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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장강의 영웅들 (14)

작성자미션|작성시간21.08.07|조회수134 목록 댓글 1

- 2부 장강의 영웅들 (14)

제 6권 꿈이여 세월이여


제 2장 선진(先軫)의 죽음 (5)

그 무렵.
선진의 아들 선차거(先且居)는 대곡 전투의 승전을 고하기 위해 중군 영채로 들어갔다. 그러나 선진(先軫)은 영채 안에 없었다.
"원수께서는 혼자 병차를 타고 나가셨습니다. 어디로 가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선차거(先且居)는 공연히 가슴이 떨렸다.
선진이 머물고 있던 군막 안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표(表) 한 장이 놓여 있을 뿐, 실내는 말끔히 정돈되어 있었다.

선차거는 얼른 표장(表章)을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다.

신 중군 원수 선진(先軫)이 삼가 아룁니다.
전날 신은 주공께 '불고이타(不顧而唾)의 무엄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도 주공께선 신을 죽이지 않고 오리혀 중책을 맡기셨습니다.

아아,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다행이 이번 싸움에서 우리 군대는 이겼습니다. 필시 주공께선 신(臣)에게 상을 내리실 것입니다.

만일 신(臣)이 그 상을 받는다면 이는 무례한 짓을 저질러도 상을 받은 결과가 됩니다. 무례한 짓을 해도 상(賞)을 받는다면 어찌 아랫사람의 죄를 벌할 수 있겠습니까. 공과 죄를 분명히 하지 못하면 나라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신은 지금 백적(白翟)으로 갑니다.
주공께서 신을 벌주지 않으셨으니, 신(臣)이 스스로 자신을 벌줄 작정입니다.
신은 백적 군사의 손을 빌려 죽음을 맞이할까 합니다.

신의 자식 선차거(先且居)는 장수로서 지략이 있습니다. 족히 아비를 대신하여 주공께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신 선진(先軫)은 죽음을 앞에 두고 주공께 영결(永訣)을 고합니다.


선차거(先且居)는 글을 다 읽고 나서 대성통곡했다.
"아아, 아버지가 돌아가셨구나!"
별안간 군막 밖으로 뛰어나가 병차에 올라탔다. 백적 진영으로 달려가 아버지 선진(先軫)을 구할 작정이었다.

주위에 있던 극결, 난순, 호사고, 호국거 등 모든 장수가 달려들어 선차거(先且居)를 붙들어 만류했다.
"원수의 생사부터 알아본 후 쳐들어가도 늦지 않소."
선차거가 겨우 진정했을 무렵, 영문을 지키던 군사가 들어와 아뢰었다.

"백부호의 동생 백돈(白暾)이 사자를 보내왔습니다."
"데리고 오라."
백적 사자가 들어왔다.
선차거(先且居)가 급히 물었다.
"무슨 일이냐?"
"우리 임금의 시체와 귀국 원수의 시체를 교환하기 원합니다."

그말에 선차거(先且居)는 자리에 주저앉아 다시 한 번 통곡했다.
극결(郤缺)은 선차거를 대신하여 시체를 교환하기로 합의했다.
백적 사자가 돌아가자 선차거는 눈물을 훔치며 분연히 말했다.
"원래 오랑캐는 속임수가 많소. 우리는 내일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하오."

다음날이었다.
양군은 서로 진을 치고 대치했다. 선차거(先且居)는 소복을 입고 단독으로 병차를 몰아 양군 진영 한가운데로 나갔다.

백적 진영에서는 백돈(白暾)이 나왔다.
그는 선진의 위용을 본 터이라 여전히 두려워했다. 선진(先軫)의 몸에 박힌 화살을 모두 뽑고 향수로 목욕시킨 후 비단으로 잘 감쌌다. 그는 산 사람을 모시듯 선진의 시체가 실린 수레를 끌고 나와 선차거(先且居)에게 넘겼다.

선차거(先且居) 또한 나무 함에 담긴 백부호의 수급(首級)을 백돈에게 넘겨주었다. 그런데 그 수급의 보존 상태가 영 말이 아니었다. 피조차 닦아내지 않았고,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향기 나는 선진(先軫)의 시체와 너무 대조적이었다.

이를 본 백돈(白暾)은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선차거를 향해 소리 높여 외쳤다.
"너희들이 이렇듯 속일 수가 있느냐? 어찌하여 전신(全身)을 내주지 않는 것이냐?"
선차거(先且居)가 대답했다.
"전신을 원하거든 대곡에 흩어져 있는 시체들 속에서 찾아보아라!"

백돈(白暾)은 대로했다. 오른손을 높이 치켜들며 뒤편에 대기하고 있던 군사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선차거(先且居)는 재빨리 자기 진영으로 돌아와 병차들을 연결하여 마치 높은 담을 쌓은 것처럼 진채를 구축했다.

백적군의 기마대는 돌격했으나 병차로 이룬 굳건한 방어망을 돌파하지 못했다. 격분한 백돈(白暾)은 미친 듯이 날뛰며 여러 차례 돌격을 반복했다.
그러나 이미 전날 백적군의 습격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춘 진군(晉軍)이었다.

어느 순간, 진군 진영에서 북소리가 크게 일더니 왼편에서는 극결(郤缺)이 달려나오고 오른편에서는 난순(欒盾)이 뛰쳐나왔다. 또한 병차로 연결한 진채에서는 호사고(狐射姑)가 달려나와 백적군을 덮쳐갔다.

삽시간에 전세는 역전되어 백적 기마대는 포위되고 말았다.
한바탕 어지러운 싸움이 벌어졌다. 백돈(白暾)은 자신들이 불리한 것을 깨닫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진군(晉軍)은 쫓기는 백적군을 닥치는 대로 쳐죽였다. 끝내 백돈(白暾)은 대패하여 기성을 내주고 적성(翟城)으로 돌아갔다. 그 후 백돈은 백부호의 뒤를 이어 백적 수장에 올랐다.

진(晉)나라 군대도 개선하여 강성으로 돌아왔다. 선차거는 선진이 남긴 표(表)를 진양공에게 바쳤다.

진양공(晉襄公)은 선진의 죽음을 몹시 슬퍼했다.
친히 선진의 시체를 염(殮)했다. 그때까지도 선진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두 눈을 뜨고 있었다.

"장군이시여, 이제 눈을 감으라. 과인은 장군의 나라에 대한 충성과 임금에 대한 사랑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오."
진양공(晉襄公)은 선진의 시체 앞에서 선차거에게 중군 원수를 제수했다.

그제야 선진의 두 눈이 스르르 감겼다. 후세 사람들은 기성(箕城)에 선진을 위한 사당을 세웠다. 기(箕) 땅은 오늘날 산서성 포현 동북쪽 일대다.

이어 하군 장수 극결에게 경(卿)의 직위와 함께 기(冀) 땅을 식읍으로 내주었다. 백부호를 죽인 공을 높이 샀기 때문이었다. 기(冀) 땅은 예전에 극예가 소유했던 영지다. 이로써 극씨 일문은 과거의 영화를 되찾았다.

진양공(晉襄公)은 또 서신에게도 경의 직위를 내리고 모융(茅戎) 땅을 하사했다.
- 극결을 천거한 사람은 서신이다. 서신(胥臣)이 아니었던들 선군께서 어찌 극결을 발탁할 수 있었으리오.

진문공 시절, 서신은 기(冀) 땅에 은거하며 농사 짓고 있는 극결(郤缺)을 찾아내 진문공에게 천거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극결이 큰 공을 세웠는데,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서신(胥臣)의 공이라는 것이다.

모융(茅戎)은 오늘날 산서성 평륙현 일대.
융(戎)이라는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융족이 살던 땅이었는데, 진문공 시절 진(晉)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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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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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부탄 | 작성시간 21.08.07 선진은 죽어서도 충성을 다하는군요.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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