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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 2부 장강의 영웅들 (10)

작성자미션|작성시간21.07.28|조회수123 목록 댓글 1

- 2부 장강의 영웅들 (10)

제 6권 꿈이여 세월이여

제 2장 선진(先軫)의 죽음 (1)

뿌우 -!
각적(角笛) 소리가 길게 울려퍼졌다. 승리를 알리는 소리였다.
효산 20리 밖 대채에 앉아 결과를 기다리던 원수 선진(先軫)은 계곡 너머에서 들려오는 뿔피리 소리를 들었다.

'해냈다!'
이로써 숙적 진(秦)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선진(先軫)은 생각했다.
- 주공. 이제 지하에서 편히 잠드소서.
진문공은 얼마나 진(晉)나라 앞날이 걱정되었으면 죽어서도 신하들에게 유명(遺命)을 내렸을까. 선진은 눈앞이 흐릿해졌다.

망명 시절, 진문공(晉文公)과 그 가신단은 제환공 사후 급격히 몰락해 가는 제(齊)나라의 모습을 생생히 보았다.
그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진문공은 얼마나 노심초사했던가.

세자 환(驩)만을 남겨두고 모든 공자를 국외로 내보내기까지 했다. 후계 다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실로 진양공(晉襄公)의 즉위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그런데도 진문공(晉文公)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진목공(秦穆公)의 배신이 그 원인이리라.
- 우리의 패업을 방해할 자는 진(秦)이다. 진나라를 쳐라.
죽은 후에 이렇게 명을 내렸다. 그 유명을 알아들은 사람은 오직 선진(先軫)뿐이었다.
'오늘의 승전은 오로지 주공 덕분입니다.'
여느 승리 때와는 다른 감회가 선진(先軫)의 가슴 속에 차오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효산(殽山)으로 나갔던 장수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선차거(先且居)를 선두로 하여 서영, 호사고, 양홍 등이 차례차례 대채 안으로 들어섰다. 그 뒤로 함거에 갇힌 진(秦)나라 장수 백리시(百里始), 서걸술과 건병, 수백 명의 포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차거(先且居) 등 젊은 장수들은 의기양양했다.
검은 상복 차림의 진양공(晉襄公)은 군막 밖으로 나가 그들을 친히 맞이하고 포로와 전리품을 둘러보았다.
"수고 했소."
군사들의 환호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

잡혀온 진(秦)나라 장수들이 묶인 채 진양공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진양공(晉襄公)은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확인하다가 험악하게 생긴 한 장수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자는 누군가?"
양홍(梁弘)이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이자의 이름은 포만자(褒蠻子)라고 합니다. 비록 아장에 불과하지만 놀라운 용맹과 힘을 가진 자입니다. 차우(車右) 내구가 그와 대적했다가 큰 변을 당할 뻔했습니다."
진양공(晉襄公)의 얼굴에 두려운 기색이 떠올랐다.

그는 뒤편에 서 있는 내구(萊駒)를 불러내어 명했다.
"이런 자를 그냥 뒀다가는 무슨 변이 생길지 모른다. 그대가 저놈과 싸워서 졌다고 하니, 과인이 보는 앞에서 저자의 목을 참하여 울분을 풀도록 하라."

진양공의 분부를 받은 내구(萊駒)는 포만자를 잡아 일으켜 기둥에다 비끄러맸다. 그가 목을 치려고 큰 칼을 높이 쳐들었을 때였다.
"네 이놈! 너는 나에게 패한 장수이거늘, 어찌 감히 나를 범하려 드느냐!"
포만자(褒蠻子)의 호통 소리였다.
그소리는 떨어지는 벽력같았다.
막사 기둥이 흔들렸다.

내구(萊駒)는 기겁했다. 자신도 모르게 치켜올렸던 팔을 내렸다.
그러나 더 놀라운 일은 그 직후에 벌어졌다. 포만자(褒蠻子)가 끙, 하고 두 팔에 힘을 주자 그를 결박한 밧줄이 일시에 끊어진 것이었다. 그 서슬에 내구는 크게 놀라 쥐고 있던 칼을 떨어뜨렸다.

포만자(褒蠻子)는 나는 듯이 달려들어 그 칼을 집어들고는 내구를 향해 후려쳤다.
"앗!"
위기일발이었다.
그때 그 보다 더 빨리 움직인 그림자가 있었다. 내구 수하 중 한 소교(小校)가 포만자의 등뒤로부터 덮쳐들어 그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친 것이었다.

포만자(褒蠻子)가 괴성을 지르며 일어서려는 순간 소교(小校)는 번개같이 칼을 뽑아 그 목을 쳤다. 피가 뿌려지며 포만자의 커다란 몸뚱어리가 썩은 들보처럼 무너져 내렸다.

소교(小校)는 목을 잘라 진양공에게 바치며 외쳤다.
"주공께서는 놀라지 마십시오."
진양공(晉襄公)은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물었다.
"그대 이름은 무엇인가?"
"신은 소교 직위에 있는 낭심(狼瞫)이라고 합니다."

진양공(晉襄公)은 별안간 내구를 돌아보며 외쳤다.
"너는 한낱 소교의 용기만도 못하구나. 썩 물러가라!"
진양공은 내구(萊駒)의 벼슬을 빼앗고 그를 군대에서 쫓아냈다. 대신 낭심을 차우로 승진시켰다.

차우(車右)라면 병차 오른편에 서서 군주를 호위하는 직책이다. 오늘날 경호실장에 해당한다. 낭심(狼瞫)으로서는 이만저만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진양공에게 사은하고 물러났다.

삽시간에 소교에서 차우로 승진한 낭심(狼瞫)은 기고만장했다.
- 주공께서 나를 알아주셨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그는 원수 선진(先軫)을 찾아가 인사드리는 일을 잊었다.
이 때문에 선진(先軫)은 낭심을 괘씸한 놈이라 생각했다.

다음날, 진양공은 회군령을 내렸다.
그는 모든 장수와 함께 개가(凱歌)를 부르며 곡옥(曲沃)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며칠 후인 4월 27일, 진문공(晉文公)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장례식은 거창했다. 각국 조문 사절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진양공(晉襄公)은 검은 상복을 입고 진문공의 시신을 모신 빈궁 앞으로 나가 승전을 고했다.

국장(國葬)을 치른 날 저녁이었다.
이때 진문공의 부인 문영(文嬴)도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곡옥에 와 있었다.
문영은 회영(懷嬴)이다.

진목공의 딸로 처음에는 진회공(晉懷公)이 세자이던 시절에 그에게 시집갔으나, 진회공이 옹성을 탈출하는 바람에 홀몸이 되었다가 다시 진문공에게로 시집온 여인이다.
그래서 이름이 회영에서 문영(文嬴)으로 바뀐 것이다.

문영(文嬴)은 진목공의 딸이었던만큼 이번에 사로잡아온 진(秦)나라 세 장수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문안 인사차 찾아온 아들 진양공에게 슬쩍 물었다.

"이번에 우리 군대가 크게 이겨 백리시, 서걸술, 건병 등을 잡아왔다고 하니, 이는 진(晉)나라 사직의 복이로다. 군후는 세 장수를 어찌 처리할 것인가?"
"강성(絳城)으로 돌아가는 대로 형을 집행할 생각입니다."
문영의 눈썹이 보일 듯 말듯 꿈틀거렸다.

"원래 진(晉)과 진(秦)은 대대로 혼인한 사이라 그 관계가 극진하였다. 그런데 망령되게도 백리시 등이 공명과 벼슬을 탐하여 두 나라의 친밀한 관계를 원한으로 바꿔놓았구나. 죽어 마땅한 놈들이다."

"내가 생각건대, 나의 아버지 또한 그 세 놈을 깊이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반드시 당신의 손으로 그 세 놈을 처단하고 싶어하실 것이니 나는 이런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드리고 싶다. 군후는 이 참에 그 세 놈을 진(秦)나라로 돌려보내 두 나라 사이의 원망을 푸는 것이 어떠한가?"

말은 그러했지만 실은 구명(救命) 청원이었다. 진양공(晉襄公)이 어찌 문영의 말뜻을 모르겠는가.
"그 세 장수는 한결같이 호랑이 같은 장수들입니다. 겨우 잡아온 것을 돌려보낸다면 후일 우리 진(晉)에 대해 우환이 될까 두렵습니다."
진양공(晉襄公)은 완곡히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문영(文嬴)이 어떤 여인인가.
진(秦)나라를 위해 남편이었던 진회공을 따라가길 거절했던 여인이 아니던가. 그녀는 진목공이 세 장수를 죽일 게 확실하다는 전제를 내걸며 거듭 청했다.

"장수가 싸움에 지면 죽는 것은 옛날부터의 법이다. 성득신도 성복 전투에서 패하자 초성왕(楚成王)으로부터 죽음을 받지 않았던가. 진(秦)이라고 하여 어찌 그런 국법이 없으리오."

더욱이 지난날, 진혜공(晉惠公)은 진(秦)나라에 잡혀가서 감금되어 있었다. 그때 진목공(秦穆公)은 진혜공을 예의로써 대접하고 본국으로 돌려보내주었다. 그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이번의 세 장수를 내 아버지 손으로 처단케 하면 그 또한 아름 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진양공(晉襄公)은 고민했다.
원래 그는 모부인(母夫人)의 청을 거절할 만큼 마음이 모질지 못했다. 마침내 진양공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떨어졌다.
"백리시 등 세 장수와 그 군사들을 석방하라!"

선진(先軫)이 이 사실을 안 것은 이튿날 아침이었다. 그는 옥이 텅 빈 것을 보고 크게 놀라 진양공에게로 달려가 물었다.
"진(秦)의 포로들을 어찌하셨습니까?"
진양공(晉襄公)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모부인의 청이 하도 간곡하기에 그들을 석방했소."

순간, 선진(先軫)은 이성을 잃었다.
아무리 경험 없는 임금이라고 하지만 어찌 모부인의 말 한마디에 적장을 그리 쉽게 풀어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길길이 날뛰며 진양공(晉襄公)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철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로다. 장수들이 전쟁터에 나가 천신만고 끝에 잡아온 포로를 일개 부인의 말만 듣고 놓아주다니! 아아, 범을 놓아 산으로 돌려보냈으니, 우리 진(晉)도 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선진은 바로 그 직후 더욱 모욕적인 행동을 취했는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은 이때의 그의 행동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돌아보지 않고 침을 뱉다(不顧而唾)

불고(不顧)란 몸을 돌리지 않고 정면으로 쳐다본다는 뜻이다.
타(唾)는 침을 뱉는다는 뜻. 글자대로 해석하면, 선진(先軫)은 진양공의 얼굴을 향해 정면으로 침을 뱉었다는 것이다.

이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아무리 격분했다 하더라도 신하 된 몸으로 임금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은 고금에 찾아보기 힘든 사건이었다.

곁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신하들은 물론 당사자인 선진 또한 기절할 듯 놀랐다. 자신의 행동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한 눈길로 진양공(晉襄公)을 쳐다보았다.

"...............!"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진양공(晉襄公)의 그 다음 행동이었다.
그는 선진(先軫)으로부터 침세례를 받았으나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소매를 들어 얼굴에 묻은 침을 천천히 닦으며 오히려 사죄의 말을 던지는 것이었다.

"과인이 잘못했소. 원수는 노기를 푸시오."
그러고는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누가 뒤쫓아가서 진(秦)나라 장수들을 잡아오겠는가?"

놀라운 인내심이었다. 이로써 일촉즉발의 살벌한 분위기는 무마되었다.
진양공의 세자 시절 스승이었던 양처보(陽處父)가 재빨리 자원했다.
"신이 가서 그들을 잡아오겠습니다."
양처보(陽處父)는 빠른 병차에 준마 네 마리를 매고 곡옥성 서문을 나는 듯이 빠져나갔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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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부탄 | 작성시간 21.07.29 앞으로 晉나라와 秦나라의 전쟁이 시작되겠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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