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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쇼팽 즉흥환상곡 -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작성자여풍|작성시간23.04.28|조회수355 목록 댓글 2

즉흥 환상곡Fantasy-Impromptu in c# minor Op.66

낭만주의 음악 피아노 독주곡 1834년작곡

프레데릭 프랑수아 쇼팽(Frédéric François Chopin, 1810~1849)

프레데릭 프랑수아 쇼팽(1810~1849)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곡

흔히 ‘즉흥 환상곡’이라고도 불리는 쇼팽의 〈환상 즉흥곡〉은 1834년 쇼팽의 나이 24세 때 파리에서 완성된 피아노 독주곡이다. 그 무렵 쇼팽은 파리에서 안정된 기반을 잡아 물질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또한 음악적 감수성이 풍부한 델피나 포토츠카 백작 부인과 교류하며 정서적으로도 충만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 곡은 이처럼 쇼팽의 삶이 풍요롭고 안정적이던 시기에 작곡되었다. 그러나 쇼팽은 〈환상 즉흥곡〉의 출판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생전에는 이 곡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결국 쇼팽 사후인 1855년, 쇼팽의 절친한 친구였던 율리안 폰타나에 의해 〈환상 즉흥곡〉의 초판이 출판되었고, 그 이후로 이 곡은 쇼팽이 작곡한 4개의 즉흥곡 중 대중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곡이 되었다.

 

쇼팽의 뮤즈였던 델피나

쇼팽보다 3살 연상이었던 델피나 포토츠카는 매력적인 외모와 아름다운 소프라노 음성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18세가 되던 해에 미에치스와프 포토츠카 백작과 결혼하여 두 명의 딸을 낳았으나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로 인해 결국 이혼을 선택하게 된다. 이후 델피나는 쇼팽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으면서 점점 쇼팽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델피나는 음악적 감수성이 뛰어났기 때문에 쇼팽은 그녀와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겼다. 쇼팽은 델피나에게 보내는 편지 안에서, 자신이 그녀와 잠시라도 떨어져 있게 될 때는 온갖 상념에 젖어드는데 그 순간 음악적 영감이 찾아온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처럼 델피나는 쇼팽이 예술작품을 창조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영감을 가져다주는 쇼팽의 뮤즈였다.

델피나 포토츠카의 초상화(1839)

 

치밀한 구상을 바탕으로 작곡된 즉흥곡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나타났던 즉흥곡은 자유로운 형식 속에 즉흥적인 악상을 담아낸 작품을 뜻한다. 그러나 쇼팽이 즉흥연주의 천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즉흥곡은 비교적 논리 정연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는 쇼팽이 평소 작곡을 하는 방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는 델피나에게 자신이 얼마나 고심해서 한 마디 한 마디를 작곡하는지 토로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쇼팽의 〈환상 즉흥곡〉도 예외는 아니다. A-B-A'의 3부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곡은 긴장감을 조성하며 빠르게 상행하는 c#단조의 선율로 시작된다. 곡의 중간 부분에서는 D♭장조로 전조된 선율이 앞부분과 대조를 이루며 부드럽게 이어지다가 다시 c#단조의 속도감 넘치는 격정적 선율이 반복되며 끝을 맺는다.

 

한 줌의 재로 남을 뻔한 세기의 명곡

쇼팽이 이 곡의 출판을 반대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 학자들은 쇼팽이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환상 즉흥곡〉이 보헤미아 출신 작곡가 이그나즈 모셀레스의 〈즉흥곡 D♭장조〉와 유사했기 때문에 쇼팽이 출판을 꺼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이 곡의 악보 원고를 소유하고 있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환상 즉흥곡〉이 데스트 남작 부인에게 팔렸기 때문에 대중을 상대로 출판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쇼팽의 다른 미발표 작품들과 함께 소각될 뻔 했던 이 곡은 쇼팽의 친구였던 폰타나의 슬기로운 판단으로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다.

이그나즈 모셀레스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출처 : 클래식 백과

 

Chopin / Fantaisie Impromptu in c-sharp minor, Op.posth. 66

교향곡에 있어서는 베토벤.. 실내악은 하이든.. 가곡에 있어서는 ... 슈베르트

하지만 평생 피아노 곡만 작곡한 아름답고 환상적인 피아노의 시인 쇼팽 c#minor. 작품번호66~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얻고 있는 곡중에서 단연 탑에 속한다 쇼팽 즉흥 환상곡은

4개의 즉흥곡중에서 가장 먼저인 1834년24살때 파리에서 작곡 하지만 출판을 원치 않아 사후 6년인 1855년에 출판되었고 그의 첫번째 작품이었지만 마지막인 4번작품이 되었다고 한다 쇼팽만의 개성과 감성이 거침없이 표출.. 탄탄하고 치밀한 3부형식으로 구성.. 빠른 화성의 변화, 긴 아르페지오의 호흡.. 풍성한 반주위에 얹어진 따뜻하고 극적인 멜로디 라인이 곡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https://youtu.be/kLfLclVR8Is

 

음악은 위로일까 슬픔일까? 나에게 음악은 위로이며 슬픔이 되기도 한다. 음악으로 인해 한 없이 깊은 슬픔에 빠져 들기도 하며 음악을 들으므로 끝없는 환희에 젖어 세상이 온통 내 것 같았던 행복한 느낌, 쇼팽의 즉흥 환상곡은 나에겐 그런 곡이었다.

쇼팽은 즉흥곡 4개를 작곡했다. 쇼팽이 즉흥환상곡 제4번을 너무나 아낀 나머지 출판을 하지 않다가, 사후에 세상에 알려진 곡으로도 아주 유명하다. 그러나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1835년 금요일 파리에서..."  "데스테부인을 위해 작곡.." 쇼팽의 사후에 발견된 노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하는데 1835년이면 쇼팽의 나이 24세 때 무렵, 처음 이곡은 '데스테'부인을 위해 작곡'했던 것이 확실하지만 쇼팽이 이곡을 살아생전 발표하지 않은 것은 '데스테'부인에게 곡이 팔렸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론이 있긴 하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쇼팽이 즉흥환상곡을 작곡할 무렵엔

 

George Sand.1804.7.1∼1876.6.8 (쇼팽의 연인)

                                                                                                            
여류작가인 '조르주 상드'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즉흥환상곡뿐 아니라 그를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리게 한 수많은 서정적이며 낭만적인 아름다운 곡들은 그의 연인인 '조르드 상드'가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쇼팽 (Chopin 폴란드 태생. 1810–1849)


평생을 병약한 몸으로 살았던 쇼팽이 그나마 많은 곡들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사랑했고 또한 그를 사랑하며 후원해 주었던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쇼팽을 연구한 이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랑했던 '조르드 상드'와의 사랑은 끝내 이루지는 못했다고.


어쨌든 즉흥환상곡 4번은 네 개의 환상곡 중 가장 먼저 만들어졌으면서도 가장 늦게 쇼팽의 사후에 발표된 것이긴 한데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고 당사자인 '쇼팽'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쇼팽'은 1810년 2월 22일 폴란드의 바르샤바 근교 '제라조바 노라'에서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으며 폴란드를 자신의 조국이라 부르며 러시아로 인해 폴란드가 어려웠을 때마다 연주회로 번 돈의 대부분을 조국 폴란드로 보냈던 애국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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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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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안단테 | 작성시간 23.04.28 쇼팽의 즉흥 환상곡
    사후에라도 발표해서 들을수 있음에 다행 이예요
    보석같은 멋진 피아노 선율
    집에서 낮에 혼자 있을때 수도없이 듣곤 했답니다
  • 작성자시인김정래 | 작성시간 23.04.29 여풍님~
    쇼팽 즉흥환상곡 -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잘 듣고 갑니다
    그런데 앞으로 음악과 간단한 해설만 해 주시길 바랍니다
    자금 너무 길게 하셧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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