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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일제시대의 대중스타 기생 이야기 6ㅡ1

작성자미션|작성시간21.08.20|조회수160 목록 댓글 1

연재)일제시대의 대중스타 기생 이야기 6ㅡ1


6. 기생과의 만남, 그 공간

1] 기생 사진엽서의 공간

기생 사진은 대부분 일제시대에 대량으로 생산된 우편엽서들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관광용 우편엽서는 19세기에 등장한 근대적 관광산업의 부산물임과 동시에 사진과 인쇄기술이 결합된 최초의 복제품이다. 사진과 사진엽서는 사실적인 이미지를 통해 대중들에게 다른 민족들의 풍속과 문화를 한 눈에 보고 소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차원의 근대적 시각 이미지이다.1)

특히 식민지의 문화와 풍속을 담은 관광용 우편엽서는 그것을 만든 일본 제국주의의 일방적인 시각과 관광산업의 전략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인류학에 대한 축소된 경험'이라 지적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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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번 기생 박설중월 사진

사진엽서 속에 나타난 기생 이미지를 통해 한복을 입은 여인으로 대표되는 '조선전통'의 이미지가 일본의 조선 타자화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동시에 일제의 맥락뿐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性)의 맥락 속에서 근대적 볼거리의 대상물이 되어 온 이중의 질곡을 지닌다. 사진엽서는 체계적인 연구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체계적인 자료 접근이 어렵고 특히 우편엽서의 성격상 그 제작연대나 제작 장소, 엽서에 쓰인 사진의 촬영연대나 사진가 등을 밝혀내는 일이 쉽지 않다. 현재 남아 있는 사진엽서들은 전반적으로 1910~1935년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차츰 조선 현지에서도 이러한 엽서를 제작하면서 조선에 온 일본인 관광객들은 이 8장짜리 기생 사진 세트를 조선 토산품 가게에서 손쉽게 사가지고 갔다.

이를테면 요즈음 일본인들이 '욘사마' 배용준의 사진을 사는 것과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인천의 한 엽초판매회사에서는 자사의 담뱃갑 표지 5장을 모아오면, 당시 영화를 보여주면서 조선기생들의 사진엽서를 8장씩 나누어 주기도 했다.

권번의 기생 사진은 원판 흑백사진을 제작하고, 이를 토대로 다양한 그림엽서가 제작되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이 아래의 사진을 분석하면 추측이 가능하다.

A형은 원판 흑백사진인데 이를 B형의 다른 각도 흑백사진과 비교하면 같은 장소와 인물임을 알 수 있다. C형은 B형의 다른 각도 흑백사진을 편집하여 그림엽서로 만들어 판매하거나 홍보하는 데 사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진엽서 A형





사진엽서 B형





사진엽서 B형

사진이 도입되는 초창기에 카메라 앞에 무표정한 모습으로 서 있던 기생들은 시대가 내려올수록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다양한 포즈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20년대, 1930년대로 오면서 '조선풍속'이나 '기생'이란 제목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기생의 이름이 씌어진 사진엽서가 나오기 시작한다. 엽서 한 장에는 한 사람의 기생을 클로즈업해서 찍었다. 흑백 혹은 단색 사진인데 채색된 것은 흑백사진을 찍은 후에 인화과정에서 색을 입힌 것으로 요즈음의 컬러사진과는 다르다.

기생들의 사진엽서는 '기생 사진' '기생언자(妓生嫣姿, 기생의 웃는 모습)' '청초 우아 조선미인집' '기생염자팔태(妓生艶姿八態)' '조선풍속기생' 등이라는 표제가 쓰인 봉투에 8장씩 세트로 된 회엽서로 만들어졌다





기생 회엽서 세트 겉봉투

엽서 한 장에 기생 한 사람을 찍어, 그것을 세트 사진으로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배우나 가수 등 이른바 브로마이드 사진이 아사쿠사의 마루베르당(堂)에 의해 상품화되어, '브로마이드'라는 상품명이 정착한 1920년 이후에 급속도로 확산·발전했다. 따라서 이 엽서 세트는 오늘날 대중스타의 모습을 담은 크고 작은 브로마이드의 한국판 선조쯤 될 것이다.

1890년대 전후 일본 최고의 관광상품으로 전 세계로 수출되었던 풍속사진 엽서는 주로 요코하마(橫濱)를 중심으로 다이쇼(大正) 사진공예소와 히노데상행(日之出商行)에서 많이 생산되었다. 특히 히노데상행은 현재 발견되고 있는 사진엽서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상당히 번성했다.

기록에 의하면 "하루 판매량이 1만 매를 웃돌고 원판의 가지 수가 명소 700종, 풍속 600종에 달하며 인쇄공장은 직영과 전속을 합해 4개소를 보유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제품이 부족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3)고 하였다.

요코하마 사진에서 서양인들의 이국적인 취향을 가장 많이 자극했던 인기품목 중 하나가 예기 사진이었듯이 '조선풍속'이라는 제목 아래에 조선의 무용수로, 악기 연주자로, 미녀로 연출된 기생 이미지는 일본인 관광객들의 인기품목이었다. 외국인들 중에는 조선 기생 사진엽서를 수집하는 이도 생겨났다.

사진엽서를 중심으로 하는 근대 시각문화에 대한 연구 성과는 아직 미미하다. 서구에서는 사진엽서에 대한 수집과 연구가 활발한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시작단계이다. 앞으로 사진엽서뿐만 아니라 여러 인쇄매체 속에 나타나는 시각자료를 통해 근대의 사회와 문화를 조망해 볼 수 있는 인문학적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사진엽서의 생산배경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제국주의와 식민지에 대한 고민이 필수적이다. 사진엽서가 생산되기 시작하는 시기가 서구의 제국주의가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번져가고 있는 때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제국주의라는 세계적 현상과 함께 번성한 학문이 바로 인류학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로 진출하기 위한 사전조사는 인류학자들이 도맡아 했다. 식민지를 경영하기 위해 각종의 정보를 인류학자들이 수집하고 연구하여 보고서를 만들었으며, 이것은 곧 식민지 정책의 토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서구 제국주의의 인쇄산업을 이용하지 않고 자국의 인쇄산업을 통해 당시 식민지인 조선과 만주, 대만에서 영역을 확장시켰다. 바로 제국주의 국가들의 세력 판도와 사진엽서의 생산·유통은 거의 일치하고 있다.

이처럼 사진엽서를 보는 작업은 근대를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요구한다. 사진엽서는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해될 때 더욱더 그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진엽서를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관계, 사진 속에 재현된 정치적 시선과 같은 여과장치 없이 독해한다면 사진엽서는 단순히 100년 전 과거의 이미지에 불과할 것이다.4)

각주 :
1. 권행가,「일제시대 우편엽서에 나타난 기생 이미지」,『한국미술연구소』 12호, 미술사논단, 2001,
83-84쪽
2. 佐藤健, 황달기 옮김, 「그림엽서의 인류학」, 『관광인류학의 이해』, 일신사, 1996, 70-81쪽.
3. 「조선매일신문」 1929.2.23.
4. 권혁희, 「사진엽서의 기원과 생산 배경」, 『사진엽서로 떠나는 근대기행』, 부산근대역사관,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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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솔체 | 작성시간 21.08.21 " 기생 사진엽서의 공간"
    수치스러운 지난 과거 일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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