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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장강의 영웅들 (41)

작성자미션|작성시간21.10.19|조회수159 목록 댓글 1

- 2부 장강의 영웅들 (41)

제 6권 꿈이여 세월이여


제 5장 난세의 군주들 (5)

임금이 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의 재산을 풀어 빈민들을 구제해 백성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하던 제의공(齊懿公)은 군위에 오르자마자 본래의 간악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세금을 엄청나게 부과하여 공실의 창고를 값진 보화로 가득 채웠고, 그것도 모자라 돈 많은 부자들을 잡아들여 그 재산을 모두 압수했다.

또 그는 과거에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들을 일일이 기억해 잡아들이고는 악착같이 보복했다.

아버지 제환공(齊桓公)이 살아 있을 때의 일이었다.
제의공은 대부 병원(邴原)과 땅 문제를 놓고 다툰 적이 있었다.
그때 제환공은 관중으로 하여금 두 사람의 시비를 가리게 했다. 관중은 상인(商人, 제의공)의 주장이 억지임을 밝히고 병원에게 그 땅을 소유하도록 판결했다.

이때부터 그는 병씨(邴氏) 일문에 앙심을 품고 있다가 임금이 되자 병씨의 땅을 모조리 빼앗았다. 아울러 당시 관중이 병원과 한패였다고 주장하고는 관씨(管氏) 일족의 식읍을 반 넘게 빼앗았다.

이에 관중의 후손들은 제의공(齊懿公)에게 어떤 화를 당할지 몰라 모두 초(楚)나라로 달아났다. 후일 관씨 일족이 제나라에 있지 않고 초나라에서 벼슬하게 된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

병씨(邴氏) 일문의 땅을 빼앗고도 제의공은 병원에 대한 앙심이 풀리지 않았다. 물론 이때는 병원(邴原)이 죽은 지 오래였다.

어느 날, 제의공은 임치성 동쪽 밖에 병원의 무덤이 있는 것을 알고 일부러 동교(東郊)로 사냥을 나갔다. 그 무덤 앞을 지나면서 신하들에게 슬쩍 물었다.
"이것은 누구의 무덤이냐?"
"대부 병원의 무덤입니다."
"흠, 병원(邴原)은 나의 원수다. 저 무덤을 파라."
군사들이 무덤을 파헤치자 제의공은 시체를 끌어내어 월형(刖刑)을 시행했다.
월형이란 발목을 자르는 형벌이다.

그 자리에 병원의 아들 병촉(邴歜)도 있었다.
<사기>에는 병융(丙戎)으로 기록되어 있다. <춘추좌씨전>에는 병촉.
같은 인물이 분명하다. 이처럼 동일인물에 대해 사서마다 다르게 기록한 경우가 종종 발견되는데, 이것은 당시의 기록이 워낙 오래되어 해석하는 과정에서 사가마다 다르게 판독하였거나, 사서를 옮겨 쓰는 과정에서 발생한 착오일 수가 있다.
여기서는 <춘추좌씨전>에 기록된 이름을 따랐다.

제의공(齊懿公)은 병촉을 돌아보며 누런 이를 드러냈다.
"나는 죽은 네 아비의 발을 끊었다. 너는 이 일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가?"
병촉(邴歜)이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신의 아비는 살아 있을 때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입니다. 더욱이 썩은 뼈를 끊었는데, 무엇이 대수겠습니까?"
"하하하, 너는 현명한 사람이로구나. 네가 가히 네 아비의 죄를 씻었도다."
"신의 아비를 다시 묻어도 좋겠습니까?"
"그리하라."

제의공(齊懿公)은 재물에 대한 욕심만 많은 것이 아니었다.
여자도 몹시 밝혔다. 그는 나라 안의 미인들을 모아 궁으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어찌 그것으로 성이 차랴.

한 번은 시중드는 내시로부터,
- 염직(閻職)의 아내가 천하절색이라 합니다.
라는 말을 들었다. 염직은 제나라 대부다. 역시 <사기>에는 용직(庸職)이라는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다.

제의공(齊懿公)이 군위에 오른 지 4년째 되는 해 정월 초하룻날이었다.
제의공은 엉뚱한 명을 내렸다.
"모든 대부는 부인과 함께 궁으로 들어와 조례(朝禮)하라."

염직(閻職)도 어쩔 수 없이 아내와 함께 궁으로 들어갔다. 제의공은 그의 부인을 보자 크게 기뻐했다.
"과연 듣던 바대로 미인이로다."
그는 염직의 아내를 궁중에 머물게 하고 돌려보내지 않았다.

며칠 후, 제의공(齊懿公)은 염직을 불러 말했다.
"궁중 사람들이 그대의 아내를 좋아하니 여기서 살도록 하겠소. 그대는 다시 장가를 들도록 하오."
염직(閻職)은 분노했으나 끝내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로 물러났다.

그해 여름, 날이 유난히 더웠다.
제(齊)나라 수도 임치성 근교에 아름다운 연못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은 그 못을 신지(申池)라고 했다. 신지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임치성 남문의 이름이 신문(申門)인데 그 근방에 있기 때문에 신지라 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나라 해변가에 있는 연못 이름이라고 했다.

신지(申池)는 물이 맑고 깨끗했다.
또 연못 주변으로 대나무가 울창하여 풍광이 아름다웠다. 제나라 군주들은 대대로 여름이 되면 그 곳으로 나가 목욕을 하며 더위를 식히곤 했다.

제의공도 군위에 오른 이후 매년 여름철만 되면 신지(申池)로 나가 피서를 했다. 그 해 여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시종을 불러 분부했다.
"신지(申池)로 나갈 채비를 갖춰라. 병촉에게 수레를 몰게 하고, 염직으로 참승(驂乘)을 삼을 것이다."

참승이라 함은 수레 오른편에 타고 주인을 호위하는 사람을 말한다.
차우(車右)와 같은 뜻이나 이는 전쟁터에서 쓰이는 용어이고, 평상시에는 참승이라 한다.

궁중 내관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간언했다.
"병촉(邴歜)과 염직(閻職)은 두 사람 다 주공께 원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신하들이 많은데 어이하여 하필이면 그 두 사람을 어자와 참승으로 삼으십니까?"
제의공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 두 사람은 결코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너는 쓸데없는 의심을 하지마라."
제의공(齊懿公)은 끝내 내관의 말을 듣지 않고 병촉과 염직만을 거느린 채 신지(申池)로 향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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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부탄 | 작성시간 21.10.20 제의공은 나쁜 군주의 표본이군요. 다음 회가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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