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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장강의 영웅들 (19)

작성자미션|작성시간21.08.20|조회수186 목록 댓글 0

- 2부 장강의 영웅들 (19)

제 6권 꿈이여 세월이여


제 3장 준패자 진목공 (2)

진. 진간의 제2차 싸움인 팽아 전투에서도 진(秦)나라는 패했다.
더욱이 이번 싸움은 효산 전투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진(秦)쪽에서 먼저 일으킨 싸움이었다.

진군대장 백리시(百里始)로서는 이만저만한 치욕이 아니었다.
'무슨 낯으로 주공을 대할꼬.'
옹성으로 귀환한 백리시는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진목공(秦穆公)은 도량이 넓은 군주였다.
그는 백리시가 패했다는 보고를 받았으나 조금도 노하지 않고 교외까지 나가 군사들을 영접했다.

"나는 장군을 믿는다. 언젠가는 반드시 진(晉)에게 설욕할 것이다. 그대는 계속 군대일을 맡으라."
진목공(秦穆公)의 위로에 백리시는 더욱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군사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자기 재산을 싸움터에서 죽은 군사들의 유족들에게 모두 나눠주기도 했다.
이 소문이 퍼지자 옹성 근처의 젊은이들은 앞을 다투어 군대에 자원했다.
- 기필코 진군(晉軍)을 무찌르리라!

그 해 겨울.
진(晉)나라가 먼저 진(秦)을 침범했다. 진문공의 죽음 이후 두 나라간에 세 번째로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 이번 싸움은 백리시가 지난번 말을 받으러 온 것에 대한 보답이다.

진양공(晉襄公)은 침공에 대한 명분을 이렇게 밝혔다.
보복전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진(晉)나라는 이번 싸움에 송(宋), 진(陳), 정(鄭)나라 군대까지 동원했다. 패자국으로서의 위엄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까불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라는 경고의 마음도 깃들어 있었다.

진군 원수 선차거(先且居)와 그 연합군은 바람처럼 나타나 진(秦)의 영토를 유린했다. 눈 깜짝할 사이, 진(秦)나라 왕(汪) 땅을 빼앗고 팽아까지 진격했다. 왕은 지금의 섬서성 백수현 일대의 땅으로, 당시는 진.진 국경 근처에 접해 있었다.

이에 대해 진(秦)나라 대장 백리시(百里始)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일체 군사를 일으키지 않고 진(晉)나라 연합군이 왕(汪) 땅을 빼앗고 돌아갈 때까지 옹성에서 훈련에만 열중하였을 뿐이었다.

이로 인해 진(秦)나라 조정은 백리시에 대한 비난의 소리로 들끓었다.
- 백리시(百里始)는 선차거에게 겁먹었다.
- 군대를 맡길 만한 그릇이 아니다.

그러나 진목공(秦穆公)만은 백리시를 믿었다.
- 언제고 백리시는 진(晉)나라에 보복할 것이다.
아직 때가 오지 않았을 뿐이다.
그대들은 기다려라.

반면, 진(晉)나라에서는 진양공(晉襄公)이 선차거 등 장수들과 승전의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 지난날 선군께서 돌아가셨을 당시 곽언이 점을 쳤을 때, 그 괘사이에 '한 번 치자 세 번 상하도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제 진(秦)나라는 우리에게 세 번이나 졌다. 곽언(郭偃)의 점괘는 한 치의 틀림도 없구나.
그들은 마냥 즐거워했다.

그 이듬해인 BC 624년 5월.
마침내 백리시(百里始)는 군사들의 훈련을 마치고 진목공을 찾아가 아뢰었다.
"이제 진(晉)나라에 대해 보복할 때가 왔습니다. 이번 싸움에는 주공께서도 친히 나서십시오. 신은 지난날의 한을 설치(雪恥)하지 못하면 맹세코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진목공(秦穆公)도 기다렸다는 듯이 백리시를 향해 말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세 번이나 진(晉)나라에 졌다. 과인 또한 그 울분을 씻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

백리시(百里始)는 병차 5백 승(乘)을 옹성 밖 교외에 집결시키고 일일이 사열했다. 아울러 싸움터로 나가는 병사의 집에 많은 곡식과 베를 나누어주었다. 군사들은 뛸 듯이 기뻐하며 한결같이 죽기를 맹세했다.

진군(秦軍)은 포진관 방면으로 행군하여 황하를 건넜다. 그들이 모두 강을 건넜을 때였다.
백리시(百里始)가 별안간 전군에 명을 내렸다.
"모든 군사는 타고 온 배를 모조리 불살라라!"
진목공(秦穆公)이 놀라서 물었다.
"배를 태우면 돌아갈 때 어찌 강을 건널 수 있겠는가?"
백리시가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배를 태우는 것은 군사들에게 진격만 있을 뿐 후퇴가 없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죽기를 각오하면 사기가 오릅니다. 진(晉)나라를 쳐서 이기기만 한다면야 돌아갈 때 어찌 배가 없는 것을 걱정하겠습니까?"
"장군의 말이 옳소."
배를 태우는 불길이 황하를 피처럼 붉게 물들였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진(秦)나라 군사들은 한결같이 두 주먹을 움켜쥐고 필승의 각오를 다졌다.

백리시(百里始)는 친히 선봉에 섰다.
국경을 돌파하여 가장 먼저 왕관(王官) 땅을 공격했다. 왕관은 지금의 산서성 임진현 동남쪽에 있는 땅이다.

과연 진군(秦軍)의 기세는 성난 파도와도 같았다. 왕관(王官) 땅을 지키던 진(晉)나라 군사들은 감히 맞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 진군(秦軍)이 왕관 땅을 점령하고 강성을 향해 진격해오는 중입니다.
진나라 수도 강성으로 급보가 날아들었다.
진양공(晉襄公)은 즉각 모든 신하를 불러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이미 세 번이나 싸워 이긴 바 있는 그는 진군(秦軍)을 깔보는 마음이 있어 선차거에게 나가 싸울 것을 명할 참이었다.
그런데 신하들의 분위기가 여느때와 달랐다.
진문공 때부터 조정을 주도해 온 원로대신 조쇠(趙衰)가 신중한 표정으로 일어나 여론을 주도해나갔다.

"이번 싸움은 맞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진(秦)나라의 분노는 골수에 사무쳐 있습니다. 임금은 나라의 모든 힘을 기울여 군대를 일으켰고, 장수와 군사들은 죽기를 각오했습니다. 이런 군대에게는 대적할 수 없습니다. 당분간 군사를 내지 말고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뒀다가 감정이 가라앉은 후 두 나라 간의 분쟁을 해결해야 합니다."

중군 원수 선차거(先且居) 또한 조쇠의 말에 동조했다.
"곤경에 처하면 약한 짐승도 사나워집니다. 더욱이 진(秦)은 큰 나라입니다. 진목공(秦穆公)은 세 번이나 싸움에 지는 모욕을 당했습니다. 진군 대장 백리시는 이길 때까지 싸움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투지에 불타 있습니다. 이 싸움은 두 나라 중 한 나라가 망할 때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극단으로 몰고갈 필요까지는 없다.
이 정도에서 진(秦)의 체면을 살려주고 싸움을 끝내는 것이 우리 진(晉)에게도 유리하다. 두 사람은 이렇게 주장했다.

진양공(晉襄公)은 비록 군위에 오른 지 4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세자 시절 아버지 진문공의 통치 스타일을 잘 보아왔다.
그는 이내 조쇠와 선차거의 말에 수긍했다.
전군에 명을 내렸다.
"굳게 지킬 뿐 진군(秦軍)과 결코 싸우지 말라."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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