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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장강의 영웅들 (51)

작성자미션|작성시간21.11.19|조회수148 목록 댓글 0

- 2부 장강의 영웅들 (51)

제 6권 꿈이여 세월이여


제 6장 동호직필(董狐直筆) (7)

조순(趙盾)은 두 번 죽을 뻔했다가 살아났다.
한 번은 자객 서예(鉏麑)가 마음을 바꿔 자결함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났고, 또 한 번은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영첩(靈輒)의 극적인 출현으로 목숨을 건졌다.

글자 그대로 하늘의 뜻인가.
아니면 나라를 위하는 정성스런 마음이 사람들을 감복시킨 것인가.

어쨌건, 자신을 구해준 영첩이 떠나가자 조순(趙盾)은 아들 조삭에게 말했다.
"주공이 나를 죽이려 한 마당에 어찌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내가 이 곳에 남아 있으면 나라만 어지러워질 뿐이다. 우선 타국으로 망명하여 차후의 일을 의논하도록 하자."
조순과 조삭 두 부자는 가병의 호위를 받으며 강성 서문을 벗어나 서쪽길을 향해 달렸다.

그 무렵, 조순의 사촌동생 조천(趙穿)은 상군 좌장으로서 군부의 책임자 위치에 올라 있었다. 마침 그 날 그는 군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서교(西郊)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군사를 이끌고 돌아오는 길에 수레를 타고 달려오는 조순 부자와 마주쳤다.
조순(趙盾)은 평소 단정하고 기품 있는 복장과 행동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이때의 행색은 여느 때와 달리 여간 어수선하고 불안정한 것이 아니었다.

조천(趙穿)이 이상히 여기고 물었다.
"형님께서는 무슨 일로 이렇게 급히 가십니까?"
조순은 강성에서 있었던 일을 대략 들려준 후 되물었다.
"진(秦)으로 가는 것이 좋겠는가, 적(狄)으로 가는 것이 좋겠는가?"
조천이 흥분하여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대답했다.

"형님께서는 국경 밖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제가 수일 안에 궁성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그 전까지는 함부로 행동을 정하지 마십시오."
"네 말이 맞다. 그렇다면 나는 수양산에 가서 잠시 몸을 피할 터이니, 네가 알아서 궁성 일을 해결하라. 단, 매사에 삼가고 조심하여 더 이상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묘한 말이었다. 궁성 일을 해결하라면 어느 선까지를 말하는 것인지.
또 불행한 일이란 어떤 일을 말하는 것인지.
'공실의 안위를 말함인가, 조씨 일문의 안위를 말함인가.'

조천(趙穿)은 성격이 급하고 조씨 일문을 생각하는 마음이 강했다.
그는 조순과 헤어져 강성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 임금을 죽여 더 이상 조씨 일문을 넘볼 수 없도록 확고한 기반을 다져라.
조천은 조순의 말을 이렇게 해석했다.

진영공(晉靈公)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조순의 제거를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귀찮게 구는 날파리 한 마리를 없애려 한 것뿐이었다.
조순(趙盾)이 죽든, 타국으로 망명하든 진영공으로서는 상관없었다.
자신의 눈앞에만 보이지 않으면 되었다. 엄하고 까탈스러운 주인 곁을 떠난 머슴처럼 그는 가슴이 후련하고 통쾌했다.

'이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조순(趙盾)이 강성을 탈출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진영공은 한껏 자유로움을 느꼈다.
- 도원으로 가리라!
그 날 이후 그는 도안가(屠岸賈)와 더불어 도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도원으로 진영공을 찾아왔다.
조순의 사촌동생 조천(趙穿)이었다.
"그대가 웬일인가?"
진영공(晉靈公)은 이맛살부터 찡그렸다. 조순 대신 조천이 귀찮게 구는 것이 아닌가 짐작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진영공의 예상은 빗나갔다.
조천(趙穿)은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아뢰었다.
"신 조천은 조씨 집안 사람으로 죄인의 친척이 되고 말았습니다. 감히 주공을 모실 수가 없습니다. 청하건대 신의 벼슬을 삭탈하십시오."

진영공(晉靈公)이 뜻밖의 표정으로 곁에 있던 도안가를 돌아보았다.
무슨 뜻이냐는 눈빛이었다. 도안가(屠岸賈)가 얼른 귓속말로 속삭였다.
"조천(趙穿)은 전부터 높은 벼슬을 원했습니다. 이제 조순이 없어진 마당에 조천은 조순을 대신하여 자신이 권력을 잡으려 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조천을 기용하십시오. 그러면 조순은 두 번 다시 강성 땅을 밟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진영공(晉靈公)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조천을 향해 입을 열었다.
"조순(趙盾)이 나를 속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이번 일과 하등 관계가 없다. 그대는 안심하고 나를 잘 보필하라."
조천(趙穿)은 감읍하여 재배하고 물러났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고 진영공과 도안가는 비웃음을 머금었다.

다음날, 조천(趙穿)이 또 도원으로 왔다.
"이번에는 무슨 일인가?"
"신이 듣건대, 대업을 이룬 임금으로서 가장 귀한 즐거움은 성색(聲色)을 마음껏 누리는 것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난날 제환공은 패업을 이루자마자 내궁에 궁녀들을 가득히 두었고, 선군 진문공께서도 나이 60이 넘으셔서 패공에 오르셨지만 역시 수많은 여인을 곁에 두셨습니다."

"주공께선 지금 모자라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 - 내궁만은 텅 비어 있으니 무슨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어찌하여 아름다운 여인들을 뽑아 방을 채우지 않으시며, 그 여인들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치려 하지 않습니까? 신이 오늘 온 것은 이 점을 깨우쳐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진영공(晉靈公)은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몰라했다.
"그대 말이 나의 마음과 같도다. 즉시 나라 안의 미인들을 뽑도록 하겠다. 그런데 이 일을 누구에게 맡기면 좋을까?"
"이런 일에는 대부 도안가(屠岸賈)를 따를 사람이 없습니다."
"좋도다."
그날부터 도안가는 미인들을 뽑기 위해 강성 안팎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도안가(屠岸賈)를 진영공 곁에서 떼어놓는 데 성공한 조천(趙穿)은 이튿날 다시 도원의 진영공을 찾아갔다.
"신이 살펴보건대, 도원을 시위(侍衛)하는 군사들이 너무 허약합니다. 신이 거느리고 있는 군사들은 한결같이 날쌔고 용맹합니다. 그 중 2백 명을 선발하여 도원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생각이다."
진영공은 이제 조천을 완전히 신임했다.

그 날, 자신의 병영으로 돌아온 조천(趙穿)은 믿을만한 군사 2백 명을 뽑아 한자리에 불러놓고 일부러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 밤부터 도원을 지키는 일을 너희들이 맡게 되었다."

병사를 대표하는 편장(編將) 하나가 불만스런 어조로 물었다.
"어째서 우리가 도원을 지켜야 합니까?"
"주공의 명령이다. 지금 주공은 백성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도원에 틀어박혀 향락에만 젖어 있다. 이제 너희들이 도원으로 가면 찬바람이 불어도, 이슬비가 내려도 꼼짝없이 도원 뜰 안에 서 있어야 한다. 한 번 가면 언제 병영으로 복귀할지 나도 모르겠다."

원망하는 소리가 높아졌다.
"이번 임금은 참으로 무도하다."
"어째서 빨리 죽지도 않는 것인가?"
"만일 조(趙) 원수께서 계셨더라면 이런 일은 결코 없었을 터인데!"

병사들의 투덜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기만 하던 조천(趙穿)이 별안간 말소리를 낮추며 그들을 둘러보았다.
"내게 한 가지 묘안이 있는데, 너희들이 나를 따라줄지 의문이로구나."
"장군께서 우리의 괴로움을 구해주시기만 한다면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겠습니까. 임금을 죽이라면 죽이겠습니다."

"................?"
"도원은 궁중에 비해 깊지 않다. 오늘 밤 너희들은 도원 안을 경비하고 있다가 이경(二更, 밤 10시)쯤 되기를 기다려 대(臺)안으로 들어와 밤참을 달라고 조르라."

"나는 안에서 주공과 함께 연회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내가 소매를 휘두르면 그때 너희들은 불문곡직하고 달려들어 임금을 죽여라. 그러면 내가 조(趙) 원수를 다시 모셔다 새 임금을 세우리라!"

군사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묘책입니다."
조천(趙穿)은 2백 군사를 거느리고 도원으로 향했다.
도원 안팎은 이내 엄중한 경비망이 구축되었다.

조천(趙穿)은 안으로 들어가 진영공에게 복명했다.
"시위 군사를 재배치하였습니다."
진영공(晉靈公)은 높은 대로 올라가 바깥에 늘어서 있는 군사들을 굽어봤다. 과연 전과 달리 절도 있고 용맹스런 군사들뿐이었다.

진영공(晉靈公)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자 조천이 다시 말했다.
"오늘부터는 굳이 궁으로 돌아가시지 않아도 됩니다. 밤늦게까지 주연을 베풀어도 별탈이 없을 것입니다. 이 곳이 곧 궁입니다."
"그대 말이 맞도다."
진영공은 그 날 저녁 조천을 위해 술잔치를 베풀었다.

이경(二更)무렵이 되었을 때였다.
바깥에서 시끌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영공(晉靈公)이 물었다.
"저게 무슨 소린가?"
도원에서 일하는 시종들이 들어와 말했다.
"숙위(宿衛) 군사들이 배가 고프다며 밤참을 달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신이 가보고 오겠습니다."

조천(趙穿)은 직접 손에 초롱을 들고 대(臺) 아래로 내렸갔다.
2백 군사들이 모여 있는 것을 확인한 그는 현관 문을 활짝 열어놓고 지시했다.
"너희들은 여기서 잠시 기다려라."

조천이 다시 대(臺)위로 올라가 진영공에게 아뢰었다.
"주공께서는 안심하십시오. 밤이 깊어 군사들이 시장한가봅니다. 이럴 때 주공께서는 어진 덕을 펴시어 친히 군사들을 위무해주심이 어떠하겠습니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영공(晉靈公)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臺)아래로 내려갔다.
그가 군사들 앞에 서서 시종장에게 음식을 내오라고 명했다.
곧 여러 가지 음식이 나왔다.
조천(趙穿)이 군사들을 향해 소매를 크게 휘두르며 외쳤다.

"여기 주공께서 친히 너희들을 위해 납시었다. 사양 말고 많이 먹어라."
2백 군사들은 조천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진영공임을 알고 일시에 층계 위로 뛰어올랐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진영공(晉靈公)은 크게 놀랐다. 겁먹은 눈길로 조천을 돌아보며 물었다.
"군사들이 어찌하여 대 위로 올라오는가? 그대는 속히 저들을 만류하라."
조천이 대답했다.

"군사들은 배가 고픈 게 아니라 조(趙) 원수를 보고 싶어하는 모양입니다."
그제야 조천의 의도를 깨달은 진영공(晉靈公)이 눈을 크게 뜨고 뭐라 말하려하는데, 이미 층계 위로 올라온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의 배를 깊숙이 찔렀다.
"헉.......!"
배를 움켜잡은 진영공의 어깨로 두 번째 창이 날아들었다. 이어 세 번째, 네 번째...

조천(趙穿)이 두 손을 저어 군사들을 만류했을 때는 이미 진영공은 난자당한 채 죽어 있었다.
조천이 층계 위에 서서 군사들에게 외쳤다.
"이제 무도한 임금은 죽었다. 나머지 죄 없는 사람들은 일체 죽이지 마라. 모두들 나와 함께 조( 趙) 원수를 영접하러 가자."

그때 진영공(晉靈公)을 시종하던 사람들은 한 사람도 달아나지 않고 모두 그 근처에서 진영공의 참혹한 죽음을 지켜 보았다. 한 편장이 그 시종들에게 물었다.
- 너희들은 임금이 살해당하는데 어째서 저항하지 않았느냐?
시종 하나가 대표하여 말했다.
- 이번 임금은 사람 죽이기를 좋아해 우리들은 언제 죽을지 몰라 늘 두려움에 떨며 지냈었습니다. 그 임금이 죽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말리겠습니까?

백성들 또한 오랫동안 고통받고 원한에 사무쳐 있었기 때문에 진영공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는 두 손을 치켜들며 집 밖으로 뛰쳐나와 환호했다.
아무도 조천(趙穿)을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쨌거나 진영공(晉靈公)은 죽었다.
이때 그의 나이 20세. 재위 기간은 14년이다. BC 607년 9월 27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7년 전, 혜성이 북두 사이에 빗발처럼 나타난 적이 있었다.
그때 제나라의 한 복관이 점을 친 후 예언했었다.
- 송, 제, 진(晉) 세 나라 임금이 장차 변란으로 죽을 것이다.

과연 그 예언은 적중했다.
제의공, 송소공, 진영공이 차례로 신하들의 손에 무참히 살해된 것이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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