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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장강의 영웅들 (97)

작성자미션|작성시간22.03.19|조회수146 목록 댓글 2

- 2부 장강의 영웅들 (97)

제7권 영웅의 후예들


제 12장 극극(郤克)의 분노 (6)

- 단도(斷道)로 가겠다.
이 말은 죽으러 간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안약(晏弱)이 이러한 선택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고고에 대한 보은도, 제경공에 대한 충성심도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에 고고와 제경공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으로 인해 안약(晏弱)은 정치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절감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정치를 사나이들의 멋진 세계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보니 뜻밖으로 추악하고 비열함이 담겨져 있는 음모와 술수의 장(場)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런 것이 우리 제(齊)나라를 지배하고 있었던가?'
그것은 경악이요, 충격이었다.

'바꿀 필요가 있다.'
그는 제(齊)나라의 정치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대로는 안된다라는 자각이 일었다. 군신간에, 신하와 신하 간에 술수와 음모가 판을 치는 나라는 망한다.

안약(晏弱)의 아버지가 송(宋)나라의 정치에 진저리를 치고 제나라 망명을 결심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니었던가.
'바른 정치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안약(晏弱)은 고고의 괴변을 듣고 있는 동안 자신이 취해야 할 행동 강령을 설정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의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강한 의지이기도 했다.

이렇게 안약은 역사 무대로 등장했다.
미리 말하면, 안약은 안자(晏子)라 불리는 안영(晏嬰)의 아버지다.

안영은 관중과 더불어 춘추시대 최고의 명재상으로 손꼽히는 사람인데, 일개 망명 사족(士族)의 후손인 안영(晏嬰)이 제나라 정상의 자리인 재상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안약이 그 기반을 닦아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안약(晏弱)의 역사 무대 등장은 곧 안영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 단도(斷道)로 가겠습니다.
라는 안약의 결의에 찬 말을 들었을 때 고고(高固)는 일순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은 인물인데, 죽으면 아깝다.'
라는 동정적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신과 대비되는 안약(晏弱)의 의연한 결정에 부끄러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철모르는 햇병아리 외교관의 패기에 비웃음을 가졌을는지도.

"그대들은...........?"
고고(高固)는 눈길을 채조와 남곽언에게로 돌렸다. 두 사람의 의견도 들을 필요가 있었다.
채조(蔡朝)와 남곽언((南郭偃) 역시 안약과 더불어 출사한 지 얼마되지 않는 신임 관료였다. 그들은 굳은 표정으로 눈만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이 이윽고 고고(高固)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안약(晏弱)을 따르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자신들의 각오를 확인하듯 두 사람은 단단히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도 안약과 같이 고고에 대해 실망했음이 분명하다.

"과연 젊음은 좋군. 훌륭한 일이오. 하하하."
고고(高固)는 묘한 웃음을 터뜨렸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부터 단도로 가는 사신의 정사(正使)는 안약이오. 부사(副使) 역할은 채조가 맡으시오. 그럼 나는 이만 돌아가겠소. 그대들의 건투를 비는 바이오."
빠르게 말을 마친 고고는 수레에 올라타 임치를 향해 떠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호위 병사들은 의아해했다.
- 이상하다.
뒤늦게 고고(高固)의 귀환을 알게 된 병사들은 동요했다.
- 상경(上卿)이 우리를 죽음의 땅으로 몰아넣고 자신만 임치로 돌아갔다.
이제부터의 모든 책임은 안약의 어깨에 달렸다. 동요하는 병사들을 가라앉히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안약(晏弱)은 우선 채조와 남곽언을 불러 말했다.
"아시다시피 이제부터 우리는 사지(死地)로 들어가야 하오. 이것은 우리들 스스로가 선택한 것인만큼 후회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되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행동하기에 따라 우리는 살아서 돌아올 수도 있소."
남곽언(南郭偃)이 대답했다.

"우리는 이미 각오했습니다. 그대는 아무 염려 마시고 우리들이 할일이나 지시해주십시오."
"이 곳 염우 땅을 벗어나면 언제 극극(郤克)의 군사들로부터 기습이 있을지 모르오. 따라서 우리는 목표를 둘로 나눌 필요가 있소. 첫번째 목표는 무사히 단도까지 도착하는 일이요, 두 번째는 단도 회맹에 참석한 후 살아 돌아오는 일이외다."

"단도(斷道)까지 가는 일도 만만치는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병사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무슨 복안이 있는지요?"
"복안이라기보다는.......내게 한 생각이 있는데 두 분의 의견을 듣고 싶소."
"말씀하십시오."

"병사들이 수집해 온 첩보에 의하면 위나라 군주는 사흘 전에 도성을 떠났다고 하오."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채조(蔡朝)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주 중요한 상관이 있지요. 고작 사흘입니다. 우리가 위나라 군주의 행렬을 따라붙어 뒤쫓는다면, 그래도 극극(郤克)이 마음놓고 우리를 기습할까요?"
안약의 이러한 말에 남곽언은 무릎을 쳤다.

"그렇군요. 위나라 군주를 호위하는 군대에 바싹 붙어가면 극극으로서도 드러내놓고 우리를 습격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안약(晏弱)이 다시 말했다.

" 이 방법에 찬성하신다면 두 분께서는 지금 곧 병사들을 불러모아 이 계획을 발표하십시오. 그러면 병사들은 일단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것이 우리들이 살길이기도 하구요."

"묘책이십니다."
채조(蔡朝)와 남곽언(南郭偃)은 눈부신 표정으로 안약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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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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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지존58 | 작성시간 22.03.21 감사합니다~.^
  • 작성자부탄 | 작성시간 22.03.23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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