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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장강의 영웅들 (45)

작성자미션|작성시간21.11.02|조회수148 목록 댓글 1

- 2부 장강의 영웅들 (45)

제 6권 꿈이여 세월이여


제 6장 동호직필(董狐直筆) (1)

진문공의 죽음 이후 미약하나마 패자국의 명맥을 유지해오던 진(晉)나라는 제, 송나라로부터 받은 두 차례의 뇌물 사건으로 인해 신뢰와 위엄을 잃고 있었다.

이 무렵 진(晉)나라의 내정을 살펴보면, 어린 임금 진영공 대신 공신의 후예인 조순(趙盾)이 모든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독재 정치의 성향을 띠어가고 있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정치 형태로 볼 때 매우 특이한 현상이었다.

춘추시대 개막 이후 공실이 어지러운 틈을 타 일시적으로 권력을 잡는 경우는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그 힘의 원천은 소위 '주공(主公)'이라 불리는 제후였다.

그런데 진문공(晉文公)을 보좌한 망명파 공신들이 등장하면서 귀족의 권력지분이 급격히 높아졌고, 그 다음 세대에 이르러서는 급기야 공실을 능가하는 힘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군주 중심제에서 귀족 중심제로 바뀌는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진(晉)나라에서는 귀족 중 으뜸되는 자, 즉 재상이 제일 권력자가 되어 정치, 군사 부문은 물론 경제, 외교 부문까지 장악하게 되었다.
그 첫 권력자가 조순(趙盾)이었다.

'지난날의 진나라 영광을 되살리자!'
권력도 막강했지만 책임도 막중했다.
진(晉)나라의 번영은 조순의 번영이요, 진나라의 쇠퇴 또한 조순(趙盾)의 쇠퇴였다.

중원의 어지러움은 더해가고 있었다.
남방의 무법자 초나라의 횡행도 날이 갈수록 극심해졌다. 이 모든 것을 다스릴 책임이 이제는 진나라의 행정수반인 조순(趙盾)의 어깨에 실려 있는 것이었다.

'내실을 더 공고히 다질 필요가 있다.'
조순(趙盾)은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도 부족하고 허술한 것이 많았다. 언제 어느 곳에서부터 자신의 권력 기반이 무너져나갈지 몰랐다.
'사람이 없다.'

자신을 보필하고 자신의 생각을 실천으로 옮겨줄 수족들이 너무 부족했다.
힘을 나누어가질 사람은 많았지만, 힘을 보태줄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렵다.'
조순(趙盾)은 날이 갈수록 정치의 어려움을 실감했다. 그는 점차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럴 때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은 오직 혈연뿐이었다.
'조씨 일문이 강해야 나라가 안정된다.'

조천은 조순의 종제(從弟)다.
젊기도 하였거니와 용맹스럽고 패기가 넘쳤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의욕에 비해 능력이 못 미친다는 점이었다.

조순은 조천(趙穿)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그를 권력의 중심부로 끌어들여 자신을 도와줄 오른팔로 삼고 싶었다.
지난번 진(秦)나라와 벌인 하곡 전투에서 조천의 실수는 조순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아쉬움이었다.

'그때 서둘지만 않았더라도.....'
조천에게 공을 돌려 그를 중용했을 것이다.
-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십시오.
그 후 조천(趙穿)은 틈만 나면 조순을 붙잡고 졸랐다. 조순(趙盾)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는 또 조천(趙穿)이 조순을 찾아와 말했다.
"초나라의 북진을 막을 방도가 있습니까?"
조순은 눈을 가늘게 떴다.
"골치다."
그렇지 않아도 초나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대답이다.

조천(趙穿)이 한 걸음 다가앉았다.
"제게 좋은 계책이 있습니다."
"말해보라."
"진(秦)나라와 동맹을 맺으면 초나라의 북진을 견제할 수 있습니다."
"진(秦)과?"

진(晉)과 진(秦)은 원수지간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진(秦)나라가 우리 나라와 선뜻 화친을 맺을 것인가.
조순의 중얼거림에는 이런 반문이 내포되어 있었다.
"가능합니다."

진(秦)나라 속국 중에 숭(崇)이라는 나라가 있다. 주변국 중에 가장 오랫동안 진(秦)을 섬겨온 나라다. 지금의 섬서성 우현 동쪽을 영토로 하고 있다.
"제가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그 숭나라를 치겠습니다. 그러면 진(秦)에서는 반드시 숭(崇)나라를 구원하러 올 것입니다. 그때 재상께서 진나라에게 강화의 뜻을 밝히면 우리는 인심까지 써가며 진(秦)과 동맹을 맺을 수 있습니다."

조순(趙盾)은 눈을 감았다.
머릿속이 빠르게 움직였다.
별로 성사될 가능성이 없는 계책이다. 그러나 실패한다 해도 손해될 것이 없다. 잘하면 조천(趙穿)의 입지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한참 후에 조순은 눈을 떴다.

"시도해보라."
조천은 신바람이 나서 병차 3백 승을 이끌고 숭나라를 향해 쳐들어갔다.
이를 본 조순의 아들 조삭(趙朔)이 아버지에게 간했다.

"우리나라와 진(秦)은 오래 전부터 원수간입니다. 우리가 그 속국을 치면 진나라는 더욱 분노할 뿐입니다. 그런 방법으로는 우호를 맺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이미 마음을 정했다. 너는 잠자코 있어라."

아버지 조순의 시큰둥한 반응에 조삭(趙朔)은 부아가 치밀었다.
사마 한궐을 찾아가 이번 출병의 허점을 떠벌려대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 말을 듣고 난 한궐이 묘한 냉소를 머금으며 조삭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이번에 재상께서 숭(崇)나라를 치는 것은 진(秦)나라와 화친하기 위해서가 아니오. 조천(趙穿)에게 공훈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조씨 집안의 세력을 확고히 하려는 것뿐이오."
조삭은 머쓱해서 물러났다.

이 무렵, 진(秦)나라는 국상이 나 임금이 바뀐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때였다.
진강공이 재위 12년 만에 죽고 그 아들이 새 군주가 된 것이다. 그가 진공공(秦共公)이다.

진공공은 진군(晉軍)이 숭나라를 침공한 속마음을 읽지 못했다.
그는 진(晉)나라가 자기 나라를 괴롭히려는 것으로 알고 숭(崇)나라에 구원군을 보내는 대신 오히려 진(晉)나라 국경을 침공했다.
삽시간에 초(焦) 땅을 포위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천(趙穿)은 황급했다.
재빨리 군사를 돌려 초 땅으로 향했다. 그러자 진군(秦軍) 또한 바람처럼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공연히 군사를 일으켜 부산을 떤 셈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조순은 조천에게 공이 있다 하여 그를 군부(軍府)의 장수로 참석시켰다. 그 뒤 유변이 죽자 조천(趙穿)은 결국 병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때가 BC 608년으로, 진영공 13년에 해당하는 해의 일이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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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부탄 | 작성시간 21.11.04 항상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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