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사회의 관습법은 조종(祖宗)에의 복속을 천륜의 도리로 복종을 전제한다. 관습법의 무서움은 조상을 신으로 모시는 천륜의 도용이다. 관심법에 따라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말 한마디면 모든 백성들은 얼마든지 하루아침에 죄인이 되어 공포 앞에 이른다.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옛말이 있다. 조상님에게 호랑이굴은 당연히 양반 관료사회의 불문법이었을 것이다. 학대와 핍박과 겁박을 넘어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며 평생을 사회적 압박 속에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눈의 잣대인 눈치와 마음의 느낌인 심증보다 더 중요한 정신세계는 없었을 것이다.
주변의 정황과 상황을 직감적으로 파악하며 살아가야 하는 환경 조건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고개 숙이며 아부로 살아가는 길 밖에 다른 마음 씀씀이는 불가능했다. 기색과 안색과 음색을 살펴 복심을 알아내는 직감적 능력은 동물적 후각이다. 마음이라는 씀씀이 도구는 감정과 감성과 느낌에 의한 개별적 심성(心性)을 일구어왔다. 마음을 주는 사랑과 마음을 다하는 정성과 마음을 함께 하는 온정은 존재적 인간의 운명이다. 마음 사회가 닫힌 공간의 활동이라면 정신사회는 열린 공간의 주체이다. 정신이 육체적 영혼의 무한한 활동이라면 마음은 자연에의 순종을 전제하는 숙명적 본연에의 집착이라 하겠다.
자연 의존적 육체적 삶을 살아온 농경사회는 감정이 유통되는 마음 사회이다. 몸의 고단함을 위로받는 길은 마음뿐이었다. 계약과 교역과 유통이라는 제도적 장치들이 기준인 시민사회는 정신사회이다. 고단한 사회는 생각을 정지시켜야만 하기에 온정의 마음으로 살아간다. 자연의 절대성에 의존해온 인간 사회는 까다롭고 귀찮은 성문법보다 불문법인 관습법이 편리하다. 마음으로 교류하는 사회에서 몸은 마음을 간직한 주인이 되지만 정신을 우선하는 사회에서 몸은 나그네로 대우받을 뿐이다. 마음 씀씀이의 따듯함이 정신 영혼의 고귀함을 대체한다.
드러나지 못하는 닫힌 정신은 결국 개인을 영악함으로 내몰아왔다. 영악함이 오히려 똑똑함으로 오판된 사회를 만들어냈다.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서도 새우젓을 얻어먹는다는 배고픈 정신이다. 나라가 망한 이후에도 유가적 윤리도덕을 고수했던 이 나라에서 욕지기가 가장 다양하고 화려했던 것처럼 논리적 정신세계가 없던 이 나라에서 영악함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정신 대체 효과제로서의 마음세계였다. 농경사회는 경험이 우선적이기에 과거에 대한 찬양이 언제나 전통으로 우대받아왔다. 과거가 지식이고 지혜이며 도리인 닫힌사회였다. 자연과 함께하는 개인의 경험조차도 그 대상이 자연이었기에 언제나 올바름의 도리로 마감했다.
마음은 자연에서 저절로 분출하는 샘물이었다. 마르지 않으며 변하지 않고 반복되는 자연의 하수분 앞에 개인의 경험은 그야말로 점쟁이처럼 아귀가 잘 맞았으니 어느 누가 반박을 하겠는가. 그런 관점에서 대상이 인간이 될 때 눈치는 상대의 복심을 파악하는 것이니 그것은 그야말로 후각으로 모든 것을 파악하는 동물들처럼 인간사회에 동물적 심성들을 이식시켜왔다. 그런 세속적 전승은 논리부족의 과거 보존으로 이어지며 모두는 점쟁이가 되어 예언하러 나선다. 나이 먹을수록 주장하는 것은 점쟁이처럼 내 말이 맞다는 주장들이다. 결국 말이 앞서면서 글은 외움을 위한 교본으로 전락한다. 가벼움이 진리가 되고 겉치레가 윤리도덕이 되며 가식이 본심을 포장한다.
가치의 기준이 물질적 추구로 이어지며 말 또한 그 가치가 변해가고 있다. 언론조차도 자신들이 진실을 보도한다고 믿으며 물질에 연연해 살아간다. 현상에 집착하면서도 진실을 지향한다고 외친다. 당연하고 당면한 일상의 삶에서조차도 굳이 생명의 안녕과 보존에 집착하는 가식적 행위를 끝도 없이 내세워 주도권을 쥐고자 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적 이끌림에 호소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을 호랑이굴로 매도함으로써 스스로를 보호자로 자처할 수 있다는 독단적 발상이기도 하다. 사회적 규율이라 할 윤리도덕은 형식으로 흐르며 실제적 규율은 눈치가 되어 스스로 앎의 기회를 박탈하는 사회를 이어간다. 암묵적이며 억압적이고 강제적인 주변의 압박에서 오는 불안 심리를 스스로 벗어나는 길은 타고난 눈치 이외에 뭐가 가능하겠는가.
눈치의 대응력과 그 빠름과 상황인식의 애매모호함은 대(大) 한(韓) 민국이라는 좁은 나라를 우주적 땅덩이로 만들었으며 자연의 터전조차도 밭떼기로 구분되는 그물망 속에 가두는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작명 자체가 뻥튀기 눈치와 그물망 구속의 결집이다. 여유로운 시간에 숭고한 일을 한다면서 잇속과 뱃속과 가속(家屬)에 집착하는 나라였다. 질서 체계를 규정하는 처처마다 언어의 윤리도덕적 표현이 녹아들수록 내면은 어둠이 가득하다. 잘못하면 천벌을 받으며 금수만도 못하고 철천지원수로 낙인찍힌다. 생명에 대한 보호에 집착할수록 징벌적 경시에 대한 극악함이 돌출한다. 수없이 넘쳐나는 성현들의 책만큼이나 수많은 고문 도구들도 늘어났으며 육시랄 형에 거열형과 부관참시까지 난무하는 야만 국가의 건설이다.
1831년 9개월간 아메리카라는 신세계를 방문한 프랑스 철학자 토크빌은 종교와 자유와 민주를 짐승과 동등한 육체적 관점이 아닌 학문이라는 정신의 관점에서 냉철하게 현상과 그 원인세계에 대한 탐구를 보여주고 있다. 정신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인간 육체의 보존과 영달과 누림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며 합리적인 제도의 창조임을 강조하고 있다. 종교조차 위계적이었던 유럽을 벗어난 신세계에서 새로운 종교를 창조한 그들은 모든 것을 평등과 참여와 토론이라는 공동체적 관점에서 시작했기에 각자가 신의 섭리를 따르는 사회를 형성해갔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복음주의였다. 청교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문명국가 아메리카의 신천지에는 복음주의를 추종하는 다양한 종교적 집단이 등장했다.
물론 그들은 유럽 그것도 영국의 성공회에서 이탈한 청교도와 스코틀랜드와 네덜란드의 칼뱅파 장로교와 프랑스 위그노 개신교도들의 아메리카였다. 영국의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에서 성공회와 가톨릭의 탄압을 피해 신세계로 이민 온 청교도적인 종교적 삶의 정신으로 무장한 성도들이었다. 종교적 이상사회의 건설을 위해 종교적 자유라는 새로운 가치를 신천지 아메리카에서 정립하고자 그들은 노력했다.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였기에 농사를 잘 지어 배불리 먹자는 자연의 정신이 아니라 오직 성경과 믿음에 의한 하나님의 정신을 원했다. 종교적 교리의 실천이 지상과제였기에 목사로 출세해보겠다는 동물적 감각도 없었다. 오직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정신에 의한 공동체 사회건설이라는 제도적 자유의 개념이 전부였다.
방종의 자유가 아니라 스스로가 선택한 구속적 자유였다. 정신에 의한 육체의 종속이다. 육체보존을 위한 정신이라는 생각이 불가능한 세계를 살아간 것이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유교적 효(孝) 사상으로 우리의 몸을 보물로 여기며 정신은 그 보물을 잘 보관해 오랜 세월 유지될 수 있도록 수련해야 한다는 도가적 세계관이 아니었다. 하나님과의 언약과 섭리와 계시만이 전부인 그런 정신세계가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일상에서 정신의 역할을 마음 씀씀이로 여겼기에 나라에의 충과 부모에의 효가 합해진 충효사상만이 전부였던 우리의 모습과 대비된다. 자유니 개인이니 존재니 양식이니 하는 객관상관물들은 존재조차 없던 나라였다. 그것은 자연을 벗어나 인간 스스로의 노력의 결과로 얻어지는 보편적 개념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객관적 개념들은 우리끼리라는 따듯한 민족적 하나로 개념에 상충되기에 서로가 한 울타리 안에서 눈치 보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으로 정착할 수는 없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가 윤리적 인간임을 보여주는 것이자 남보다 더 배불리 잘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었다. 자손을 많이 낳는 것이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조상님들이 점지해 준 피조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부모님에게 효도하기 위한 필요품이 되는 그야말로 안팎이 뒤집히고 본말이 전도되며 가식이 형식이 되는 어리석은 개념이 난무하는 유교 국가였던 것이다.
우리에게 자유라는 언어의 개념조차도 서구사회와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나라의 기축(基軸)이 인심이었지 자유가 아니었다. 책임이 보증된 자유라기보다는 방임된 들판의 야생마처럼 날뛰는 모습이 연상되면서 누군가 즉 부모와 국가와 사회의 보호가 필요한 개념으로 다가온다. 절대적 신에 의해 구속된 완벽한 자유가 아니었다. 자유를 보장해주면 곧 나라가 망할 것 같은 심정이었으며 사회적 질서체계가 무너질 것으로 여기며 위계적이고 가부장적인 봉건사회의 전통적 질서체계를 허무는 동물적 자유방임으로 여겼다.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억제하고 억눌러서 가식적 점잖음으로 가두어야만 하는 양반사회였다.
서구사회에서 자유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의/ 가호 안에서의/ 영광 안에서의 인간 활동의 무한한 자유였기에 종교적 지향에서 오는 개인의 가장 올바른 가치체계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사회였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는 본질적이지 못한 도용의 자유였기에 그 진정성이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도 없는 민족이었다. 아전인수적인 자유였기에 표피적 개념에 머물렀다. 그 이상의 의미는 일상을 살아가는 삶에서 불필요했다. 그처럼 서구적 개념의 자유는 우리에게 그저 자신의 능력과 권력과 권위를 보호해 주고 보장해 주며 세워줄 도용적이고 표절적이고 가식적인 개념으로서의 역할만이 가득하게 주어져왔다.
개념을 통해 이익 실현이 눈에 보이는 나라였다. 우리에게 서구식 정신세계는 불가능하기에 동상이몽과도 같다. 굳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대여품목일 뿐이다. 남의 물건을 빌려와서 쓰면서 거기에 애착을 보이거나 집착을 보이며 주인의식을 갖기는 어렵다. 그것은 그냥 쓰고 돌려주면 되는 물건일 뿐이다. 물질적 집착을 보이는 우리의 사고에서 물건조차도 그런 느낌을 갖고 살아가는데 정신은 그야말로 존재조차 불가능한 영역이다. 따라서 정신계발을 위해 노력한 선각자들의 무수한 고전들에 대해서도 아무런 감흥이 생겨날 수가 없는 것이다. 더욱이나 배움의 가장 최상의 가치가 있는 기독교 성서는 말로써 대체될 뿐이다. 그 성서 구절 어디에도 배불리 먹기 위해 노력하라는 말은 없다. 모두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에 인간은 그저 하나님 앞으로 다가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존재가 육체적 한계에 머문다면 그것은 동물적 세계를 연상시킨다. 정신에 대한 아무런 가치추구의 경험을 가져본 적이 없는 나라에서 정신은 언제라도 주어진 상황에 따라 차례상처럼 제수용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기껏 정신의 가치를 깨닫고 노력한다고 해도 그것은 남의 이야기를 듣는 수준이기에 바로 잊힐 뿐이다. 혹여 기억한다고 해도 그것은 기억력이라는 회상에 머무르기에 결코 숙고하고 곱씹어 새로운 영양분으로 전이되기가 어렵다. 결국 정신은 외움의 영역으로 채웠으며 누구라도 구구단을 외우듯이 본능적이고 즉흥적인 기억으로 떠올리기만 하면 되는 습관적 관행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아메리카의 민주주의는 종교와 자유라는 개념의 충돌이 아닌 화합에서 나온 인간문명의 결정체였다. 두 개념은 서로에게 상호보완적 역할로서 공공의 이익과 선을 향해 진보해나가고 있었다. 미국의 독립전쟁이 국가적 자유권의 가치를 추구한 것처럼 남북전쟁 또한 국민들의 자유권에 대한 수호의지였다. 그것이 종교적 성도들의 모습이며 정신적 퓨리탄들의 행동이었다. 그들은 아메리카로 이민을 떠나기 전 고향에서부터 이미 기존의 봉건질서에 대항하는 개혁과 혁명을 경험했으며 종교적 가치를 정치적 가치로 정착시키고자 탈출한 개혁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정치적 혁명은 하나님 말씀의 실현이자 지상의 가치이기에 가릴 것이 없었으며 생명존중 또한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였을 뿐이다. 내가 배불리 먹기 위한 집착으로서의 생명이 아니었으며 자유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봉건사회의 전통적 백성이라는 울타리를 스스로가 뛰쳐나와 시민이라는 새롭게 진화해 등장한 개신교 장로회와 개척정신의 민주주의라는 자유사상으로 무장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맹세의 기준은 하나님이었지 부모님이 아니었다. 그들은 간구함으로써 자유를 얻었고 종교를 창조했다. 간구함이 오로지 정신차리라는 덕목으로 대변되던 세계유일의 유교국가인 이 나라와의 근본적 차이점이다.
겸허한 간구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삶의 방식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불만의 해소였지만 그들에게는 평화를 향한 토론이었다. 유교적 자연의 울타리와 기독교적 하나님의 울타리는 물리적 울타리와 정신적 울타리이기도 했다. 물리적 울타리 안에서는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이 최대의 가치이겠으나 하나님의 울타리에서는 행복의 추구와 믿음의 심성과 권징의 치리가 올바른 인간의 가치체계였다. 조건 없는 사랑이 아니라 조건에 의한 사랑의 체계였다. 물론 그 조건은 하나님의 신성한 축복의 조건이다. 인간주재의 어리석음을 벗어나 신의 주재 속에서의 지혜였다. 우리에게 최고의 선은 윤리도덕이지만 그들에게 최고의 선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