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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장강의 영웅들 (53)

작성자미션|작성시간21.11.26|조회수132 목록 댓글 1

- 2부 장강의 영웅들 (53)

제 6권 꿈이여 세월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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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장 동호직필(董狐直筆) (9)

진영공의 피살과 진성공의 즉위를 계기로 조순(趙盾)이 이끄는 조씨 일문의 세도는 그야말로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가 되었다.

조순은 자신의 복귀에 가장 공이 큰 조천(趙穿)만은 벼슬을 그대로 놔두었는데, 이는 임금을 죽였다는 세간의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서였다.
조천으로서는 이것이 은근히 불만이었다.

'아마도 도안가(屠岸賈)의 일을 마무리짓지 않아서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조순을 찾아가 말했다.
"진영공을 죽여 조씨의 권력을 되찾았으나 아직 간신 도안가를 처치하지 못했습니다. 그자는 필시 조씨 일문에 원한을 품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자를 찾아내어 후환을 없앨까 합니다."

그러나 조순(趙盾)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우리 일족이 다 귀한 신분에 이르렀으니, 굳이 도안가 따위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이 소문을 들은 도안가(屠岸賈)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며 조씨 일족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진(晉)나라 제일의 실력자로서 완전히 자리를 굳힌 조순(趙盾)은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진영공의 피살과 관련된 자신에 대한 사관(史官)들의 평가였다.
'이 일에 대해 사관들은 뭐라 기록했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마침내 그는 날을 잡아 사관들이 일하는 관청으로 나갔다.
구 무렵, 사실(史實)을 맡아 기록하고 관리하는 책임자인 태사(太史)직에는 동호(董狐)라는 사람이 올라 있었다.

조순은 태사 동호(董狐)를 불러 청했다.
"선군(진영공)에 관한 기록을 보여주시오."
동호는 별 이의 없이 진영공의 행적을 적은 사간(史簡)을 조순에게 보여주었다. 사간이란 역사적 사실을 적은 대나무 조각을 말한다.

조순(趙盾)은 사간에 기록된 진영공의 행적을 읽어내려 가다가 깜짝 놀랐다.

9월 을축(乙丑, 27일)날, 조순이 임금 이고(夷皐, 진영공)를 시해하다.

조순(趙盾)이 항의하였다.
"태사는 이것을 잘못 기록했소. 그때 나는 강성에서 멀리 떨어진 수양산에 몸을 피하고 있었소. 그런 내가 어찌 군주를 죽일 수 있었겠소? 그런데 그대는 무슨 까닭으로 이런 끔찍한 허물을 내게 뒤집어 씌우는 것이오? 후세 사람이 이를 보면 나를 뭐라 하겠소?"

태사 동호(董狐)가 싸늘히 대답한다.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재상께서 강성에서 달아났다고는 하지만 국경을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곧 수석 대신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나라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책임질 의무가 있음을 뜻합니다."

"더욱이 재상께서는 그 후 도성으로 돌아와 임금을 죽인자를 찾아내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곧 재상이 임금을 죽인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조순(趙盾)은 당황했다.
"이 기록을 고칠 수 없겠소?"
"그럴 수 없습니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것이 사관(史官)의 직책입니다."

"그러기에 임금도 사관의 기록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재상께서 내 머리를 끊을 수는 있지만, 이 기록만은 고치지 못합니다."
조순(趙盾)이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했다.

"오호라, 사관(史官)의 권력이 재상보다 더하구나. 내 그때에 국경을 넘지 않아 천추만세에 임금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으리오!
그는 순순히 동호(董狐)의 기록을 받아들이고 진성공을 섬기는 일에 더욱 공경하고 조심하였다.

한편, 조천(趙穿)은 진영공을 죽이고 조씨 일문이 권세를 되찾은 데 대해 자부심이 컸다. 그는 틈만 나면 조순을 찾아가 경(卿)의 지위를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조순은 전과 달리 조천을 싸늘히 대했다.

- 임금을 죽인 자를 경(卿)으로 올릴 수는 없다.
조천(趙穿)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병석에 누운 채 지내다가 끝내는 동창이 나서 죽었다.

그 후 그의 아들 조전(趙旃)이 조순에게 간청했다.
- 죽은 아버지의 벼슬을 제가 이어받을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이에 대해 조순(趙盾)은,
- 네가 공을 세우면 어찌 벼슬을 내리지 않겠는가.
하고는 조전의 청마저 물리쳤다.

진영공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진 조순과 동호(董狐)간의 이 일화는 상당히 인상깊다. 특히 '내 목을 끊을 수 있을지언정 이 기록만은 고치지 못한다.'라고 말한 동호의 일갈(一喝)은 새삼 머리털을 곤두서게 한다.

이에 대해 후세의 사가들은 큰 영향을 받았다.
공자(孔子) 또한 이때의 일을 상당히 비중있게 다뤘더. 그는 자신의 저서 <춘추>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조순, 그의 군주 이고(夷皐)를 시(弑)하다.

진영공을 죽인 범인으로 조순(趙盾)의 이름을 명확히 적어넣은 것이었다.
좌구명(左丘明)이 쓴 <춘추좌씨전>에서는 <춘추>의 해설서답게 보다 자세히 그 경위를 덧붙였다.

공자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호(董狐)는 훌륭한 사관이다. 법도대로 사실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조순(趙盾)은 훌륭한 재상이다. 법도를 위하여 악명(惡名)을 순순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아깝도다, 조순이 국경을 넘었더라면 그는 악명을 면했을 것이다."

<춘추>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공자의 말을 빌려 동호와 조순 모두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司馬遷)은 다르게 기록했다.

을축일, 조천이 진영공을 습격하여 시해하다.

진영공을 죽인 사람으로 분명히 조천(趙穿)의 이름을 적어넣었다.
사마천(司馬遷)은 조순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이었던 것 같다. 그 뒤로 계속하여 진영공이 피살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민심이 조순(趙盾)에게로 귀의한 것을 적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는 것을 일컬어 '동호직필(董狐直筆)'이라고 하였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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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부탄 | 작성시간 21.11.27 동호라는 사관은 대단한 인물이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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