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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장강의 영웅들 (28)

작성자미션|작성시간21.09.13|조회수176 목록 댓글 1

- 2부 장강의 영웅들 (28)

제 6권 꿈이여 세월이여


제 4장 흔들리는 진(晉)나라 (5)


그 무렵, 선멸과 사회는 진(秦)나라 수도 옹성에 머물고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도착 즉시 공자 옹(雍)을 모시고 귀국길에 올라야 했으나, 진나라도 진목공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국상 중에 있었다.

- 내정이 안정된 후에.
진목공에 이어 진(秦)의 임금에 오른 진강공(秦康公)은 공자 옹의 일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 사이 진나라 재상 백리시(百里始)는 사람을 풀어 진(晉)나라 동태를 살폈다. 모든 것이 선멸과 사회의 말대로였다.

"진(晉)의 중신들은 진정으로 공자 옹(雍)을 군위에 올리려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나라 내정도 많이 안정되었으니, 공자 옹을 강성으로 보내어 군위에 올리십시오. 이 일만 성공하면 진(晉)나라 임금은 여러 대째 우리 진(秦)에서 배출하는 것이 됩니다. 이득이 있을 뿐 손해는 없습니다."

이러한 백리시(百里始)의 보고를 듣고서야 진강공(秦康公)은 공자 옹과 사신으로 온 선멸, 사회를 불러 귀국의 명을 내렸다.
- 돌아가 군위에 오르라.

그러고는 백리시로 하여금 그들을 안전하게 강성까지 호위하게 했다. 이때 백리시가 거느리고 간 군대는 병차 4백 승. 대병력이었다. 진양공(晉襄公)이 죽은 이듬해 3월의 일이었다.


이 소식은 즉각 강성에도 전해졌다.
진(晉)나라 원수 겸 재상 조순(趙盾)은 모든 신료와 함께 공자 옹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 무렵, 세자 이고(夷皐)의 생모 목영(穆贏)은 날마다 어린 아들의 손을 부여잡고 조당에 나가 통곡하며 호소했다.
- 이 아이는 선군의 적자입니다. 어찌하여 모든 대부는 선군의 한 점 혈육을 버리려 하십니까?
이 때문에 대부들은 여간 난처해하지 않았다.
일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지경이었고, 목영을 피해다니기에 급급했다.

날이 저물어 대부들이 퇴청하면 목영(穆贏)은 다시 수레를 타고 조순의 집으로 향했다. 때로는 대청에서, 때로는 대문 밖에서 구슬피 흐느끼며 이고(夷皐)를 위해 탄원했다.

- 선군께서는 임종하실 때 세자를 경(卿)에게 부탁하셨소. 원수께서는 선군의 그 유언이 귀에 쟁쟁하지도 않습니까. 세자가 어엿이 이렇게 살아 있는데, 원수는 어찌하여 다른 사람을 임금에 앉히려 하십니까? 세자를 군위에 올리지 않으려면 우리 모자를 죽이시오.

길가는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았고, 성안 사람들이 이 소문을 듣고 백성들은 차츰 세자의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 불쌍하구나.
- 원수의 처사가 너무 심하다.
어떤 이는 어린 세자를 동정했고, 어떤 이는 조순(趙盾)을 괘씸하게 생각했다.

조당 내에서도 세자의 일을 재고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심스럽게 일기 시작했다. 순림보(旬林父), 유변(臾騈) 등 조순과 가까운 사람들은 기회가 날 때마다 성 안팎의 분위기를 전달해주었다.
- 난이 일어날까 염려됩니다.
조순(趙盾)은 골머리를 앓았다.

하루는 극결(郤缺)이 찾아와 말했다.
"이런 분위기로 옹(雍) 공자가 귀국하면 우리 진나라는 내란에 휩싸일 것이 분명하오."
극결(郤缺)은 극예의 아들로서 극씨 일문의 당주였다. 백적과의 싸움에서 수장 백부호의 목을 베는 공을 세우기도 한 용장이요, 현자(賢者)였다.

조순(趙盾)은 전에 없이 긴장했다.
"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소이다. 하지만 이미 선멸과 사회가 옹(雍)공자를 앞세우고 돌아오는 중인데, 어떻게 또 세자를 군위에 올린단 말이오?"

"세자를 버리고 옹(雍)공자를 군위에 올린다 하더라도 세자는 장성하오. 세자가 장성하면 우리나라는 더욱 어지럽게 됩니다. 듣자니 아직 옹 공자가 황하를 건너지 않은 모양이니, 하루라도 속히 사람을 보내 옹(雍)공자의 귀국을 막으십시오. 그 방법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나라 안에 임금이 서야 옹(雍)공자의 귀국을 막을 명분이 서니, 기왕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먼저 세자를 군위에 올립시다."
마침내 조순(趙盾)은 마음을 정했다.
그 날로 모든 신료를 조당으로 소집하고 세자 이고(夷皐)를 임금으로 세운다는 자신의 결심을 밝혔다.

- 좋습니다.
대부들은 찬성했다. 한결같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표정들이었다.
세자 이고(夷皐)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이로써 진나라는 진양공이 죽은지 7개월 만에 임금이 섰다.
그가 진영공(晉靈公)이다.
이때 그의 나이 일곱 살.

문무백관이 소년 임금 진영공에게 조하(朝賀)를 마쳤을 때였다.
파발이 달려와 보고했다.
- 진군(秦軍)을 앞세운 옹(雍)공자 일행이 황하에 당도했다고 합니다.
대부들은 난감했다.

조순(趙盾)이 일어나 결연히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쩌겠소? 이미 우리나라에 임금이 섰으니, 옹(雍)공자와 진군은 이제 우리의 적이나 마찬가지외다. 사람을 보내 사정을 설명한들 들어줄 리 없으니, 당장 군대를 동원해 진군(秦軍)의 도강을 저지합시다."

강성은 삽시간에 전시 체제로 바뀌었다.
조순은 상군대장 기정(箕鄭)에게 진영공(晉靈公)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겼다. 나머지 장수들에 대해서도 각기 임무를 부여했다.

- 호사고를 대신하여 선극(先克)이 중군 좌장의 일을 맡아보라.
- 상군 좌장 순림보(旬林父)는 기정을 대신하여 상군 대장을 대행하라.
- 하군 좌장 선도(先都)는 선멸을 대신하여 하군 대장을 대행하라.
- 나는 스스로 중군 대장이 되어 진군(秦軍)과 싸우리라.
3군을 정돈한 조순(趙盾)은 군사를 거느리고 강성을 출발했다.

조순(趙盾)이 이끄는 진군이 동음(董陰)땅에 이르렀을 때, 공자 옹(雍)을 호위하던 진군(秦軍)은 이미 황하를 건너 영호에 머물고 있었다.

진군(秦軍) 대장 백리시는 진군이 전방에 나와 있다는 말을 듣고 공자 옹을 영접하러 나온 줄로만 알았다. 그들은 전혀 전투 준비를 하지 않았다.

사자로 갔던 선멸(先蔑)이 그간의 경위를 보고하기 위해 동음(董陰)으로 건너와 조순을 만났다. 그런데 이 무슨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린가.
그 사이 세자 이고(夷皐)를 군위에 올렸다는 것이 아닌가.

선멸(先蔑)은 배신감에 사로잡혀 길길이 날뛰었다.
"공자 옹(雍)을 모셔오기로 한 것은 그대가 주장한 것이 아니었더냐! 그런데 이제 와서 세자를 임금으로 세웠다니, 지금 어린애 장난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는 조순을 무섭게 노려보다가 분연히 자리를 차고 일어나 군막을 나왔다.
오랫동안의 친구 순림보(旬林父)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선멸은 순림보를 보자 강성을 떠나올 때의 그의 말이 생각나서 탄식했다.
"내가 그대 말을 듣지 않았다가 이런 꼴을 당하는구려. 그대는 잘 지내시오."

순림보(旬林父)가 선멸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그대는 진(晉)나라 신하요. 진을 버리고 어디로 가려 하는 것이오?"
"나는 명을 받고 옹 공자를 모시러 진(秦)나라로 떠났던 사람이오. 그러니 이제부터 나의 주공은 옹(雍)공자요. 이런 마당에 내 어찌 옹 공자를 버리고 고국으로 돌아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겠소? 진(秦)은 옹 공자를 돕는 나라이니, 나는 진으로 가겠소."

선멸은 끝내 소매를 뿌리치고 영호로 돌아갔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조순이 모든 장수를 불러놓고 말했다.
"선멸(先蔑)이 돌아갔으니 진군(秦軍)은 반드시 내일 우리를 공격해올 것이오.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기선이오. 오늘 밤 나는 진군 영채를 기습하여 저들을 우리 땅에서 쫓아낼 작정이오."

그 날 저녁, 진군(晉軍)은 밥을 배불리 먹고 함매(銜枚)한 후 조용히 출동했다.
그들이 진군(秦軍)영채에 당도했을 때는 삼경이 조금 넘은 무렵이었다. 조순의 신호가 떨어지자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며 북소리와 함께 영채를 향해 쳐들어갔다.

과연 진군(秦軍)은 아무 대비도 해놓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격이었다. 갑옷과 창을 잡을 여가도 없었다.
놀란 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들을 공격한 것이 진군(晉軍)이라는 것을 알았을 정도였다.

백리시(百里始)와 그 군사들은 대패하여 겨우 황하 건너편으로 도주했다. 그 와중에 공자 옹(雍)이 죽었다. 선멸은 공자 옹의 시신을 보고 울며 탄식했다.
"모든 게 끝났다. 조순은 나를 배신했지만, 나는 옹 공자를 도운 진(秦)나라를 배신하지 않겠다."

그는 백리시의 뒤를 따라 진(秦)나라로 달아났다. 함께 사신으로 갔던 사회(士會) 또한 패잔병 속에 섞여 옹성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선멸처럼 진심으로 진(晉)나라를 버린 것은 아니었다.

'조순(趙盾)이 자기를 배신했다 하여 그가 고국을 배신한 행위는 옳지 않다. 어찌 개인의 일과 나라의 일을 동격으로 놓을 수 있으리오.'
그 뒤 진강공(秦康公)은 선멸과 사회를 모두 대부로 삼았으나. 사회(士會)는 일절 선멸을 만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그런 사회(士會)를 보고 물었다.
- 그대와 선멸은 다같은 망명객이다. 어찌하여 같은 처지로서 선멸을 만나지 않고 따로이 지내는가?
사회가 대답했다.
- 나는 선멸과 같은 죄를 지어 이 곳에 머무르는 것일 뿐, 고국을 버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선멸(先蔑)은 나라를 버렸다. 어찌 의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는 이제나저제나 진(晉)나라로 돌아갈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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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부탄 | 작성시간 21.09.15 晉나라가 나누어 지겠군요. 재미있게 잘 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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