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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스크랩] [부처님의 생애] 8. 수행 ④ 고행을 포기하다

작성자무이|작성시간21.10.07|조회수42 목록 댓글 2

[부처님의 생애] 8. 수행 ④ 고행을 포기하다
“극심한 고행도 깨달음의 참된 길이 아니다”



“내가 만약에 여윈 몸으로 도를 얻는다면
굶주림이 열반에 이르는 길로 착각할 것”



“싯다르타 사문이 진리를 발견해 알려줄 것”이라고 다들 기대하고 있었지만 고행 6년차의 싯다르타는 자기가 들어선 길에 회의를 품고 있었다. “사문이 실현할 수 있는 가장 극한의 고통을 감수했음을 언제나 자신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목적에 더 가까워졌다고 느껴지지 않았다(맛지마니까야 36).” 죽음을 경험할 정도로 단식했지만 싯다르타가 바라던 해탈은 다가오지 않았다. 고행의 길은 의미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니다나가타〉는 이 때 사정을 이렇게 전한다.
 
“싯다르타가 6년이나 고행을 하셨음에도 고행은 마치 허공에 매듭을 묶으려 할 때처럼 의미 없게 되고 말았다. 고행이라는 것은 깨달음을 향한 길이 아님을 알고 보통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섭취하기 위해 마을과 거리로 탁발하러 다니며 공양을 했다.”
 
〈과거현재인과경〉 3권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나는 하루 깨 한 톨과 쌀 한 알을 먹었으며, 때로는 이레 동안에 그렇게 먹기도 했다. 몸이 야위어 마치 마른 나무와 같았으나 고행을 닦아 6년이나 되었는데 해탈을 하지 못하였으니 짐짓 그릇된 길인 줄을 알게구나.
 
옛날 잠부나무 아래 있는 것만 같지 못하다. 욕심을 떠나고 고요한 이것이 가장 참되고 바르구나. 내가 만약 여윈 몸으로 도를 얻는다면 저 외도들은 오로지 굶주림이 바로 열반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제 뼈 마디마디에 나라연(那羅延. 힘 좋은 역사)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이것으로는 도의 결과를 얻지 못하리라.”

〈방광대장엄경〉 7권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사문과 바라문들이 고행을 닦을 때에 몸과 마음을 괴롭게 굴어서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다만 스스로 괴롭힘이요, 도무지 이익이 없는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이제 가장 극심한 고행을 했지만 세상에 뛰어난 훌륭한 지혜를 증득할 수 없었다. 고행은 보리의 인(因)이 아니며, 괴로움을 알고 ‘쌓임(集)’을 끊고 ‘사라짐(滅)’을 증득하고 도를 닦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다른 법이 있어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끊어 없애게 하리라.
 
내가 옛날 어릴 때 부왕의 동산 가운데 잠부나무 아래에서 초선(初禪)을 닦아 얻은 적이 있다. 그 때 나의 몸과 마음이 기뻤는데, 이렇게 하여 사선(四禪)을 증득했다. 옛날 일찍이 증득했던 것을 생각하건대 이는 보리의 인이므로 반드시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없앨 수 있으리라.”

깨달음을 얻어 무상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행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고통만 가중시킨다면 의미가 작은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금욕적인 생활을 해도, 지나치다 싶을 만큼 고행해도, 그의 은 여전히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아우성 쳤다. 이기심과 아집(我執)이 사라지기는커녕 여전히 욕정과 갈망에 시달렸다.
 
6년에 걸친 고행 끝에 싯다르타는 마침내 고행이 요가선정과 마찬가지로 보람이 없다는 사실에 직면했다. ‘자기중심주의’에 대한 대담하고 철저한 공격 뒤에 남는 것은 튀어나올 것 같은 갈비뼈와 등뼈,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망가진 몸뿐이었다. 니르바나(열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싯다르타는 함께 고행한 다섯 동료들이 자신을 존경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궁극적 해방에 빨리 도달해 가르쳐 주기를 기다린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이들을 실망시켜야만 했다. 철저한 고행 결과 자신에게 다가온 것은 약해진 몸과 새로운 수행이 필요하다는 사실 뿐이었기 때문이다. 수행에 거짓은 없다. 특히 종교적 수행을 마치 이적(異蹟)처럼 꾸민다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싯다르타는 모든 것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로 마음먹었다. 다섯 동료들과 주변의 수행자들이 실망하는 것은 일시적이겠지만, 궁극적 해탈을 얻으면 실망은 극복될 것이다. 사실 싯다르타보다 더 가혹하게 고행한 수행자는 없었지만 고행은 싯다르타를 실망시켰다. “인간의 한계로부터 자신을 끄집어내는 대신, 스스로 더 큰 괴로움을 만들었을 뿐”(카렌 암스트롱)이다.

싯다르타에겐 무엇인가 새로운 활로가 필요했다. 궁극적 해방이라는 목적지에 거의 다 온 것 같기도 했다. 반면 목적지가 보이지도 않기도 했다. 그럼에도 고행은 적절한 수행이 아님이 분명했다. 선정에 든 동안에는 편안해도, 선정에서 벗어나면 여전히 욕심적인 자아에게로 돌아오는 무소유처정(定).비상비비상처정(定) 같은 요가수행처럼 고행도 이제는 버려야 될 그 무엇이었다. 새로운 시대 흐름에 따라 만들어진, 당시를 대표하는 모든 수행법을 싯다르타는 거의 다 시험해 보았다. 요가수행에서도 상당한 실력을 발휘해 짧은 시간에 극점에 도달했다.

고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감히 따올 수 없을 만큼의 정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남는 것은 병들고 비참하고 초췌한 모습이었다. 동료들에게 솔직한 모습을 보여야 될 시간만 남았음을 싯다르타는 알고 있었다. 고행은 단지 자신을 괴롭히는, 그래서 고행자 본인을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기술일 뿐이었다. 아마 싯다르타 옆에서 고행하던 사람 가운데 일부는 절망해 구도를 포기하고 과거의 안락한 생활로 돌아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가정을 가진 사람들은 윤회하게 될 운명이라고 하지만, 사회를 떠난 금욕주의자들 역시 그들과 다른 운명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숲의 고행자들, 요가 수행자들은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자신을 의식하고 욕심을 잃지 않는 자아(自我)가 문제의 근원에 있다는 사실을. 남이 아프거나, 남이 죽거나, 남이 늙으면 그저 그렇게 대하는 사람도, 막상 자신에게 비슷한 문제가 닥치면 객관적이 되지 못했다. 남의 생노병사에 대해서는 초연한 척해도, 막상 자신이 그 문제에 부닥치면 허둥거렸다.
 
사람들은 마치 병에 걸린 듯 ‘자아(自我)’에 몰두했으며, ‘자아’에게 벗어나지 않으면 궁극적 해방은 결코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음을 숲의 수행자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고, 자기중심주의를 탈각시키려고 발버둥 쳤다. 요가수행, 고행도 다 이를 위한 과정이었다. 안타깝게도 고행 역시 요가수행처럼 정답은 아니었다. 고행도 ‘이기심’을 소멸시키지 못했다.

“고행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아니다”고 생각한 싯다르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보통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섭취하기 위해 마을과 거리로 탁발하러 다니며 공양을 했다. 위대한 사람에게 보이는 32상이 싯다르타에게 본래대로 나타나고 몸은 황금색으로 돌아갔다. 그것을 본 다섯 비구들은 생각했다.
 
“이 사람은 6년 동안 고행을 했어도 일체지를 얻지 못했으며 게다가 지금 마을로 탁발하러 다니면서 보통 사람들과 다름없는 음식을 먹고 있다. 이 같은 자가 어떻게 일체지를 얻을 수 있겠는가. 이 사람은 사치스럽게도 노력하기를 저버리고 말았다. 마치 머리를 감으려는 자기 이슬방울을 기다리고 있듯이 우리가 이 사람에게서 남다른 기대를 품는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대체 이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니다나가타).”
 
이렇게 생각한 그들은 싯다르타를 돌아보지도 않고 각자의 의발을 지니고 18요자나(요자나는 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 제왕이 하루에 행군하는 거리로 1요자나는 10∼15km) 거리를 걸어 이쉬파타나(바라나시 근교의 사르나트)에 들어가 버렸다.

그 무렵 우루벨라의 세나니 마을, 세나니 지주의 집에 살고 있던 수자타라는 나이가 찬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한 그루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서 원을 세웠다. “만일 제가 같은 태생의 양가에 시집을 가 사내아이를 갖게 된다면 매년 새롭게 10만 금을 보시로 바치겠습니다.” 그녀의 이 기도는 이뤄졌다.
 
그런데 싯다르타가 고행해 6년 째 되었을 때, 그녀는 비사카월의 보름날 이른 아침에 8마리의 암소의 젓을 짜 니그로다 나무의 천인에게 바치기로 마음먹었다. 그 때 마침 싯다르타는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곳에서 싯다르타를 본 수자타는 천인이 나타났다는 생각에 환희심에 차 우유죽을 담은 황금발우를 바쳤다. 황금발우를 받은 싯다르타는 나이란자나 강에 들어가 목욕한 뒤 우유죽을 전부 먹었다.

〈과거현재인과경〉 3권에는 약간 다르게 나온다. 나이란자나 강에 들어가 목욕한 싯다르타는 몸이 너무 약해 나올 수 없었다. 겨우 나뭇가지를 잡고 나오니 ‘난타바라’라는 여인이 우유죽 공양을 올렸다. “나는 일체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해 이 음식을 받는다”며 우유죽을 먹었다. 그 때 다섯 사람은 이 일을 보고 놀라 이상히 여겨, 저마다 살던 데로 돌아가 버렸다.

어찌됐던, 요가수행을 넘고 고행을 통해 궁극적 해방을 찾으려던 싯다르타는 고행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에게는 새로운 무엇이 필요했다.
 

== ‘고행포기’가 갖는 의미는? ==

‘속세’.‘체념’ 극복할 ‘中道’자각
출가 다음 위대한 ‘터닝 포인트’


사문이 되고자 출가한 것이 싯다르타 인생에서 최초의 전환점이라면 “고행포기는 두 번째로 중요한 터닝 포인트”(폴커 초츠)다. 출가가 가정과 사회를 떠난 ‘위대한 포기’였다면, 고행포기는 ‘기존 수행법들’을 뒤에 남기고 새로운 수행을 찾은 ‘위대한 모색’에 해당된다. 고행포기는 ‘속세’와 ‘체념’이라는 두 극단을 피하고 ‘중도(中道)’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하다.

싯다르타는 고행을 통해 과연 무엇을 배웠을까. 카렌 암스트롱에 의하면 고행을 했지만 싯다르타는 여전히 욕망에 시달렸고, 여전히 의식들의 싸움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싯다르타는 당시의 다른 수행자들과 달리 “거룩한 자아가 사실은 망상 아닐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자아’가 영원하고 무조건적인 ‘실재’의 상징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고양된 ‘자아’를 찾는 것이 오히려 싯다르타가 없애고자 하는 ‘자기중심주의’를 강화하는 일이 됨을 고행과 요가선정을 통해 체험했으리라. 그리하여 싯다르타는 스승을 찾지 않고 스스로 개척해 ‘궁극적 해방’을 맛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곤 외쳤다. “틀림없이 깨달음을 얻는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맛지마니까야 36).”

이처럼 고행은 싯다르타에게 ‘더욱 진전되고 고양된 수행의 길로 인도할 단초’를 제공해 주었다고 영국의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파악한다. 싯다르타가 어렸을 적 아버지를 따라 가서 본 파종제(播種祭)에서 경험한, 잠부나무 아래의 선정이 길을 찾아 헤매던 싯다르타에게 활로를 열어준 ‘새로운 옛 길’은 아니었을까.



조병활 기자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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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이제야 | 작성시간 21.10.07 고행은 너무나 힘든일 🙏
  • 답댓글 작성자무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10.08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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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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