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2부 장강의 영웅들 (54)

작성자미션|작성시간21.11.28|조회수150 목록 댓글 1

- 2부 장강의 영웅들 (54)

제 6권 꿈이여 세월이여

  •  


제 7장 날개를 펴는 초장왕 (1)

이제 다시 초(楚)나라에게로 눈을 돌릴 때가 된 것 같다.
이 무렵, 남방의 강대국인 초나라 임금은 초장왕(楚莊王)이었다.
이름은 웅려(熊侶).
제환공, 진문공에 이어 춘추시대 제3대 패공에 오르는 인물이다.
그런만큼 능력도 비범하고 집념도 강했을 것이다.

그러나 초장왕(楚莊王)이 처음부터 그러한 능력을 발휘한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다른 패공(覇公)들이 그러했듯 나름대로 어려운 역경과 드라마틱한 과정을 겪었다.

초장왕이 왕위에 오른 것은 BC 613년이다.
진(晉)나라 대부 사회(士會)가 진강공을 속이고 진(晉)으로 들어온 다음해의 일이다. 초장왕(楚莊王)은 아버지 초성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초목왕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의 냉혹한 기질을 어느정도 타고났던 모양이다. 새로이 왕위에 오르긴 하였으나 신하들과 한 번도 나라일을 의논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독단으로 나라일을 처리했다는 뜻도 아니다.
그는 아예 나라일을 돌보지 않았다.

- 어떤 자이든지 나에게 간(諫)하는 자가 있으면 사형에 처하리라.
왕위에 올라서 처음으로 외친 초장왕의 일성(一聲)이었다.

그 뒤로 그는 일어나면 궁성 밖으로 사냥을 나갔고, 앉으면 여러 부인들과 더불어 술과 음악과 춤을 즐겼다.
이렇게 3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 사이, 몇몇 신하들이 간언하는 말을 올렸으나 초장왕(楚莊王)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그들을 참수형에 처했다. 삽시간에 조정은 살벌해졌고, 백성들은 공포에 떨었다.
- 초(楚)나라도 이제는 희망이 없다.
모두들 이렇게 수군거렸다.

초나라 대부 중에 신숙시(申叔時)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매사 일을 원칙대로 처리하는 깐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또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다른 이야기에 빗대어 하기를 좋아했다.

어느 날, 신숙시(申叔時)가 궁으로 들어가 초장왕을 찾았다.
그가 궁으로 들었을 때 초장왕은 좌우로 정희(鄭姬)와 채녀(蔡女)를 안고 있었고, 그 앞으로는 악공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초장왕(楚莊王)이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그대는 술을 마시러 왔는가, 아니면 음악을 들으러 왔는가?"
신숙시(申叔時)가 공손히 대답했다.
"신이 왕을 뵙고자 한 것은 술을 마시기 위해서도, 음악을 듣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간(諫)하기 위해서인가? 만일 그런 뜻이라면 돌아가라. 나는 그대의 목을 베고 싶지 않다."
"신이라고 어찌 목숨이 아깝지 않겠습니까. 저는 다만, 한 가지 알 수 없는 것이 있어 그것을 여쭤보려고 온 것뿐입니다."

"그대가 알 수 없다는 것이 무엇인가?"
"며칠 전이었습니다. 개인적인 볼일이 있어 교외에 나갔었는데, 어떤 사람이 수수께끼 같은 물음을 던져왔습니다. 신(臣)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답을 알 수 없어 왕께 여쭤보려고 들어온 것입니다."

초장왕(楚莊王)은 궁금증이 일었다.
"어떤 수수께끼인데 그대가 알지 못하는가?"
"몸이 크고 날개는 오색으로 찬란한 새가 한 마리 있는데, 그 새는 남쪽 높은 언덕 위에 앉은 지 3년이 지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새는 한 번도 움직이지도 않고,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 '이것이 어떤 새입니까?' 라고 그 사람이 물었는데, 신은 도저히 그 답을 알 수 없습니다. 혹 왕께서 그 답을 아시면 가르쳐주십시오."
순간, 초장왕(楚莊王)의 눈이 뱀보다 더 차갑게 빛났다.

"그대는 나에게 간(諫)하고 있는 것인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신은 그저 수수께끼의 답이 궁금할 따름입니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초장왕(楚莊王)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나는 그 답을 안다. 그것은 비범한 새다. 3년 동안 움직이지 않은 것은 장차 큰 뜻을 키우려는 뜻이요. 날지 않은 것은 날개의 힘을 키우려는 뜻이요. 울지 않은 것은 민정(民情)을 살피려는 뜻이다. 비록 그 새가 지금까지는 날지 않았으나, 일단 한 번 날면 장차 하늘을 찌를 것이요, 한 번 울면 세상을 크게 놀라게 할 것이다. 그대는 좀더 기다려라. 내가 아직 확인할 게 있노라."

신숙시(申叔時)는 초장왕의 말뜻을 알았다.
속으로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재배하고 물러났다.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초장왕(楚莊王)은 여전히 주색과 음악에만 빠져 있었다.
이번에는 소종(蘇從)이라는 대부가 궁성으로 들어갔다.
그는 초장왕의 처소 앞에서 크게 통곡하였다.

초장왕(楚莊王)이 불러 물었다.
"그대는 무슨 일로 슬피 우느냐?"
소종(蘇從)이 통곡을 멈추고 대답했다.
"신은 이제 죽은 몸입니다. 장차 초나라는 망하고 맙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대는 어째서 죽는다는 것이며, 이 나라가 어째서 망한다는 것인가?"
"신은 지금 왕께 간(諫)하고 있는 중입니다. 간하면 죽임을 당하니 신은 죽을 것이요. 신이 죽으면 왕께 다시 간할 사람이 없으니 초(楚)나라가 망하는 것은 필연입니다.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습니까?"

초장왕(楚莊王)의 안색이 살벌하게 변했다.
"나에게 간(諫)하는 자가 있다면 사형에 처한다고 했다.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간언을 하다니, 너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로구나."
"신이 아무리 어리석다 할지라도 왕처럼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이놈, 내가 어째서 너보다 어리석단 말이냐?"
"왕께서는 만승(萬乘)의 지존이십니다. 천 리 국토의 세금을 받으시고, 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왕께서는 지금 어떠하십니까? 주색에 빠져 밤낮으로 음악만 즐기시며, 나라 일은 다스리지 않고 어진 사람은 멀리하고 있습니다."

"왕께서는 허리에 차고 있는 칼을 신에게 내려주십시오. 신은 마땅히 그 칼로 목을 찌르고 죽겠습니다. 그리하여 왕의 명령이 얼마나 철저한지 세상에 보이겠습니다."
통렬한 간언이었다.

초장왕(楚莊王)은 별안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부야말로 진정한 충신이오. 내가 어찌 그대의 말을 모르겠소? 다만 나는 때를 기다렸을 뿐이오."
하루 사이에 초장왕은 변했다.

다음날, 초장왕은 내전(內殿)을 정리했다.
먼저 그는 악공을 내보내고 일절 음악을 듣지 않았다.
이어 정희와 채녀를 멀리하고 번희(樊姬)만을 가까이 하며 내궁의 기강을 그녀에게 맡겼다.

정희(鄭姬)와 채녀(蔡女)는 억울하다는 듯 물었다.
"어째서 번희에게 내궁을 다스리게 하시는 겁니까?"
초장왕(楚莊王)이 대답했다.
"내가 사냥을 나갈 때마다 번희만이 나를 만류했다. 사냥에서 잡아온 짐승을 먹을 때, 번희만은 먹지 않았다. 이것은 번희(樊姬)가 어질고 현명하다는 증거다. 어질고 현명한 사람에게 내궁을 맡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초장왕(楚莊王)은 조정일에도 관여하기 시작했다.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영윤 투월초(鬪越椒)의 세력을 약화시켜 위가, 반왕, 굴탕(屈蕩) 등에게 나누어 맡겼다.

아침 일찍 조회를 열고 밤늦게 내전으로 들었다.
모든 명령은 일사분란했으며 공평무사했다.
이때부터 초(楚)나라 조정은 아연 활기가 돌았다.

- 3년 동안 울지 않던 새.
그 새가 마침내 긴 울음을 뽑으며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그 날개짓은 힘찼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부탄 | 작성시간 21.11.29 초나라가 움직이는군요.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