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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장강의 영웅들 (47)

작성자미션|작성시간21.11.08|조회수153 목록 댓글 1

- 2부 장강의 영웅들 (47)

제 6권 꿈이여 세월이여


제 6장 동호직필(董狐直筆) (3)

진영공(晉靈公)에게는 사나운 개 한 마리가 있었다.
개 이름을 영오(靈獒)라 했다.

영오는 주(周)나라에서 온 사람이 선물로 바친 개였다.
오(獒)란 맹견 혹은 키가 4척이나 되는 큰 개라는 뜻이다.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영오는 키가 4척이나 되었고 사납기 그지없었다. 털 빛깔은 활짝 타오른 숯불처럼 붉었다.

영오(靈獒)는 영특하여 주인이 시키면 무엇이든지 다했다.
진영공(晉靈公)은 이 개를 잘 길들였다. 마침내 좌우 시종들 중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으면 영오를 시켜 물게 했다. 영오는 한 번 물면 결코 놓지 않았기 때문에 물린 사람은 끝내 죽어야만 했다.

진영공(晉靈公)은 천한 신분의 시종 하나에게 전적으로 영오의 시중만 들게 했다. 개가 하루에 먹는 고기만 해도 여러 근(斤)이었다. 영오(靈獒)는 자신의 시중을 드는 시종 말을 잘 들었다.

사람들은 그 시종을 오노(獒奴)라고 불렀다.
영오의 노비라는 뜻이다. 오노는 중대부(中大夫)에 해당하는 국록을 받았다.

도원에서의 놀이에 빠진 이후 진영공(晉靈公)은 아예 조당 출입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나라의 권력이 재상에게로 이양됐다고는 하지만 공실의 주인으로서 역할은 있었다.

국사(國事)를 결정할 때 형식상으로라도 임금의 도장을 받아야 했다. 따라서 대부들은 진영공(晉靈公)의 결재를 받기 위해서 내전으로 들어가는 번거로움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진영공(晉靈公)은 아침 나절 잠깐 동안만 조회를 하고 그 즉시 도원으로 행차하곤 했다. 그때마다 오노(獒奴)는 영오를 끌고 진영공 곁을 따랐다. 개를 보는 사람은 누구나 모골이 송연했다.

공실의 상황이 이러하자 성안 사람들은 물론 성밖의 백성들까지 진영공(晉靈公)을 원망하는 소리가 높아갔다. 나라의 권력이 군주에서 귀족들에게로 이양하는 과정이라고는 하지만, 이는 내부의 사정일 뿐 아직까지 백성들에게 미치는 군주의 영향은 컸다.

진(晉)나라 제일의 권력자 조순(趙盾)이 이러한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진나라 번영을 위해서라도 공실이 안정되고 진영공의 처신이 옳바라야 했다. 그래야 조씨 일문의 세도도 영원 무궁해지는 것이다.

'이 상태로 가다간 진(晉)나라는 망한다.'
진나라의 멸망은 곧 조씨 일문의 멸망이 아니겠는가.
'상생(相生)!'
서로가 살아야 한다.

이때부터 재상 조순(趙盾)은 진영공에게 간하기 시작했다.
- 주공께선 어진 인재를 대우하시고, 간사한 자를 멀리하시고, 나라일에 힘써야 하며, 백성들과 친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진영공(晉靈公)에게 이런 소리는 쇠귀에 경 읽기였다.
이미 나라의 일, 나라의 앞날에 대해서 관심을 끊은 지 오래였다.
그는 자기 대신 국정을 장악한 조순(趙盾)을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았다.
자기 하는 일에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그가 무슨 짓을 하든 아무 상관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차라리 주공이 분노라도 터트렸으면 좋겠소."
그 날도 조순은 조당에 남아 사회(士會)를 붙들고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었다.
"큰일입니다."
두 사람은 탄식하다가 집으로 가기 위해 조당을 나왔다.

그들이 조문 근처에 이르렀을 때였다.
내전 쪽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안에서 두 내관이 나왔다. 그들의 어깨에는 대나무로 만든 채롱이 메어져 있었다.

"......................!"
조순(趙盾)과 사회는 수상한 생각이 들었다.
대로 엮은 채롱이 궁중에서 나올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거운 것이 들어 있는 것 같은데........."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사회(士會)가 그들을 불렀다.

내관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조순(趙盾)은 더욱 의심이 들어 내관들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
"그 채롱 속에 든 것이 무엇이냐?"
한 내관이 고개를 쳐들며 대답했다.

"재상께서 보시고 싶거든 친히 들여다보십시오. 저희는 감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조순(趙盾)은 내관이 메고 있는 채롱을 흔들어보았다.
순간, 무엇인가가 채롱사이로 삐져나왔다.
"으헉!"
두 사람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엮은 대나무 사이로 보인 것은 사람의 팔 한짝이었다.

"채롱을 내려놔라."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니나다를까, 과연 그 안에는 전신을 토막토막 잘라놓은 사람 시체가 들어 있었다.

조순(趙盾)의 놀라움은 극에 달했다.
"이게 웬일이냐?"
"...................."
"너희들이 말하지 않겠다면 먼저 너희 목부터 참하겠다."
목을 베겠다는 협박에 내관들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건은 재부(宰夫, 요리사)의 시체입니다."
"재부의 시체가 어째서 이 채롱 속에 담긴 것이며, 너희들은 이것을 어디로 가져가는 것이냐?"
"점심 나절의 일이었습니다. 주공께서 갑자기 술 생각이 나신다며 곰 발바닥 요리를 해오라 분부하셨습니다."

어찌나 재촉이 심한지 재부(宰夫)는 급하게 곰 발바닥을 쪄 술상을 차려올렸다. 그런데 급하게 요리하느라 미처 곰 발바닥이 익지 않았다. 진영공(晉靈公)은 크게 화를 냈다. 옆에 놓여 있던 구리 됫박으로 변명하는 재부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재부(宰夫)는 두개골이 깨지며 즉사했다.
그래도 진영공(晉靈公)은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친히 칼을 들고 시체를 토막내었다.
"그러고는 토막난 시체를 야외에 갖다버리라고 하시기에 이렇듯 채롱에 담아 나가는 길입니다. 만일 정해진 시각 안에 돌아가지 못하면 저희들 또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재상께서는 저희의 처지를 살펴주십시오."

조순(趙盾)과 사회는 기가 막혔다.
멍하니 서 있다가 내관들에게 말했다.
"나가보아라."
살았다는 듯 두 내관이 조문 밖으로 나가자 사회(士會)가 조순을 돌아보았다.

"큰일입니다. 주공이 이렇듯 무도하여 사람 목숨을 풀잎보다도 하찮게 여기고 있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무도한 임금이 다스리는 나라치고 오래 가는 나라를 보지 못하였소. 아무래도 이대로 지나칠 수 없소. 그대는 지금 당장 나와 함께 내전으로 들어가 다시 한 번 충심으로 간해봅시다."

사회(士會)가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이 함께 들어갔다가 말을 듣지 않으면 계속 간할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은 제가 먼저 들어가 주공을 설득할 터이니, 만일 듣지 않을 경우 재상께서 다음날 간하십시오."

그때 진영공은 중당(中堂)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조금 전에 재부를 토막내 죽인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다.
물 들이키듯 술잔을 비우고 있는 중에 사회(士會)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진영공(晉靈公)은 눈치 하나는 빨랐다. 그는 단번에 사회가 들어오는 목적을 짐작했다.
'저자가 귀찮은 소리를 하러 오는구나.'
사회(士會)가 가까이 오자 진영공은 그를 앉혀놓고 선수를 쳤다.

"대부는 아무 말 말라. 내가 이미 잘못을 뉘우쳤노라.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테니, 그대는 나를 믿어주오. 내일부터는 조당에 나가 조회를 열 것이오."
사회(士會)는 진영공이 진심으로 뉘우친 것이라 믿었다.

감격했다. 울먹이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허물은 있습니다. 허물이 있으되 그것을 고치면 이는 곧 복입니다. 이제 주공께서 잘못을 고치시어 유종의 미를 향해가기로 하셨으니, 이 어찌 다행한 일이라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진(晉)의 사직은 영원무궁할 것입니다."

이렇게 아뢰고 기쁜 마음으로 조당으로 달려 나가 조순(趙盾)에게 말했다.
"주공께서 잘못을 뉘우치셨습니다. 내일부터는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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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부탄 | 작성시간 21.11.17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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