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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장강의 영웅들 (98)

작성자미션|작성시간22.03.21|조회수150 목록 댓글 2

- 2부 장강의 영웅들 (98)

제7권 영웅의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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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장 극극(郤克)의 분노 (7)

염우 땅을 떠난 안약 일행은 최대한의 속도를 내어 달리기 시작했다.
- 사흘이다. 사흘간의 간격을 없애면 우리는 산다.
안약(晏弱)은 수레 위에서 병사를 향해 연신 외쳐댔다.

병사들은 안약의 그 외침 소리에 최면이라도 걸린 듯 달리고 또 달렸다. 이렇게 나흘이 지났다. 이미 황하를 건너 위나라 옛 수도인 조가(朝歌)를 지났다.

한여름의 대지는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다. 병사들은 서서히 지쳐갔다.
"위나라 행렬이 보일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채조(蔡朝)가 초조한 듯 입술을 핥았다.
"내일쯤이면 따라붙을 수 있을 것 같소."

안약(晏弱)은 중얼거리듯 대답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한여름의 한낮 더위는 참으로 지독했다. 안약은 휴식을 명했다. 병사들은 나무 그늘 아래로 달려가 쓰러지듯 누웠다.

다음날은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비가 쏟아질 듯 길 앞쪽이 희뿌였다. 수면부족과 허기로 병사들의 발걸음은 쇳덩이를 매단 듯 무거웠다.
"여기서부터 진(晉)나라 땅이다. 따라붙지 못하면 극씨 병사들의 습격을 받는다."
안약(晏弱)은 독려했으나 병사들은 들은 둥 만 둥이었다.

그때였다.
개울 저편 구릉 쪽에서 몇 마리의 새들이 날아올랐다. 그 새들의 날개짓이 유달리 다급하다고 여기고 있을 때 난데없이 화살 한대가 날아와 안약(晏弱)의 발 밑에 꽂혔다.
"기습이다!"

이미 두 명의 병사들이 꼬꾸라지고 있었다.
화살은 빗발처럼 쏟아져 내렸다. 적병은 구릉 뒤편에서 나타났다. 안약(晏弱)은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하며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대오를 흩뜨리지 말고 방패로 화살을 막아라!"

그제야 정신을 차린 병사들은 재빠른 동작으로 방패진을 치고 날아오는 화살로부터 몸을 숨겼다. 다행히 그들을 습격한 것은 극극의 병사가 아니었다.
"두려워할 필요없다. 적적(赤狄)일 뿐이다."

그랬다. 그 일대는 진(晉)나라 군대에 패해 쫓겨온 적적 패잔병들의 소굴이었던 것이다.

적적(赤狄)의 공격은 이내 그쳤다.
상대가 자신들을 토벌하러 온 진군(晉軍)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던 모양이다.
"어찌 됐건 빨리 이 곳을 벗어나자."
적적의 출현은 안약(晏弱)의 수하 병사들에게 큰 자극제가 되었다. 재촉하지 않아도 그들은 알아서 빠르게 달렸다.

안약(晏弱) 일행이 위나라 군대에 따라붙은 것은 적적의 공격을 받은 다음날 아침 무렵이었다.

안약이 계산했던 것보다 하루 늦은 날짜였다. 밤새 달린 끝에 그들은 전방 초원에서 아침밥을 짓고 있는 위목공(衛穆公)의 호위 군대를 발견했다.
"위군이다. 이제 살았다."
병사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안약은 안약대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로써 단도(斷道)까지 무사히 갈 수 있게 되었다.'
자신도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졌다. 채조와 남곽언이 어깨를 흔들거리며 다가왔다. 그들 또한 환희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해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안약도, 채조도, 남곽언도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다. 위(衛)나라가 더 이상 제(齊)나라에게 우호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이 위나라의 움직임을 살피며 아침밥을 지어먹고 있을 때 위나라 편에서 사자를 보내왔다.
- 우리 나라 재상께서 제나라 사신 대표와 얘기를 나누고 싶어하십니다.
안약(晏弱)은 사자를 따라 위나라 진영으로 갔다.

위나라 재상이라면 지난번 사신의 자격으로 임치를 방문했던 애꾸눈 손양부(孫良夫)였다. 그 애꾸눈을 보는 순간 안약(晏弱)은 지난봄의 사건을 떠올리고 자신이 너무 성급했음을 깨달았다.

'그렇군. 손양부(孫良夫)도 원한을 품고 극극과 함께 돌아갔었지.'
아니나다를까. 안약을 대하는 손양부의 태도는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그대들은 무엇이오?"
"우리는 주공의 명을 받들어 회맹에 참석코자 단도(斷道)로 가는 제나라 사신입니다."
안약(晏弱)은 가능한 한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것을 묻고자 함이 아니오. 대관절 무슨 까닭으로 우리 행렬의 뒤를 바싹 따라붙은 것이오?"
안약(晏弱)은 궁리하다가 대답했다.
"아시다시피 단도까지 가는 길에는 적적(赤狄)이 자주 출몰합니다. 서로 힘을 합해 적적의 습격에 대비하고자 우리 제나라는 위나라와 동행하려는 것입니다."

손양부(孫良夫)의 입가에 싸늘한 웃음이 떠올랐다.
"적적이 아니라 진(晉)나라 군대겠지."
손양부의 조롱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건만, 안약(晏弱)의 얼굴빛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경께서도 아시겠지만 우리는 진(晉)나라 초빙을 받고 단도로 가는 중입니다. 진군이 우리를 습격할 리 없겠지요."
손양부(孫良夫)로서는 안약에게 한 방 먹은 셈이었다. 어, 하는 눈빛으로 안약을 바라보았다.

"어찌됐든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지시오."
"그것은 곤란합니다."
"그대는 누구요? 나는 정사(正使)인 고고와 얘기하고 싶소."
그때까지도 손양부(孫良夫)는 고고가 임치로 돌아간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약으로서는 아픈 곳을 찔렀다.
그는 순간적으로 고심하다가 사실대로 말했다.
"저는 안약(晏弱)이라고 합니다. 우리 상경께서는 급한 일이 생겨 저에게 정사(正使)의 권한을 위임하시고 염우에서 귀국하셨습니다."

"귀국? 고고(高固)가 도중에 돌아갔단 말이지? 후후......."
손양부는 노련한 정객답게 고고가 귀국한 까닭을 대뜸 짐작했다. 그는 안약을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

"그대는 급한 일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겠소. 고고(高固)는 극극의 얼굴을 대하기가 두려웠던 것이오. 물론 그대는 고고를 대신한 희생양일 테고."
정확한 지적이었으나, 그 말투가 기분나빴다.

손양부의 계속되는 조롱에 안약(晏弱)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 일에 대해선 어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우리들은 적적(赤狄) 습격에 대비하여 위나라 후미를 담당할 작정입니다."

"이제는 아예 떼를 쓰는군. 하지만 그 용기만은 가상하오. 좋소. 고고가 허둥지둥 도망쳐 돌아간 마당에 어차피 극극이 하급 대부 따위를 몰래 기습할 리는 없을 테니까. 1사(舍) 거리를 두는 것을 허락하겠소. 하지만 너무 마음놓지 마시오. 극극(郤克)이라는 사람은 의외로 도량이 작을지도 모를 테니까 말이오."

손양부(孫良夫)는 이렇게 말하고 큰소리로 웃어제꼈다.
안약(晏弱)은 문득 그 웃음소리가 고고의 그것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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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지존58 | 작성시간 22.03.21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작성자부탄 | 작성시간 22.03.23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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