉,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가을이 좋은 계절이라는 뜻일까요? 당연히 가장 좋은 계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천고마비(天高馬肥)’의 어원은 당나라 시인 두심언(杜審言)이 지은 시 ‘증조관기(贈趙管記)’에 등장하는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라는 구절에 유래한다고 합니다. 그 뜻은 가을 하늘이 높고 변방의 말이 살이 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구절은 좋은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좋은 계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힘든 시기를 의미합니다.


당나라와 국경을 마주했던 흉노족은 가을만 되면 말을 타고 쳐들어와 곡식을 약탈하고 노략질을 일삼았습니다. 이 때문에 북방 변방에 사는 당나라 사람들은 가을만 되면 언제 흉노가 침략할지 몰라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결국 ‘가을 하늘이 높고 변방의 말이 살이 찐다’라는 말은 흉노가 쳐들어올 시기가 되었으니 경계하고 대비하라는 말입니다.


그 누가 ‘천고마비’를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볼까요? 하지만 원래는 가장 걱정되는 계절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실제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향한 노력이 필요하고,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지혜를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특히 세상을 살아가며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 이를 하느님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지 않고 온갖 걱정을 하며,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됨을 강조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라고 하십니다.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의 종은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섬김에 있어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느님과 재물을 적당히 양립시키는 타협을 합니다.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하기에 물질이 주는 가짜 안정감에 노예처럼 얽매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걱정하다’라는 말은 ‘마음이 나뉘다, 찢어지다’라는 어원을 가진다고 합니다. 따라서 걱정은 하느님을 향해야 할 신뢰가 세상의 불안으로 인해 여러 갈래로 찢어지고 흩어진 영적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모으는 방법을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 6,33)라고 하십니다. 당연히 우리 일상의 필요를 무시하고 정당한 노동을 폄하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 대신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려는 노력을 통해 우리의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걱정 없이 기쁘게 사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당신의 모든 희망을 하느님께 두십시오. 그분으로 채워지기 위해 그분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깨달으십시오. 그분 없이는 무엇을 가지더라도 그것이 오히려 당신을 공허하게 만들 것입니다(성 아우구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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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로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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