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스님이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조주 화상은 대답했다. "없다 !"
《무문관》 1칙, '조주구자(趙州拘字)'
| 1. 《열반경》에는 중국, 한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불교계에 파란을 불러일으킨 유명한 구절이 하나 등장합니다.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 이라는 구절입니다. 그러니까 일체 중생들은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선한 품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사람, 한마디로 불교의 가르침을 불신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일천제에게도 과연 불성이 있는지의 여부와 관련된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졌지요. 인도에서 4세기에 시작되어 동아시아 불교계의 파란을 일으켰던 불성 논쟁은 시간이 흐르면서 일천제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방향으로 정리되어 갑니다. 일순 그러니까 모든 존재를 하나의 큰 수레에 태워 깨달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대승불교의 기본 입장이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선한 품성이 전혀 없는 존재가 어떻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지에 대한 논쟁은 불가피 했을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일천제가 부처가 될 수 있다면, 그에게는 이미 불성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일천제에게 불성이 없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된 셈이 됩니다. 사실 일천제가 아니어도 됩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 즉 중생은 좁게는 마음과 욕망을 가진 인간만을 가리키지만 넓게는 모든 생명체들이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논의가 복잡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잘못하면 다람쥐 부처, 뱀 부처, 혹은 말라리아모기 부처도 가능할 테니까 말입니다. 이렇게 점점 더 동아시아 대승불교는 불성과 관련된 논쟁에 깊숙이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불성 논쟁을 주도하면서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는 방향으로 논의를 끌고 갔던 것은 교종, 특히 천태종天台宗의 이론가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대승불교의 다른 경전, 특히 《유가사지론》 등과 같은 경전에는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구절도 속출합니다. 그러니 논쟁은 종식될 기미를 보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지적인 논쟁으로 수행자들은 스스로 부처가 되려는 치열한 수행을 등한시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아니 등한시 하는 정도가 아니라 지적인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서로를 집요하게 공격하고 비난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정도면 수행자들은 사실 자비를 마음에 품은 불교도이기는커녕 권력욕에 취한 정치가나 이데올로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정말 한심한 일이었지요. 자비를 실천해야 할 수행자들이 오히려 가장 무자비한 비난과 독선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으니까요. 바로 이럴 때 불립문자를 표방하며 선종이 등장한 겁니다. 그렇지만 선사들도 불성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선사들이 불성 논쟁에 뛰어들어서가 아니라 선사들을 스승으로 찾아온 수행자들이 자꾸 물어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선사들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불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선사들은 불성에 대한 제자들의 이론적 집착을 부수는 방향으로 문답을 진행합니다. _ 계속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강신주 지음 본문 중에서 무이 옮김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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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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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제야. 작성시간 24.10.17
어딘가에 의지 하고픈 인간의 심리가 아닐까요?
무이님
고맙습니다
건강이 최고의 행복이 겠지요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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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무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10.18
고맙습니다.
이제야. 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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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여백 작성시간 24.10.17 인사 드리고 갑니다
무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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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무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10.18
여백 님!
가만히 불러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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