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7월과 8월이 31일까지 있는 이유

작성자미션|작성시간19.07.31|조회수298 목록 댓글 0
【7월과 8월이 31일까지 있는 이유】


현재 우리가 쓰고있는 태양력의 기원은 이집트까지 거슬러 갈수 있지만 태양력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이다. 고대 서양에서는 한 해가 시작하는 날을 춘분 날로 정했다.
때문에 춘분이 들어있는 달을 1월로 정했다.
반면 중국의 경우는 동지 날을 기준으로 해서 동지가 들어있는 달을 한 해의 시작으로 했다.

고대 로마 시대 초기의 로물루스 시대에는 춘분을 일년의 시작으로 하고 일년을 10개월로 했다.
또한 일년의 길이는 3백 4일로 하는 기이한 달력을 사용했다.
그 뒤를 이어 로마 황제가 된 누마 폼페이우스는 기원전, 710년 경에 2개월을 추가해 1년을 12개월로 하고, 길이
를 355일로 하는 누마(Numa)력으로 개력했다.
그러나 이 달력은 여전히 1태양년의 실제길이와 11일 정도 차이가 나 사용하는데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그 뒤 율리우스 시저의 집권 시대인 기원전 46년에는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인 소시게네스의 조언으로 1년을
365일로 하는 새 달력을 만들었다.
이 달력에서는 오늘날과 같이 한 달의 길이를 31일과 30일을 번갈아 넣었다. 달의 크기는 원칙적으로 홀수인 달
을 31일로 하고, 짝수인 달은 30일로 정했다.
그런데 평년을 365일로 하기 위해 2월에서 하루를 떼어 내 29일로 했다.
윤년인 경우는 2월을 30일로 했다. 춘분날은 누마 왕 때와 마찬가지로 3월 23일로 정했다.
태양력의 1년 길이는 365.25일로 매 4년마다 윤년을 두었다.
이것을 율리우스력이라 한다.
율리우스가 개력을 할 때 계절과 달력의 날짜가 이미 3개월이나 차이가 나 있었다. 그래서 율리우스는 23일 짜리
윤달과 67일 짜리 윤달을 끼워넣어 계절을 맞추었다. 때문에 기원전 46년은 실제로 445일이나 되는 긴 해였다.
율리우스는 개력 이후부터 달력을 계절에 맞추기 위해 기존의 1월을 3월로 하고 그 앞에 새로 두 달을 넣었다.
이에 따라 모든 달이 두 달씩 미뤄져 당시에 5월을 의미하는 퀸틸리스(Quintilis)가 7월이 됐다.
율리우스는 생일이 7월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7월달의 본래 명칭인 퀸틸리스를 자신의 생일
달의 의미를 지닌 율리(July)로 개칭했다. 따라서 7월(July)의 영어 명칭은 율리우스의 생일 달이라는 의미인 셈이
다.

율리우스가 브루투스에게 시해된 후 로마 황제로 등극한 이가 아우구스투스 황제이다. 그도 율리우스를 본받아
달력에 이름을 남기려고 했다.
그는 트라키아와 아크림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것을 기념하기 위해 8월달의 본래 명칭을 바꾸었다.
그의 생일은 8월이었는데, 아우구스투스가 8월의 명칭을 바꾼 것은 자신의 생일달을 기념하려는 의미도 있었다. 
그는 이 달의 본래 명칭인 섹스틸리스(Sextilis, 제6번째 달이라는 의미)를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고 바꾸었
다. 더욱이 황제인 자신의 달이 다른 달보다 작으면 황제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면서 2월에서 하루를 떼어와 31일
의 큰 달로 변경했다.
그러자 1월에서 7월까지는 홀수인 달이 큰 달이 되고, 7월과 8월이 연속해서 큰 달이 됐다. 그리고 8월부터 12월
까지는 짝수 달이 큰 달이 됐다.
이 때문에 2월달이 다른 달에 비해 유난히 작아져 버렸다.
양력은 태양의 운행에 따라 1년의 길이를 정했지만, 달의 길이는 임의대로 정해졌던 것이다.
그 후, 악명이 높던 네로 황제는 이들을 본 따 4월을 자신의 달인 네로네우스(Neroneus)로 고쳤지만,
네로 황제의 사후에 다시 본래의 명칭으로 되돌아왔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