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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스크랩] 『예수를 만나다』

작성자여풍|작성시간22.12.12|조회수286 목록 댓글 2

『예수를 만나다』

▣겟세마네동산 바위 ▣사람의 아들·신의 아들인가 ▣회계의미

▣나만의 신 ▣왜 사람을 낚으라했을까 ▣가난한 마음

▣예수는 좌파?우파? ▣네 안의 천국 ▣유다 ▣물을 포도주로

 

1. 예수가 엎드려 피땀 흘렸던 바위

 

알고 싶었다. 2000년 전의 이스라엘은 어떤 곳이었을까. 보고 싶었다. 예수가 나서, 자라고, ‘사랑’을 말하고, 끝내 십자가에 못박혀 숨을 거둔 땅. 그리고 온 세상을 적시는 생명으로 되살아난 땅. 거기에는 어떤 바람이 불고, 어떤 나무가 자라고, 또 어떻게 생긴 달이 떠오를까. 지금도 남아있는 예수의 유적에는 과연 그의 숨결이 박혀 있을까.

그 모두가 궁금했다. 성서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장소들, 예수가 나고 자란 동네, 예루살렘의 골목과 갈릴리의 호숫가, 푸석푸석한 모래로 뒤덮여 있을 광야. 40일간 금식하며 예수가 목숨을 걸고 자신을 지웠던 광야. 그 어디쯤 그가 머물던 동굴이라도 있을까. 그곳으로 가서 땅을 밟아보고 싶었다. 어딘가 박혀있을 예수의 발자국. 그 위에 나의 발을 포개보고 싶었다.

예수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사렛 마을. 지금은 산뜻하고 아름다운 조그만 도시가 돼 있었다.

2000년 전 예수는 나사렛 마을의 골목 어딘가를 뛰어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으리라.

인천공항을 떠나 터키 이스탄불을 거쳐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텔아비브 공항의 입국 절차는 엄격하고 까다로웠다. 테러에 대비해 자동 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곳곳에 보였다. 이스라엘에서는 호텔의 경비원들도 실탄을 소지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가 ‘영원한 평화’를 설한 땅,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은 ‘세계의 화약고’가 돼 있었다.

공항을 나와 예루살렘으로 갔다. 버스 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무척 이국적이었다. 쨍한 햇볕, 거친 광야, 해발 800m가 넘는 고지와 낮은 계곡의 골짜기, 그리고 메마른 땅. 그런 가혹한 환경에서도 자라는 올리브 나무들(성서에는 ‘감람 나무’라고 기록돼 있다). 그건 여지없는 성서 속의 풍경이었다.

이스라엘 광야는 그림 같은 지평선이 펼쳐지는 아라비아의 사막과 달랐다. 거칠고 메마른 땅이었다.

 

이스라엘의 광야는 죽음의 땅이다. 예수도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뒤 죽음의 땅으로 갔다. 광야에는 ‘극적인 승부’가 기다리고 있었다.상대는 로마의 병사도, 유대교의 제사장도 아니었다. 예수가 마주한 상대는 ‘악마’였다. ‘악마’라면 흔히 머리에 뿔이 솟고, 꼬리가 삼지창처럼 갈라지고, 까칠한 붉은 털을 가진 놈쯤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가 상대한 악마는 달랐다. 훨씬 더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건 ‘나의 밖’이 아니라 ‘나의 안’에 도사리고 있는 ‘또 다른 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40일간 단식한 예수는 뱃가죽이 등에 붙었을 터이다. 2600년 전 인도의 붓다도 그랬다. 강가의 보리수 아래 앉은 그는 처절한 고행을 했다. 좁쌀 한 톨만 먹고 하루를 버텼다. 배를 누르면 등가죽이 만져졌고, 등을 누르면 뱃가죽이 만져질 정도였다. 예수도 그랬다. 40일 단식을 통해 ‘마지막 승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악마는 ‘빵’을 건넸다. “너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이 돌들에게 말해서 빵으로 변하도록 하라”고 제안했다. 강력한 유혹이다. “너는 빵으로 살지 않느냐. 너의 육신이 빵 없이 살 수 있느냐. 빵이 최고이지 않은가. 살고 싶다면 빵을 달라고 해라. 어서 빵이 최고라고 해라.” 악마는 그렇게 다그친 셈이었다.

예수는 악마를 향해 받아쳤다. 자신이 무엇을 먹고 사는지 확고하게 말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건 아니다.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끊임없는 말씀이 있어야 한다.” 빵은 몸을 살린다. 그럼 마음은 무엇이 살릴까. 또 영혼은 무엇을 먹고 살까. 예수는 그걸 말했다. 진리의 근원에서 쏟아지는 이치, 삶과 세상과 우주에 대한 이치, 거기에 깃든 생명력이 진정으로 나를 살린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에 도착한 날은 금요일 저녁이었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차창 밖에는 검정 모자에 검정 옷, 귀밑 머리를 길게 기른 정통파 유대교인들이 아들을 데리고 통곡의 벽으로 향하고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이 놀라웠다.이스라엘 유대인 중 유대교를 믿는 사람은 30%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종교가 없습니다. 다만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유대교의 관습과 절기 속에서 생활하고 있을 뿐이죠.”

예루살렘의 유대교인들이 통곡의 벽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유대교인들에게 예수는 ‘이단’이었다.

유대인들도 그랬다. 이스라엘 역시 이런 물음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과연 미래에도 종교가 존재할까.’ ‘만약 존재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어떤 호흡으로 존재하게 될까.’ 각박한 삶을 헤쳐가야 하는 현대인은 종교의 격식, 종교의 외피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다. 그들이 바라는 건 오직 하나, 자신의 일상을 자유롭고 지혜롭게 풀어줄 실질적인 해결책이다. 그게 바로 종교가 처음에 태동한 이유이기도 하다.

예수는 이스라엘 곳곳을 누비며 관념적인 넋두리를 늘어놓지 않았다. 그의 설교는 정확하게 사람의 마음을 뚫었다. 사람들의 괴로운 마음은 홀가분해졌고, 심지어 해묵은 병까지 나을 정도였다. 이스라엘에서 그걸 만나고 싶었다. 2000년 전 예수가 전했던 메시지, 그 속에서 꿈틀대는 생명의 알갱이들 말이다. 속소 창 밖으로 날이 저물었다.

새벽에 잠을 깼다. 시계를 보니 오전 4시30분이었다. “애~애~애~”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새벽 공기를 뚫고 예루살렘 전역에 퍼지는 소리는 뜻밖에도 '애잔'(무슬림들이 메카를 향해 하루 다섯 차례 절을 할 때 울리는 기도문)이었다. 이슬람 모스크에서 옥외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지는 기도 소리였다. 예루살렘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이슬람 성지를 향해 절을 하는 시간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세 그루의 나무다. 유대교는 구약만 믿는다.

예수가 중심인 신약을 믿지 않는다. 유대교인에게 예수는 ‘이단’일 뿐이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 경전인 구약과 예수의 가르침을 담은 신약, 둘 다 믿는다. 이슬람교도 구약과 신약을 모두 본다. 다만 무슬림에게 예수는 메시아(구원자)는 아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와 같은 선지자 중 한 사람일 뿐이다. 그리스도교인만 예수를 메시아로 본다. 이들 세 종교에게 ‘예수는 누구인가’는 늘 평행선을 달리는 ‘민감하고 격렬한 신학적 논쟁거리’다. 이렇게 세 눈이 뒤섞인 곳, 그곳이 또한 예루살렘이었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왔다. 예수의 자취를 찾아 나섰다. 예루살렘 동편에 야트막한 산이 하나 있었다. 성경에도 등장하는 올리브산(해발 810m, 한국어 성경에선 ‘감람산’이라고도 표기함)이다. 올리브산에는 옛날부터 올리브밭과 공동묘지가 있었다. 지금도 그랬다. 오래된 묘비와 석관(石棺)이 올리브산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올리브 나무도 곳곳에 보였다.

펜스 뒤에 보이는 네모난 하얀 돌들이 올리브산의 묘지다. 묘지 오른편에 올리브 나무들이 보인다.

산 건너편에는 멀리 황금색 돔의 예루살렘 성전이 보인다. 지금은 이슬람 사원으로 쓰이고 있다.

그곳에 조그만 동산이 하나 있다. ‘올리브 기름을 짜는 곳’이란 뜻을 지닌 겟세마네다. 옛날에는 이곳에 올리브 기름을 짜는 방앗간이라도 있었나 보다. 십자가 처형을 당하기 전날 밤, 예수는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땀을 피같이 흘리며 엎드려 기도를 했다. 그런 장소가 겟세마네다. 이스라엘은 사막 기후다. 낮에는 햇볕이 쨍 할 정도로 뜨겁다.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진다.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을 때도 그런 계절이었다. 그날도 기온이 낮보다 10도 이상 떨어지는 차가운 밤이었으리라. 당시 예수는 시시각각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예견했다. 심지어 제자들에게 “이제 이틀 후면 유월절이다. 그때 인자가 배신당하고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다”(마태복음 26장2절)라며 자신의 죽음을 내다봤을 정도다.

마음만 먹었다면 달아날 수도 있었다. 제자들과 함께 얼마든지 사라질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도망치지 않았다.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마친 그는 예루살렘을 벗어나 겟세마네로 왔다. 이동거리는 그리 길지 않았다.

올리브산의 언덕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빤히 보이는 거리였다. 예수는 달아나는 대신 기도를 택했다. 그건 ‘예수의 선택’이었다. 신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묻고, 그 뜻과 하나로 흐르기 위한 ‘목숨을 건 선택’이었다. 그곳에서 예수는 ‘기도’를 했다.

바람이 불었다. 겟세마네 동산의 올리브 나무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우리도 그렇게 흔들린다. 수시로 기로에 선다. 각박한 일상의 전쟁터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는 몸소 보여줬다. 도망가지 말라고. 마주하라고. 그 문제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기도하라고. 묵상 속에서, 명상 속에서, 기도 속에서 답을 찾으라고. 예수는 지금도 그렇게 역설한다.

겟세마네 바위에 새겨져 있는 예수의 기도하는 모습. 예수는 처절하게 기도하며 땀을 피처럼 흘렸다고 한다.

어디쯤이었을까. 예수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던 장소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처절하게 기도하며 피 맺힌 땀을 흘렸던 곳은 대체 어디였을까. 성서에는 이때 예수가 ‘피가 배인 땀’(누가복음 22장44절)을 흘렸고‘심히 괴로워 슬픔에 잠겼다’(마태복음 26장36~38절)고 기록돼 있다.

 

예수는 왜 괴로웠을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마태복음 26장38절)며 자신의 참담한 심정을 토해냈을까. 이유는 하나였다. 사느냐, 죽느냐. 그 기로에 섰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차례, 수십 차례 기로에 선다. 사랑할까 미워할까. 용서할까 원망할까. 살릴까 죽일까. 그때마다 예수처럼 ‘심히 괴로워 죽을 지경’이 된다.

겟세마네 동산을 걸었다. 얼마나 절실했을까. 얼마나 절박했으면 땀에 피가 배여 흘렀을까. 그건 눈물이 아니었을까. 심장으로 우는 눈물이 아니었을까. 올리브 나무들 사이로 난 좁다란 길을 따라 걸었다. 교회가 하나 나왔다. 이름은 ‘만국교회’(일명 겟세마네 동산 교회). 문을 열고 교회 안으로 들어섰다. 각국에서 찾아온 순례객들이 빙 둘러앉아 미사를 보고 있었다. 제단 앞에는 널찍하고 야트막한 바위가 있었다. 그게 바로 예수가 엎드려 기도를 했다는 바위였다.

예수가 엎드려 기도를 했다는 겟세마네 동산의 바위. 지금은 그 바위를 품고 교회가 세워져 있다.

제단 밑 납작한 바위 둘레에는 쇠로 된 낮은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 조각이 울타리 위에 앉아 있었다. 2000년 전, 예수는 저 바위에 엎드렸다. “너희는 여기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있어라”고 제자들에게 신신당부를 한 뒤 그는 앞으로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그 땅이 저 바위였다. 그는 기도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해주십시오.”

그랬다. 예수는 두려웠을 터이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을 터이다. 육신의 생명을 벗는 일,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하는 일, 세상을 향해 우주의 이치를 전하는 걸 멈추는 일. 그 모두가 낯설고 두렵지 않았을까. 예수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와 별 차이가 없었다. “이 고통이, 이 슬픔이, 이 불행이 비켜가게 해주십시오.” 그건 수시로 올리는 우리의 기도와 똑닮았다. 그런데 예수의 기도는 달랐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더 나아갔다. 그는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며 한걸음 더 내디뎠다.

만국교회 제단 뒤에는 예수의 기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바위 양 옆에 올리브 나무가 서 있고, 하늘에는 천사가 보인다.

불교에서는 그걸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고 부른다. 백 척의 장대 위에 서면 어떨까. 목숨이 위태롭다. 두렵고 떨린다. 떨어질까봐. 추락할까봐. 그런데 떨어질 줄 뻔히 알면서 한 발짝 앞으로 내딛는다. 그때 에고가 부서져 내린다. 남들이 멈추는 곳, 모두가 겁먹고 뒷걸음질치는 곳에서 예수는 한 발 더, 앞으로 내디뎠다. 곤두박질칠 줄 뻔히 알면서, 십자가에 못 박힐 줄 뻔히 알면서 말이다. 그래서 예수의 기도는 각별했다. 그렇게 ‘나’를 부수어버린 예수는 우주의 거대한 흐름 속으로, 신의 뜻 속으로 녹아 들어갔다.

예수가 엎드려 피땀을 흘렸다는 바위. 그 앞에 섰다. 낮은 울타리 앞에 쪼그려 앉아 바위에 손을 댔다. 차가웠다. 그날 밤도 차가웠겠지. 예수가 피처럼 땀 흘리며 기도하던 그 날도 차가웠겠지. 하늘의 별도, 바위 옆의 올리브 나무도 그렇게 차갑게 서 있었겠지. 눈을 감았다. 교회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예수가 기도하며 '피울음'을 토해낼 때 제자들은 쿨쿨 잠들어 있었다. “나와 함께 깨어있어라”는 예수의 당부를 까맣게 잊은 채 잠에 취해 있었다. 2000년이 흐른 지금도 그렇다. 우리는 잠에 취해 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는 말한다. “나와 함께 깨어있어라!”

무슨 뜻일까. 예수가 당부한 ‘깨어있음’이란 어떤 의미일까. 두 눈을 뜨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긴장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치 않다. 예수는 자신의 기도를 통해 몸소 답을 보여줬다.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거라고. 사람들은 묻는다. ‘아버지의 뜻’이 어디에 있는 줄 알아야 따를 것 아니냐고. 그러면서 우긴다. “내 뜻이 바로 아버지의 뜻”이라고 수시로 우긴다. 그러나 예수는 정확하게 말했다. 당신의 뜻이 무너진 곳에서 신의 뜻이 드러난다고.

만국교회 뜰에 서 있는 여덟 그루의 올리브 나무. 그들은 보았을까. 예수가 기도하는 광경을.

만국교회 밖으로 나왔다. 교회의 뜰에는 아름드리 올리브 나무가 여덟 그루 서 있었다. 2000년 전 예수가 여기서 기도할 때도 올리브 나무가 서 있었다. 이 여덟 그루는 예수 당시에 있던 올리브 나무의 종자를 그대로 이은 거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달랐다. 보통 올리브 나무보다 밑동이 수십 배는 더 굵었다. 이 나무들은 보았을까. 바위에 엎드린 예수의 모습, 그가 토해낸 기도를 들었을까. 그때는 나무도 함께 울었을까.

[출처]: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 <예수를 만나다>

- 1. 예수가 엎드려 피땀 흘렸던 바위/ 중앙일보, 2016. 1. 6.

2.예수는 사람의 아들인가, 신의 아들인가

예수는 인간인가, 신인가. 그는 과연 사람의 아들일까, 아니면 신의 아들일까. '첫 단추'가 궁금했다. 예수가 태어난 땅, 베들레헴으로 향했다. 거기서 '예수의 뿌리'를 보고 싶었다.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은 멀지 않았다. 남쪽으로 8㎞쯤 떨어져 있었다. 지금은 팔레스타인 거주지다. 베들레헴으로 가려면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다. 실탄으로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과 장갑차가 검문소를 지키고 있었다. 검문소 이쪽과 저쪽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예루살렘은 깔끔한 유럽의 도시 같았고, 팔레스타인 지역은 수십 년은 낙후된 인상이었다. 마치 2016년에 살다가 1986년쯤으로 순식간에 돌아간 느낌이었다.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에 있는 예수의 모자이크 벽화. 예수는 백인이 아니라 중동 사람들의 외모에 더 가까워 보인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낙후됐다. 비포장길도 많았다. 흙먼지를 날리며 버스가 달렸다. 차창 밖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보였다. 2000년 전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으로 태어났던 예수의 외모도 저랬겠지. 저렇게 생긴 눈에, 저런 코, 저런 머리칼에, 저런 피부를 가졌었겠지. 주위를 둘러봤다. 어쩌면 내가 탄 버스 기사처럼 생겼을까. 아니면 검문소를 통과할 때 여권을 검사하던 유대인 군인처럼 생겼을까. 갈수록 궁금해졌다. 예수는 과연 인간일까, 아니면 신일까. 그도 아니면 둘 다일까.

천사들이 들판에 나타나 목동들에게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렸다. 베들레헴에 세워진 '목자들의 들판 교회'.

예수 탄생지는 거기서 멀지 않았다.

예수의 출생은 파격이었다. 처녀의 몸으로 마리아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예수 당대에 결혼이란 집안간의 만남이었다. 결혼 상대자도 대부분 부모가 결정했다. 가문의 명예는 목숨과 바꿀 만큼 중요했다. 혼전 처녀가 임신을 한다면 대가는 가혹했다. 성서에는 간음한 여자를 사람들이 돌로 쳐 죽이는 대목이 나온다. 혼전 임신도 마찬가지다. 집안의 남성들은 임신한 여성을 돌로 쳐 죽이는 게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니 마리아는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수태고지(受胎告知)는 마리아에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건'이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천사는 이렇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

 

첫 마디가 그랬다. "두려워하지 마라."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1818~1882)의 그림 '수태고지'에서는 두려워하는 마리아가 여실히 보인다. 침대에 앉은 마리아는 천사의 '수태 통보'를 듣고 벽 쪽으로 몸을 움츠린다. 천사가 건네는 백합의 꽃말은 순결과 신성(神性)이다. 마리아는 그걸 선뜻 받지 못한다. 두 손은 바닥에 떨어져 있다. 꽃을 받은 뒤에 자신에게 몰아칠 '운명의 폭풍'을 직감적으로 본 것이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작품 '수태고지'.

그림 속 마리아의 얼굴은 무척 앳되다. 마리아는 당시 몇 살이었까. 그런 운명을 감당할만한 나이나 됐을까. 성서에는 그에 대한 기록이 없다. 마리아가 몇 살인지, 예수와 몇 살 차이인지 아무런 기록이 없다. 당시 풍습을 통한 추정은 가능하다.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상태였다. 양가에서 결혼을 승낙하고, 예식을 준비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니 마리아는 결혼적령기였을 터이다.

당시 갈릴리 지방에서 여성은 첫 월경을 하는 나이가 되면 시집을 갔다고 한다. 그게 열서너 살이다. 그때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짧았다. 의술도 발달하지 않았으니 출산 도중 목숨을 잃는 여성도 많았을 터이다. 여성의 출가 연령도 낮았다. 그럼에도 열서너 살이면 아직 어리지 않았을까. 성령에 의해 임신이 되는 '초월적 사건'을 목숨을 걸고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았을까.

천사 가브리엘은 아이의 이름까지 불러주었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Jesus)라 해라." 한국말로 바꾸면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철수'라 해라"쯤 된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예수'는 그만큼 흔한 이름이었다. 로마 시대의 유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37?~100?)는 『유대 전쟁사』에서 "당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수도 없이 많았다"고 기록했다. 그러니 국어책에 등장했던 '철수'나 '영희'처럼 유대인에게 흔하고 친숙한 이름이 바로 예수의 이름이었다.

'예수' '하느님은 구원이시다'는 뜻이다. 버스 안에서 읊조려 봤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철 그리스도'나 '정환 그리스도'로. 그렇게 한국식으로 바꾸어 불렀더니 친근한 어감이 확 다가왔다.

버스 안 이스라엘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히브리어를 썼다. 사실 히브리어는 고대 이스라엘의 언어다.

구약성서는 대부분 히브리어로 기록됐다. 유대 민족이 오랜 세월 바빌론의 포로가 되면서 말이 바뀌었다. 예수 당시에는 히브리어가 일상 언어는 아니었다. 구약을 연구하는 일부 율법학자들만 익히는 문자 언어였다.

훗날 이스라엘의 건국(1948년)과 함께 히브리어가 다시 유대인의 공용어가 됐다. 그럼 예수가 사용한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이스라엘 광야에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예루살렘의 골목에서 예수가 말하고 들었던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람어였다. 당시 유대인들은 아람어와 그리스어를 썼다. 그리스어는 외교용 언어였고, 지중해 지역에선 공용어였다. 이 때문에 신약성서는 처음 그리스어로 기록됐다. 예수 당시에는 일부 식자층이 그리스어를 썼고, 대다수 평민은 아람어를 썼다.

예수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썼던 언어는 다름 아닌 아람어였다.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여호수아(Yehoshuah)'이고, 아람어로는 '예수아(Yeshua)'다. 그러니 마리아와 요셉이, 갈릴리의 이웃들이 어린 예수를 부를 때는 "예수아! 예수아!"라고 불렀을 터이다.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탄생 교회. 교회라기보다 성(城)이나 요새처럼 보인다.

버스가 베들레헴에 도착했다. 해발 770m의 산악지역에 있는 마을이다. 차에서 내렸다. 베들레헴은 ‘베들(House)+레헴(Bread)’으로 ‘빵 만드는 집’이란 뜻이다. 이곳은 그리스도교의 성지 중의 성지다. 가톨릭 신자들도, 크리스천들도, 딱히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베들레헴을 찾아온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보는 풍경, 말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의 모습. 그 공간적 배경이 바로 여기다. 지금은 마구간이 없었다. 대신 예수가 태어난 자리에 교회가 서 있었다. 약 1500년 전에 세워진 ‘예수탄생 교회’다. 325년에 지었다가 파괴되고 529년에 재건됐다. 529년이면 고구려 안장왕이 백제 성왕과 싸웠던 때다. 예수탄생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세월 문을 열고 있는 교회 중 하나다.

예수탄생 교회의 출입구. 높이가 1.2m에 불과해 머리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다.

교회 입구가 특이했다. 성벽 아래에 난 작고 네모난 구멍이 입구였다. 높이는 1.2m정도에 불과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려면 누구나 머리를 숙여야 했다. 말을 타고 교회 안에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입구를 낮고 작게 만들었다고 한다. 예외는 없었다. 순례객들은 다들 머리를 숙였다. 그건 일종의 ‘내려놓음’이기도 했다. 자신을 내려놓은 곳, 거기야말로 신을 만나는 곳이니까.

안으로 들어갔다. 1500년 전에 지은 교회의 실내 양식은 아주 독특했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처럼 40여 개의 굵다란 기둥들이 양옆으로 줄지어 서있었다. 앞에는 제단이 있고, 정교회 성직자들이 미사 중이었다. 교회 아래로 난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그곳에 예수가 태어난 ‘바로 그 장소’가 있었다. 2000년 전 여기가 마구간이었을 때, 예수가 태어난 지점 말이다. 그곳에는 사람들의 긴 줄이 있었다. 맨 앞의 사람은 바닥에 엎드려 뭔가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저게 뭐지?’ 궁금해 하며 나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한참 후에 순번이 왔다. 바닥에는 별 모양의 장식이 있었다. 그 별 한가운데 손바닥 만한 작고 동그란 유리창이 있었다. 그 창을 통해 들여다보는 곳이 예수가 태어난 ‘바로 거기’라고 했다. 선 채로는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눈을 유리창에 바짝 갖다 댔다. 안을 들여다 봤다. 새까맸다. 새까만 어둠, 그뿐이었다.

순례객들은 바닥에 엎드려 예수가 태어난 ‘그곳’을 들여다 봤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례객들은 저마다 눈을 감고 묵상에 잠겼다.

줄 선 사람들이 많아 오래 볼 수도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허탈하고 당혹스러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뒤로 돌아서는데 문득 성서 구절이 뇌리를 때렸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요한복음 1장3절)

그랬다. 저 어둠, 작은 구멍 속의 저 어둠. 그건 태초의 어둠과 통했다. 태초의 어둠이 뭔가. 내가 나고, 당신이 나고, 세상이 나고, 이 우주가 나온 자궁이다. 그런 천지창조의 근원이다. 거기야말로 예수가 온 곳이다.

불교에서는 그걸 ‘공(空)’이라 부른다.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공이 아니다. 모든 색(色ㆍ형상)이 태어나서, 작용하고, 돌아가는 만물의 본향(本鄕)이다. 숫자로 표현하면 ‘0’이다. 태초의 어둠도 ‘0’이다. 아무것도 없는 허무한 ‘0’이 아니다. 없는 가운데 꽉 차 있기에 ‘진공묘유(眞空妙有)’다.

그래서 기독교 영성가 다석(多夕) 유영모는 신을 부를 때도 ‘없이 계신 하느님’이라 불렀다. 요한복음은 말한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아담과 이브가 그분을 통해 생겨났듯이, 우리도 그분을 통해 생겨났다. 결국 우리의 몫이다. 나의 가족과 친구 속에서, 저 나무와 새 울음 속에서, 저 바람과 달 속에서 ‘없이 계신 하느님’을 만나는 일 말이다.

예수탄생 교회를 나왔다. 팔레스타인 청년이 다가와 “헤이, 브라더!”하며 기념품을 사라고 했다. 나는 ‘브라더!’라는 말이 귀에 꽂혔다. 그들은 처음 보는 낯선 남자에게도 “브라더!”라고 불렀다. 성서에는 ‘예수의 형제’에 대한 기록이 있다.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온 예수를 향해 마을 사람들이 떠드는 이야기가 마가복음서에 적혀 있다.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마가복음 6장3절).

어린 예수가 아버지 요셉으로부터 목수일을 배우고 있다. 어머니 마리아는 옆에서 예수를 지켜보고 있다.

예수가 어린 시절을 보낸 나사렛의 수태고지 교회에 걸려 있는 그림이다.

예수는 맏이였다. 그에게 동생과 누이가 있었을까. 민감한 논쟁거리다. 현대 신학자들은 상당수 ‘예수에게 형제가 있었다’고 본다. 반론도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형제뿐 아니라 사촌들도 다 ‘브라더(Brother)’라고 불렀다. 성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형제’는 친형제가 아니라 사촌이다”고 주장하는 전통적 시각도 강하다. 그럼 이게 왜 ‘논쟁의 뇌관’일까. 이유가 있다. 예수가 ‘사람의 아들’인가, 아니면 ‘신의 아들’인가. 그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결혼한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의 동생들을 낳는 것은 어찌 보면 인지상정(人之常情)이었을 테니.

그런데 신의 아들로 보면 적잖이 불편해진다. 성령으로 잉태한 적이 있는 마리아의 몸에서 요셉의 자식들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수를 신학적 용어로 ‘하느님의 독생자(獨生子)’라 표현한다. ‘외아들’이란 뜻이다. ‘하느님의 외아들’에게 아버지가 다른 형제가 있다는 설정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마리아가 평생 순결을 지킨 처녀라는 ‘평생 동정녀론’이 가톨릭에는 강하게 남아 있다.

성서에는 예수에게 네 명의 형제와 적어도 두 명의 누이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당시 나사렛 고향 사람들은 예수를 ‘신의 아들’로 보지 않았다. 그저 ‘목수의 아들’로 봤다. 고향의 유대교 회당에서 예수가 풀어놓은 지혜에 놀라면서도 예수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들에게 예수는 그저 이웃사람 마리아의 아들일 뿐이었다. 남동생들과 누이들의 형이자 오빠일 뿐이었다. 예수가 직접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마가복음 6장4절)고 토로할 정도였다. 유대교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받아들인다.

정작 예수는 어땠을까. 자신을 스스로 무엇이라 불렀을까. 예수는 평소 자신을 지칭할 때 ‘메시아(구원자)’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인자(人子)”라고 불렀다. 글자 그대로 ‘사람의 아들(Son of man)’이란 뜻이다. 그런데 ‘인자(人子)’의 뜻은 깊다. 그 울림도 크다. ‘인자’가 히브리어로는 ‘Aben adam(아담의 아들)’이다. 예수는 자신을 지칭하며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정확하게 ‘아담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예수는 왜 자신을 ‘아담의 아들’이라고 불렀을까.

미켈란젤로가 바티칸성당의 천장에 그린 아담의 모습.

사람들은 생각한다. 신의 외모가 인간의 외모와 똑같을 거라고. 우리처럼 눈이 있고, 코가 있고, 팔다리가 있을 거라고. 구약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신은 자신의 형상을 본 따 인간을 빚었다고. 미켈란젤로의 성화 ‘천지창조’를 봐도 하느님은 흰 머리칼을 휘날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인간의 형상은 신의 형상에서 따왔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한 차동엽 신부는 ‘형상’이란 단어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성서에 기록된 ‘형상’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셀렘(Selem)’이다. ‘셀렘’은 본질 혹은 속성이 닮았을 때 쓰는 말이다. 겉모양만 붕어빵처럼 똑같이 생긴 ‘형상’을 말할 때는 히브리어로 ‘데무트(Demut)’를 쓴다. 결국 성서의 메시지는 ‘하느님의 외모가 아니라 속성을 본 따 인간을 지었다’는 뜻이다. 차 신부는 “하느님을 의인화하고 인격화하며 ‘하느님은 이런 존재’라고 못박는 건 곤란하다. 그건 초월적 존재인 하느님을 인간의 3차원적이고 편협한 생각 속에 가두는 일”이라고 말한다.

예수탄생 교회는 1500년 전에 세워졌다. 교회 내부의 독특하고 고풍스런 양식이 눈길을 끌었다.

예수탄생 교회의 제단 앞으로 갔다. 눈을 감았다. 예수가 온 곳은 어디일까, 또 예수가 간 곳은 어디일까. 구약 창세기의 구절을 다시 떠올렸다. “하느님은 당신의 속성(Selem)대로 사람을 지으셨다”(구약 창세기 1장27절).

그러니 아담 안에 신의 속성이 흐른다. 예수가 자신을 가리켜 “아담의 아들”이라고 한 까닭도 그랬다. 누군가 예수에게 물었다. 하느님을 보여달라고. 그분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달라고. 예수는 이렇게 답했다. “나를 보는 것이 곧 아버지(하느님)를 보는 것이다.” 예수는 있는 그대로 말했다. 달리 말할 수가 없었을 터이다. 자신 안에 가득 찬 ‘하느님의 속성’이 바로 예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게 예수의 진정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버스는 덜컹거리며 베들레헴을 떠났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다시 물음이 올라왔다. 예수는 인간인가, 아니면 신인가. 그랬다. 아담의 아들 예수, 그는 신을 품은 인간이었다. 200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예수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의 아들인가. 당신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출처]: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 <예수를 만나다>

- 2.예수는 사람의 아들인가, 신의 아들인가/ 중앙일보, 2016. 1. 13.

3.예수가 말한 '회개'는 그게 아니었다

버스를 타고 예루살렘을 떠났다. 동쪽으로 한 시간쯤 달리자 광야가 나타났다. 첫 인상은 ‘삭막함’이었다. 산성화한 언덕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생명’은 느껴지지 않았다. 푸석푸석한 메마름과 절대적인 황량함만 건조한 능선을 달렸다.

“아하, 여기가 광야구나” “예수가 걸었던 광야가 이런 풍경이구나.”

유대 광야는 거칠고 단조로운 땅이다. 성서에는 세례 요한의 메시지가 광야처럼 간결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때 가이드가 흥미로운 설명을 던졌다. “요즘 이스라엘 젊은이들 사이에선 ‘광야 트래킹’이 유행이다. 거친 자연을 향해 도전장을 던지고, 자신의 한계를 체험한다.” 2000년 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나’를 무너뜨리는 곳, 거기서 드러나는 ‘거대한 우주’를 깨닫는 곳. 그게 ‘광야’라는 공간이었을 터이다. 이스라엘의 사막은 달랐다. 바람이 만든 모래결과 굴곡진 지평선이 한 폭의 그림을 빚어내는 아라비아 사막과는 아주 달랐다. 그저 거칠고 단조로운 땅이었다. 광야에는 그런 단출함이 있었다.

예수가 태어나기 500년 전이었다. 인도의 붓다도 ‘광야’로 향했다. 그 광야는 사막이 아니었다. 보드가야의 네란자라 강변. ‘고행림(苦行林)’이라 불리는 거대한 숲이었다. 당시 2만 명의 수행자가 그 숲에 살았다고 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수행과 고행을 하는 이들이었다. 상상해보면 굉장한 광경이다. 2만 명이나 되는 수행자들이 온 숲을 빼곡히 채웠을 터이다. 누구는 나무 아래서, 누구는 바위 위에서, 누구는 가부좌를 틀고, 또 누구는 가시방석 위에 누워서 말이다. 온갖 수행법으로 자신을 무너뜨리려 애를 썼을 터이다. 요즘 눈으로 보면 거대한 ‘명상 타운’이다.

한국에도 그런 공간이 있다. 계룡산이다. 옛날에도 그랬고, 요즘도 계룡산에는 온갖 ‘도사’와 ‘수행자’들이 들락거린다. 북한의 금강산도 한때는 ‘계룡산’이었다. 절벽마다, 골짜기마다, 일만이천 봉우리마다 암자(수행처)가 빼곡하던 시절이 있었다. 율곡 이이도 한때는 입산해 금강산에서 도인(道人)을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예수 당시 유대 광야에는 여러 수도공동체가 있었다고 한다.

이스라엘에도 그런‘계룡산’이 있다. 그게 바로 광야다. 예수 당시에는 유대 광야에 여러 수도공동체가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거친 광야의 절벽과 동굴에서 살았다. 그 중 하나가 쿰란공동체다.이 공동체에는 성서를 꿰뚫는 안목을 가진 ‘선생’도 있었다. 그들은 구약성서를 필사하고, 재산을 공유하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수도하며, 오후 5시가 되면 차가운 물에 몸을 씻었다고 한다. 일종의 ‘세례’였다.

쿰란공동체의 유적. 2000년 전에 있던 수도공동체의 흔적이다.

버스가 그곳에 도착했다. 제주도 돌담길처럼 생긴 유적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 사이를 거닐었다. 공동체의 식당이 있었다는 장소 앞에 섰다. 궁금했다. 2000년 전의 구도자들. 그들은 식탁에서 어떤 기도를 올렸을까. 어떤 간절함이 자신의 삶을 통째로 걸고 이곳을 찾게 했을까. 건너편에는 높다란 모래 절벽과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동굴들이 보였다. 2000년 전에는 저 동굴마다 수도자들로 빼곡했을까.

광야를 걸었다. 메마른 땅이었다. 성서에는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갔다’고 기록돼 있다. ‘광야’는 그리스어로 ‘에레모스(eremos)’다. ‘에레모스’는 ‘빈 곳’이란 뜻도 있다. 그리스도교 영성가 다석 유영모가 말한 ‘없이 계신 하느님’도 ‘빈 곳’이다. 빈 채로 비어있는 게 아니라 빈 채로 가득하다. 물리학자들은 이 우주도 그렇다고 말한다. ‘0’으로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0’으로 가득 찬 거라고. 그러니 광야는 물리적 공간만 뜻하는 게 아니다. ‘나’라는 에고를 비울 때 드러나는 우주 이전의 우주다. 그런 ‘태초의 공간’이다.

광야에서 회오리 바람이 일고 있다.

광야에 섰다. 모래 바람이 불었다. 저 멀리 회오리 바람도 일었다. 바람을 등지고 눈을 감았다. 우리의 광야는 어디일까. 고단한 나의 하루, 지지고 볶는 나의 일상. 그게 바로 ‘광야’가 아닐까. 내 안에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악마’가 올라온다. 빵을 쌓고, 명예를 쌓고, 권력을 쌓으라는 유혹이 때로는 살가운 바람처럼, 때로는 집채만한 파도처럼 넘실댄다. 예수는 그 유혹 앞에서 ‘나’를 빼버렸다. 유혹의 씨앗이 자랄 수 없도록 ‘자아’라는 밭을 아예 쏙 빼버렸다. 그리고 외쳤다. “하느님, 그분만을 섬겨라.” 그러자 ‘악마’는 물러갔다고 한다.(마태복음 4장11절)

여리고의 시험산에서 예수는 악마의 유혹과 싸웠다. 시험산 중턱에는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원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 마음으로 거머쥐는 것. 불교에서는 그 모두를 ‘색(色ㆍ형상)’이라고 부른다. 지지고 볶는 우리 안의 온갖 감정이 모두 형상이다. 우리는 그걸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거머쥔다. 그게 집착이다.

붓다는 “있는 게 아니야. 그건 없는 거야. 있는 것이 없는 것(色卽是空)이다”고 했는데, 우리는 “아니야. 이건 진짜 있는 거야. 있는 것이 있는 것(色卽是色)이다”고 받아친다. 그래서 ‘빈 곳(空)’이 드러나질 않는다. ‘없이 계신 하느님’이 드러나질 않는다.

예수는 악마를 세 차례나 무너뜨렸다. 악마는 ‘내 안의 욕망’이다. 왜 그랬을까. 그게 ‘빈 곳’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걸 무너뜨려야 ‘빈 곳’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없이 계신 하느님’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드러나면 알게 된다. 모든 색(色) 속에 이미 ‘빈 곳’이 있음을 말이다. 모든 형상 속에 이미 하느님이 계심을 말이다. 불교에선 그걸 “형상 속에 ‘빈 곳’이 있고, ‘빈 곳’ 속에 형상이 있다”고 말한다. 그게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여리고의 시험산에서 예수는 40일간 금식하며 악마와 싸웠다. 시험산 중턱의 가파른 절벽에는 1500년 전에 세운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원이 지금도 남아 있었다. 수도원 안에는 예수가 당시 머물렀다는 동굴도 있었다. 뿐만 아니다. 악마의 유혹을 받을 때 예수가 걸터앉았다는 조그만 바위도 있었다. 예수 사후에도 수도사들은 광야로 갔다. 예수가 만났던 ‘악마’를 그들은 다시 만났다. 그게 예수가 짊어지고 따라오라고 했던 ‘각자의 십자가’였다.

예수가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할 때 머물렀다는 동굴이 시험산 수도원 내부에 있다.

버스는 다시 사해(死海)로 갔다. 북쪽의 갈릴리 호수에서 강물이 흘러와 이스라엘 남쪽에서 고였다. 그게 해수면보다 416m나 낮은 사해다. 이 일대에서 세례 요한이 활동했다. 그는 메뚜기와 야생꿀을 주로 먹고 살았다. 요즘으로 치면 ‘생식과 자연식’이다. 복장도 특이했다. 낙타털로 된 옷에 가죽띠를 둘렀다. 그는 오랜 세월을 광야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일부 신학자는 “세례 요한이 당시 광야에 있었던 수도공동체의 일원이었을 것”이라고도 하고, “조상을 따라서 유목민으로 살았을 것”이라고도 추정한다.

터키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에 있는 세례 요한의 모자이크 벽화.

사해는 말 그대로 ‘죽음의 바다’다. 요르단 강물이 유입되지만 출구는 없다. 그만큼의 수량이 증발할 뿐이다. 염도가 높아 물고기도 살 수 없다. 성지를 순례하던 이들은 사해에 와서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소금 호수라 가만히 있어도 몸이 물에 떴다. 어쩌면 ‘물 위를 걷는 예수’라는 초월적 스토리가 사해에서 비롯됐을까. 아니면 예수가 몸소 물 위를 걸었을까. 어찌 됐든 몸이 물에 둥둥 뜨는 사해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신비의 호수’였을테니 말이다.

예수도 나사렛을 떠나 세례 요한을 찾아왔다. 실제 세례도 받았다. 예수가 물에서 나올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마태복음 3장16절)왔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교에서 비둘기를 성령의 상징으로 쓴다. 나는 ‘하늘이 열리고’라는 구절에 눈길이 갔다. 그 대목을 안고 눈을 감았다. 그렇다. 하늘이 열려야, 성령이 내려온다. 하늘이 열리지 않는다면, 성령이 내려올 수가 없다. 그럼 어떡할 때 하늘이 열리는 걸까. 왜 우리의 하늘은 열리지 않는 걸까.

알렉산드로 이바노프(1837~57)의 작품 ‘군중에게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세례 요한은 당시 유명 인사였다. 그의 세례는 소문이 났고,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형식적 체험 차원에서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다. 속마음은 바꾸지 않고, 세례만 받으려는 이들이었다. 천국이 가까이 온다고 하니 말이다.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뱀의 자식들!”이라고 쏘아붙였다. 과격한 발언이었다. 요한은 왜 그들을 ‘뱀의 자식들’이라 불렀을까. 미국의 유진 피터슨 목사는 저서 『메시지』에서 요한의 말을 이렇게 풀었다. 너희의 뱀가죽에 물을 좀 묻힌다고 무엇이 달라질 것 같으냐? 바꿔야 할 것은 너희 겉가죽이 아니라 너희 삶이다!”(마태복음 3장7~10절). 요한의 발언은 ‘예수 당시’뿐 아니라 ‘요즘 시대’까지 겨냥한다. 어쩌면 우리야말로 ‘뱀의 자식들’이다. ‘천국행 티켓’을 얻고자 교회에 가고, 몸에 물만 묻히는 세례를 받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떡해야 할까. 뱀의 허물을 벗으려면 말이다.

요아킴 파티나르(1480~1515)의 작품 ‘그리스도의 세례’.

예수 머리 위로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로 내려오고 있다.

사해에서 요르단 강가로 이동했다. 강 폭이 그리 넓지는 않았다. 요한은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는 왜 “뱀의 자식들!”이라고 불렀을까. 이유가 있다. 아담과 이브는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었다. 선악과는‘쪼갬’을 상징한다. 그걸 먹고나서 인간은 세상을 쪼개기 시작했다. 선과 악으로 쪼개고, 나와 너로 쪼개고, 이편과 저편으로 쪼개고, 자본가와 노동자로 쪼개고, 보수와 진보로 쪼갠다. 그들을 향해 세례 요한은 “뱀의 자식들!”이라고 윽박질렀다. 왜 그랬을까. 선악과(善惡果)는 원래 한 덩어리의 열매였다. 거기에는 쪼갬이 없었다. 아담과 이브가 그걸 먹으면서 선과(善果)와 악과(惡果)로 쪼개졌다. 그때부터 사람은 둘로 나누기 시작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높은 것과 낮은 것, 선과 악, 자랑스러운 것과 부끄러운 것. 세상 모두를 그렇게 둘로 쪼갰다.

그때 하느님이 아담을 찾았다.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 아담은 앞으로 나설 수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성서에는 ‘부끄러움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기록돼 있다. 그게 쪼갬의 결과물이다. 그걸 안고선 ‘신의 속성’과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아담은 하느님 속으로, ‘신의 속성’ 속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하나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루벤스의 작품 ‘낙원의 아담과 이브’. 이브가 선악과를 따서 아담에게 건네고 있다.

예수도 갈릴리 호숫가에서 똑같이 말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태복음 4장17절) 요한이 세례를 주었다고 전해지는 장소에 섰다. 궁금했다. ‘회개하라’의 뜻은 뭘까. 그저 “잘못했다”고 뉘우치는 게 ‘회개’일까. 당시 예수의 직설은 무엇이었을까. 예수는 왜 회개와 함께 하느님 나라가 온다고 했을까.

예수 당시 지중해 지역의 공용어는 그리스어였다. 신약성서는 그리스어로 처음 기록됐다. ‘회개하라’는 그리스어로 ‘메타노이아(metanoia)’다. 도올 김용옥은 그걸 ‘회심(回心)’으로 번역했다. ‘마음의 방향을 튼다.’ 반면 예수가 실제 사용한 언어는 아람어였다. ‘메타노이아’에 해당하는 아람어는 ‘타브(tab)’다. ‘회복하다/돌아오다’란 뜻이다. 그럼 무엇을 회복하는 것일까. 예수는 대체 어디로 돌아오라고 한 걸까.

수년 전이었다. 네팔에서 나이 지긋한 힌두교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의 이마에 붉은 점이 하나 찍혀 있었다. “그게 뭐냐?”고 물었다. 그는 “제3의 눈”이라고 했다. “‘제3의 눈’이 뭡니까?”하고 다시 물었다. 그는 ‘마음의 눈’”이라고 답했다. 그랬다. 그들이 이마를 붉게 물들이며 그토록 간절히 구하는 건 ‘마음의 눈’이었다. 그게 누구의 마음일까. 지지고 볶는 ‘나의 마음’일까. 아니었다. 그건 ‘신의 마음’이었다. 그들이 구하는 ‘제3의 눈’은 다름 아닌 ‘신의 눈’이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럼 ‘예수의 눈’은 어떤 건가.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이게 예수의 눈이다. 우리의 눈은 다르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늘 불행해 보인다. 안타깝고 없어 보일 뿐이다. 그래서 채우려 한다. 하고 싶고, 되고 싶고, 가지고 싶은 무언가로 채우려 한다. 그렇게 마음이 ‘가짐’으로 가득한 부자가 될 때 행복하다고 여긴다. 그게 우리의 눈이다.

그런 우리를 향해 예수가 외친다. “마음의 눈을 돌려라. 하느님 나라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는 그렇게 역설한다. 결국 ‘회개하라’ ‘눈을 돌리라’는 뜻이다. 관점을 돌리라는 말이다. ‘나의 눈’에서 ‘신의 눈’으로 바꾸라는 의미다. 왜일까.거기에 자유와 평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게 ‘하느님 나라’이니까.

헤롯 안티파스의 생일 잔치에서 농염한 춤을 추는 살로메. 구스타프 모로(1826~1898)의 작품 ‘환영’의 일부.

세례 요한의 최후는 참담했다. 당시 그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추종자들도 많았다. 이 때문에 세례 요한을 ‘반체제 인사’로 분류하는 이들도 있다. 요한은 유대의 지배자를 향해서도 직설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당시 유대의 왕은 헤롯 안티파스였다. 그는 이복형제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했다. 요한은 “동생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수차례 지적했다. 헤롯은 결국 요한을 체포했다. 그러나 요한이 두려워 어쩌지를 못하고 있었다. 마침 헤롯의 생일 잔치가 열렸다.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첫 남편의 딸)는 춤을 추었다. 다들 감탄했다. 헤롯은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말해라. 맹세하건데, 네가 말만 하면 내 왕국의 반이라도 주겠다”(마가복음 6장22~23절)고 말했다. 어머니에게 달려간 살로메가 돌아와 말했다.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주세요.”(마가복음 6장25절) 헤롯 왕은 손님들 앞에서 체면을 구기고 싶지 않았다. 결국 사형이 집행됐다. 쟁반에 담긴 세례 요한의 목이 살로메에게 전달됐다.

베르나르도 루이니(1481?~1532)의 작품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지닌 살로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유디트Ⅱ(살로메)’.

화가들은 살로메를 종종 ‘팜므 파탈의 상징’으로 쓴다. 아일랜드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희곡 ‘살로메’에서 세례 요한의 죽음을 변주했다. 살로메는 세례 요한에게서 키스를 거절당하자 그의 머리를 요구했다. 결국 목이 잘린 요한의 머리를 움켜쥐고 살로메는 키스를 한다. 구스타프 클림트도 ‘유디트Ⅱ(살로메)’라는 작품에서 ‘세례 요한의 죽음’을 다루었다. 가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살로메의 창백한 얼굴 밑으로 독기와 욕망이 고여 있다. 화려한 팔찌에 감긴 살로메의 손이 세례 요한의 머리를 틀어쥐고 있다.

요르단강은 지금도 흐른다. 예수의 메시지도 마찬가지다. 2000년 세월을 관통하며 지금도 흐른다. ‘세례 요한의 죽음’은 예수에게도 위협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를 가리켜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마가복음 6장14절)고도 했다. 헤롯 왕도 이 소문을 들었다. 그러니 어떤 화가 예수에게 닥칠지 모를 일이었다.

로마 시대의 유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37?~100?)는 역사서에서

세례 요한이 요르단강에서 24㎞ 떨어진 마케루스 요새에서 처형당했다고 기록했다.

예수는 조용히 유대 광야를 떠났다. 그리고 고향인 갈릴리 지역으로 향했다. 버스도 광야를 떠났다. 예수가 태어난 나사렛, 그리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갈릴리 지역으로 향했다. 차창 밖에는 여전히 요르단강이 흘렀다. 세례 요한의 외침이 울렸다. “마음의 눈을 돌려라. 하느님 나라가 바로 여기에 있다.”

[출처]: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 <예수를 만나다> -3.예수가 말한 '회개'는 그게 아니었다/ 중앙일보, 2016. 1. 20.

4.예수보다 더 강한 나만의 신은 누구?

버스는 광야를 떠나 갈릴리 지역으로 향했다. 창밖에는 척박한 풍경이 펼쳐졌다. 중간 중간 오아시스 마을도 보였다. 예수도 이 길을 걸었을까. 홀로 요르단 강의 물소리를 들으며 터벅터벅 걸었을까. 이 땅을 지나 갈릴리로 갔을까. 아니면 반대편인 서쪽으로 갔을까. 세례 요한의 죽음으로 위협을 느낀 나머지, 유대인들이 꺼리는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했을까. 그 길로 고향 나사렛으로 갔을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전에 예수의 얼굴을 미리 연습한 파스텔화.

두 눈을 감다시피한 예수의 얼굴에서 어쩐지 외로움이 읽힌다. 브레라 미술관 소장.

예수는 외로웠을 터이다. 누구도 예수의 ‘주인공’을 알지 못했다. 그의 내면에 깃든 ‘신의 속성’을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나사렛에 사는 요셉의 아들, 목수 일을 하는 청년으로만 여겼다. 세례 요한은 달랐다. 그는 안목이 있었다. 광야에서 예수가 세례를 청했을 때 요한은 “세례를 받아야 할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접니다”(마태복음 3장14절)라고 사양했다.

중국 춘추시대였다. 백아(伯牙)는 거문고의 명수였다. 그의 소리를 알아주는 친구가 종자기(鐘子期)였다. 백아가 거문고로 높은 산과 큰 강을 연주하면 종자기는 여지없이 읽어냈다. “하늘 높이 솟은 게 마치 태산(泰山)같다.” 가락으로 강물을 읊어도 읽어냈다. “넘칠 듯 넘칠 듯이 흘러가는 게 황화(黃河) 같다.” 둘은 통했다. 그러다 종자기가 병으로 먼저 죽었다.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었다. 다시는 연주를 하지 않았다. 그게 ‘백아절현(伯牙絶絃)’이다. ‘마음의 소리’를 아는 이, 즉 ‘지음(知音)’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갈릴리로 가던 밤, 예수는 달을 보며 세례 요한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그의 죽음을 애달파 하지 않았을까.

이경윤(1545~1611)의 작품 ‘월하탄금도(月下彈琴圖)’. 달밤에 선비가 줄 없는 거문고를 타고 있다.

예수 당대에는 그의 설교를, 그의 노래를, 그의 진가를 진정으로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예수도 그렇게 ‘줄 없는 거문고’를 타는 심정이었을까. 고려대박물관 소장.

예수에게 세례 요한은 ‘지음(知音)’이었다. 오직 요한만이 예수가 ‘신을 품은 인간’임을 알았다. 예수의 제자들도 몰랐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둘 때도 제자들은 몰랐다. 예수가 진정 누구인지. 그의 내면에 무엇이 깃들어 있는지. 그러니 예수는 외롭지 않았을까. 자신의 가락을 알아주던 세례 요한이 죽었으니 말이다. 기록에는 없지만 세례 요한은 예수에게 숱한 질문을 퍼붓지 않았을까.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신의 속성’에 대해서 온갖 물음을 던지지 않았을까. 예수는 또 반가운 마음으로 일일이 일러주지 않았을까. 마치 백아와 종자기가 ‘마음의 소리’를 주고 받았듯이. 그런데 예수는 달랐다. 거문고의 줄을 끊지 않았다. 갈릴리로 가서 오히려 더 많은 가락을 연주했다. 자신의 내면에 깃든 ‘하느님 나라’를 풀어서 메시지로 펼쳤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작품 ‘그리스도의 세례’일부.

세례 요한은 예수의 주인공을 아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뭔가 이상했다. 차창 밖 사막 특유의 건조한 풍광이 변하기 시작했다. “뭐가 달라진 거지?” 버스가 북쪽으로 달릴수록 초록의 점들이 하나씩 둘씩 더 보였다. 나무도, 풀도, 꽃도 조금씩 더 보였다. 이스라엘은 광야와 따가운 햇볕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위로 갈수록 나무도, 꽃도 푸르게 살아났다. “아, 이 땅에도 생기가 도는구나!”갈릴리 지역에 들어섰을 때는 두 눈을 비벼야 했다. 믿기지 않았다. 거기는 푸르디푸른 ‘제주도’였다. 커다란 호수, 풀이 무성한 언덕, 울창한 나무들. 정말 가슴 밑바닥까지 초록이 밀려왔다.

버스에서 내렸다. 바람이 상쾌했다. 성서에서 숱하게 들은 이름, 갈릴리 호수. 나는 입이 쩍 벌어졌다. 갈릴리 호수가 그렇게 큰 줄 몰랐다. 육안으로 보기에는 호수보다 바다에 훨씬 더 가까웠다. 영어 이름도 ‘Sea of Galilee’(갈릴리 바다)다. 동서 폭이 14㎞, 남북의 길이는 무려 21㎞다. 넓이는 170㎢. 호수 둘레를 한 바퀴 도는 건 63㎞. 그만큼 컸다. 그제야 이해가 갔다. 왜 북쪽으로 올라올수록 초록이 더 많아졌는지 말이다. 갈릴리 호수에서 우러나는 생명의 기운 때문이었다. 요르단 강의 수량(水量)도 호수에 가까워질수록 더 풍부했다.

갈릴리 호수는 바다라는 느낌이 들 만큼 컸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거리가 63㎞다.

갈릴리 호수 일대에는 작은 마을들이 있었다. 조그만 회당도 있었다. 유대인이 안식일에 모여 신앙 활동을 하는 곳이다. 구약에서 하느님은 천지를 창조하고 마지막 7일째 쉬었다고 한다. 일·월·화·수·목·금 그리고 토요일이다. 유대교에선 마지막 7일째가 토요일이다. 그래서 안식일도 토요일이다. 예수는 유대인이었다. 그는 토요일에 회당을 찾았다. 유대인들이 그곳에 모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설교를 했다. 주제는 ‘하느님 나라’였다. 예수는 자기 내면에 흐르는 ‘신의 속성’을 풀었다. 나와 세상과 우주가 어떻게 숨을 쉬고, 어떻게 맞물려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이치를 설했다. ‘하느님 나라’가 무엇이고, 그걸 품으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아주 쉬운 말로 설했다.

예수가 설교했던 나사렛의 유대 회당. 작은 목소리로 말해도 강당처럼 소리가 크게 울렸다.

예수의 설교는 명쾌했다. 막힘이 없었다. 사람들의 가슴은 시원하게 뻥 뚫렸다. 성서에는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율법학자들과 달리 그분의 가르침에는 권위가 있었다’(마가복음 1장22절)고 기록돼 있다. ‘권위’라는 게 어떤 걸까. 그건 어떨 때 생겨나는 걸까. 마음으로 끄덕이는 ‘권위’는 쉽사리 생기지 않는다. 가르침이 이치의 심장을 관통할 때 비로소 ‘권위’가 생겨나는 법이다.

호숫가를 걸었다. 예수의 고향은 갈릴리에서 멀지 않다. 나사렛에서 자란 예수도 종종 이곳을 찾았을 터이다. ‘이 커다란 호수와 푸른 나무들, 갈대가 가득한 언덕, 바람과 함께 철썩대는 파도. 그 모두가 예수에게 말을 걸었겠지. 어린 예수, 청년 예수, 장년 예수는 모두 갈릴리의 추억을 가지고 있었겠지. 이곳에서 자연의 숨결을 익혔겠지. 그 안에 깃든 신의 숨결도 보았겠지.’ 갈릴리의 풍성한 물과 푸른 나무는 예수에게 또 하나의 고향이 아니었을까. 정겨운 일화가 성서에 한 토막 있다. 예수가 고향 나사렛에 머물 때였다. 그날도 예수는 회당에서 가르침을 펴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동생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회당 밖에서 사람을 보내 예수를 불렀다.(마가복음 3장31절) 나는 눈을 감고 그 광경을 그려본다. 혹시 그때가 저녁 무렵은 아니었을까. 성서에 기록된 게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은 아니었을까. “예수아! 밥이 다 됐어. 집에 와서 식사해!” 그런 전갈은 아니었을까. ‘예수(Jesus)’의 이름은 아람어로 ‘예수아(Yeshua)’다. 이런 광경을 그려보면 왠지 가슴이 따듯해진다. 예수가 우리가 사는 동네 골목에서도 마주칠 수 있는 ‘친근한 누군가’로 다가온다.

로베르 캉팽의 1430년 작 ‘난로 가리개 앞에 있는 성모자’.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1628년 작 ‘이집트 피신 중 휴식’. 마리아가 아기 예수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마리아는 ‘신의 어머니’란 이유로 오랫동안 거룩한 모습만 그려졌다. 나중에 신을 품은 인간 예수의

면모가 부각되면서 마리아도 인간적인 모습으로 묘사됐다. 파리 루브르박물관 소장.

전갈은 예수에게 갔다. “선생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밖에서 찾고 있습니다”(마가복음 3장32절). 예수는 사람들에게 되물었다. “누가 내 어머니이고, 누가 내 형제라고 생각하는가?” 사람들은 멀뚱멀뚱한 눈으로 예수를 쳐다봤을 터이다. 예수는 자신을 빙 둘러싼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마가복음 3장35절)

예수의 답은 파격이었다. 그건 하느님 나라의 문을 열고, 그 속성을 공유하는 이의 답이었다. 갈릴리 호숫가에 섰다. 예수의 ‘물음’이 가슴에 꽂혔다. “누가 나의 어머니고, 누가 나의 형제인가.” 예수의 ‘답’도 가슴에 꽂혔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이들이 내 형제다.” 왜 그리 묻고, 왜 그리 답했을까. 예수의 눈에는 왜 그렇게 보였을까. 신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누구일까. 그들은 신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나는‘순종’이라는 말을 안고 눈을 감았다.

‘하느님 뜻에 순종하는 사람’. 무슨 뜻일까.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하고,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게 순종일까. 아니면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는 게 순종일까. 그도 아니면 신학교를 나와서 사제가 되고, 수녀가 되고, 목회자가 되는 게 순종일까. 대체 예수가 말한 ‘순종’은 무엇일까. 답은 멀리 있지 않다. 문제 속에 답이 있다. 답과 문제는 한 몸이니까. 그럼 ‘순종하는 사람’ 대신 ‘순종하지 않는 사람’을 먼저 찾으면 된다. 하느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 그들은 누구일까. 우리는 착각한다. 나와 종교가 다르고, 나와 교단이 다른 사람들이라 본다. 과연 그럴까. 모세가 받은 십계명 중 하나는 ‘우상을 섬기지 마라’다. 흔히 불상에 절을 하거나, 금으로 만든 송아지 따위를 모시는 걸 우상이라 여긴다. 십계명에 담긴 의미는 그리 간단치 않다. ‘하느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디에 순종할까. 하느님 뜻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절대자 위의 파워’는 대체 뭘까.

니콜라 푸생의 17세기 작품 ‘금송아지 숭배’. 모세가 시나이 산으로 간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를 했다.

광야에서 자신들을 이끌어 줄 신으로 섬겼다.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우리는 신을 섬긴다는 명분으로 수시로 ‘나’를 섬긴다. 나의 기대, 나의 성공, 나의 욕망이 성취되게끔 하느님이 일하기를 바란다. 내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게 아니라, 하느님이 ‘나의 뜻’을 따르기를 바란다. 그걸 위해 기도까지 한다. “~하게 해주십시오!” “제발 ~가 되게 해주세요!” 그러니 누가 누구를 섬기는 걸까. 내가 하느님을 섬기는 걸까, 아니면 하느님이 나를 섬기는 걸까. 십계명에서 경고한 ‘우상’은 멀리 있지 않다. 아주 가까이 있다. 하느님보다 더 강력하게, 더 열정적으로 섬기는 ‘나만의 신’. 그게 대체 누구일까. 그렇다. 그게 바로 ‘나’다. 하느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이들도 ‘나의 뜻’에는 순종한다. 그러니 법당에 앉아 있는 불상이 우상이 아니다. 내가 바로 우상이다. 신의 뜻을 가리는 ‘나의 뜻’이야말로 진정한 우상이다. 그래서 예수는 아람어로 “타브(tab)!”라고 했다. 그리스어로 “메타노이아(metanoia)!”다. ‘마음의 눈을 돌리라’는 뜻이다. ‘나의 눈’에서 ‘신의 눈’으로 돌리라고 했다.

그리스 아테네에 간 적이 있다. 30년째 거기서 사는 한국 여성을 만났다. 남편은 그리스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리스 정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궁금해서 물었다. “이곳 사람들의 신앙은 다른 점이 있나?” 그녀는 며칠 전 참석한 교회 장례식 이야기를 했다. “평소 잘 알던 이웃이 자식을 잃었다. 교통사고였다. 우리 같으면 하느님께 따지지 않겠나. 울고불고 매달리지 않겠나. 왜 내 자식을 데려가시냐고. 다시 살려 달라고. 그런데 여기는 다르다. 받아들이는 방식이 놀랍도록 차분하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모르는 하느님의 뜻이 뭔가’를 묻는다. 자식의 죽음 앞에서도 말이다. 이곳에 산 지 30년이 됐지만 나는 지금도 놀랍다.” 전통이다. ‘나의 뜻’을 관철시키는 게 아니라 ‘신의 뜻’을 묻는 그리스도교의 고귀한 전통이다. 그 전통의 출발점은 예수다. 그런데 왜 뒤바뀌었을까. 우리는 왜 ‘나의 뜻’이 이루어질 때만 ‘신의 뜻’이 성취됐다고 여기는 걸까. 축구 경기를 할 때도 내가 골을 넣을 때만 하늘을 향해 기도를 하는 걸까. 왜 내가 골을 먹을 때는 하늘을 향해 기도를 하지 않는 걸까. 감사의 기도는 내 마음대로 될 때만 올리는 걸까.

렘브란트의 1659년작 ‘십계명 돌판을 집어던지는 모세’. 사람들이 우상숭배 하는 걸

본 모세는 십계명이 새겨진 석판을 집어던졌다. 베를린미술관 소장.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십계명 중 하나다. 사람들은 이걸 두고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계명’이라고 말한다. 이 구절로 인해 역사 속의 그리스도교는 다른 종교를 공격하고 배척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다일까. 십계명의 뜻은 여기서 그치는 걸까. 호수에 파도가 일었다. 갈릴리의 바람과 함께 나는 눈을 감았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 여기에는 더 깊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인도의 붓다는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었다고 한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어떻게 갓 태어난 아기가 일곱 걸음을 걸을 수 있을까. 그런데 이 일화에 담긴 메시지는 진실이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건 이적을 일으켰느냐는 사실 여부가 아니다. 그 일화에 담겨 있는 이치(메시지)의 진실성이다. 그런 이치가 우리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유롭게 한다. 아기 붓다는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 이 우주에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 사람들은 말한다. “너무 오만한 것 아닌가. 자신만이 최고라니. 그건 너무 배타적인 것 아닌가.” 왜 ‘유아독존’일까. 왜 붓다만이 존귀하다고 했을까.

붓다가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걷고 있다. 뒤에는 어머니 마야 부인이 서있다.

이 일화는 ‘붓다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되묻고 있다.

죽도록 보수를 따지고, 죽도록 진보를 따지는 이들은 안목이 좁다. 눈이 프레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꿰뚫어 알맹이를 보는 이들은 다르다. 보수와 진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무엇이 우리 모두를 위한 최선인가?’에 방점을 찍는다. 진보와 보수는 일종의 방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어느 한쪽의 시각일 뿐이다. 그래서 전체를 담지는 못한다. 진보가 진보를 놓고, 보수가 보수를 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틀에 갇히지 않고 오가게 된다. 그때는 알게 된다. 둘의 바탕이 실은 하나임을 말이다. 그걸 꿰뚫는 이들의 눈은 남다르다. 넓고도 깊다.

예수도 그랬다. 예수의 눈은 무한히 넓고, 무한히 깊었다. 왜 그럴까. 예수의 주인공은 껍데기로 보이는 나사렛의 목수가 아니었다. 그 안에 깃든 ‘신의 속성’이었다. 하느님이 인간을 지을 때 속을 채웠다는 ‘신의 속성’말이다. 그게 ‘아담의 아들’이라 자처한 예수의 주인공이다. 예수는 그걸 회복하라고 했다. 그걸 위해 하느님께 순종하라고 했다. 나의 고집이 하나씩 둘씩 모두 무너지면 결국 무엇이 남을까. 그렇다. 신의 속성만 남는다. 하느님의 속성만 남는다. 거기가 ‘하느님 나라’다. 그 나라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뛰어넘어 이 우주에 가득하다. 오직 그것만 있다.

그래서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다. 섬기려야 섬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그것만 있으니까. 그걸 붓다는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고 표현했다. 오직 그것만이 존귀하니까. 그러니 십계명의 구절도, 붓다의 말도 배타적이 아니다. 오히려 통합적이다. 둘로 쪼개는 게 아니라 하나로 모은다.

그 눈으로 예수는 물었고, 그 눈으로 예수는 답했다. “누가 나의 어머니고, 누가 나의 형제인가. 이들이 내 어머니고, 이들이 내 형제다.” 겉모습은 분명 둘이다. 너와 나가 다르고, 남자와 여자가 다르고, 보수와 진보가 다르다. 그러나 바탕은 둘이 아니다. 각자의 에고가 무너지면 ‘신의 속성’이 드러난다. 거기서 하나가 된다. 신을 품은 예수의 눈에는 모두가 하나였다.

갈릴리 호숫가에는 군데군데 마을이 있다. 저녁 무렵이 되면 산 아래와 중턱의 마을에 불이 켜진다.

갈릴리 호수에 노을이 붉게 내렸다. 하나ㆍ둘ㆍ셋…. 멀리 산 중턱 마을에 불이 켜졌다. 바람이 차가웠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소를 향해 발을 뗐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그런데도 우리는 한 눈을 판다. 자꾸만 ‘다른 신’을 섬긴다. 그 신의 이름은 바로 '나'다. 나의 고집, 나의 집착, 나의 욕망을 버무려 자꾸만 ‘나’라는 신을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그 신을 숭배한다. 그게 나의 눈이다. 호수의 수면 위로 메아리가 울린다. 가슴을 때리며 쿵쿵 울린다. 하늘이 묻는다. "나 외에 다른 신이 누구인가. 나 외에 다른 신이 누구인가.”

[출처]: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 <예수를 만나다> -4.예수보다 더 강한 나만의 신은 누구?/ 중앙일보, 2016. 1. 27.

5.예수는 왜 사람을 낚으라고 했을까

동이 텄다. 갈릴리 호숫가로 갔다. ‘이토록 삭막한 땅에 어떻게 이토록 큰 호수가 있을까.’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었다. 호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물이 차가웠다. 느껴보고 싶었다. 2000년 전 예수도 맛 보았을 호수의 숨을 말이다. 예수는 이 주변을 걷다가 어부들을 만났다. 시몬(베드로)과 안드레였다. 예수가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복음 4장19절) 그 말을 듣고 둘은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

두초 디 부오닌세냐의 1308~11년작 ‘베드로와 안드레의 부르심’.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소장.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고 있다. 예수는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한다.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 의미를 묻듯이 바라보고 있다.

발바닥에 뭔가 밟혔다. 미끈했다. 돌멩이 같았다. 손으로 집었더니 조개였다. 유대인은 율법에 따라 조개를 안 먹는다. 조개뿐만 아니다. 새우와 오징어 등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수산물도 먹지 않는다. 또 발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하는 동물의 고기만 먹는다. 그래서 돼지고기는 안 먹는다. 유제품을 먹을 때도 엄격하다. 치즈와 버터, 우유 등 소에서 나오는 유제품은 쇠고기와 함께 먹을 수가 없다. 아침에 숙소에 차려진 간단한 뷔페 식단도 그랬다. 요구르트와 치즈, 우유는 있었지만 쇠고기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저녁 식단은 그 반대였다. 쇠고기는 있지만 우유나 치즈는 없다. 이런 식으로 지켜야 하는 유대인의 율법이 무려 613개다. 그래서일까. 호수 바닥에는 조개가 지천이었다. 조개 껍질을 손으로 문질렀다. 무슨 뜻일까. ‘사람 낚는 어부(Fishers of men)’. 예수가 말한 ‘사람을 낚다’의 의미는 대체 뭘까.

마르코 바사이티의 1510년작 ‘제베대오의 아들들을 부르심’. 베니스 아카데미 미술관 소장.

예수 곁에 베드로와 안드레가 서 있다. 야고보가 무릎을 꿇고 있고, 예수가 가장 사랑한 제자 요한이 뒤를 따르고 있다.

그들은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 그들이 버린 그물은 무엇이었을까.

도식적으로 풀면 간단하다. 전도를 많이 하고, 선교를 많이 해서 교회 신자 수를 늘리는 일이다. 사람들은 그게 ‘사람 낚는 어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ㆍ둘ㆍ셋 세면서 ‘내가 전도한 숫자’에 열을 올린다. 훈장이라도 세듯이 말이다. 어떤 교회에서는 정해진 숫자를 채우는 게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는 필수조건이다. 예수의 메시지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었을까.

호수의 물결이 무릎에서 찰랑거렸다. 곰곰이 생각했다. 갈릴리 호수에 처음 나타난 ‘사람 낚는 어부’는 누구였을까. 그랬다. 그건 예수였다. 예수야말로 그런 어부였다. 그럼 예수는 어떻게 고기를 잡았을까. 그의 그물은 어떻게 생겼을까. 성서에는 ‘예수의 낚시법’이 비유적으로 표현돼 있다. 예수는 말한다. “내가 너희 안에 거하듯,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요한복음 15장4절) 그게 예수의 낚시법이다.

갈릴리 호수에 파도가 치고 있다. 이곳에서 물고기를 낚던 제자들에게 예수는 “사람을 낚으라”고 말했다.

우리는 묻게 된다. 인생에서 내가 낚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건지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낚는 어부인가.

겉으로만 보이는 예수가 다가 아니다. 예수의 주인공은 ‘신의 속성’이다. 그 속성이 말한다. “내가 너희 안에 거하듯!” 그렇다. 신의 속성은 지금도 거(居)한다. 차별 없이 내리는 햇볕처럼. 내 안에도, 당신 안에도, 우리 안에도, 그들 안에도 거한다. 왜 그럴까. 하느님은 아니 계신 곳 없이 계시기 때문이다. 이 무한한 우주에 한 치의 틈도 없이 신의 속성은 가득하다. 그 ‘하나’뿐이다. 그래서 개신교는 하느님을 ‘하나님’이라 부른다. 오직 그 하나만 있으니까.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정말 하나라면 예수가 굳이 낚시를 할 이유는 없다. 모두가 하나인데 굳이 그물을 던질 까닭도 없다. 그런데 예수는 그물을 던졌다. 왜 그럴까. ‘착각’ 때문이다. 하나인데 하나인 줄 모르는 우리의 ‘착각’ 때문이다. ‘신의 눈’이 ‘에고의 눈’으로 바뀌면서 생겨난 거대한 착각이다. 예수는 그 착각을 깨라고 했다. 그걸 깨기 위해 눈을 바꾸라고 했다. “내가 너희 안에 거하듯,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 ‘에고의 눈’을 ‘신의 눈’으로 바꾸려면 우리가 거하는 곳도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배를 저으라고 했다. 깊은 곳으로 가라고 했다. 그물을 내릴 장소를 바꾸라고 했다.

마르크 샤갈의 작품 ‘인간창조’. 프랑스 니스 박물관 소장.샤갈은 “젊었을 때부터 나는 ‘성서’에 사로잡혔다.

성서는 내게 가장 위대한 시정(詩情)의 원천이다”고 말했다. 하느님이 방금 창조한 아담을 천사가 안고서 날고 있다.

샤갈은 유대교인이었다. 유대교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가 그려져 있다.

샤갈의 열린 마음이 보인다.

하느님이 인간을 지을 때는 달랐다. 그때는 하나였다. 하느님이 아담 안에 거했고, 아담이 하느님 안에 거했다. 둘의 속성은 하나였다. 그때는 ‘착각’도 없었다. 선악과를 먹으면서 틈이 생겼다. 아담은 더 이상 하느님 안에 거하지 않았다. 대신 ‘나’라는 에고 속으로 거했다. 그때부터 아담은 ‘신의 눈’이 아니라 ‘에고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눈이 바뀌자 에덴 동산도 사라졌다. ‘하느님 나라’가 사라졌다. 에덴 동산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아담과 이브가 산 넘고 물 건너 거주지를 옮긴 게 아니다. ‘신의 속성’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아담은 에덴에서도 벗어났다. 속성이 같으면 하나가 되고, 속성이 다르면 둘이 된다. 그게 추방이다. 그러니 에덴동산이 그 옛날 아프리카의 어디쯤이니, 아시아와 유럽의 어디쯤이니 따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사쵸디 산 지오바니의 1427~28년 작 ‘낙원에서의 추방’.

아담과 이브는 신의 속성을 잃을 때 낙원을 보는 눈도 잃었다.

어쩌면 우리는 낙원에 살면서도 낙원을 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만약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가 추방 당하지 않고 계속 머물렀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낙원의 삶을 살았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신의 눈’을 잃어버렸다. 더 이상 에덴의 삶을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예수는 말했다. “마음의 눈을 돌려라. 하느님 나라가 바로 여기에 있다.”(마태복음 4장17절) 그게 예수의 낚시다. ‘사람 낚는 어부’에는 그런 뜻이 담겨 있다. 나의 눈을 덮고 있는 ‘에고의 비늘’을 벗기고, 태초의 아담이 가졌던 ‘신의 눈’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러니 전도를 많이 해서 우리 교회 신자 수를 늘리는 걸 ‘사람 낚는 어부’와 동일시한다면 곤란하다. 그건 예수의 뜻을 너무 얕게 해석하는 셈이다. 그보다는 스스로 물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진정으로 예수에게 낚였는가. 다시 말해 나는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나. 나의 눈인가, 아니면 신의 눈인가. 그걸 물어야 하지 않을까.

갈릴리 호숫가는 아름답다. 꽃과 풀과 나무가 생기를 뿜어낸다. 예수는 저 어디쯤으로 배를 저어가라고 했을까.

갈릴리 호숫가를 걸었다. 산책로가 좋았다. 한 바퀴 도는 데만 63㎞다. 자전거를 빌리면 하루 코스다. 예수는 갈릴리 일대에서 주로 활동했다. 이곳에는 어부들이 많았다. 당시 많은 사람이 예수에게 모였다.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예수의 메시지를 가슴에 담았다. 그 장소가 여기 어디쯤이었을까. 예수는 배에 올라타 해안에서 약간 떨어진 뒤, 배를 설교단 삼아 가르침을 펼쳤다.(누가복음 5장3절) 설교를 마쳤을 때 예수가 시몬에게 말했다. “깊은 데로 저어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누가복음 5장4절) 한글 성서에는 이렇게 번역돼 있다. 신약성서는 처음에 그리스어로 기록됐다. 그리스어를 영어로 직역한 성서는 더 구체적이다. “Back up into the depth, and lower your nets for a catch. (깊은 곳으로 다시 돌아오라. 그리고 그물을 내려서 잡아라)”(누가복음 5장4절) 예수는 말했다. “깊은 곳으로 다시 돌아오라.” 예수는 왜 “깊은 곳으로 가라”고 하지 않고 “깊은 곳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했을까. ‘돌아오다’는 그리스어로 ‘epanago(에파나고)’다. 그곳은 어디일까. 혹시 우리는 한때 그곳에 머문 적이 있었던 걸까. 그래서 예수는 “다시 돌아오라”고 한 걸까.

예수가 말한 ‘깊은 곳’은 멀지 않다. 그것은 ‘내 안’에 있다. 그러니 언제든지 배를 저어서 갈 수가 있다.

라파엘로 산치오의 1515년작‘고기잡이 기적’.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미술관 소장.

바람이 불었다. 고개를 들었다. 푸른 호수에, 푸른 하늘에, 푸른 바람. 가슴이 탁 트였다. 예수는 갈릴리 호수 저 어디쯤으로 배를 옮기라고 했을까. 성서에는 배를 옮겨 그물을 내렸더니 물고기가 한가득 잡혔다고 기록돼 있다. 그럼 예수는 단지 고기 잡는 포인트를 알려 준 걸까. 그뿐일까. 그리스어 성서에서 ‘깊은 곳’에 해당하는 단어는 ‘바소스(Bathosㆍβαθοζ)’다.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는 ‘바소스’라는 단어에 ‘바닥이 없는 심연’이란 뜻이 있다고 했다. 그럼 예수는 왜 ‘바닥이 없는 심연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한 걸까. 그리고 거기서 그물을 내리라고 했을까. 예수가 말한 ‘깊은 곳’은 대체 어디일까. 호숫가 언덕의 풀밭에 앉았다. 세상 모든 것에는 ‘바닥’이 있다. 끝이 있다. 다시 말해 유효기간이 있다. 길바닥의 돌도, 거리의 나무도, 하늘의 해도, 밤이 되면 솟는 달도, 인간의 육신도 다 유효기간이 있다. 시간이 다하면 소멸하게 마련이다. 그럼 바닥이 없는 건 대체 뭘까.

마르크 샤갈의 1933년 작 ‘고독’. 한 유대인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그는 자신의 심연으로 찾아가는 중일까. 바닥이 없는 하늘에서 천사가 날고 있다.

“깊은 곳으로 가라”는 예수의 말을 듣고 시몬(베드로)이 답했다.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누가복음 5장5절) 그렇다. 우리는 밤새도록 그물을 내린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그물을 내린다. 돈을 건지고, 명예를 건지고, 권력을 건진다.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한다. 그런데 그 모든 물고기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결국 소멸하고 만다. 그러니 밤새도록 그물을 내리고, 밤새도록 그물을 올려도 허전할 뿐이다. 결국 알게 된다. 시몬(베드로)의 말처럼 ‘한 마리도 잡을 수 없다’는 걸 말이다.

불교에서는 그런 물고기를 ‘색(色ㆍ물질과 감정)’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색(色)을 붙들지 마라”고 한다. 모든 물고기는 사라지는 법이니까. 그래도 우리는 ‘색(色)’을 움켜 쥔다. 그게 전부라고 여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 놈의 물고기(色)는 잡으면 사라지고, 잡으면 사라지고, 잡으면 또 사라진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 세게 거머쥔다. 물고기가 사라지면 다른 물고기를 찾고, 사라지면 또다른 물고기를 찾는다. 결과는 똑같다. 결국 한 마리도 잡을 수가 없다. 대신 ‘사라지는 물고기’의 정체를 뚫으면 달라진다. 공(空)이 드러난다. 아무 것도 없는 공이 아니다. 이 우주를 다 채우는 공이다. 거기에는 소멸이 없다.

예수는 깊은 곳으로, 바닥이 없는 심연으로 오라고 했다. 거기가 어디일까. 이 우주를 통틀어 바닥이 없는 곳은 딱 하나다. ‘없이 계신 하느님.’ 거기에는 바닥이 없다. 그게 바로 ‘신의 속성’이다. 예수는 “거기로 가라”고 하지 않았다. “거기로 다시 돌아오라”고 했다. 왜 그랬을까. 우리가 거기서 왔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 아담의 아들이다. 하느님이 코숨으로 ‘신의 속성’을 불어넣은 아담의 자식이다. 그래서 예수는 우리 안에 잠자는 심연으로, 신의 속성으로, 그 깊디 깊은 곳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했다.

미켈란젤로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의 일부.

하느님은 코숨으로 아담에게 ‘신의 속성’을 불어넣었다.

예수 당시 갈릴리 호숫가에는 소외된 사람들이 있었다. 아픈 사람들과 가난한 이들이 많았다. 이스라엘은 폭염이 작열하는 사막 기후다. 물도 충분하지 않다. 갈릴리 호수의 풍성한 자연 자체가 그들에게는 둘도 없는 요양지였을 터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병을 죄와 연결해서 받아들였다. 특히 한센병(나병)은 더 그랬다. 자신의 큰 죄로 인해 큰 병에 걸렸다고 여겼다. 예수가 갈릴리에 있을 때였다. 온몸이 나병에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말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누가복음 5장12절) 예수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댔다. “내가 원한다. 깨끗하게 되어라”(누가복음 5장13절) 성서에는 ‘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누가복음 5장14절) 고 기록돼 있다. 사람들은 따진다. 예수가 실제 이적을 행했는가, 아닌가. 말 한 마디로 병을 낳게 하는 게 과연 가능한가. 그게 의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일인가. 그렇게 이 스토리의 사실 여부를 따진다. 또 다른 사람들은 무작정 믿는다. “예수님은 신의 아들이니 못할 일이 뭐가 있겠나. 하고자 한다면 뭐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다. 그러니 내게 병이 생길 때도 기도를 하고, 내게 힘든 일이 생길 때도 기도를 한다. 그 분은 다 해결할 수 있으신 분이니까.”

중국 쑹산의 소림사 맞은 편에 있는 이조암. 혜가는 이곳에 머물며 법을 펼쳤다.

승찬은 아픈 몸을 이끌고 이곳으로 혜가를 찾아왔을까. 그들이 문답을 주고 받은 게 이곳이었을까.

중국 양나라 때였다. 인도의 달마(達磨)가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중국 선불교를 창시한 초조(初祖)다. 달마는 깨달음의 법을 제자 혜가(慧可)에게 전했다. 그가 중국 선불교의 이조(二祖)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혜가를 찾아왔다. 온몸이 곪은 한센병 환자였다. 그가 말했다. “전생에 큰 죄를 지어서 이 몹쓸병에 걸렸습니다. 부디 저의 죄를 소멸해 주십시오.” 당시 중국 사람들도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큰 병에 걸린다고 여겼다. 달마가 답했다. “그럼 너의 죄를 내놓아라. 내가 그 죄를 없애주겠다.” 이 말을 들은 방문객은 얼마나 기뻤을까. 아니, 죄를 내놓기만 하면 없애준다니 말이다. 어떻게 지었는지 자신도 알 수 없는 전생의 죄를 한 방에 소멸해 준다니 말이다. 그는 뒤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을 채우고 있는 ‘죄‘를 뒤졌다. 그저께도, 어제도, 오늘도 죽도록 자신을 괴롭히는 ‘내 안의 죄’를 뒤졌다. 그걸 찾아야, 그걸 내놓아야 죄가 소멸될테니 말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손만 내밀면 닿던 죄, 눈만 뜨면 보이던 죄, 고개만 돌리면 마주치던 죄였다. 그런데 잡히지 않았다. 지금도 자신의 내면에서 요동치는 ‘죄’가 있는데 거머쥘 수가 없었다. 꺼낼 수가 없었다. 보여줄 수가 없었다. 방문객은 생각했을 터이다. ‘왜 그럴까. 내 안에 분명 있는데 왜 잡을 수가 없는 건가. 왜 끄집어 낼 수가 없는 건가.” 그 순간 그는 당황했을까. 아니면 실망했을까. 아니면 절망했을까. 죄를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며 낙심했을까. 방문객이 말했다. “죄를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혜가가 답했다. “네 죄가 이미 없어졌다.” 혜가의 답은 충격이었다. 방문객은 크게 깨달았다. 끈질기게 자신을 따라다니던 죄의식이 우르르 무너지는 걸 느꼈다. 왜 그랬을까. 방문객은 왜 죄를 찾을 수 없었고, 혜가는 왜 죄가 없어졌다 말했고, 다시 방문객은 크게 깨쳤을까. 도대체 혜가의 눈에는 죄가 어떻게 보였던 걸까.

중국 선불교의 삼조가 된 승찬 선사가 수행했던 동굴. ‘三祖洞(삼조동)’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방문객의 이름은 ‘승찬(僧璨)’이다. 그는 달마와 혜가의 뒤를 이어 중국 선불교의 삼조(三祖)가 됐다. 혜가는 “네 죄가 이미 없어졌다”고 했다. 그 말끝에 승찬은 ‘죄의 정체’를 꿰뚫었다. 생각이나 감정, 그리고 의식도 ‘색(色)’이다. 모든 색은 비어 있다. 그게 색의 정체다. 그걸 꿰뚫으면 공(空)이 드러난다. 승찬은 ‘죄의식’이란 물고기를 잡고 있다가, 물고기의 몸체가 비어있음을 깨달았다. 그 순간 죄의식이 소멸된다. 그게 공(空)의 힘이다. 치유의 힘이다. 승찬 선사는 ‘불교 시(詩)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저서 『신심명(信心銘)』을 남겼다. 거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마음과 맺어져 평등하면/ 지은 바가 함께 쉬도다. (契心平等 所作俱息)’ 그 마음이 뭘까. 이 우주에 가득한 ‘바닥 없는 마음’이다. 그 마음과 맺어지는 게 뭘까. ‘신의 속성’과 맺어지는 거다. 그래서 예수는 “내가 너희 안에 거하듯,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고 했다.

사람들이 지붕을 열어서 중풍환자를 내리고 있다. 그들의 정성과 믿음을 본 예수는 “너의 죄는 용서받았다”고 말했다.

평상에 실린 중풍환자가 예수를 찾아왔다. 예수 주위에 군중이 몰려 있었다.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결국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겨내고 환자를 내렸다. 예수는 그들의 믿음을 알아차렸다. 예수가 중풍환자에게 말했다. “너의 죄는 용서받았다.”(누가복음 5장20절) 혜가 선사의 어법으로 하면 “네 죄가 이미 없어졌다”쯤 된다. 이걸 본 율법학자들이 수군거렸다. “저것은 신성모독이다! 오직 하느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누가복음 5장21절) 그들의 생각을 읽은 예수가 받아쳤다. “이제 인자(人子ㆍ사람의 아들)가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누가복음 5장24절)

예수의 주인공이 뭘까. 인자(人子)의 주인공이 뭘까. ‘신의 속성’이다. 거기서 거대한 포맷이 일어난다. 우리가 틀어쥔 모든 색(色)들, 집착들, 죄의식들이 ‘신의 속성’ 안에서 ‘0’으로 포맷된다. ‘공(空)’으로 포맷된다. 그것이 죄사함이다. 그게 신의 속성이 품고 있는 ‘무한 치유력’이다. 예수는 거기로 들어오라고 했다. 내가 너희 안에 거하듯,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고. 그게 ‘사람 낚는 어부’에 담긴 깊은 뜻이다. 갈릴리 호수의 선착장에 섰다. 끼룩끼룩. 갈매기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예수는 말했다. “깊은 곳으로 다시 돌아오라. 거기서 그물을 내려라.”

예수는 ‘깊은 곳’으로 가라고 했다. 그곳이 어디일까.

갈릴리 호수의 저 어디쯤일까. 아니면 온갖 파도를 잠재우는 내 마음의 심연일까.

예수가 말한 ‘깊은 곳’은 갈릴리 호수의 어딘가가 아니었다. 저 푸른 파도의 어디쯤이 아니었다. 그 곳은 ‘신의 속성’이 잠들어 있는 우리 안의 심연이다. 그 깊은 마음의 골짜기다. 우리가 다시 돌아갈 고향이다. 거기서 그물을 내려야 한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런데 심연이 어디야? 그걸 알아야 갈 것 아닌가.” 답은 어렵지 않다. 나의 고집이 무너지는 곳. 거기가 바로 심연이다. 고집에 가려서, 에고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내 안의 ‘깊은 곳’이다. 거기서 치유의 비가 내린다.

[출처]: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 <예수를 만나다> - 5.예수는 왜 사람을 낚으라고 했을까/ 중앙일보, 2016. 2. 3.

6.예수가 말한 ‘가난한 마음’의 정체는 뭘까

마하트마 간디는 성서에도 이해가 깊었다. 조국의 독립을 맞은 그는

식민지를 떠나는 영국인에게 “당신들이 만든 예수는 가져가고, 성서 속의 예수는 두고 가라”고 말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1869~1948)는 힌두교 신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성서를 깊이 읽었다. 간디는 “예수께서 설한 ‘산상수훈’은 종교 중의 종교다. 모든 종교의 다이아몬드”라고 표현했다. 신약성서에는 두 개의 기둥이 있다. 하나가 산상수훈이고, 또 하나가 주기도문(주님의 기도)이다. 그럼 왜 ‘산상수훈’이 모든 종교의 다이아몬드가 되고, 신약성서를 떠받치는 기둥이 되는 걸까. 마음과 비움,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 얽힌 ‘삼각함수’를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산상수훈’은 한 마디로 하느님 나라의 문턱을 넘어가는 이정표다.

갈릴리 호수 뒤로 헤르몬산이 보인다. 겨울에는 마치 만년설처럼 정상이 눈으로 덮여 있다.

이곳에서 흘러온 물로 인해 갈릴리 호수가 생겼다.

갈릴리 호수는 아름다웠다. 해뜰 녁과 해질 녘에는 더욱 그랬다. 호숫가에는 끊임없이 새들이 지저귄다. 철새들이 줄지어 호수를 가르기도 한다. 호수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어찌 보면 높은 언덕 같고, 어찌 보면 낮은 산 같다. 호수 북동쪽에는 저 멀리 헤르몬산이 보인다. 겨울과 봄에는 정상의 세 봉우리가 흰 눈으로 덮여 있다. 갈릴리 호수에서 보면 마치 만년설 같다.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거기서 스키를 즐긴다. 헤르몬산의 높이는 무려 2814m. 백두산(2744m)보다 조금 더 높다. 헤르몬산에서 물이 흘러와 갈릴리 호수를 만들고, 호수의 물은 다시 흘러가 요르단강이 된다. 그 강이 광야에서 사해(死海)를 만든다.

예수가 갈릴리에 머물 때였다. 그는 수시로 산에 올랐다. 산 위에 올라가면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호수 서쪽의 티베리아스, 동쪽의 거라사, 북쪽의 가버나움과 타브가도 한눈에 보인다. 산에 올라간 예수는 고요한 곳으로 갔다. 홀로 기도를 한 뒤 내려오곤 했다. 갈릴리 일대를 돌면서 예수는 몸이 아픈 이, 마음이 아픈 이들을 치유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남녘의 예루살렘은 물론, 유다 지역과 데카폴리스, 강 건너 요르단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왔다. 사람이 너무 많아지자 예수는 산으로 올라갔다. 당시에는 마이크도 없고, 스피커도 없던 시절이다. 예수는 어떻게 그 많은 군중에게 들리도록 메시지를 전했을까. 크게 고함이라도 지른 걸까. 아니면 종이를 말아서 메가폰이라도 만들었을까.

현지에서 만난 유대인이 흥미로운 설명을 했다. “이스라엘의 햇볕은 뜨겁다. 낮에는 땅의 온도가 갈릴리 호수의 수온보다 높아진다. 바람이 호수에서 산 쪽으로 분다. 아래에서 위로 분다. 밤에는 정반대다. 땅의 온도가 호수의 수온보다 더 떨어진다. 그래서 밤에는 산에서 호수 쪽으로 바람이 분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화가 코시모 로셀리(1439~1507)의 ‘산상수훈’. 바티칸의 시스티나 예배당에 있는 작품이다.

마침 낮이었다. 바람이 호수에서 산으로 불었다. 테스트를 해봤다. 저만치 아래에 선 사람에게 평소 목청으로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신기했다. 크지 않은 목소리임에도 바람을 타고 위쪽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마치 그리스ㆍ로마 시대의 원형극장에서 스피커 없이 울리는 소리처럼 말이다. 예수는 이런 원리를 이용하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언덕 저 아래 어디쯤 예수가 섰을 터이다. 사람들은 산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예수를 내려다봤겠지. 귀를 쫑긋 세우면서 말이다. 그렇게 예수는 자신의 음성을 바람에 실어서 띄워 보냈을 터이다. ‘산상수훈(山上垂訓ㆍSermon on the Mount)’으로 불리는 이른바 ‘예수의 행복론’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모세가 하늘로부터 받은 율법을 철통같이 지켰다. 그래야 구원을 받는다고 여겼다. 그들은 문자 하나하나에 집착하며 율법을 따졌다. 거기에 행복이 있다고 믿었다. 그들에게 ‘예수의 행복론’은 상식 밖이었다.

그야말로 파격이자 혁명이었다. 율법에 대한 그 모든 문자주의와 형식을 격파하며 예수는 살아서 꿈틀대는 ‘실질적 행복론’을 사람들에게 내밀었다. 첫 마디는 이랬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복음 5장3절) 무슨 뜻일까. 요즘 사람들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니 2000년 전에는 오죽했을까. 사람들은 따진다. “마음은 부자여야 하는 것 아닌가. 실제 가진 게 없더라도 마음만이라도 부자여야 푸근할 텐데. 예수님은 왜 마음이 가난해야 한다고 했을까. 그래야 행복하다고 했을까. 하늘 나라까지 그들의 것이라고 했을까. 도통 알 수 없는 이야기다.” 이렇게 푸념한다.

렘브란트의 1650년 작품 ‘그리스도의 초상’.

렘브란트는 네덜란드의 유대인 거주 지역으로 아예 이사를 가서 유대인의 얼굴과 삶,

풍습을 들여다보며 이 작품을 완성했다. 예수의 눈빛이 온유하다.

예수가 말한 ‘가난한 마음’이란 대체 뭘까. 그리스어 성서에서 ‘마음’에 해당하는 단어는 ‘프뉴마(pneuma spirit)’다. ‘가난’은 ‘프토코스(ptochos)’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그리스어로 ‘프토코이 투 프뉴마티

(ptochoi to pneumati)’다.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뜻한다. 이 대목에서 사람들은 다시 따진다. “아니, 더 헛갈린다. 영적으로 가난한 게 대체 뭔가. 영적으로 부유할 때 우리가 하늘 나라에 더 가까이 가는 게 아닌가. 영적인 가난. 너무 추상적이라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바람이 불었다. 부드러웠다. 그 바람을 안고서 눈을 감았다. 예수가 말한 ‘가난’에는 이유가 있다. 가난하고, 가난하고, 가난해져서 결국 무언가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아무런 방향성도 없이 궁핍하고, 궁핍하고, 궁핍해지라고 말한 게 아니다. 그게 뭘까. 가난에 가난을 더하고, 그 가난에 다시 가난을 더해서 예수가 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호숫가의 언덕을 올랐다. 도로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팔복교회(The Church of the Beatitudes)’가 있다. 예수가 ‘산상수훈’을 설했다고 전하는 곳에 세운 교회다. 그곳으로 갔다.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여기저기서 묵상에 잠겨 있었다. ‘아! 이곳이었구나. 이렇게 생긴 언덕, 이렇게 생긴 나무들, 이렇게 생긴 풀들을 배경으로 ‘산상수훈’을 설하셨구나.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란 예수의 노래가 이렇게 생긴 언덕에서 울려퍼졌구나!’ 팔복교회는 주위 분위기가 참 평안했다.

팔복교회로 들어가는 길에는 ‘산상수훈’의 메시지를 영어로 새겨놓은 팻말이 있다.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예수는 “마음을 가난하게 하라”고 했다. 다시 말해 “마음의 창고를 비우라”고 했다. 우리의 창고가 늘 무언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그게 뭘까. ‘집착(Attatchment)’이다. 접착제처럼 끈적이며 내 마음의 창고를 채우는 건 다름 아닌 ‘집착’이다.

집착할 때 마음의 창고가 찬다. 집착을 비울 때 창고도 빈다. 그 이치를 꿰뚫은 예수가 말했다. “마음을 가난하게 하라!” 불교에서는 그걸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표현한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 나라의 문턱을 넘는다. 불교는 불국토(佛國土ㆍ부처님 나라)의 문턱을 넘는다. 그 문턱을 넘어가는 첫 번째 징검다리가 서로 닮았다. ‘마음의 창고를 비워라.’

팔복교회 주위의 나무와 풀, 그리고 꽃들을 둘러보면 예수 당시의 ‘산상수훈’ 풍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갈릴리 주변에서 일어난 일이다. 권력과 재력을 모두 갖춘 사람이 예수에게 물었다.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누가복음 18장18절) 예수는 “간음하지 말고, 살인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고,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며 구약의 십계명을 일러주었다. 그러자 권력가는 “그건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습니다”라고 대꾸했다. 권력가는 자기 안의 집착을 보지 못했다.

 

그에게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너에게 아직 모자란 게 하나 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이 말을 듣자 비로소 그 사람은 낙담했다. 그는 굉장한 갑부였기 때문이다. 이어서 예수는 말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가기는 참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누가복음 18장25절) 삼성의 창업주 고(故) 이병철(1910~87) 회장도 이 물음을 던진 적이 있다. 타계 한 달 전에 가톨릭의 고(故) 박희봉(1924 ~

88) 신부에게 건넨 종교적 내용의 질문지에는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약대(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라는 문항이 담겨 있다. 예수가 말한 ‘부자’의 속뜻은 무엇일까. 정말 재산이 많은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가기가 어려운 걸까.

사람들은 오해한다. 예수의 메시지를 문자적으로 해석한다. 예수는 왜 권력가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을까. 이유가 있다. 계명을 지키고 율법을 지킨다는 뿌듯함으로 바깥만 바라보는 그의 눈을 자기 안으로 돌리기 위해서다. 눈을 돌려서 마음의 창고를 보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모든 걸 던지라”고 했다. 다시 말해 “마음의 창고를 다 비우라”고 했다. 마음 창고에 대한 ‘전면적 포맷’을 요구한 것이다. 모든 바탕을 하얗게 바꾸면 그 위의 까만 점들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자신만만하던 권력가는 그제야 절망한다. 자신이 틀어쥐고 있던 집착이 비로소 보였기 때문이다. “모든 걸 던지라”는 말 앞에서 ‘도저히 던질 수 없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예수가 설한 ‘가난한 마음’이다. 가령 마음의 창고를 비운 백만장자와 돈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한 걸인 중에 누가 ‘하느님 나라’에 더 가까울까. 누가 더 가난한 마음을 가진 걸까. 가진 게 많다고 반드시 집착이 많은 건 아니다. 또 가진 게 없다고 꼭 집착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예수가 들이민 잣대는 ‘재산의 총액’이 아니라 ‘집착의 총액’이었다.

헝가리 화가 카롤리 페렌치(1862~1917)의 ‘산상수훈’. 헝가리의 사람과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예수가 산상수훈을 설하고 있다. 부드러운 붓터치가 예수의 메시지와 잘 어울린다.

부다페스트의 헝가리국립미술관 소장.

그래도 사람들은 따진다. “어떤 목표를 세워서 추구할 때는 집착이 있어야 하지 않나. 그 집착 때문에 에너지가 생기고, 추진력이 생기는 것 아닌가. 어떻게 집착도 없이 이 무한경쟁 사회를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게 묻는다. 과연 그럴까. 중국땅에 선불교의 꽃을 활짝 피웠던 육조 혜능 대사는 『육조단경』에서 “마땅히 머무는 바없이 마음을 내라(應無所住 而生其心)”고 했다. ‘머무는 바없이 마음을 내라’는 건 ‘집착 없이 마음을 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구절 앞에 ‘마땅히(應)’란 단어가 붙는다. 왜 그럴까. 그게 너무도 마땅한 우주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정상급 골퍼들의 단골 어록이 있다. “힘을 빼라. 어깨에 힘을 빼고, 팔에 힘을 빼고, 손에 힘을 빼라.” 이 모두에 힘을 빼려면 어떡해야 할까. 그렇다. 마음에 힘을 빼면 된다. 욕심 때문에, 집착 때문에 힘이 들어가니까.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욕심을 갖고, 집착을 가져야 더 멋진 샷이 나오는 게 아닐까. 그래야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닐까. 왜 프로들은 거꾸로 “힘을 빼라”고 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힘을 주면 비거리와 정확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집착이 강할수록 몸이 굳고, 샷이 망가진다.

『장자』의 ‘외편’에 나오는 일화다. 사람들이 활쏘기 내기를 했다. 질그릇을 걸고 내기를 하니까 과녁을 팍!팍! 맞혔다. 이번에는 값이 좀 더 나가는 띠쇠를 걸었다. 그랬더니 명중률이 좀 떨어졌다. 마지막에는 황금을 걸었다. 그러자 화살은 아예 과녁을 빗나갔다. 왜 그럴까. 집착 때문이다. 머무는 바없이 활 시위를 당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혜능 대사가 “머물지도 말고, 마음도 내지 마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그럼 사람들의 우려가 맞다. 마음을 내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 요즘도 ‘수행=고요한 상태만 유지하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게 스윙을 하지 않으면 어찌 될까. 고요함 속에만 머물면 어찌 될까. 일상의 삶을 꾸려갈 수가 없다.

예수가 “마음의 창고를 비우라”고 한 건 텅 빈 고요 속에만 머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고요를 품은 채 지혜로운 스윙을 하라는 거다. 그래서 혜능 대사도 “마음을 내지 마라”가 아니라 “마음을 내라”고 했다. 머무는 바없이 마음을 내라고 했다. 자신의 삶 속에서,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가난한 마음으로 적극적인 스윙을 하라고 일갈했다.

팔복교회의 정원에 꽃이 피어 있었다. 머무는 바없이 마음을 내는 것과 집착 없이 피어나는 꽃. 둘은 그렇게 통한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양자 택일’을 일깨운 적이 있다. 예수가 말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복음 6장24절) 예수는 똑 부러지게 말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가 없다.” 사람들은 헛갈린다. 그럼 하느님을 섬기는 이는 재산을 모아선 안 되는 걸까. 경제활동도 해선 안 되는 걸까. 재물은 어디까지 용인이 되는 걸까. 여기에도 ‘가난한 마음’의 코드가 숨어 있다. 예수가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지적한 두 가지는 하느님과 재물이다. 다시 말해 ‘비움’과 ‘집착’이다. 우리는 비움과 집착을 동시에 취할 수 없다. 비움을 붙들면 집착을 놓아야 하고, 집착을 붙들면 비움을 놓아야 한다. 둘 다 취할 수는 없다. 하나가 사라져야 다른 하나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자 택일’이다.

예수는 그저 소박하게 살라고 “마음을 가난하게 하라”고 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각별한 이유가 있다. 마음이 가난해질 때 비로소 ‘없이 계신 하느님’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음의 창고를 비워야 ‘하느님 나라’와 통하게 된다. 왜 그럴까. ‘가난한 마음’이 곧 ‘하느님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신의 속성’이다. 아무런 집착도 달라붙지 않는 자리, 거기가 바로 ‘하느님 나라’다. 그래서 예수는 말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팔복교회의 분위기는 평화로웠다. 언덕 아래에는 갈릴리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나무 그늘이나 구석진 벤치에서 묵상에 잠긴 이들이 많았다.

해가 하늘 높이 올랐다. 이스라엘은 겨울에 비가 잦다. 그래서인지 갈릴리 호수 주변도 초록이 무성했다. 수년 전 여름에 왔을 때보다 더 푸르렀다. 햇볕은 따사했다. 한국으로 치면 봄볕이었다. 주위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 있었다. 특히 노랗게 무리지어 하늘거리는 겨자꽃이 참 예뻤다. 2000년 전에도 저런 들꽃들이 있었겠지. 예수가 ‘가난한 마음’으로 사람들이 거머쥔 ‘집착’을 겨냥할 때도 겨자꽃은 주위에 만발했겠지.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하느님 나라 때문에 집이나 아내,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여러 곱절로 되받을 것이고,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누가복음 18장29~30절) 사람들은 이 구절도 종종 오해한다. 무작정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를 따르려면 집도 버리고, 부모도 버리고, 처자식도 팽개치고 따라나서야 한다고 풀이한다. 그 대가로 천국에서 상을 받는다고 여긴다. 이 때문일까. 중동의 이슬람 땅에 가서 목숨을 걸고 선교를 하는 이들은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예수가 겨눈 건 그런 식의 ‘맹목적 충성’이 아니었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 하물며 가족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을까. 예수가 겨누는 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집착’이다. 그럼 왜 집이나 아내,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리라고 했을까. 그들에 대한 집착이 ‘하느님 나라’를 가리기 때문이다. 그런 집착을 안고서는 진정으로 예수를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는 버리라고 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버리라고 한 게 아니라 ‘가족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했다. 그런 뒤에 “나를 따르라”고 했다.

프랑스의 판화가 구스타프 도레의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 판화 작품인데도

빛과 어둠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예수의 ‘산상수훈’은 마음의 어둠을 걷어내는 실질적인 행복론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집착 없는 사랑이 가능한가. 집착이 있어야 사랑도 있는 것 아닌가.” 그건 ‘작은 사랑’이다. 다시 말해 사랑의 가면을 쓴 욕망이다. 예수는 큰 사랑을 말한다. 우리는 종종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집착을 자식에게 강요한다. 결과는 늘 좋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면 안다. 자식을 지혜롭게 키우는 이들은 다르다. 그들은 강하게 집착하지 않는다. 그저 사랑으로 지켜본다. 그게 ‘집착 없는 사랑’이다. 혜능 대사가 말한 ‘머무는 바없이 마음을 내는’ 사랑이다. 예수는 그걸 ‘가난한 마음’이라 불렀다.

구약에서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바치라고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브라함은 말년에 아들을 얻었다. 그러니 얼마나 애지중지했을까. 그 집착이 오죽했을까. 그런 집착이 하느님 나라를 가리기라도 했을까.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아킬레스건’을 찔렀다. 아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고 했다. 아브라함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어린 양이 아닌 어린 자식을 번제로 바치라니 말이다. 번민에 번민을 거듭하던 아브라함은 결국 아들을 향해 칼을 빼든다. 그때 신의 음성이 들린다. 왜 그럴까. 집착이 끊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집착이 소멸할 때 신의 음성이 들리고, 집착이 무너질 때 하느님 나라가 드러난다. 그래서 예수는 자꾸 자꾸 강조한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렘브란트의 1635년 작품 ‘이삭의 희생’. 러시아 생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 소장. 

아브라함이 칼을 빼드는 순간, 천사가 나타나서 말리고 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가 설한 행복은 깊다. 로또에 당첨됐다고 덩달아 따라오는 얕은 행복이 아니다. 그런 식의 ‘사라지는 행복’이 아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서 ‘행복’은 그리스어로 ‘마카리오이(Makarioi)’다. 그건 잠시 작용하고 사라지는 행복과는 차원이 다른 행복이다. 왜 그럴까. ‘마카리오이’는 신의 속성을 공유할 때 피어나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행복이다. 하느님의 마음, 그 속성 자체가 ‘마카리오이’다. 그러니 ‘예수의 행복론’은 요즘 우리 사회 여기저기서 붙여대는 ‘일회용 행복 반창고’와는 차원이 다르다.

팔복교회의 입구. 출입문 위에는 ‘산상수훈’ 그림이 붙어 있었다.

칼 하인리히 블로흐의 ‘산상수훈’ 

팔복교회 입구로 갔다. 출입구 위에는 칼 하인리히 블로흐의 ‘산상수훈’ 그림이 붙어 있었다. 그림 속 예수의 가르침을 듣는 사람들의 표정이 제각각이다. 바위 앞의 남자는 두 손을 모은 채 마음을 연다. 예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설교에 집중한다. 그의 왼편에 앉은 여인은 깍지 낀 손을 이마에 댄 채 눈을 감았다. 예수의 메시지가 이미 그녀의 가슴을 찔렀기 때문이다. 가장 맑은 얼굴로 예수의 메시지를 듣는 이는 여인 뒤에 선 어린아이다. 반면 바위 뒤편의 나이 지긋한 남자는 팔짱을 낀 채 예수를 노려본다. 유대의 율법과 너무나 다른 ‘산상수훈’이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아 보인다. 여인의 눈은 내면을 향하고, 그의 눈은 바깥을 향한다. 200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누구의 눈은 안을 향하고, 누구의 눈은 밖을 향한다. 예수가 우리에게 묻는다. “너의 눈은 어디를 향하는가?”

교회 안으로 들어가 빈 의자에 앉았다. 교회의 천장은 팔각형이었다. 여덟 개의 면마다 팔복의 메시지가 하나씩 적혀 있었다. 그 메시지들을 하나씩 안고서 눈을 감았다. 산상수훈의 두 번째 메시지가 울렸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복음 5장4절)

[출처]: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 <예수를 만나다> - 6.예수가 말한 ‘가난한 마음’의 정체는 뭘까/ 중앙일보, 2016. 2. 24.

7.예수는 좌파일까, 우파일까

예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다. 로마 제국에 세금을 내야 했고, 로마의 황제가 그려진 동전을 써야 했다. 그들을 지배하던 로마 제국은 다신교를 믿는 나라였다. 태양을 숭배하고, 동물을 숭배하던 민족이었다. 늑대 젖을 먹고 자란 이가 세웠다는 나라가 로마였다. 당시 로마에는 곳곳에 늑대 젖을 먹는 쌍둥이 형제 레무스와 로물루스의 조각상이 있었다. 유일신을 믿던 유대 민족은 극도의 모멸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구약의 모세 시절, 유대인들은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했다. 이집트인들은 태양신을 믿었다. 유대인의 눈에는 우상에 불과했다. 그러니 로마의 지배를 받던 유대인들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아야 했던 암흑의 시대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유대인들은 독립을 꿈꾸었다.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했듯이 로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에드워드 포인터(1836~1919)의 1867년작 ‘이집트의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채찍질을 당하며 이집트인의 신전을 짓고, 우상을 세웠을 터이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유대의 독립’을 꿈꾸는 세력이 있었다. 로마 제국에 맞서 무력으로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바로 ‘열심당(熱心黨)’이었다. 예수가 활동한 주무대였던 갈릴리 일대는 열심당의 근거지였다. 그곳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반골 기질’이 강했다. 예수 주위에도, 예수의 설교를 듣는 이들 중에도 열심당원들이 꽤 있었다. 실제 예수의 제자 중 시몬도 열심당원이었다. 예수를 배신한 갸롯 유다 역시 열심당원으로 보인다. 그들은 수시로 예수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왜 유대 민족을 식민지 백성의 처지에서 해방 시키지 않느냐고. 이대로 두고 보기만 하느냐고 따지지 않았을까.

그런 유대인들에게 ‘무력 투쟁’은 일종의 시대적 요청이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다윗의 자손 중에서 유대 민족을 구원할 메시아가 나타날 것’이라는 강한 종교적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의 아버지 요셉은 다윗의 자손이었다.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었을 때도 요셉 주위의 사람들은 “당신의 조상 중에는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지 않은가?”라고 되물었다. 만약 이름을 ‘다윗(영어명 데이비드)’이라고 지었다면 아무도 그렇게 묻지 않았을 터이다. 다윗이 태어난 곳은 베들레헴이었다. 다윗 문중의 후손들은 주로 베들레헴 지역에 모여서 살고 있었다. 예수의 출산을 위해 요셉이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을 찾은 것도 그랬다. 다윗의 후손인 요셉이 베들레헴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헤라드 반 혼토르스트의 ‘하프를 연주하는 다윗왕’. 예수 당시 유대인들은 다윗의 자손에게서 메시아가 나온다고 믿었다.

마태복음의 첫 구절은 이를 강하게 의식한다.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마태복음 1장1절) 마태는 예수가 다윗의 자손임을 복음서의 첫 장, 첫 구절에서부터 못을 박았다. 당시 유대인의 상식을 겨냥해 ‘예수는 다윗의 자손이자 메시아’임을 강조한 셈이다. 그러니 예수 당시에는 어땠을까. ‘신의 아들’이라는 그에게 유대인들은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을 기대했을 터이다. 예수가 그런 지도자, 그런 선봉장, 그런 혁명가가 되기를 바랬을 것이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 어떤 이는 예수를 ‘인간 해방을 위한 혁명가’로 보고, 또 어떤 이는 예수를 ‘인간 영혼에 대한 구원자’로 본다. 어느쪽 눈에 무게를 싣느냐에 따라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좌파와 우파로 나뉜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산상수훈’을 비교하자는 메시지였다. 다시 말해 ‘좌파의 예수’와 ‘우파의 예수’를 짚고 가자는 말이다. 나는 팔복교회에서 눈을 감았다. 정작 예수는 어땠을까. 그가 이곳에서 ‘산상수훈’을 설할 때는 후대에 이런 논란이 있으리라 예상을 했을까. ‘예수의 눈’이 왼쪽과 오른쪽으로 쪼개지리라 생각이라도 했을까.

16세기 플랑드르 화가 브뤼헬(1525~69)의 1598년작 ‘산상설교’. 모여든 군중 가운데

예수가 있다. ‘산상수훈’을 사람과 우거진 숲과 새와 하늘이 듣고 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산상수훈’은 다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마태복음)과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누가복음)은 차이가 난다. 누가복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가난한 사람들’을 겨냥한다. 누가복음에는 또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고 기록돼 있다. 이어서 ‘불행한 사람들’도 지적한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부유하고, 배부르고, 웃는 이들은 결핍이 없다. 그래서 ‘눈’을 자기 안으로 돌리지 않는다. 예수는 그걸 지적했다.

차이는 또 있다. 마태복음은 산에서, 누가복음은 평지에서 설해졌다. 그래서 ‘산상설교’와 ‘평지설교’라 불린다.

이에 대한 해석을 놓고 그리스도교 내부는 좌파와 우파로 갈린다. 좌파 진영은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강조했다. 그건 물질적 가난을 의미한다. 사회적 빈자와 약자를 위한 거다. 예수님은 ‘인간 해방’을 위해 싸운 분이다. 그들을 위해 싸우는 게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거다”고 주장한다. 해방신학자들도 그렇게 본다. 우파인 복음주의 진영은 다르다. “예수님은 ‘영적인 가난’을 말했다. 사회적 문제와 큰 상관이 없다. 오직 영적인 가난을 추구하는 게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좌파는 ‘사회구원’에, 우파는 ‘개인구원’에 방점을 찍는다. 둘은 그렇게 갈라선다.

팔복교회에서 내려다 본 갈릴리 호수. 배가 그리는 물결이 참 아름답다.

정작 예수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두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메시지는 정말 이토록 다른 걸까. 진보 진영에서 평생을 바치고 있는 목사님에게 터놓고 물어본 적이 있다. “일을 하다보면 지치지 않습니까? 계속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다보면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나요?” 반박할 줄 알았다. 부인할 줄 알았다. 뜻밖이었다. 그는 조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솔직히 그렇다. 일을 할 때는 열심히 하지만, 돌아서면 지친다. 갈수록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그건 사실이다.” 왜 그럴까. 내면의 샘터를 놓쳤기 때문이다. 사회적 모순을 지적하느라 눈이 바깥을 쫓아가는 사이에 영성의 샘터에서 해야 할 펌프질을 잊어버린 탓이다. 그럼 우파인 복음주의 진영은 어떨까. 그들은 주로 영적인 문제를 강조한다. 사회적 발언에는 무관심하다. 그런데 궁금해진다. 그렇게 영적으로 가난하고, 가난해진 다음에는 어쩔 건가. 그렇게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다음에는 어쩔 건가. 그렇게 안으로 들숨만 들이마신 다음에는 어쩔 건가. 거기서 멈추면 죽고 만다. 그 ‘무한한 고요’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살려면 다시 숨을 내쉬어야 한다. ‘파~아!’하고 내뱉어야 한다. 그게 날숨이다. 그래야 산다.

팔복교회의 천장. 팔각으로 된 벽마다 산상수훈의 메시지가 적혀 있다.

예수의 영성도 마찬가지다. 안으로 들이마신 다음에는 바깥으로 내쉬어야 한다. 일상을 향해, 현실을 향해, 사회를 향해 내쉬어야 한다. 가난한 마음을 찾고, 그 마음으로 하루를 살고, 다시 가난한 마음을 찾고, 그 마음으로 우리 사회에서 사는 거다. 가난한 마음을 찾는 게 ‘들숨’이고, 그 마음으로 하루를 사는 게 ‘날숨’이다. 그게 그리스도교의 영성이자 사회적 실천이다. 우리는 그걸 ‘수도(修道)’라고 부른다. 그 와중에 ‘에고의 눈’이 ‘예수의 눈’을 점점 닮아간다. 그러니 둘이 아니다.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의 메시지는 둘이 아니다. 그걸 둘로 해석하는 건 쪼개고, 나누고, 편가르기에 익숙한 ‘나의 눈’ 때문이다. 인간의 눈, 에고의 눈 말이다. ‘예수의 눈’에서는 그렇게 쪼개질 수가 없다. 들숨과 날숨은 둘이 아니 아니다. 그저 하나의 ‘숨’이다. 개인의 영성과 사회적 실천도 마찬가지다. 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진보와 보수를 고집하는 이들은 스스로 ‘반쪽’임을 자처한다. 예수는 ‘반쪽’이 아니라 ‘온 쪽’이었다.

렘브란트의 1650년작 ‘그리스도의 초상’. 예수의 눈이 맑디 맑다. 연민은 읽히지만 집착은 읽히지 않는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 (요한계시록 22장13절) 무슨 뜻일까. 그건 ‘부분’이 아니라 ‘전체’라는 뜻이다. 왼쪽이나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이면서 동시에 오른쪽’이다. ‘시작이면서 동시에 끝’이다. 좌파와 우파를 모두 품는다는 뜻이다. 그게 뭘까. ‘거대한 중도(中道)’다. 그게 예수의 정체성이다. 다름 아닌 신의 속성이다. 예수의 칼집에는 좌파의 칼도 있고, 우파의 칼도 있다.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칼을 꺼낼 뿐이다. 그게 ‘예수의 지혜’다. 그게 전능(全能)이다. 어느 한쪽의 칼만 쓰는 건 전능이 아니다.

팔복교회 제단 옆에는 콩나물 머리만 있고 꼬리는 없는 오래된 라틴어 악보가 놓여 있다.

팔복 교회 안은 고요했다. 제단의 십자가 앞에는 오래된 악보가 하나 펼쳐져 있었다. 중세 때 사용했다는 악보다. 음표가 독특했다. 콩나물 머리는 있는데, 콩나물 꼬리는 없었다. 예수의 ‘산상수훈’에 음을 단 악보다. 팔복(Beatitudes)이 하나씩 시작할 때마다 라틴어로 대문자‘B’를 달아 놓았다. 그랬다. 예수의 ‘산상수훈’은 그 자체가 노래였다. 우리의 고집을 허물고, 잘남을 허물고, 착각을 허물면서 잦아드는 음표들. 그 음표 안에 깃든 온유한 폭풍. 그게 ‘산상수훈’이다. 여덟 개의 ‘B’로 가득한 악보가 여덟 개의 ‘B’로 가득한 삶을 노래한다.

교회 안 빈 자리에 앉았다. 예닐곱 명의 순례객들이 띄엄띄엄 앉아 묵상을 하고 있었다. 가방에서 성서를 꺼냈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복음 5장4절) 산상수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느님 마음’을 노래한다. 하느님 나라를 가득 채우는 신의 속성을 노래한다. 그 속성이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 그래서 예수는 그 속에 깃드는 방법을 일러준다. 여덟 가지의 길이다. 인간은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제 아무리 백만장자라 해도, 제 아무리 절대권력자라 해도 이것을 피할 수는 없다. 막상 마주하면 감당하기 벅찬 일, 그것이 ‘애(哀)’라는 슬픔이다.

예수는 달리 말한다. 슬퍼하는 사람들, 애(哀)를 품은 사람들. 그들이 행복할 거라 말한다. 왜 그럴까. 슬픔은 늘 ‘상실’을 전제로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잃어버릴 때, 무언가를 놓쳤을 때, 누군가와 이별할 때 슬픔이 밀려온다. 슬픔의 바닥에는 상실의 강이 흐른다. 예수는 그런 ‘상실감’을 소중히 여겼다. 왜 그랬을까. 무언가를 잃어버릴 때 우리의 무릎이 꺾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릎이 꺾일 때 우리 안에 구멍이 뚫린다. 슬픔의 구멍, 상실의 구멍이다.

위로는 어디를 통해서 올까. 그 구멍을 통해서 온다. 신의 속성은 인간과 세상과 우주에 대한 ‘평형수’다. 내가 무릎을 꿇을 때, 나의 고집이 무릎을 꿇을 때, 나의 에고가 무릎을 꿇을 때 뚫리는 구멍을 타고 ‘평형수’가 밀려온다. 그게 위로다. ‘하느님 나라’에서 밀려오는 근원적인 위로다. 자신의 무릎을 꺾은 이에게는 위로가 있다. 에고를 빳빳이 세운 채 스스로 무릎을 꺾지 않은 이에게는 위로가 없다. 그의 내면에 슬픔의 구멍, 상실의 구멍이 뚫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는 말했다.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

팔복교회 내부 모습. 천장 아래 팔각 벽면에 라틴어로 ‘산상수훈’이 적혀 있다.

팔복교회 안으로 순례객들이 들어왔다. 스페인에서 온 그룹이었다. 20명쯤 됐다. 그들은 좁은 교회 안에 빙 둘러섰다.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교회 천장을 타고서 소리가 울렸다. 가사를 알 수는 없었다. 그래도 느낄 수는 있었다. 그 음표들 속에서 ‘산상수훈’의 메시지를 묵상했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마태복음 5장5절) 온유하지 않은 이들은 누구일까. 고집이 센 사람들이다. 이번에 예수는 ‘고집’을 겨냥한다. 고집이 뭘까. 내가 세운 ‘잣대의 성벽’이다. 사람들은 내 땅을 지키기 위해 성벽을 쌓는다. 그 성벽이 자신을 적으로부터 지켜줄 거라 믿는다. 그래서 아군에게는 성문을 열고, 적군에게는 성문을 닫는다. 그래야 내 땅이 지켜지니까. ‘예수의 눈’으로 보면 다르다. 그건 성벽이 아니라 ‘감옥’이다. 신의 속성은 이 우주에 가득하다. 그걸 외면한 채 스스로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다. ‘산상수훈’의 메시지는 이처럼 역설적이고, 파격적이고, 혁명적이다.

8년간 멀리 수행의 길을 떠났던 젊은 수행자가 돌아왔다. 중국의 장경(章敬) 선사가 물었다. “그동안 자네는 무엇을 했는가?” 젊은 수행자는 대답 대신 꼬챙이를 하나 집었다. 땅에다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렸다. 장경 선사가 말했다. “그래 그뿐인가. 다른 것은 또 없는가.” 그 말을 듣고 수행자는 발로 동그라미를 지워버렸다. 그리고 합장한 뒤 돌아서 가버렸다.

몬드리안의 1915년작 ‘구성10-부두와 해안’. 동그라미 안에 그어진 선들이 ‘수많은 십자가’가 아닐까. 

그 위에 우리를 눕힐 때 비로소 ‘동그라미’가 드러난다. 예수가 설한 ‘하느님 나라’가 드러난다.

이 선문답 일화에는 어떤 메시지가 담겼을까. 장경 선사가 물었다. “그동안 수행을 해서 무엇을 깨쳤는가.” 젊은 수행자는 동그라미를 그렸다. 깨달음은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으니 딱히 건넬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동그라미를 그렸다. 제자의 공부가 미심 쩍은 장경 선사가 되물었다. “그것 뿐인가.” 더 정확한 걸 보여달라는 말이다. 이에 젊은 수행자는 동그라미를 지워버렸다. 왜 그랬을까. 바로 그 순간 ‘진짜 동그라미’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게 뭘까. 꽃 피고, 새 울고, 비 내리는 이 세상이다. 이 우주다. 젊은 수행자는 ‘자신의 동그라미’를 지우면서 이 우주를 다 품는 ‘테두리 없는 동그라미’를 드러냈다. 나의 땅, 나의 고집, 나의 성벽을 허물 때 비로소 예수의 땅이 드러나듯이 말이다.

팔복교회 앞에는 ‘산상수훈’을 영어로 새긴 팻말이 놓여 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예수는 말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마태복음 5장) 예수가 말한 ‘의로움’이란 대체 뭘까. 언뜻 생각하면 로마시대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면서도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 선교를 하다가 목숨을 잃은 초대교회의 사도들, 지금도 오지로 가서 그리스도를 전하는 선교사들. 그들이 바로 ‘의로움에 주린 이들’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예수가 말한 ‘의로움’은 다소 달랐다. 꼭 목숨을 걸어야 하는 크고 위태로운 행위를 가리킨 건 아니었다.

‘의로움’은 히브리어로 ‘체다카(Tzedakah)’다. ‘어떤 기준에 부합되다’는 뜻이다. 그게 뭘까. 예수는 무엇에 부합될 때 의롭다고 했을까. 또 무엇에 목마를 때 의롭다고 했을까. 물음이 올라왔다. 내 안에서 자연스레 싹이 트는 물음. 그걸 따라가면 된다. 그게 숨 쉬는 묵상이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마음이 무엇에 부합될 때 진정한 만족감을 얻을까?’ 답은 하나였다. ‘산상수훈’의 팔복을 관통하며 예수가 노래하는 딱 하나. 다름 아닌 ‘하느님 마음(신의 속성)’이다. 그것과 부합될 때 비로소 우리는 흡족해진다. 다른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팔복교회 주위의 풍경. 예수는 이렇게 생긴 곳에서 산상수훈을 설했다.

그러니 누가 의로운 사람일까. 하느님의 마음, 신의 속성을 갈구하고 목말라하는 사람이다. 거기에 부합되는 사람들, 예수는 그들을 향해 “의로운 사람들!”이라 불렀다. 그러니 거창하게 목숨을 걸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내 안의 고집을 하나 꺾을 때, 내 안의 집착을 하나 내려놓을 때 나는 ‘의로운 사람’이 된다. 예수는 그런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행복하여라. 하느님의 마음에 주리고, 신의 속성에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함’을 얻을 것이다.”

[출처]: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 <예수를 만나다> - 7.예수는 좌파일까, 우파일까/ 중앙일보, 2016. 3. 2.

8.예수, “천국은 네 안에 있다.”

팔복교회의 공기는 평안하다. 언덕 아래 갈릴리 호수가 보이고, 주위에는 꽃과 나무가 가득하다.

팔복교회의 뜰은 파랬다.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다. 야자수를 비롯한 키 큰 나무들도 곳곳에 서 있었다. 한낮의 볕은 따가웠다. 나무 그늘 아래에는 순례객들이 묵상에 잠겨 있었다. 그들의 무릎에는 성서가 펼쳐져 있었다. 하나 같이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의 ‘산상수훈’ 대목이었다. 저 푸른 풀밭 어디쯤에서 예수는 말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복음 5장7절) 언뜻 보면 당연한 말이다. 자세히 보면 애매해진다. 자비로운 사람은 자비를 베푸는 이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왜 자비를 입게 되는 걸까? 그 사이에 연결 고리가 없다. 좋은 일을 하니까 하늘에서도 상을 주는 거겠지. 대충 그렇게 얼버무릴 수도 있다. 그런데 ‘예수의 행복론’에는 정확한 이치가 녹아 있다. 그 이치를 풀 때 ‘행복의 비밀’도 풀린다.

어찌 보면 예수는 ‘과학자’다. 나는 성서를 읽을 때마다 절감한다. 그는 이치를 꿰뚫은 마음의 과학자, 영성의 과학자다. 당시 유대의 전통적 가르침은 이런 식이다. “살인하지 마라”“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마태복음 5장21절) 그런데 예수의 문법은 달랐다. 그는 “자기 형제에게 화를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마태복음 5장22절)고 말했다. ‘아니, 형제가 함께 자라다 보면 싸울 수도 있는 거지. 어떻게 형제에게 화를 몇 번 냈다고 재판에 넘겨진다는 걸까.’ 그뿐만 아니다. 예수는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마태복음 5장22절)고 했다. ‘세상에, 그럼 감옥에 안 가는 사람이 없겠네.’ 이런 생각이 절로 솟구친다.

예수의 표현이 과격한 게 아니다. 그는 단지 ‘마음의 이치’를 강조했을 뿐이다. 예수의 메시지에는 ‘놀라운 과학’이 숨어 있다. 누군가에게 침을 뱉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먼저 내 몸에서 침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입 안에 침을 모아야 한다. 그렇게 고인 침을 상대방에게 뱉는다. 누군가에게 화를 낼 때도 마찬가지다. 먼저 내 안에서 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걸 모아서 상대방에게 쏟아낸다. 미움도 그렇다. 세상의 모든 독기가 마찬가지다. 먼저 내 안에 모아서 상대방에게 뿜어낸다. 그럼 내가 만든 독기의 1차 소비자가 누구일까. 상대방일까, 아니면 나일까. 그렇다. 나다. 자기 형제에게 “바보야!”라고 쏘아붙이기 전에 내 마음이 먼저 미움으로 가득 찬다. “멍청이!”라고 불을 뿜기 전에 내 마음이 먼저 불지옥에 떨어진다. 그렇게 재판에 넘겨진다. 마음의 과학에 따라 ‘자동 재판’을 받게 된다. 그게 이치다. 독기만 그런 게 아니다. 자비도 마찬가지다. 자비를 베풀려면 어찌해야 할까. 먼저 내 안에서 자비심을 만들어야 한다. 그걸 모아야 한다. 그 사이에 내 마음이 젖는다. 내가 만든 자비심에 내가 먼저 젖는다. 그 온기와 배려와 사랑의 감정에 내가 먼저 잠긴다. 그게 마음의 이치다. 예수는 그걸 명쾌하게 설했다.

팔복교회 안 작은 연못에 있는 조각. ‘목마른 이들은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의 안으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요한복음 7장37절)는 구절이 새겨져 있다.

팔복교회 안에 조그만 기념품점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수도회에서 만든 물건들도 있었다.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나무로 만든 십자가도 있고, 베들레헴의 마구간도 있고, 올리브 오일과 대추야자도 있었다. 나는 대추야자를 하나 샀다. 점원은 “메마른 사막에서 자랄 수 있는 몇 안 되는 식물”이라고 했다. 일반 대추보다는 조금 더 컸다. 꿀에 절여져 있어 맛이 괜찮았다. 궁금했다. 그토록 삭막한 사막에서, 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광야에서 야자수는 어떻게 열매를 맺을까. 점원은 “야자수 뿌리를 찾아보라”고 했다. 야자수 밑동을 보면 예닐곱 개의 뿌리가 아니라 털보 수염처럼 생긴 수천 개의 뿌리가 달려 있다. 야자수 한 그루가 1년에 뻗어내리는 뿌리의 개수는 약 5000개라고 한다. 물이 없는 사막에서 뿌리는 땅 속으로 더 깊이 파고 내려갈 것이다.

가게를 나오면서 생각했다. 야자수는 왜 그토록 많은 뿌리를 뻗는 걸까. 그건 간절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을 축이고, 자신의 삶을 적셔줄 물 한 방울이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광야다. 삭막한 사막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뿌연 모래뿐이다. 모래 바람은 수시로 몰아친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내일은 물론이고 모레도, 글피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를 향해 발을 떼야 하나.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런 삶의 사막에서 예수의 ‘산상수훈’은 나침반이다. 내 안의 물줄기를 찾아 어디로 뿌리를 내려야 할지 일러준다. 캄캄한 밤, 하늘의 별처럼 길을 보여준다.

프랑스 화가 구스타프 도레의 ‘산상설교’.

예수의 메시지가 사람들 마음속의 어둠을 물리고 있다.

도레는 성서를 소재로 한 판화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런 우리를 향해 예수는 ‘깨끗한 마음’을 설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마태복음 5장8절) 예수의 표현은 갈수록 직접적이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가, 땅을 차지하다가, 드디어 하느님을 보게 된다. 그걸 가능케 하는 ‘깨끗한 마음’이란 뭘까. 그리스어로는 ‘카타로스(Katharos)’다. ‘카타르시스(Katharsis)’와 어원이 같다. 뭔가를 씻어내리는 거다. 그게 깨끗한 마음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우리는 수시로 샤워를 한다. 수시로 때를 씻는다. 그런데 돌아서면 때가 끼인다. 자고 나면 또 때가 끼인다. 몸만 그런 게 아니다. 마음도 그렇다. 아무리 회개하고, 아무리 씻어내려도 때가 끼인다. 잠시 눈만 돌려도 때가 끼인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쯤 온전하게 ‘깨끗한 마음’을 갖게 될까. 우리는 언제쯤 하느님을 보게 될까.

루카스 크라나흐의 1528년작 ‘마르틴 루터’.

가톨릭 사제였던 루터는 사제복을 벗고 16세 연하의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했다.

그녀 역시 가톨릭 수녀였으나 수녀원을 탈출해 종교개혁에 합류했다. 당시에는 세간의 화제였다.

독일의 마르틴 루터(1483~1546)는 종교개혁의 주인공이다. 종교개혁가가 되기 전에 루터는 가톨릭 사제였다. 수년 전에 독일 에어푸르트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을 찾아간 적이 있다. 루터가 가톨릭 수도자로 살았던 곳이다. 수도원에는 루터 당시 고해성사를 하던 공간이 있었다. 거기서 10~20m쯤 떨어졌을까. 야트막한 계단이 하나 있었다. 그 계단의 별명이 ‘루터의 계단’이다. 수도원에서 루터는 열정적인 수도자였다. 그는 고해성사를 통해 자신의 죄를 회개한 뒤 방을 나왔다. 걸어서 계단까지 가다가 급하게 뛰어서 되돌아왔다. 방을 나와 계단까지 가는 사이에 또 마음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되돌아온 루터는 다시 회개하고 방을 나갔다. 그리고 계단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러니 쉽지 않다. 사람의 마음이란 돌아서면 때가 묻고, 돌아서면 때가 묻는다. ‘깨끗한 마음’이 되어서 하느님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종종 ‘거울’에 비유한다. 중국의 『육조단경』에는 ‘마음과 때의 관계’를 놓고 두 수도자가 벌이는 한판 승부가 담겨 있다. 선(禪)불교사에서 유명한 장면이다. 달마의 법맥을 잇는 오조(五祖) 홍인 대사가 시험 문제를 냈다. “게송(깨달음의 시)을 한 수씩 지어라.” 제자들의 안목을 보고 깨달음의 문턱을 넘은 자가 있으면 후계자로 삼겠다고 했다. 훗날 중국 북종선(北宗禪)의 대표 주자가 되는 신수(神秀, 606~706)가 먼저 답안지를 냈다. 그는 거울과 때에 대해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거울에 때가 끼이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 신수의 안목에는 ‘마음’이란 거울이 있고 그 위에 먼지가 쌓인다. 루터의 방식과 비슷하다.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털고, 또 털고, 또 터는 식이다. 깨끗한 거울이 드러나게끔 말이다. 홍인 대사는 그 답안지를 보고서 이렇게 채점했다. “범부는 여기에 의지해 수행하면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지는 않겠다. 그러나 깨달음의 지혜를 얻을 수는 없다. 문 앞에 왔을 뿐,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낙제’는 면했지만 ‘합격’은 아니었다.

육조 혜능. 중국의 마오 쩌둥(毛澤東)도 혜능의 열혈팬이었다.

혜능의 가르침을 담은 ‘육조단경’을 탐독하곤 했다.

당시 행자(승려 견습생) 신분이던 혜능(慧能, 638~713)도 답안지를 냈다. 글을 읽을 줄 몰랐던 그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이렇게 적었다. ‘마음의 거울은 본래 깨끗하다. 그러니 어느 곳에 먼지로 물들 것인가!” 혜능은 아예 ‘거울’을 깨버렸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울의 형상’‘마음의 형상’을 깨버렸다. 그는 왜 거울을 깼을까. ‘마음’은 몸뚱아리(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음의 몸’을 만들어 놓고 먼지가 쌓인다고 착각을 한다. 그래서 혜능은 그 착각을 깨버렸다. 홍인 대사는 혜능의 답안지도 채점했다. 결과는 합격. 혜능은 홍인 대사의 뒤를 이어 중국 선불교의 법맥을 잇는 육조(六祖)가 됐다. 신수의 방식으로는 ‘깨끗한 마음’이 되기가 불가능하다. 아무리 수행을 해도 먼지가 끊임없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혜능의 방식은 다르다. 그는 먼지의 정체부터 뚫었다. 먼지가 뭔가. 지저분한 마음이다. 혜능의 눈에는 ‘지저분한 마음’도 마음이고, ‘깨끗한 마음’도 마음이다.혜능은 ‘마음의 속성’을 깊이 들여다 봤다. 마음이 뭔가. 빈 자리에서 나왔다가, 잠시 작용하고, 다시 빈 자리로 돌아간다. 그래서 마음은 작용만 할 뿐 비어있다. 그게 마음의 정체다. 그러니 혜능의 눈에는 마음도 몸이 없고, 먼지도 몸이 없다. ‘빈 곳’ ‘빈 것’이 묻을 수가 없다. 그걸 깨칠 때 비로소 ‘깨끗한 부처님 나라(淸淨佛國土)’가 드러난다.

4세기에 비잔틴 제국에서 팔복 기념 교회를 세웠다가 614년 페르시아에 의해 파괴됐다.

현재 팔복교회는 1939년 프란치스코 수녀회가 세웠다.

예수의 겟세마네 기도는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였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2장20절)에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산다”고 했다. 예수에게도 ‘나’가 없고, 바울에게도 ‘나’가 없다. 그게 ‘무아(無我)의 영성’이다. 그리스도교 영성의 핵심은 하느님을 향해 모든 걸 내맡기는 것이다. 슬픔의 감정도, 기쁨의 감정도 내던져야 한다. 두려움도, 분노도, 영광도 남김없이 내맡겨야 한다. 시상식장에서 큰 상을 받을 때 사람들은 “이 영광을 하느님께 돌립니다”라고 말한다. 그저 겸손하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여기에도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내가 영광을 움켜쥐면 ‘깨끗한 마음’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하느님께 내맡기는 거다. 그렇게 던지는 순간, 내 마음이 깨끗하게 포맷되기 때문이다. 영성가들은 그걸 ‘전적인 위탁(Total Commitment)’이라 부른다. 그런 ‘무아의 영성’을 통해 ‘없이 계신 하느님’을 보게 된다. 그래서 예수는 말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강하게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이미 구원을 받은 거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다 사해 주셨으니까. 그런데 굳이 ‘깨끗한 마음’이 왜 필요한가?” 이렇게 따진다. 과연 뭘까.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 ‘믿음’의 의미는 대체 뭘까. 세계적인 ‘기독교 미래학자’ 레너드 스윗(미국 드루신학대 석좌교수) 박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는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성장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건 아주 존경받는 일이었다. 그런데 교회가 예수님 대신 그동안의 성공, 그 자체를 예배하기 시작했다. 어느 세대나 축복이 있고, 저주가 있다. 우리 세대가 겪고 있는 저주는 바로 ‘예수 결핍 장애’다.”

스윗 박사는 결핍을 채우려면 ‘관점’이 아니라 ‘하느님을 맛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기독교 세계관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세계관은 없다. 세계관은 모두 머리에서 나온 거다. 거기선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 성경에선 하느님을 맛보고, 그걸 느끼라고 했다. 우리에겐 라이프(Lifeㆍ생명)가 필요한 것이지 뷰(Viewㆍ관점)가 필요한 게 아니다.” 세계관이나 교리만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면 예수는 굳이 ‘산상수훈’을 설하지 않았을 터이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는 ‘관점’을 설하지 않았다. 삶의 사막에서 허덕대는 우리의 목을 축여주는 건 ‘관점’이 아니다. 대신 예수는 생수를 건넸다. 마음의 버튼을 누르고, 마음이 작동하게 하는 ‘진짜 물’이다. 거기에 길이 있다.

팔복교회 바깥의 도로다. 이 길을 따라 3㎞ 정도 가면 갈릴리 호숫가에 ‘오병이어’ 교회가 있다.

예수 당시에는 오솔길을 걸었겠지만, 주위 풍경은 비슷했을 터이다.

예수의 제자들도 보챘다. 하느님을 보게 해달라고 예수에게 졸랐다. 빌립은 예수에게 이렇게 매달렸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요한복음 14장8절) 그런 제자에게 예수는 말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 그걸 믿지 않느냐?”(요한복음 14장10절) 예수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손으로 만져야, 귀로 들어야, 눈으로 봐야만 믿는 제자들 앞에서 말이다.

유대교의 율법주의자들도 공격적인 물음을 던졌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에게 와서 물었다.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는가?”(누가복음 17장20절) 그들은 따지듯이 물었을 터이다. 하느님 나라가 어떻게 생겼는지, 언제 오는지, 어디로 오는지 말이다. 이들의 물음에 예수는 ‘종말론’으로 답하지 않았다. “OOOO년 0월 0일 0시 하느님 나라가 온다. 그때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진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예수의 답은 오히려 뜻밖이었다. “하느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누가복음 17장21절) 사람들 반응은 어땠을까. 맥이 빠졌을까. 아니면 실망했을까. 그도 아니면 말문이 막혔을까. 그런데 예수의 대답이야말로 가장 구체적인 답이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고, 그걸 찾는 게 우리의 몫이다. 예수의 ‘산상수훈’은 그 길을 구체적으로 일러주고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에는 예수의 어록과 행적을 담은 많은 글 조각들이 있었다.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채택하면서 이에 대한 수집과 선택, 그리고 배제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 와중에 ‘도마복음’은 4복음서에서 제외됐다. 복음서 중에서도 초기에 제작됐다는 문헌이지만 정경(正經)에서 빠졌다. 지금도 그리스도교에서는 ‘도마복음’을 ‘외경(外經)’이나‘위경(僞經)’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도마복음’에도 하느님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예수가 답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누가복음의 장면과 똑닮았다.

제임스 티소의 1890년작 ‘산상설교’. 예수의 가르침을 좇아오는 사람들 행렬이

갈릴리 호수까지 이어져 있다. 그림에서 예수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의 목소리가 보인다. 브룩클린 박물관 소장.

‘도마복음’에서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천국이 하늘에 있다고 하면 하늘을 나는 새가 너희보다 먼저 닿을 것이요, 천국이 바다에 있는 것이라면 바다 속의 물고기가 너희보다 먼저 닿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니, 천국은 너희 안에 있고, 또한 너희 밖에 있다.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 때, 그때는 아버지도 너희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곧 자신이 살아있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너희는 빈곤 속에 살게 되리라.” 누가복음에서도 예수는 분명하게 말했다. “하느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그러니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옛 선비들은 매화를 사랑했다. 추운 겨울을 뚫고 올라오는 꽃, 지조와 기품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선비들은 매화를 찾아나섰다. 세상 어딘가 ‘가장 먼저 핀 매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산을 헤매고, 계곡을 헤매도 매화는 없다. 결국 지쳐버린 선비는 포기한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대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란다. 자신의 집 뜰에 매화가 피어있기 때문이다.

‘하느님 나라’도 그렇다. 밖에서 찾으려면 막막하다. 모세가 올랐다는 시나이산으로 가야 할까, 아니면 유대인들이 언약의 궤를 놓아둔 성전의 지성소로 가야 할까. 그도 아니면 히말라야 산의 깊숙한 골짜기로 가야 할까.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 ‘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나의 안에서 매화가 필 때 나의 바깥에도 매화가 핀다. ‘도마복음’은 “천국은 너희 안에 있고, 또한 너희 밖에 있다”고 했다. 내 안의 천국을 찾을 때 바깥의 천국도 보인다.

예수는 ‘평화’의 뜻도 짚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마태복음 5장9절) 통(通)하면 평화가 있고, 통하지 않으면 평화도 없다. 남북 관계도 그렇고, 종교간에도 그렇다. 서로 통할 때 비로소 평화가 온다. 그러니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의 뜻이 뭘까. ‘통하는 사람들’이다. 무엇과 통하는 걸까. 신의 속성과 통하는 거다. 그럴 때 우리 안에서 평화가 이루어진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예수의 말도 그렇다. 거기에는 차단벽이 없다. 하나의 속성이 안팎으로 터져 있다. 서로가 서로를 공유한다. 인간이 신을, 신이 인간을 공유한다. 그래서 예수는 신을 품은 인간이자, 인간을 품은 신이다.

팔복교회 정원에 있는 라틴어 팻말. 붉은 꽃 아래 팔복 중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대목이 새겨져 있다.

‘산상수훈’의 마지막 메시지는 이렇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복음 5장10절) 이 구절에서 많은 사람이 ‘순교’를 떠올린다. 그런데 진정한 순교가 뭘까. 이교도의 땅에서 선교를 하다가 목숨을 잃는 게 순교일까. 그것만이 ‘의로움 때문에 당하는 박해’일까. 예수의 메시지는 그보다 더 깊은 곳을 찌른다. 예수는 신의 속성을 공유할 때, 그렇게 평화를 이룰 때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 “메타노이아!(마음의 눈을 돌려라!)”라고 외쳤다. ‘나의 눈’을 ‘예수의 눈’으로 돌려라, 나의 속성을 신의 속성으로 돌리라는 뜻이다. 그렇게 눈을 돌리는 과정에서 고통이 생긴다. 왜 그럴까. ‘나의 눈’을 무너뜨려야 하니까. 나의 고집, 나의 집착, 나의 욕망이 무너져야 하니까. 그런 고통이 바로 ‘박해’다. 때로는 나의 안에서, 때로는 나의 밖에서 밀려온다. 그게 박해다. 그런 박해를 통해 우리는 의로움(신의 속성)을 찾아간다. 그래서 예수는 말했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팔복의 팻말 위에 돌멩이가 하나 얹혀져 있다. 유대인들은 묘지를 찾을 때도 꽃 대신 돌을 놓는다.

팔복교회를 나왔다. 멀리 갈릴리 호수 위에 노을이 떨어졌다. 산상수훈의 메시지를 새긴 팻말 위에 돌멩이가 하나 올려져 있었다. 예루살렘의 올리브산에는 유대인의 묘역이 있다. 돌로 된 관마다 돌멩이들이 놓여 있다. 유대인들은 꽃 대신 돌을 놓는다. 팔복의 일곱 번째 메시지.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 팻말 위에도 누군가 돌멩이를 놓아 두었다. 그는 두 손을 모았을 터이다. 어떤 기도였을까. 자신의 삶에서 어떤 평화를 이루기 위해 기도를 했을까. 나도 작은 돌멩이를 하나 주웠다. 팻말 위에 얹었다. 그 앞에서 눈을 감았다. 물음이 올라온다. 예수가 묻는다. “네가 찾는 삶의 평화는 무엇인가? 너는 어떤 평화를 바라는가?”

갈릴리 호수에 황혼이 깃들었다. 하늘이 호수에 물들고, 호수가 하늘에 물들었다.

[출처]: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 <예수를 만나다> - 8.예수, “천국은 네 안에 있다.”/ 중앙일보, 2016. 3. 9.

9.갸롯 유다는 왜 소금통을 쏟았을까?

경북 안동은 간고등어로 유명하다. 옛날에는 냉장 시설이 없었다. 고등어가 잡히는 영덕 바닷가에서 안동까지는 무려 80㎞다. 생고등어는 내륙까지 가다가 썩기 일쑤였다. 보부상들이 나귀나 달구지에 봇짐을 싣고 하루 종일 걸으면 해질녘에 임동 장터에 닿는다. 안동에서 동쪽으로 20㎞쯤 떨어진 곳이다. 상인들은 임동 장터에서 고등어에 소금을 뿌렸다. 임동 장터에는 간고등어를 사려는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소금에 절어서 숙성된 고등어는 더 깊은맛을 냈다.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 벽화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작품 ‘노아의제사’.

유대인들은 하느님께 올리는 제물에 소금을 뿌렸다.

유대인들은 40~50℃를 넘나드는 사막 기후에서 살아야 했다. 그들에게 소금은 목숨 같은 존재였다. 맛을 내는 건 기본이다. 소금은 음식의 저장과 보존에 필수였다. 소금에 절여야 음식이 썩지 않고, 오래 저장할 수도 있었다. 구약에는 이런 대목까지 나온다. ‘너희가 곡식 제물로 바치는 모든 예물에는 소금을 쳐야 한다. 너희가 바치는 곡식 제물에 너희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소금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너희의 모든 예물과 함께 소금도 바쳐야 한다.’(레위기 2장13절) 그만큼 소금은 각별한 존재였다. 신에게 바치는 곡식에도 소금을 뿌려야 했고, 제물과 함께 소금도 바쳐야 했다.

숙소에서 일찍 나왔다. 갈릴리 호수의 해돋이를 보러 갔다. 오전 5시40분쯤 호숫가로 나갔다. 이렇게 어스름이 질 무렵, 예수도 호숫가를 거닐지 않았을까. 만물이 잠들었을 때 예수는 홀로 일어나 종종 기도를 했다고 한다. 약간 어둑했다. 아직 해가 오르진 않았다. 대신 물안개가 피어 올랐다. 호숫가 산책로에는 조깅을 하는 사람도 더러 보였다. 예수는 갈릴리호 주변 어딘가에서 ‘소금’을 예로 들며 설교를 했다. 그 유명한 ‘빛과 소금’ 일화다.

갈릴리 호숫가에 세워진 조각상. 가운데 뚫린 구멍이 갈릴리 호수의 모양이다.

북쪽 헤르몬산에서 흘러온 강이 사해를 거쳐 남쪽 요르단강으로 내려간다. 호수 건너 산 위로 여명이 비친다.

예수는 말했다. “모두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마가복음 9장49~50절) 마태복음에는 이렇게 표현돼 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마태복음 5장13절)

예수는 ‘짠맛’을 역설한다. 그걸 잃지 말라고,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사람들은 이 대목을 단출하게 푼다. ‘소금처럼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돼라.’ 이렇게 받아들인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일까. 예수가 말한 ‘소금’이란 뭘까. ‘짠맛을 잃은 소금’은 또 뭘까. 우리가 무엇을 잃을 때 ‘짠맛을 잃은 소금’이 되는 걸까. 예수는 왜 주머니가 아니라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라”고 했을까.

렘브란트의 작품 ‘예수의 초상’.

이전 시대 예수의 초상에 등장하던 아우라를 렘브란트는 뺐다. 대신 암스테르담에 살던

유대인을 얼굴을 관찰하며 인간적인 면모의 예수 얼굴을 완성했다.

예수는 “내가 너희 안에 거하듯,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고 했다. 나는 여기서 ‘김장하는 광경’이 떠오른다.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는 과정이다. 배춧잎은 처음에 빳빳하다. 고집이 있고, 에고가 있다. 그런데 소금과 접하는 순간 풀이 죽는다. 왜 그럴까. 에고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에서는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이다’고 했다. 왜 ‘불 소금’일까. 그리스어 성경에는 ‘en puri(in fire)’로 표현돼 있다. ‘불 속에서 소금에 절여지다’는 뜻이다. 그럼 왜 ‘불’일까. 내가 녹아내리기 때문이다. 소금과 만나는 순간, 에고는 녹기 시작한다. 그걸 통해 자신이 열린다. 그 틈으로 소금이 스며든다. 배추 안에 소금이 거하고, 소금 안에 배추가 거한다. 그게 ‘절여짐(Being salted)’이다. 절여진 배추는 달라진다. 한여름 뙤약볕에도 쉽게 상하지 않는다. 하루 이틀 지난다고 변하지도 않는다. 왜 그럴까. ‘짠맛’ 때문이다. ‘짠맛’을 품으면 성질이 바뀐다. 세상의 파도에 흔들리지 않고, 세월이 흘러가도 변함이 없다. 그게 바로 짠맛의 속성이다. 부동성과 영원성. 다시 말해 신의 속성이다. 신의 속성은 흔들림이 없고 영원하다. 예수는 그걸 잃지마라고 했다. 2000년 전에도 예수는 우려했다. 행여 우리가 ‘짠맛’을 잃을까봐 걱정했다. “아무리 네가 ‘세상의 소금’을 자처해도, 네 안에 ‘짠맛’이 없다면 어쩔 거냐. ‘신의 속성’이 없다면 어쩔 거냐. 어디에 가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 너희 마음에 ‘하느님의 속성’을 품어라. 그리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예수의 메시지는 이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최후의 만찬’.

유네스코는 1980년 이 작품이 소장된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에도 ‘소금 코드’가 등장한다. 유월절을 맞은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열 두 제자와 함께 식사를 했다. 다빈치는 그 광경을 작품으로 남겼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수도원에 소장된 ‘최후의 만찬’이다. 예수가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고 하자 제자들이 화들짝 놀라는 장면이다. 빌립(오른쪽에서 네 번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을 가리키며 “주님, 설마 그게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되묻는다. 다혈질이었다는 베드로(왼쪽에서 다섯 번째 머리)는 빵을 자르던 나이프를 든 채 예수를 향해 몸을 기댄다. 예수를 배반하는 갸롯 유다(왼쪽에서 네 번째 머리)는 진한 갈색 수염을 하고 있다. 그는 유대 제사장에게 은화 서른 닢을 받고 예수를 팔아넘겼다. 그림 속 유다는 오른손에 은화 주머니를 쥐고 있다. 그리고 그의 오른쪽 소매 앞에는 조그만 통이 하나 넘어져 있다. 그게 소금통이다. 유다는 팔로 소금통을 쳐서 넘어뜨렸다. 그리고 식탁 위에는 소금이 쏟아져 나와 있다. 식탁 위에 흩어져 반짝이는 소금들. 그게 무엇을 의미할까. 유다가 ‘신의 속성’을 쏟아버렸음을 뜻한다. 이미 자신의 마음에서 ‘짠맛’을 잃어버렸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호숫가를 걷다가 벤치에 앉았다. 해뜨기 직전의 갈릴리는 고요했다. 궁금했다. 내 안의 소금통, 우리 안의 소금통에는 무엇이 있을까. 거기에는 소금이 담겨 있을까. 아니면 텅텅 비어 있을까. 소금이 있다면 거기서 ‘짠맛’이 날까. 행여 지지고 볶는 일상에서 우리는 수시로 소금을 쏟아버린 건 아닐까. 그렇게 우리도 예수를 배반하고 있는 건 아닐까.[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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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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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솔바람소리 | 작성시간 22.12.12 알듯말듯잘듣고갑니다!
  • 작성자사명 | 작성시간 22.12.12 성지순례 다녀오셨군요.
    저도 언젠가꼭 다녀오고 싶습니다.

    그리고 외람되지만
    이렇게 한번에 긴글은 읽기 어려워요.
    잘라서 몇 탄으로 올려주심 좋았을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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