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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6) 의기양양 달님이

작성자허방다리|작성시간24.04.16|조회수62 목록 댓글 2
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6) 의기양양 달님이


요즘 들어 이상한 것은 대감이 안방 행차를 잊어버린 것이다.
한장마다 한번씩은 안방을 찾고
친구들과 술이라도 걸친 날은 이틀 만에도 찾아와 옷고름을
풀어주던 대감이 마님을 찾아온 지 까마득하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스무날이 넘었다.



좀이 쑤신 마님이 늦은 밤 부엌에서 뒷물을 하고 분을 바르고

간단한 술상을 차려 안마당을 건너 대감 사랑방으로 갔다.
부스스 일어난 대감은 고뿔 기운이 있다며 술잔도 받지 않고
생감 씹은 표정으로 술상의 젓가락조차 잡지 않았다.


“푹 주무십시오.”

마님은 대감에게 한마디 던지고 무안하게 술상을 들고 안방으로 돌아와 혼자서

한숨을 안주삼아 술 주전자를 다 비워버렸다.
대감이 정말 고뿔 기운으로 나를 찾지 않는 건가?
어디 첩이라도 얻은 건가? 별 생각을 다하다 동창이 밝았다.

​며칠 뒤 우연한 기회에 수수께끼가 풀렸다.
마님이 속이 안 좋아 뒷간에 가려고 일어났더니 밤은 깊어 삼경인데
교교한 달빛 아래 번개처럼 안마당을 스쳐가는 인기척을 보고
살며시 뒤따라 대감방 밖에서 귀를 세웠더니 달님이년의 비음이 새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니어도 요즘 부엌데기 달님이년이 엉덩이에 육덕이 오르고
눈웃음에 색기가 올라 하인들이 군침을 흘리는 걸 안방마님은 못마땅한 눈으로 지켜봤다.

일이 난감하게 됐다.

대감을 족칠 수도 없고 점잖은 체면에 새파란 하녀와 투기로
싸울 수도 없어 마님은 부글부글 속만 끓이고 있었다.
밤이 되자 마님은 잠도 안 자고 달님이를 지켰다.
그런 날은 달님이도 꼼짝하지 않았다.

어느날 대감이 싸리재 넘어 잔칫집에 갔다가 밤중에 돌아오더니 마당에 마중나온 마님에게 말했다.
“부인, 달님이 내 방으로 보내시오, 다리 좀 주무르게.”


속이 뒤집어졌지만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달님이년 이제는 마님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성큼성큼 대감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하고 닫는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님이 발뒤꿈치를 들고 대감 방문 앞에서 귀를 세우는데 ‘쾅’
문이 열리며 달님이년 한다는 말 좀 보소.

“들어와 지키세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안방으로 돌아온 마님은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너, 국에다 소금가마니를 삶았냐! 간이 이게 뭐냐. 쯧쯧, 없는 집에서 자라 모든 반찬이 소태야 소태.”
마님은 달님이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너는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게 없어.”

한쪽 귀로 흘려듣던 달님이 반격을 가해왔다.
“제가 마님보다 못하는 게 뭐가 있지요?

대감어른이 그러시는데 바느질도 제가 낫고 음식솜씨도
제가 낫다고 합디다.”

“이년이 못하는 말이 없구나. 당장 이 집에서 나가거라.”
“나가라면 못 나갈 줄 알고요.”



달님이년 보따리를 싸들고 나서면서 고개를 훽 돌리며 말했다.
“대감어른도 이부자리 속 요분질도 제가 훨씬 낫다고 합디다.”  


​한참 뜸을 들인 달님이년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마당쇠도 그럽디다, 뭐.”



마님은 사색이 되어 버선발로 달려나가 달님이를 잡고 안방으로 밀며 비단결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달님아, 그런다고 진짜로 나가면 어쩌냐. 며칠 푹 쉬어라, 부엌살림은 내가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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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안단테 | 작성시간 24.04.18 쯧 쯧 어린종년한테
    책 잡혔으니 ...
  • 답댓글 작성자허방다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18 ㅋㅋㅋ 그러게나 말예요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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