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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1부 황하의 영웅 (125) -

작성자미션|작성시간19.05.18|조회수486 목록 댓글 0

🎎 <열국지>의 세계에 탐닉하다
- 1부 황하의 영웅 (125) -


제2권 내일을 향해 달려라
 





제 18장 패공(覇公) 탄생 (3)


정자(鄭子)를 죽인 보가는 궁으로 달려가 정자의 두 아들을 죽이고 정여공을 다시 임금 자리에 올렸다. 이리

하여 17년간이나 역성 땅에 쫓겨가 있던 정여공은 기어코 임금 자리에 다시 올랐다.

그는 특별히 제(齊)나라 장수 빈수무를 불러 말했다.
" 이 모든 것이 제나라 덕분입니다. 오는 10월에 과인이 제나라로 가서 동맹을 청할 터이니 제환공께 전해주

시오."
빈수무가 본국으로 떠나가자마자 정여공은 이번 복위에 공이 큰 보가(甫假)를 불렀다. 보가는 자신의 공을 믿

고 어깨를 편 채 궁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정여공은 완전히 딴사람이 된 듯 싸늘한 눈빛으로 보가(甫假)를 쏘아보는 것이 아닌

가.


"너는 지난 17년 동안에 대릉을 지키면서 전력을 기울여 과인에게 대항했다. 너는 분명 전 임금에게 충신이었

다. 그러나 이번에는 죽음이 두려워 다시 나를 위해 전 임금을 죽였다. 나는 너의 진짜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

다. 이제 나는 동생 정자(鄭子)의 원수를 갚고자 너를 죽이겠다."

말을 마치자 정여공은 좌우 군사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뭣들 하고 있느냐! 어서 저놈을 끌어내어 목을 베도록 하라."
보가(甫假)는 끌려나가면서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했다.
"내가 스스로 죽음을 불러들였구나!"
그 날 보가는 거리에서 목이 잘려 죽었다.


한편, 전날 정자(鄭子)를 임금에 올리는 일에 찬성했던 공족대부 원번(原繁)은 그 일로 인해 자기에게 피해가

 오지 않을까 두려워 병을 핑계로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정여공은 사람을 보내 이러한 원번(原繁)의 행동을 비꼬았다.
- 지난날 내가 신정을 떠나갈 때에 대부께서는 정든 말 한마디 없더니, 이제 내가 다시 돌아왔는데도 여전히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질 않는구려.


원번(原繁)은 정여공의 마음을 짐작했다.
그 날 밤, 그는 집 대들보에 목을 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정여공은 숙첨(叔詹)만은 죽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다리를 잘라버림으로써 지난날의 일을 앙갚음했

다. 그 뒤 숙첨(叔詹)은 다시 정경 벼슬을 받고 정여공을 위해 일했다.


- 정(鄭)나라, 동맹에 참가하다.
이로써 마침내 제환공은 중원의 모든 나라들을 하나로 규합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제환공을 정식 패공(覇公)으로 추대하고, 제후국간에 새로이 규약을 정해 맹세하는 일뿐이었

다. 관중은 포숙, 영척 등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이 일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해 7월, 남방의 초(楚)나라가 느닷없이 채(蔡)나라를 공격하는 일이 발생했다.
수년 전, 초문왕은 식(息)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부인인 규씨 - 도화부인을 자신의 아내로 삼은 바 있었다. 그

후 그는 그녀를 몹시 사랑했다.
여러 해를 지내는 동안 웅간(熊艱), 웅운 두 아들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도화부인은 항상 멸망한 식(息)나라를 잊지 못했다.
그녀는 여러해를 초문왕과 살면서 한 번도 그와 말을 나누지 않았다. 초문왕(楚文王)은 이 점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참다못해 도화부인에게 물었다.


"대관절 나와 말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오?"
초문왕(楚文王)의 채근에도 불구하고 도화 부인은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소리를 죽인 채 눈

물만 흘렸다. 하지만 그 날만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초문왕은 계속해서 추궁했다. 그제야 도

화부인 규씨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녀자의 몸으로 두 남자를 섬겼으니, 무슨 면목으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는 다시 입을 다물고 하염없이 눈물을 뿌려댔다.


초문왕(楚文王)은 사랑하는 여인의 눈물을 보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것이 채애공(蔡哀公) 때문이오. 내가 부인을 위해 원수를 갚아줄 테니 부인은 너무 슬퍼

하지 마오."
이렇게 말하고 초문왕은 군사를 일으켜 채나라로 쳐들어갔다.


느닷없이 초나라의 침공을 받은 채나라는 감히 초문왕과 맞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채애공(蔡哀公)은 윗옷을

 벗고 성밖으로 나가 초문왕 앞에 꿇어 엎드렸다. 윗옷을 벗고 무릎을 꿇는 행위를 육단(肉袒)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죄지은 사람이 스스로 벌을 청할 때의 풍습이다. 한 나라의 임금이 육단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치욕

이었으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다행히 채애공의 이러한 행동에 초문왕(楚文王)은 목적을 달성

했다고 생각했음인지 채나라 부고에 있는 보화

만을 빼앗아 도성인 영으로 돌아갔다. 남방의 무법자다운 거침없는 행동이었다.


채애공(蔡哀公)의 초문왕에 대한 육단은 중원 여러 나라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사건은 초나라가 마

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중원을 침범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우려하던 바가 현실

로 나타난 것이다. 각 나라 제후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몸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 초(楚)나라를 막아라!
그들은 눈길을 동방으로 돌렸다.


중원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제환공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이 일기 시작했다. 특히 지리상으로 초나라와 인접

해 있는 송, 진(陳)나라 등은 앞장서서 제환공을 회맹의 맹주로 추대할 것을 강력히 주창했다.

- 제(齊)나라만이 초나라를 막을 수 있다.
이를테면 제후들 스스로가 제나라를 중심으로 한 반초(反楚) 동맹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구축하려 들

기 시작한 것이었다.
타의에 의한 것보다는 자의에 의한 복종. 큰 차이가 있다. 제환공(齊桓公)으로서는 초나라의 행패가 오히려

 고맙게 여겨질 정도였다.


이듬해 봄, 제환공(齊桓公)은 마침내 위나라 땅 견(甄, 산동성 복현)에서 중원의 모든 제후들이 참석한 가운데

2제2차 회합을 갖고 삽혈동맹을 맺었다.

이때 처음으로 제환공(齊桓公)은 중원 제후국들로부터 맹주(盟主)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받았다. 왕실의 주

희왕도 선백(單伯)을 파견함으로써 이 회합을 인정했다. 어지러움이 시작된 제후시대 이래로 첫번째 패공(覇

公)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제환공(齊桓公)이 임금에 오른 지 7년 만의 일이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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