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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장강의 영웅들 (96)

작성자미션|작성시간22.03.18|조회수128 목록 댓글 2

- 2부 장강의 영웅들 (96)

제7권 영웅의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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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장 극극(郤克)의 분노 (5)

그해 5월 초, 제나라를 대표할 사신의 진용이 갖추어졌다.
- 정사 고고(高固), 부사 안약(晏弱), 수행원 채조(蔡朝), 남곽언(南郭偃).
이 밖에 무장 병사 5백 명이 이들을 호위하기로 했다.

단도(斷道)회맹은 6월 17일에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임치에서 단도까지는 3천리 길이 넘는 먼 여정이다. 이제 불과 한 달밖에 기한이 남지 않았다. 서둘러야 겨우 기일 내에 당도할 수 있다.

고고, 안약을 비롯한 사신들은 결연한 각오를 품고 임치성을 떠났다.
그런데 출발부터 그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고고와 안약 등이 하직인사를 올리는 자리에서 제경공(齊景公)은 또 한 번 그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는 발언을 입에 담았던 것이다.

-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제(齊)나라 위신이 깎이지 않도록!
이 말 한마디에 모처럼 단도행을 결심했던 고고(高固)는 어깨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제경공(齊景公)은 '소신껏 행동하라'는 격려의 의미로 이 말을 했을지 모르겠으나, 듣는 고고로서는 '제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는 협정을 맺을 시는 용서하지 않겠다!' 라는 위협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상황을 어렵게 만든 것이 누군데?'
이런 반발이 고고(高固)의 마음속에서 일었다. 성공하면 본전이요, 실패하면 추락인 것이 이번 여정이었다. 혹여 진(晉)나라로 들어갔다가 해를 당하기라도 하면 고씨 가문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럼으로써 득을 보는 것은 주공과 국좌다.'
덫에 걸렸다, 라는 불신과 의심이 다시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올랐다.

안약(晏弱)은 안약대로 생각이 많았다.
비록 고고에게는 염려하지 마시오, 라고 큰소리는 쳤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번에 가면 죽을 공산이 열에 아홉이다.'
사지(死地)로 들어가는 셈이다.

어떻게 하면 그 남은 하나를 취해 무사히 귀국할 것인가. 그것이 이번 자신의 임무라는 것을 생각하니 그는 침조차 삼킬 여유가 없었다.
여름철 대지는 뜨거웠으나 그들의 침울한 여행은 계속되었다.

제나라 국경을 벗어났다.
이제부터는 위(衛)나라 영토였다. 염우라는 땅에 들어섰다. 염우(斂盂)는 지금의 하북성 복양현 동남쪽 일대로 제나라에서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인 셈이었다.

염우에 당도하자 안약(晏弱)은 수하 병사들을 불러놓고 명령했다.
"동태를 살피고 오라."
예전 같았으면 이런 지시조차 내릴 필요가 없었다. 위나라는 제나라와 친분관계에 있었다.

그런데 지난번 소동부인(蕭桐夫人)의 웃음소리 사건 이후 두 나라 관계는 급격히 냉랭해졌다. 제나라를 칠지도 모든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가 아닌가. 이제부터는 적지라고 할 수 있었다.

병사들은 각기 흩어져 마을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것이 뜻밖의 사태를 불러 일으켰다. 그 곳 분위기는 안약이 염려했던 대로였다. 위(衛)나라 사람들은 전혀 제나라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 제(齊)나라 사람들은 거만하기 짝이 없다. 어찌 우리나라 재상을 그렇게 욕 보일 수 있는가.
- 고고라는 자는 이번에 가면 반드시 살해당할 것이다.
이 소문을 들은 고고(高固)는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 날 밤, 그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을 때 고고(高固)는 마음속에 하나의 중대한 결심을 내렸다. 안약과 채조, 남곽언을 불러들여 선언하듯 말했다.

"나는 돌아가겠소."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안약(晏弱)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런 일은 이제껏 한 번도 없었다.

"임치로 돌아가겠다고 했소이다. 덫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안에 발을 들여놓을 수는 없질 않소?"
"그렇다면 단도(斷道)행은..........?"
"그대가 가시오. 그대가 나 대신 정사(正使)가 되어 단도로 가시오. 모든 권한을 전적으로 그대에게 위임하겠소."

"하지만 저는 하급 대부에 불과합니다."
"극극(郤克)이란 자도 진나라 정사였소. 하지만 어떻게 행동했소? 모든 것을 난경려에게 맡기고는 홀연 귀국하지 않았소? 나 또한 극극과 똑같은 행동을 할 뿐이오."
이를테면 고고(高固)는 극극의 흉내를 냄으로써 극극에 대한 보복뿐만 아니라 제경공과 국좌가 쳐놓았을지 모르는 덫에서 벗어나고자 함이었다.

안약(晏弱)은 고고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음을 직감했다.
땅이 꺼지는 듯한 암담함을 느낌과 동시에 지금까지 알고 있던 고고라는 인물에 대해 커다란 실망감을 가졌다.

'이런 인물이었던가?'
그러나 고고(高固)는 안약의 심중 따위에는 아랑곳없이 계속해서 자신의 논리를 펴고 있었다.
"극극이라는 자가 노리는 것은 주공이나 재상급일 뿐이오. 하급 대부에 불과한 그대에게 해를 끼칠 리 없소. 이번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는 길은 이것뿐이오. 그대는 내 말을 알아듣겠소?"

"하지만 경(卿)께서 가지 않으시면, 진나라는 군대를 일으킬지 모릅니다."
안약은 허둥대지 말자고 자신을 다독이며 필사적으로 말했다.
"그렇겠지. 하지만 전쟁은 내가 가도 마찬가지요. 주공은 이미 그것을 각오했단 말이오. 나는 그것을 이제야 깨달았소."

"무슨 말씀이신지?"
"국좌(國佐)의 해석이 옳았소. 주공은 진나라와 일전을 벌여 승리함으로써 천하를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도(斷道)에 우리를 참석시키려는 것은 군대를 정돈할 시간적 여유를 갖기 위해서였던 것이오. 나와 그대는 그 전쟁의 도화선 역할을 맡은 것에 불과하오."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하는 것도 충(忠)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반문하는 안약의 말에는, 그러나 힘이 빠져 있었다.
"충(忠)?"
고고는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안약은 알지 못했다.
"진정한 충은 진(晉)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오. 나는 임치로 돌아가 군대를 정돈할 작정이오. 아시겠소?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충(忠)이오."

억지다, 라고 안약(晏弱)은 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이제는 자신의 입장을 밝힐 차례였다.
"경의 뜻을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경께서는 임치로 돌아가십시오. 제가 경 대신 정사(正使)가 되어 단도로 가겠습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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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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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지존58 | 작성시간 22.03.18 감사합니다^^
  • 작성자부탄 | 작성시간 22.03.23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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