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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에 대하여 / 이성복

작성자심철|작성시간18.01.12|조회수133 목록 댓글 0
























세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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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월이란 말만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나는 곱게 곱게 자라왔고 몇 개의 돌부리 같은
사건(事件)들을 제외하면 아무 일도 없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그 어려운 수업시대(修業時代), 욕정과 영웅심과
부끄러움도 쉽게 풍화(風化)했다 잊어버릴 것도 없는데
세월은 안개처럼, 취기(醉氣)처럼 올라온다
웬 들판이 이렇게 넓어지고
얼마나 빨간 작은 꽃들이 지평선 끝까지 아물거리는가

그해

자주 눈이 내리고
빨리 흙탕물로 변해 갔다
나는 밤이었다 나는 너와 함께
기차를 타고 민둥산을 지나가고 있
었다 이따금 기차가 멎으면 하얀 물체(物體)가
어른거렸고 또 기차는 떠났다……세월은 갔다

어쩌면 이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돌아서
출렁거리는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갈 때
너는 발을 동동 구르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너를 사랑했다

나는 네가 잠자는 두 평 방(房)이었다
인형(人形) 몇 개가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고
액자 속의 교회(敎會)에서는 종소리가 들리는……
나는 너의 방(房)이었다
네가 바라보는 풀밭이었다
풀밭 옆으로 숨죽여 흐르는 냇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문득 고개를 떨군 네
마음 같은,
한줌
공기(空氣)였다)






세월이라는 말이 어딘가에서 나를 발견할 때마다

하늘이 눈더미처럼 내려앉고 전깃줄 같은 것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을 본다 남들처럼
나도 두어 번 연애(戀愛)에 실패했고 그저 실패했을
뿐, 그때마다 유행가가 얼마만큼 절실한지
알았고 노는 사람이나 놀리는 사람이나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세월은
언제나 나보다 앞서 갔고 나는 또 몇 번씩
그 비좁고 습기찬 문간(門間)을 지나가야 했다.



이성복


 




영하 20도

.

가슴에 손을 얹고

한참을 있습니다.

.

세월속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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