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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장강의 영웅들 (37)

작성자미션|작성시간21.10.09|조회수311 목록 댓글 1

- 2부 장강의 영웅들 (37)

제 6권 꿈이여 세월이여


제 5장 난세의 군주들 (1)

아버지 초성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초목왕(楚穆王)은 미친 야생마 같았다.
- 중원을 지배하리라.

이런 야심을 품고 있는 초목왕에게 패자국이었던 진(晉)나라가 서방의 강자 진(秦)과 끊임없는 싸움으로 힘을 소모하고 있음은 더할 나위없이 좋은 기회였다.

즉위한 지 5년이 채 안되어 한수, 장강 일대를 영토로 하는 강(江), 육(六), 요(蓼)나라 등을 멸망시킨 초목왕(楚穆王)은 눈을 북으로 돌렸다.
"정나라를 치고 싶다. 가능하겠는가?"

정(鄭)나라는 황하에 인접한 중원의 노른자와도 같은 요충지였다.
그 곳만 점거하면 동, 서, 북으로 마음껏 뻗어나갈 수 있다. 제환공과 진문공이 패업을 이루기 전 가장 먼저 정나라를 굴복시킨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가 아닌가.

초목왕의 신하 중 대부 범산(范山)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정세 분석 담당관이다.
"정나라가 우리에게 굴복하지 않는 것은 진(晉)나라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진나라 임금은 어리고, 그 신하들은 권력 다툼에 정신이 팔려 있으며, 또한 진(秦)과의 싸움으로 기진맥진해 있는 상태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군대를 출동시키면 능히 정나라를 굴복 시킬 수 있습니다."

초목왕(楚穆王)은 범산의 진언을 받아들였다.
투월초(鬪越椒)를 대장으로 삼고, 위가(蔿賈)를 부장으로 임명한 후 병차 3백 승을 내주었다.

- 정(鄭)나라를 치고 오라.
그 자신은 낭연 땅까지 진격하여 투월초(鬪越椒)를 지원하기로 했다.
낭연은 정나라 영토로 지금의 하남성 임영현 서북쪽 일대다.

낭연에 머물고 있자니 진(陳)나라가 가까이 보였다.
초목왕(楚穆王)은 내친김에 공자 주(朱)와 공자 패(茷)를 불러 명했다.
- 진(陳)나라를 치고 오라.

초군의 침공 소식을 전해들은 정목공(鄭穆公)은 즉각 방어 태세를 갖췄다. 공자 견(堅)과 공자 방(尨), 그리고 대부 악이(樂耳)에게 군사를 내주며 말했다.
"영채를 굳게 쌓아 지킬 뿐, 결코 나가 싸우지 마라. 그 사이 진(晉)나라에 원군을 청하겠다."

그러는 사이, 초군 장수 투월초(鬪越椒)는 위가와 함께 정나라 영토 깊숙이 들어갔다. 정나라 방어군과 대치한 가운데 그들은 날마다 싸움을 걸었다.
그러나 정나라 장수 공자 견(堅)은 굳게 지킬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초군 부장 위가(蔿賈)는 어릴 적에 이미 성득신의 패망을 예견했을 만큼 정세 판단 능력과 기지가 뛰어난 모사 기질의 장수였다. 이내 정군(鄭軍)의 속셈을 간파했다.

"정(鄭)나라가 나와 싸우지 않는 것은 진(晉)나라 군사가 달려와 도와줄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군(晉軍)이 오기 전에 적장을 유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군을 비롯한 중원 여러 나라들이 달려와 정나라를 도울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성득신(成得臣)의 패배를 다시 겪게 될지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적장을 유인할 수 있겠소?"
투월초의 물음에 위가(蔿賈)는 귓속말로 무슨 말인가를 한참 속삭였다.
투월초의 입이 금방 벌어졌다.

그 날 오후, 투월초(鬪越椒)는 군사들을 불러모았다.
"우리는 머지않아 군량이 바닥날 지경이다. 군사들은 주변 마을을 돌아다니며 식량을 약탈해 자급자족하라."
이렇게 지시하고는 자기 자신은 군막 속에 들어앉아 날마다 음악을 즐기고 술을 마셔댔다.

이 소문은 낭연 땅에 주둔하고 있는 초목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초목왕은 투월초가 정군(鄭軍)을 깔보고 그런 짓을 하는 줄 알고 친히 가서 싸움을 감독하려 했다.

대부 범산(范山)이 그런 초목왕의 소매를 붙잡았다.
"위가(蔿賈)는 지혜가 넘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반드시 어떤 계책을 성사시키기 위해 풍류와 술을 즐기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며칠 안에 좋은 소식이 날아들 것입니다. 왕께서는 기다리십시오,"

한편, 정군 대장 공자 견(堅)은 별안간 초군이 공격을 중단하자 오히려 불안했다.
온갖 의심이 일었다. 세작을 풀어 초군의 동태를 살펴오게 했다.
- 초(楚)나라 병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양식을 노략질해다 먹고 있습니다. 장수 투월초는 날마다 풍류를 즐기고 술만 마셔댑니다.

세작의 보고를 받은 공자 견(堅)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초군이 백성들의 양식을 노략질해서 먹는 것은 군량이 떨어졌다는 증거며, 밤낮으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그들이 지쳤다는 증거다. 오늘밤 적의 영채를 들이치면 크게 승리를 거둘 것이다."
부장 공자 방(尨)과 악이(樂耳)도 찬성했다.

그 날 밤, 정군(鄭軍)은 밥을 배불리 먹고 야습 준비를 갖췄다.
만약에 대비하여 전대(前隊), 중대(中隊), 후대(後隊)로 나누어 진격하자고 악이가 제안했으나, 공자 견(堅)은 패망의 화신이 씌었음인지 고개를 저어 그의 의견을 물리쳤다.

"기습이란 단번에 쳐들어가야 효과가 있는 법이오. 앞뒤로 대를 나누는 것보다 좌우로 나누어 일시에 공격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공자 견이 우대(右隊)가 되고 공자 방과 악이가 좌대(左隊)가 되었다.
전군에 함매령을 내리고 초군 영채 가까이 접근하였다.

어둠 속에서 바라보니, 초군 영채는 불빛이 휘황찬란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음악소리와 노랫소리가 질탕하게 들려왔다. 공자 견(堅)의 하얀이가 어둠 속에서 드러났다.
"투월초도 오늘 밤이 마지막이로구나."

공자 견(堅)이 앞장서서 초군 영채로 뛰어들었다.
동시에 좌측에서는 공자 방(尨)과 악이(樂耳)가 북을 울리며 병차를 몰았다.
군막 주변으로 악기를 타던 악인(樂人)들이 기겁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다.
투월초만이 술에 취했는지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투월초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간 공자 견(堅)은 칼을 든 손을 번쩍 쳐들었다.
그래도 투월초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견은 투월초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짚에다 투월초의 갑옷을 입혀놓은 인형이었다.
"적의 계책에 속았다. 후퇴하라!"
그러나 너무 깊이 들어왔다.

그들이 말머리를 채 돌리기도 전에 영채 뒤에서 포향이 크게 일었다. 동시에 한 장수가 군사를 휘몰아 덮쳐들었다.
"투월초(鬪越椒)가 여기 있도다!"
공자 견(堅)은 뒤돌아볼 여가가 없었다. 오로지 자기 진영을 향해 달렸다.

1마장쯤 달렸을까.
또 포성이 울렸다. 앞쪽을 가로막는 일지군이 있었다. 초군 부장 위가(蔿賈)의 군대였다.

정군(鄭軍)은 앞뒤가 가로막혀 달리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 끝내 공자 견(堅)과 방(尨)과 악이(樂耳)는 병차에서 내려 항복했다. 처음의 기세와는 달리 싱거운 싸움이었다.


- 아군이 패하여 세 장수가 모두 사로잡혔습니다.
이러한 보고를 받은 신정성 안의 정목공(鄭穆公)은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진(晉)나라 원군은 아직 보이질 않느냐?"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꼬?"

"초군은 강할 뿐 아니라 무지막지합니다. 만일 항복하지 않으면 조만간 신정성마저 격파될 것입니다. 그때는 진군(晉軍)이 와도 소용없습니다."
정목공은 하는 수 없이 공자 풍(豊)을 투월초에게 보냈다.

- 화평을 청합니다. 앞으로는 초(楚)나라만을 섬기겠습니다.
투월초는 사로잡은 세 장수와 함게 낭연 땅으로 달려가 초목왕에게 정나라의 항복 사실을 고했다.

초목왕(楚穆王)은 흡족했다.
- 초나라는 중원의 주인이다. 앞으로는 과인이 정(鄭)나라를 보호하리라.
이렇게 승낙하고는 사로잡은 공자 견과 방, 악이를 모두 돌려보냈다.

그 무렵해서 진(陳)을 치러나갔던 공자 주(朱)가 돌아왔다.
그는 고개를 떨군 채 초목왕에게 보고했다.
"싸움을 벌이는 중 실수로 공자 패가 진군(陳軍)에게 사로잡혔습니다."
패했다는 것이었다.

초목왕(楚穆王)은 분노했다.
"진(陳)나라는 건방지구나."
전군을 이끌고 진나라를 향해 출발하려 할 때, 낯선 수레 한 대가 달려왔다.

진공공(陳共公)이 보낸 사자였다.
- 어리석은 저희 군사들이 실수로 귀국 공자 패를 사로잡았다 합니다. 참으로 죄송하고 황공하여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입니다. 이미 공자 패(茷)를 귀국으로 호송했으니, 군왕께서는 노여움을 푸십시오.

항복 문서였다.
초목왕(楚穆王)은 그 항서를 읽고 싱긋 웃었다.
"진(陳)나라는 내가 그들을 칠까 겁을 먹고 지레 항복해오는구나. 진공공은 가히 시국을 아는 자다."

싸움에 이기고도 항복해야 하는 약소국의 비애.
춘추시대다운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이 해는 BC 618년.
패자국 진(晉)나라 연호로는 진영공 3년의 일이다.

이때 진(晉)나라에서는 기정, 사곡 등이 내란 음모죄로 처형당했다.
정목공으로부터 구원을 요청받은 진(晉)나라 재상 조순(趙盾)은 즉각 원군을 파병할 여력이 없었다.
뒤늦게 송, 노, 위, 허나라 등에 사자를 보내어 연합군을 구성했다.

조순(趙盾)이 5개국 연합군을 거느리고 정나라 국경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정목공과 진공공이 초목왕에게 항복하고 난 뒤였다. 그들은 성급히 항복을 결정한 정목공과 진공공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 초나라에 항복한 정, 진(陳) 두 나라를 응징합시다.
5개국 장수는 이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조순(趙盾)은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각기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이번 일은 우리 진(晉)나라가 늦게 대처했기 때문이오. 정, 진 두 나라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소. 이번에는 그냥 돌아가고 후일을 기약합시다."

그러나 실은 국내 문제가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5개국 연합군은 정(鄭)나라 국경에서 해산했다.
이때의 판단 하나로 진(晉)나라는 중원에 대한 영향력을 거의 상실했고, 초나라의 북진 정책만 도와주는 결과가 되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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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부탄 | 작성시간 21.10.10 드디어 초나라가 움직이는군요. 연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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