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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장강의 영웅들 (59)

작성자미션|작성시간21.12.12|조회수162 목록 댓글 1

- 2부 장강의 영웅들 (59)

제 6권 꿈이여 세월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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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장 날개를 펴는 초장왕 (6)

양유기(養繇基)는 화살을 뽑아 외마디 기합을 지르면서 투월초를 향해 활을 쐈다.
그런데 그는 빈 활 시위만 당겼다가 놓았을 뿐 화살은 쏘지 않았다.

하지만 투월초(鬪越椒)는 활 시위 소리와 기합 소리만 듣고서 화살이 날아오는줄 알았다. 재빨리 몸을 왼편으로 날리며 비켜섰다.
그 모습을 보고 양유기가 야유를 퍼부었다.
"영윤이 몸을 피할 줄 알고 내 일부러 화살을 날리지 않았소. 영윤은 비겁하오."
투월초가 얼굴이 벌개져서 대답했다.

"나를 시험하려고 일부러 활을 쏘지 않은 것은 더욱 비겁한 행위다. 너는 활 쏘는 법을 전혀 모르는 자로구나."
"이번에는 진짜로 활을 쏠 터이니, 영윤도 몸을 피하지 마시오!"
"약속하겠다."
양유기(養繇基)는 다시 활시위를 팽팽히 잡아당겼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는 화살을 걸지 않고 빈 시위만 놓았다.

투월초(鬪越椒)는 시위 소리를 듣고 또 몸을 날려 오른편으로 피했다.
그순간이었다.
양유기는 번개같이 활을 쏘았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빨랐던지 투월초는 진짜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앗!"
그가 화살을 보았을 땐 이미 몸을 비킬 여가가 없었다.

화살은 정통으로 투월초의 머리를 꿰뚫었다.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어처구니없는 죽음이었다. 영윤이라는 자리도 부족하여 초나라 왕에 도전했던 투월초(鬪越椒) - 그런 그가 일개 무명 소장의 화살 한대에 죽어 자빠질 줄을 어느 누가 짐작했으랴.
양유기(養繇基)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일생이 뒤바뀌는 순간이기도 했다.

굶주리고 피곤한 반군은 대장인 투월초(鬪越椒)가 허무하게 죽자 혼비백산했다.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는 것을 왕군 장수 공자 측(側)과 영제(嬰齊)가 뒤쫓으며 닥치는 대로 쳐죽였다.

시체는 쌓이고 또 쌓였다.
강물은 피로 붉게 물들었다.
투월초의 아들 투분황은 진(晉)나라로 달아났다.

진성공(晉成公)은 투분황을 대부로 삼고 묘(苗) 땅을 식읍으로 내주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투분황을 묘분황(苗賁皇)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왕군은 완벽한 승리를 거두고 영성으로 개선했다.
초장왕(楚莊王)은 투월초에 대한 미움이 극에 달했다. 그는 영성에 들어서자마자 투씨 일족부터 모조리 잡아다 도륙했다. 마침내 투씨 일족은 씨도 손도 없이 멸족당했다.

다만, 단 한사람의 투씨만이 살아남았다.
다름 아닌 투곡어토의 손자이자 투반의 아들인 투극황(鬪克黃)이었다.

그 무렵 투극황(鬪克黃)은 잠윤이라는 벼슬에 있었는데, 1년 전 친선 사절로 제(齊)나라에 가고 국내에는 있지 않았다. 귀국 도중 송(宋)나라 땅에 이르렀을 때 투월초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행원들이 투극황(鬪克黃)에게 권했다.
- 타국으로 달아나십시오. 본국으로 돌아가면 죽습니다.
- 군주는 신하에게 있어서 하늘이다. 어찌 하늘의 명을 버리고 다른 곳에 가서 살 수 있겠는가? 나는 영성으로 돌아가리라.
투극황은 밤낮 없이 수레를 달려 영성에 당도했다.

그는 즉시 궁으로 들어가 초장왕에게 제(齊)나라에 다녀온 일을 보고하고는 스스로 사구(司寇)로 가서 형벌을 청했다. 사구란 형벌을 관장하는 관청으로 오늘날 검찰청에 해당한다.

"나의 조부 자문(子文, 투곡어토)께서 늘 이런 말씀을 하셨소. '투월초는 반역의 상(相)이다. 그 놈은 필시 투씨 일족을 멸망시킬 것이다.' 또 세상을 떠나실 때는 나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유언 내리셨소. '투월초가 병권을 잡을 때 너는 자식들을 데리고 다른 나라로 가 목숨을 보존하라.' 그러나 나의 아버지 투반은 초나라의 은혜를 잊지 못해 차마 다른 나라로 떠나지 못하다가 끝내는 투월초(鬪越椒)에게 죽음까지 당했소."

투극황(鬪克黃)의 말이 이어졌다.
"오늘에 이르러 과연 조부의 말씀이 맞았소. 이제 나는 불행히도 역신(逆臣)의 친척이 되었으며, 조부의 유훈을 어긴 자손이 되었소. 나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오. 어찌 형벌을 피할 수 있으리오."

초장왕(楚莊王)은 사구의 책임자로부터 투극황의 일을 보고받았다.
그는 신하들을 불러 말했다.
"투곡어토는 미래를 내다본 신인(神人)이로다! 더욱이 그는 우리 초나라에 많은 공로를 남긴 사람이다. 내 어찌 그 자손의 대를 끊겠는가. 투극황을 석방하라."
이렇게 명하고는 투극황(鬪克黃)에게 예전의 벼슬을 그대로 내주고, 특별히 이름을 새로이 고쳐주었다.

- 투생(鬪生).
죽어야 할 처지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뜻에서 그런 이름을 지어준 것이었다.

이번 투월초의 난에 가장 큰 공훈을 세운 사람은 화살 한 대로 투월초를 죽인 소교 양유기(養繇基)였다. 초장왕은 그를 불러 크게 치하한 후 근위군 장수로 승진시켰다. 아울러 차우(車右)의 직까지 겸직하게 했다.
새로운 스타의 탄생이었다.

투씨의 난으로 인해 초장왕(楚莊王)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안이 튼튼하지 않고서는 패자(覇者)의 길을 걸을 수 없음을 뼈저리게 절감했다.
- 내정의 안정부터 취하리라.

그는 공석이 된 영윤의 후임자를 신중히 물색했다.
침윤 우구(虞邱)라는 사람이 어질다는 평판이 자자했다.
침윤(沈尹)이란 벼슬 이름으로 침(沈) 땅을 다스리는 장관이라는 뜻이다.

초장왕(楚莊王)은 침 땅으로 사람을 보내 우구를 불러들여 영윤 벼슬을 내렸다. 우구(虞邱)는 초장왕의 기대에 부응하여 나라일을 열심히 수행했다.

투월초의 난을 진압한 초장왕(楚莊王)은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그는 궁중의 높은 대(臺)에 문무백관을 초대했다. 연회를 베푼 것이다.
"내가 3년 동안 울지 않는 새의 수수께끼를 들은 지 어느덧 6년이 지났다. 이제 역신(逆臣)은 죽고 사방은 안정되었도다. 이 모든 것이 그대들의 공이다. 오늘만큼은 마음껏 즐겨라."
잔치 이름을 태평연(太平宴)이라 하였다.

모든 신료들이 초장왕(楚莊王)에게 재배하고 각자 자리에 앉았다.
산해진미를 들여오고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했다. 술잔이 쉴새없이 오갔다.

해가 서산에 떨어지고 실내는 어두워졌다.
날이 지면 신하는 임금과 함께 술을 마실 수가 없다. 그것이 궁성의 법도다. 그런데 초장왕은 명을 내렸다.
"등촉(燈燭)을 밝혀라. 모든 신료는 계속 술을 마셔라."
누대에 불이 밝혀지고 잔치는 계속 이어졌다.

초장왕이 총애하는 후궁 중에 허희(許姬)라는 애첩이 있었다.
취기가 얼큰히 오른 초장왕은 허희를 불러 분부했다.
"너는 모든 대부에게 술을 따르라."
허희가 대부들에게 술을 따르며 반쯤 돌았을 때였다.

열린 창으로 난데없이 바람이 불어와 촛불을 일시에 꺼뜨렸다. 삽시간에 실내는 암흑으로 변했다. 궁중 내관들이 아직 불씨를 가져오기 전이었다. 누군가 알 수 없는 한 대부의 억센 손이 허희(許姬)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허희(許姬)는 꽤나 재치 있는 여인이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놀란 와중에서도 손을 뻗어 재빨리 그 대부의 관 끈을 잡아 끊었다. 그 대부는 놀라 얼른 허희의 허리를 감았던 손을 풀었다.

허희(許姬)는 초장왕 앞으로 가서 귀에 대고 속삭였다.
"첩은 왕의 분부를 받고 대부들에게 술을 따랐으나, 대부들 중에 무례한 사람이 있어 첩의 몸에 손을 대었습니다. 첩은 그 사람의 관 끈을 끊어놓았으니, 왕께서는 속히 불을 밝히어 그 무례한 대부가 누구인지를 살피십시오."

그러자 초장왕(楚莊王)이 큰 소리로 명했다.
"아직 불을 밝히지 마라. 과인이 오늘 잔치를 베푼 것은 모든 신료들과 함께 기뻐하기 위해서다. 그대들은 우선 거추장스러운 관 끈부터 끊어버려라. 만일 관 끈을 끊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과인과 더불어 즐기기를 거역하는 자로 여길 것이다."

문무백관은 영문을 알지 못하고 초장왕이 시키는 대로 일제히 관 끈을 끊었다. 다시 불이 밝혀졌으나 허희(許姬)의 허리를 안은 대부가 누구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잔치가 끝나고 내궁으로 들어서자 허희(許姬)가 초장왕에게 따지고 들었다.
"왕께서는 어찌하여 첩에게 손을 댄 무례한 자를 잡아내지 않으셨습니까. 이러고서야 어떻게 군신간의 예의를 밝히며, 남녀의 구별을 바로 잡겠습니까?"

초장왕(楚莊王)이 웃으며 대답했다.
"무릇 임금과 신하가 한자리에서 술을 마실 때는 석 잔 이상 마시지 못하는 법이다. 또한 낮에만 마실 뿐 밤에는 함께 술을 마실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오늘 모든 신하와 함께 취하도록 마셨고, 또 촛불까지 밝혀가면서 마셨다. 누구나 취하면 실수하게 마련이다. 만일 내가 그 대부를 찾아내어 처벌한다면, 내가 잔치를 차린 의의가 없어지고 마는 것 아니냐?"

허희(許姬)는 초장왕의 도량에 탄복하고 조용히 물러났다.
후세 사람들도 이때의 일을 칭찬하며 그 잔치를 '절영지연(絶纓之宴)' 이라고 일컬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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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부탄 | 작성시간 21.12.14 초장왕은 패자의 자질을 갖춘 왕이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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