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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장강의 영웅들 (12)

작성자미션|작성시간21.08.01|조회수160 목록 댓글 1

- 2부 장강의 영웅들 (12)

제 6권 꿈이여 세월이여


제 2장 선진(先軫)의 죽음 (3)

한편, 백리시 등 세 장수를 잡아오는 데 실패한 양처보(梁處父)는 빈 손으로 돌아가 사실대로 고하고 죄를 청했다.

그때 진양공(晉襄公)은 진문공의 장례식을 마쳤기 때문에 곡옥에서 강성으로 옮겨와 있었다.

"진(秦)나라 장수들의 일은 모두 과인의 잘못이오. 어찌 그대에게 죄가 있겠소?"
진양공(晉襄公)은 양처보에게 일체 죄를 묻지 않았다.

그러나 중군 원수 선진(先軫)은 백리시 등을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는 진양공 앞으로 나가 분연히 아뢰었다.
"백리시(百里始)가 3년 뒤에 다시 와서 말을 받겠다는 것은 우리 진(晉)나라를 쳐서 원수를 갚겠다는 뜻입니다.
지금 진(秦)은 패했기 때문에 사기가 떨어져 있을 것입니다. 이때를 놓치지 말고 우리가 먼저 진(秦)을 쳐 그들의 계획을 무산시켜야 합니다."

제 2차로 진(秦)을 공격하자는 것이었다.
선진은 진문공 때의 신하이자 5군(五軍)을 거느리는 총원수다.
이제 막 군위에 오른 진양공(晉襄公)으로서는 그러한 선진의 의사를 무시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화가나면 거침없이 임금의 얼굴에 침을 뱉어대는 그가 아니던가.
"원수께서 모든 계획을 수립하시오."

그 해 여름, 진(晉)나라 수도 강성은 진(秦)을 칠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사태가 발생했다.

진(晉)의 영토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북적 중의 한 부락인 백적(白翟)이 진나라 영토를 침공한 것이었다.

진양공(晉襄公)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납득할 수 없구려."
백적(白翟)의 수장은 선군 진문공의 후원자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19년의 망명생활중 12년을 머물렀던 곳이 바로 백적 부락 아니었던가.

진문공은 그 곳에서 가정도 꾸몄었다. 계외(季隗)는 진문공이 그 곳에서 얻은 아내다. 이렇듯 백적(白翟)은 진문공에게 호의적인 정책을 펴왔다.
- 그런데 갑자기 침공이라니.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막 군위에 오른 진양공으로서는 당연한 의문이었다.

그러나 선진(先軫)은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장수였다.
정보 수집력도, 그 분석력도 다른 사람보다 탁월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백적(白翟)의 마음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것 때문이라니요?"

"선군께서 포읍에서 쫓겨나 백적 부락에서 12년을 사시는 동안 그 곳 수장은 선군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선군께서 유랑 생활을 끝내시고 고국에 돌아와 군위에 오르셨을 때 가장 기뻐했던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백적(白翟)의 수장입니다. 그 곳에 남아 있는 계외(季隗)와 숙외(叔隗)를 돌려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진문공은 그러한 백적(白翟) 수장에 대해 만족할 만한 보답을 해주지 못했다. 기껏 황금과 비단 몇 수레를 보냈을 뿐이었다. 백적 수장이 바라는 것이 어찌 그런 재물 따위이겠는가.

"그들은 넓은 영토를 바란 것이지요. 마음놓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낙토(樂土). 선군께서는 주변 영토를 개척하는 동안 나름대로 백적을 배려하여 그 부족만을 일체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만, 백적 수장은 주변 적적(赤狄)의 땅을 원했습니다."

"그것은 어림없는 일이오! 우리가 피흘려가며 얻은 땅을 어찌 백적(白翟) 에 넘겨줄 수 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선군께서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며, 백적을 우호국으로서만 대했지요. 백적 수장은 섭섭하긴 했지만, 워낙 선군에게 호의적이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백적 수장이 죽고 그 아들 백부호(白部胡)가 수장에 올랐다.
백부호는 과격한 성품에 스스로 자신의 용맹을 과신하는 타입이었다.
그는 진(晉)이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믿고 있었다.

복수를 꿈꾸던 중 진문공(晉文公)이 죽었다. 때마침 진, 진 동맹이 깨지고 두 나라 간에 효산 전투가 벌어졌다.
- 진(秦)나라가 돕지만 않는다면, 우리가 어찌 이빨 빠진 호랑이를 두려워하랴.

백부호(白部胡)는 이렇게 외치고 주변 부족의 군대를 모아 말머리를 남쪽으로 돌려 기(箕) 땅을 침공한 것이었다. 이빨 빠진 호랑이란 패공 진문공이 죽고 없는 진(晉)나라를 말함이다.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진(先軫)의 설명에 진양공은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분연한 어조로 말했다.
"선군께서는 살아생전 존왕양이(尊王攘夷)하시기에 바빠서 사사로운 은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소. 백부호가 국상중인 우리를 치기 위해 군대를 일으켰으니, 이제 그들은 우리의 적이나 마찬가지요."

젊은 군주 진양공(晉襄公)의 얼굴은 결의에 찼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노원수 선진(先軫)은 숙연한 마음이 되었다.
"훌륭하십니다. 과연 선군의 후계자다우십니다. 언제까지고 그러한 마음 변치 마시길!"
"지금 곧 출전(出戰)해주시오."

그런데 선진(先軫)의 모습이 여느 때와 달랐다.
"주공!"
"................?"
"신은 이미 주공께 죽을 죄를 범한 중죄인입니다. 진(秦)나라 세 장수가 풀려났을 때 신은 일시적인 분노를 참지 못하고 주공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능지처참(陵遲處斬)에 해당하는 중죄입니다. 이런 죄인이 어찌 군대를 거느릴 수 있겠습니까. 주공께선 신의 벼슬을 거두시고, 새로이 훌륭한 장수를 세우십시오."

"원수는 무슨 말을 하시는 게요? 과인은 이미 그때 일을 잊었습니다. 더욱이 경(卿)은 나라를 위해 분노했을 뿐, 과인을 능멸하는 마음으로 그런 것이 아니질 않소? 경(卿)이 아니면 누가 이 어려운 일을 감당하겠소? 경은 과인을 위해 부디 사양하지 마시오."

선진(先軫)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주공께서 신을 용서하신다면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경만 믿소."
선진은 감읍하여 공궁을 나왔다. 궁문을 나서며 하늘을 우러러 외쳤다.

"비록 주공이 나를 용서했지만, 내 어찌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내 본디 진(秦)나라에 죽고자 했는데, 이젠 어쩔 수 없이 백적 땅에서 죽을 것이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선진(先軫)의 말뜻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 해 가을.
총원수 선진(先軫)은 백적을 토벌하기 위한 군대를 일으켰다.
진(秦)과의 일전을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불과 수일 만에 모든 준비를 완료하고 사열까지 마칠 수 있었다.

출전하기 전 작은 불상사 하나가 발생했다.
선진(先軫)과 휘하 장수들이 원수부에 모여 백적(白翟)을 칠 일을 의논할 때였다.
"누가 선봉이 되겠는가?"
"제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신임 차우(車右) 낭심이었다.

얼마 전, 진(秦)나라 아장 포만자의 난동을 진압하여 승진한 사람이다. 그때 그는 의기양양한 마음에 총원수 선진(先軫)을 찾아가 인사하는 것을 잊었었다.
'괘씸한 놈이다.'
진나라 최고 권력자 선진은 권위 의식이 강했다. 낭심(狼瞫)을 보는 눈이 곱지 않았다. 그런 차에 그가 선봉이 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선진(先軫)은 가소롭다는 눈길로 낭심을 바라보며 꾸짖었다.
"너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졸개에 불과하던 자다. 어쩌다 죄수 하나를 참하고 주공께 발탁되었을 뿐이다. 어찌 겸손하지 못하고 감히 선봉 운운하는 것이냐?"

가만히 있었더라면 별일이 없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낭심(狼瞫)이 고개를 쳐들고 대들었다.
"소장은 나라를 위해 힘쓰려는 것뿐입니다. 원수께서는 어찌하여 사사로운 감정을 앞세워 소장의 뜻을 막으려 하십니까?"

이 말에 선진(先軫)은 발끈했다.
"이놈, 무엄하구나. 앞을 내다보는 눈도 없는 너 같은 놈에게 무슨 용맹과 지략이 있겠는가. 우리 군중에 너 같은 자는 필요 없다. 나가라!"
낭심(狼瞫)을 쫓아내고 효산 싸움에 공이 큰 호국거에게 차우직을 내렸다.

졸지에 모욕을 받고 쫓겨난 낭심(狼瞫)은 억울했다.
'진(晉)나라 관직이 온통 선진 손에 달렸구나.'
탄식하며 걷는 중에 친구 선백(鮮伯)을 만났다. 선백이 풀죽어 있는 낭심을 이상하게 여기고 물었다.

"듣자니 백적(白翟)을 막기 위해 출동할 거라는데, 그대는 차우직에 있으면서 어찌하여 이렇듯 한가로이 걷고 있는가?"
낭심(狼瞫)은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원수부에서의 일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나는 선진(先軫)을 원망하지 않네. 다만, 나라를 위해 이 한 목숨 바치고자 하는 나의 충정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네."

선백(鮮伯)은 줄이 닿지 않아 아직 관직을 얻지 못한 시정 건달이었다. 그는 친구 낭심(狼瞫)이 차우직에서 쫓겨났다는 말을 듣고 크게 분노했다.
"선진이 자네의 출세를 질투한 것이 분명하네. 내가 도와줄 터이니 자네는 이 참에 선진(先軫)을 암살해버리게나. 사내대장부로서 모욕당한 분풀이를 하고 죽는 것도 뜻있는 일 아니겠는가?"

낭심(狼瞫)이 두 손을 저었다.
"그건 옳은 방법이 아닐세. 사내대장부가 죽을 때엔 반드시 그만한 의미가 있어야 하네. 주공께선 나의 용기를 알아주시고 차우(車右)라는 벼슬을 주셨네. 그런데 선진(先軫)은 네까짓 것이 무슨 용기가 있느냐고 조롱하면서 나를 내쫓았네."

"만일 내가 분풀이를 하고 나서 죽으면 사람들은 나를 보고 '쫓겨날 만한 놈이었다'라고 말할 것일세. 자네가 진정으로 나를 위한다면 서둘지 말고 잠시 때를 기다리게. 언젠가는 나의 충심을 보여줄 날이 올 것일세."
"듣고 보니 그렇군. 자네 식견은 과연 나보다 한 수 위이네."

그날 이후로 낭심(狼瞫)과 선백(鮮伯)은 거리에서 사라졌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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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부탄 | 작성시간 21.08.02 선진도 늙어서 판단이 흐려지는 군요.
    개인감정으로 나라를 운영하면 안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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