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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장강의 영웅들 (84)

작성자미션|작성시간22.02.15|조회수127 목록 댓글 1

- 2부 장강의 영웅들 (84)

제7권 영웅의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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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결초보은(結草報恩) (3)

초장왕(楚莊王)은 점심식사를 하는 중에 신주(申舟)의 죽음 소식을 보고받았다.
"혓바닥까지 끊겼다고?"
젓가락을 내던졌다. 소매를 떨치고 일어서는 바람에 그릇들이 떨어져 깨졌다.
"군사와 병차를 출동시켜라!"
초장왕은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이때의 광경을 <춘추좌씨전>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초(楚)나라 군주가 옷소매를 털고 일어나 달려나가니, 신발은 궁전 뜰 앞에 쌓아놓은 흙더미 위에서 신었고, 칼은 조문 밖에서 찼으며, 도성 시가지 한복판인 포서에 이르러 병차에 올라탔다.

가히 송(宋)나라에 대한 초장왕의 분노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단신으로 병차를 탄 초장왕(楚莊王)이 영성 교외에 이르렀을 때 공자 측(側)과 신숙시, 신서 등이 군대와 병차를 동원하여 뒤쫓아왔다. 그제야 초장왕은 군대를 사열하고 송나라 정벌군을 편성했다.

- 공자 측(側)을 대장으로 삼고, 신숙시를 부장으로 삼노라.
- 신주의 아들 신서(申犀)는 군정(軍正)일을 맡아보라.
초나라 대군은 질풍노도처럼 송나라 국경을 돌파하여 상구성을 향해 쳐들어갔다.
BC 595년(초장왕 19년) 9월의 일이었다.

초군의 공격을 받은 송나라 재상 화원(華元)은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농성 채비에 들어갔다. 아울러 대부 악영제(樂嬰齊)를 진(晉)나라로 급파해 구원군을 요청했다.

그 무렵, 진나라 재상 순림보(旬林父)는 정나라 변경을 치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진경공(晉景公)은 송나라를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중신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누가 가서 지난날 초군에게 당한 패배를 설욕하고 송(宋)나라를 구원하겠소?"
그런데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고작 대부 백종(伯宗)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과 같은 말을 아뢸 뿐이었다.

"신이 옛 사람으로부터 들은 말(言) 중에 '채찍이 비록 길다 한들 말(馬)의 배까지는 닿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초나라는 욱일승천의 기세인 반면, 우리 진(晉)나라는 그 기세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치지 못하는 채찍으로는 말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진경공(晉景公)은 백종의 말뜻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상체를 내밀며 다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설마 송(宋)나라를 도와주지 말자는 말은 아니겠지요?"
"주공!"
"말해보오."

"지금 하늘은 한창 초(楚)나라에 복을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 진나라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하늘의 뜻까지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지금 우리의 힘으로는 송(宋)나라를 도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송(宋)나라를 돕지 않으면 송나라는 우리를 떠날 터인데도?"
"강과 바다는 더러운 것을 받아들이고, 산과 숲은 온갖 독충을 품고 있습니다. 훌륭한 옥이라 하더라도 흠은 있게 마련입니다. 한 나라의 군주로서 일시적인 수치를 참는 것은 천도(天道)입니다."
"지금은 송(宋)나라를 잃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아픔과 수모이겠지만, 훗날을 위하여 감내하실 줄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이것은 현실이기도 합니다."

백종의 말에 진경공(晉景公)은 풀이 죽어 고개를 떨구었다.
"어쩌다 우리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구려. 송나라를 돕지 말자라서가 아니라 그들을 도울 수 없다는 것 자체가 나를 비감에 젖게 하는구려."

불과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패자국으로서 위용을 떨치던 진(晉)나라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것이 무엇인가. 수십 년간을 형제처럼 지내온 송(宋)나라의 멸망을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아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모든 중신이 처연한 마음이 되어 몸둘 바를 모르고 있는데, 백종(伯宗)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반드시 군사로 도와야 돕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신에게 송(宋)나라를 구원할 계책이 있습니다."
"............................?"

"초(楚)나라에서 송나라까지는 2천 리 거리입니다. 초군이 그 먼 길에 계속해서 군량을 보급하기란 여간 어려운 노릇이 아닙니다. 그들은 필시 단기전을 계획했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장기전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따라서 주공께선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진(晉)나라가 대군을 일으켜 송을 구원하러 가는 중이다'라고 말을 전하십시오. 그러면 송(宋)나라는 힘을 얻어 굳게 지킬 것이요, 초군(楚軍)은 몇 달안에 영성으로 회군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싸우지 않고도 송나라를 구원할 묘책입니다."

진경공(晉景公)은 어떻게 해서든 송나라를 돕고 싶었다.
백종의 말대로 힘이 부족하다면 꾀를 써서라도 송나라를 초군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럴 듯한 방법이오. 누구를 송(宋)나라로 보내는 것이 좋겠소?"

"대부 해양(解揚)이 아니면 이 일을 능히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해양은 사람됨이 충직하고 인품이 고결했다. 무엇보다도 담력이 셌다. 초군의 포위망을 뚫고 상구성으로 들어가야 하는만큼 해양 같은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 백종이 말하고자 하는 바였다.

진경공(晉景公)도 공감했다.
곧 해양(解揚)을 불러 밀서를 내주며 송나라에 가서 할 일을 지시했다. 해양은 그 날로 미복 차림을 하고 강성을 떠났다.

그런데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해양(解揚)이 송나라 도성 교외에 이르렀을 때 그만 초군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그는 첩자로 오인받아 초장왕 앞에 끌려갔다.

마침 초장왕 측근 중에 해양의 얼굴을 알아보는 자가 있었다. 그 측근으로부터 귓속말을 들은 초장왕(楚莊王)은 해양을 친히 문초했다.
"너는 누구냐?"
해양(解揚)은 사실대로 대답했다.
"나는 우리 주공의 명을 받고 송나라에 말을 전하러 온 진나라 대부 해양이오."

"무슨 말을 전하러 왔는가?"
"진나라 대군이 올 때까지 굳게 지키라는 말을 전하러 왔소."
해양(解揚)의 몸을 수색하자 과연 진경공의 밀서가 나왔다.

초장왕(楚莊王)은 속으로 두려움을 품었다.
초군이 상구성을 포위한 지 이미 다섯 달이 넘었다.
그 동안 상구성의 저항은 완강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송군(宋軍)의 저항은 점차 약해지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송나라는 스스로 항복하고 나설 것이었다.

그런데 진(晉)나라 대군이 구원하러 온다면 송군은 희망을 품고 더욱 농성을 강화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려움에 빠지는 것은 오히려 초군이 아니겠는가.
무엇보다도 식량난에 허덕일 것이었다.

초장왕(楚莊王)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해양을 내려다보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과인이 그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겠다. 그대는 송문공(宋文公)에게 가 이 문서와는 반대의 뜻을 말할 수 없겠는가? 진(晉)나라는 급한 일이 있어 송나라를 도울 수 없다. 혹 진군을 믿고 기다리다가 송나라 앞날에 낭패가 있을까 염려하여 특별히 구두로 이뜻을 전하러 왔다."

"그대가 이렇게만 말하면 송문공(宋文公)은 절망하여 우리에게 항복할 것이요, 그렇게 되면 양군은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될 것이 아닌가. 그대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 나는 그대를 초(楚)나라로 데리고 가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다."

해양(解揚)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초장왕이 눈을 부라렸다.
"내 제안을 거절하면 너는 죽는 수밖에 없다."
해양의 머릿속은 바삐 움직였다. 물론 그는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죽으면 송문공에게 진경공의 말을 전할 사람이 없어진다.
'나의 임무는 송군(宋軍)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다.'
마침내 해양(解揚)은 고개를 들었다.
"좋습니다. 왕이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초나라 군사들이 해양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초장왕이 시키는 대로 상구성 가까이에 마련된 누차(樓車)위로 올라갔다.
누차란 다리를 장착한 병차로, 일종의 움직이는 망루였다.

해양(解揚)의 눈에 상구성 안이 환히 내려다보였다.
꼭대기까지 올라간 해양이 성안을 향해 큰소리로 외쳐댔다.
"송나라 병사들은 들어라! 나는 진나라 사신 해양(解揚)이다. 나는 지금 초나라 군사에게 사로잡혀 있다. 저들은 나를 협박하여 구원군이 오지 않을 거라고 거짓말을 하게 했다."

"하지만 송군(宋軍)은 안심하라. 조만간 진(晉)나라 대군이 이리로 몰려와 송나라를 구원할 것이다. 너희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항복하지 말라!"
누차 아래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초장왕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당장 저자를 끌어내려라!"
해양(解揚)이 끌려내려오자 초장왕(楚莊王)은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렸다.
"네놈은 나와 약속해놓고 배반했으니, 참으로 신의(信義)가 없는 놈이다. 나는 신의가 없는 놈을 가장 싫어한다. 죽더라도 원망하지 말라."

초장왕(楚莊王)이 주변 군사들에게 해양을 참하라는 명을 내렸다.
군사들이 칼을 빼어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해양(解揚)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침착하고 조용하게 초장왕을 향해 말했다.

"군주가 올바른 명을 내리는 것을 의(義)라 하고, 신하가 군주의 명을 수행하는 것을 신(信)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의(義)를 아는 군주는 두 가지 명을 내리지 않고, 신(信)을 아는 신하는 두 가지 명을 받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께서는 나에게 부귀영화를 내세우며 우리 군주가 내린 명을 버리라 하였습니다. 이것이 어찌 올바른 명이라 할 수 있습니까? 내가 왕의 명을 승낙한 것은 바로 우리 군주의 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죽더라도 우리 군주의 명을 제대로 수행했으니, 이것이 신(信)을 지킨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러한 해양의 태도에 초장왕(楚莊王)은 노기를 누그러뜨렸다.
긴 숨을 내쉬며 탄복했다.
"충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더니, 이것은 바로 그대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로구나."
그러고는 해양을 석방하여 진(晉)나라로 돌려보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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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부탄 | 작성시간 22.02.16 늘 감사하게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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