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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zing Grace(놀라운 은총) / Nana Mouskouri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놀라운 주의 은총, 너무나 달콤한 주의 목소리
Thatn saved a wretch like me
나같은 죄인을 구하시니
I once was lost, but mow I'm found
나 한때 길을 잃고 방황했으나 이제 나의 길을 찾았어요
Was blind, but now Isee
한때 눈이 멀었지만, 이제 볼 수 있어요
'Twas hrace that taught my heart to fear
주의 은총은 내 가슴의 두려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And grace my fears relieved
그 은총이 나의 두려움을 구원하였습니다.
How preious did that grace appear
내 앞에 보이신 은총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요
The hour I first believed.
그 시간, 난 처음으로 믿음을 가졌습니다.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놀라운 주의 은총, 너무나 달콤한 주의 목소리
That saved a wretch like me
나같은 죄인을 구하시니
I once was lost, but now I'm found
나 한때 길을 잃고 방황했으나 이제 나의 길을 찾았어요
Was vlind, but now I see
한때 눈이 멀었지만, 이제 볼 수 있어요.
가사 출처 : Daum뮤직

체로키 인디언 강제 이동 경로
고향에서 5천리 너머 중부지방으로 쫒겨났다.
지금으로부터 160여년 전인 1838~39년.
지금의 미국 동부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앨러배마 주 일대에
살고 있던 체로키 인디언이 백인이주민 국가 '미합중국'의 강제이주령에
의해 고향에서 5천리(2000km) 떨어진
머나먼 오클라호마 주 허허벌판으로 쫓겨났습니다.
이들이 미국 기병대에 쫓겨 피눈물을 흘리며 떠난 사변을
미국사에서 '눈물의 길' 또는 '눈물의 행로'(the Trail of Tears)
라고 하지요.정확히 말하면 '눈물과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화가 " 로버트" 가 그린 '눈물의 길'(1942년 작 )
이 그림을 보면 마치 이들이 따뜻한 담요와 말, 마차를 갖고 떠난 것 같지만
사실은 몸에 걸친 옷 정도밖에는 거의 갖고 갈 수 없었답니다.
그야말로 맨몸으로 쫓겨난 거지요.
그래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의 대부분 걸어서 이동해야 했고,
추운 한겨울에도 맨바닥에 누워 잠을 청해야 했습니다.
결국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얼추 4,000명이 도중에 숨졌습니다.
이 피눈물과 죽음의 강제이주는 1839년 봄에 끝났습니다. <펌>
이때 이들이 부른 노래가 Amazing Grace습니다.
죽은 이들을 땅에 묻으며 이 노래의 영감을 빌려 그들의 명복을 빌었고
살아남은 이들의 힘을 북돋우기 위해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노래를 체로키어로 번역해 이들에게 전해 준 인물은
이들과 함께 살면서 강제이주에 끝까지 반대해 법정투쟁까지 하며 이들을 도운
백인 선교사 새뮤얼 워시스터(1798~1859)였습니다.
오늘날 체로키 인디언들은 이 노래를 거의 애국가처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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